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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2일 서울고법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항소심에서 부영그룹이 준법감시실을 만든 점을 참작한다며 1심에서 선고한 징역 5년을 징역 2년 6개월로 감경했습니다.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했다는 것만으로 양형을 감형해준 것인데요.
일각에서 부영 이중근 회장에 대한 판결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 판시 내용과 유사한 점을 이유로 해당 판결이 이재용 재판에 대한 ‘예고편’이라는 의심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비평해주셨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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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서울고등법원은 부영 그룹 회장 이중근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이 판결의 양형 이유 부분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 기업집단이 … 준법감시실을 설치하였으며, 준법감시인과 위임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정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에 포함시켰다.
부영 판결은 삼성의 ‘예고편’인가
더욱 주목되는 것은 이 사건의 재판부가 이미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과 관련해 “기업범죄의 재판에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의 시행 여부는 미국 연방법원이 정한 양형 사유 중 하나”이며 “전문심리위원제도를 이용해 삼성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려 한다”고 말한 바 있어서, 마치 이 재판이 기업에 준법감시제도가 마련된 경우 최고경영자의 범죄 행위에 대해 감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고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부영 사건 재판부 = 삼성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부).
준법감시제도는 기업이 자체 내에 법규를 준수하는 감시 및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기업 외부의 법률이나 규칙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의 윤리 강령이나 정책, 절차 등도 포함된다. 또 더욱 확장된 준법감시제도는 법규의 준수를 넘어 윤리적인 기업문화를 지속시키는 것으로도 연결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2000년 처음으로 금융기관에 대해 준법감시인제도가 도입된 이래 2007년에는 이것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었고, 2011년에는 상법 개정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준법지원인을 두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준법감시제도를 두고 이것은 이미 존재하는 기업 내 준법감시기구와 중복되는 옥상옥에 불과하여 기업의 비용부담만 증가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는 사전적인 범죄예방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기업의 준법경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적어도 이것이 범죄에 대한 양형 사유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위 임원의 감형사유 적용 불허해야
[dropcap font=”arial” fontsize=”33″]첫째,[/dropcap] 기업의 고위임원이나 최고경영자가 직접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이러한 감형사유가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준법감시제도는 이사회와 같은 기존의 기업 의사결정구조로부터 독립된 체계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가장 ‘중요한 성공요소는 조직 내 윤리적 행위나 법규준수에 대한 최고 경영자의 지속적이고 절대적인 의지’라는 면에서 보면 이미 최고경영자가 범죄행위를 한 마당에 이를 다시 준법감시제도의 설치와 운영을 이유로 감형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미국 연방 조직 양형 가이드라인[footnote]Federal Sentencing Guidelines for Organizations[/footnote]도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및 윤리 프로그램의 존재를 이유로 한 책임점수[footnote]culpability score[/footnote]의 감점에 대해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즉, 그 조직의 고위 임원[footnote]an individual within high level personnel of organization[/footnote] 또는 범죄가 발생한 부서의 고위임원[footnote]a person within high-level personnel of the unit of the organization; 단, 이 경우에는 그 부서가 200명 이상의 피고용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footnote] 혹은 컴플라이언스 및 윤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 범죄행위에 가담했거나 이를 묵인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경우에는 감점사유가 적용되지 않는다(제8장 C2.5(f)).
위 부영 판결의 사례는, 미국에서라면, 이 규정만으로 감형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업의 고위 임원에 해당하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범죄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및 윤리 프로그램을 이유로 한 감형사유는 조직의 고위임원이 아닌 일반 구성원이 범죄행위를 한 경우, 그것도 고위 임원이 이를 묵인하거나 무시하지 않은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범죄 후 만든 ‘기업의’ 준법감시제도가 경영자 ‘개인의’ 감형사유?
[dropcap font=”arial” fontsize=”33″]둘째,[/dropcap] 감형사유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준법감시제도가 범죄행위 당시에 실시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형법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히 요구되는 요건이고,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기업은 먼저 범죄를 감행하고 후에 이러한 사유를 만들어 감형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은 범죄의 사전예방이라는 준법감시제도의 취지와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미국 연방 조직 양형 가이드라인 제8장 C2.5(f) (1)항도 감점의 요건으로 ‘범죄행위 당시에(at the time of the offense)’ 조직이 효과적인 컴플라이언스 및 윤리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33″]셋째,[/dropcap] 준법감시제도가 기업 자체가 아닌 개인에 대해서 감형사유로 작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1960년대 이래 미국에서 발전한 이 제도의 등장 배경이나 정착 과정, 그리고 현재 가장 대표적으로 이를 규범화하고 있다고 하는 미국의 연방 조직 양형 가이드라인 제8장의 내용 등을 살펴볼 때, 이것은 분명히 기업과 같은 조직에 적용되는 것일 뿐 그 조직에 속해 있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의 C2.5(f)항이 보여주듯이 고위임원의 범죄행위는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즉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고위임원이 스스로 법규를 어긴 경우에는 이미 기업 내에 존재하는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거나 혹은 이들이 그 제도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이 제도가 기업 자체에 대해서 감형요인으로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를 한 개인에 대해서는 감형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요소로 인정될 수도 있다. 조직 내에 마련되어 있는 준법감시제도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감행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행위자가 이러한 제도의 운영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최고경영자라면 이를 형벌 가중요소로 보아야 할 여지가 더 많아질 것이다.
고위직 제대로 처벌도 못하면서 감형부터 논의하는 현실
[dropcap font=”arial” fontsize=”33″]넷째,[/dropcap], 백보를 양보하여 이상의 모든 해석상의 난점을 무시하고 준법감시제도를 개인에 대한 감형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법에 규정되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법지원인은 현실에서 대상 기업의 40% 남짓만이 이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 않은 이유 가운데 첫 번째가 기업이 이를 실효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또 이와 관련하여 외국의 한 학자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5단계로 나누어 평가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는데,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대체로 그 초기에 해당하는 2단계 정도에 지나지 않아 준법감시제도를 이유로 상법이 규정하는 면책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위의 재판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사유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우선 이것이 ‘실효적’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실제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준법감시제도가 양형 고려의 대상이 될 뿐, 형식적으로 마련된 서류상의 제도만으로는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준법감시제도의 근본적 한계라고 할 수 있는 기업지배구조의 문제, 특히 1인의 대주주가 실질적으로 이사회와 주주총회 등 모든 기업의 의사결정기제를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독특한 현실을 감안하면, 과연 현재 우리 기업들이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미국의 양형 가이드라인이 탄생한 배경을 되새겨 볼 필요도 있다. 기업 범죄의 시각에서 보면 1987년 제정된 미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은 범죄를 저지른 고위경영자들에 대해 충분한 형벌, 특히 자유형이 부과되고 있지 않다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제정동기로 작용하였다. 이후 1991년 조직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추가되는데 그 동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기업에 부과되는 벌금액은 그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기업이 스스로 자체 내에 범죄를 예방하고 적발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준법감시제도가 도입되었고 높아진 벌금액에 대한 반대급부로 여기에 감형의 인센티브를 준 것이다.
이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기업 범죄에 대한 처벌현실은 어떠한가? 새로운 감형기준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기업에 대한 그리고 고위 경영자에 대한 처벌이 충분히 이루어져 왔는가? 현실은 그 정반대라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점점 더 커져가는 기업의 영향력과 그에 비례하여 중요도가 높아지는 기업범죄의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해왔던 우리 형사사법의 대응을 고려하면, 기업 특히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고위 임원의 범죄행위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형벌이 선고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스스로 범죄행위를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감형사유는 그 이후에 고려해도 전혀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