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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인 전 세계 미디어 혁신의 사례를 소개해준 강정수의 글(‘혁신 미디어 동향 1: 뉴스 퀴즈를 만들어라’)은 흥미롭다. 뉴스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모델이 여럿 등장한다. 기성 매체의 위기를 온라인 프리미엄 뉴스 유료화를 통해 돌파해본다거나, 멀티미디어 내러티브를 통한 기사의 대명사가 된 스노우폴 같은 실험으로 답을 모색해본다거나, 이런 시도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다.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강정수가 진행한 논의에 좀 더 보태고자 한다.

‘미디어 스타트업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이건 우리도 사정이 비슷하다. 우리나라 온라인 매체가 현재 3,900여 개. 무서운 속도로 늘어난다. 다만 상당수 뉴스가 수렁에 빠져 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를 오남용 하는 트래픽 모델(흔히 ‘미끼질’)로 살 길을 모색한다. 이런 미끼질을 온라인 혁신을 모색하는 스타트업이라고 부를 순 없다. 해외 시도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강정수가 소개한 사례들로만 보면 확실히 모바일 시대에 대한 고민을 볼 수 있다.

‘바이스’를 보라: 청년의 분노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장

기성언론에 뭘 기대해? 일단 기존 저널리즘과 단절하겠다는 정서가 읽힌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만은 우리도 만만치는 않지만. 바이스(Vice)를 보라. 강정수는 이렇게 소개했다.

“북미, 유럽 및 일본 등 14개 국가에서 발행하는 잡지. 청소년, 청년들이 겪고 있는 성, 마약, 폭력 문제뿐 아니라, 정치 및 사회 갈등 등도 그들의 시각에서 훌륭하게 그려낸다.” (강정수)

점잖은 소개다. 훨씬 강렬하다. ‘2014년 또 한 해 이렇게 달린다’는 예고편 좀 보라. 강정수가 지적한 “흉내 낼 수 없는 느낌”이라는 지적이 그대로 와 닿는다.

YouTube 동영상

2006년 이란, 2007년 콜롬비아, 2008년 북한, 2009년 가나, 2010년 라이베리아, 2011년 이스라엘, 다시 2013년 북한까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충돌의 현장을 숨 가쁘게 이어준다. 무시무시한 속도감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가장 중요한 그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들이 공권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우리나라 지상파 뉴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도다.

‘우리가 짱돌을 드는 이유를 니들이 알아?’
‘우리가 왜 성, 마약, 폭력에 빠져들까?’

전 세계 20대가 어떻게 악전고투하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분노가 팔딱거린다.

청년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는 바이스 (캡처: 바이스닷컴)
청년의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는 바이스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다시 돌아보자. 미디어는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력을 감시한다고? 우리나라 미디어가 정말 그런가? 사실은 그 반대다. 바이스뉴스 카메라는 전 세계를 헤집고 다니며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 청춘의 현재 모습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어떤 뉴스? 기존 미디어의 정치, 경제, 사회, 뭐 이런 섹션 분류와 많이 다르다. 일단 유튜브에 있는 바이스 채널에는 저항하는 젊음(Youth in Revolt),  환경(Environment),  전쟁과 분쟁(War and Conflict) 같은 낯선 카테고리가 보인다. 저항군의 뉴스냐고? 아니다. 10억 달러 가치를 지닌, 워싱턴 포스트보다 4배 이상 큰 뉴스 시장이다.

마치 '저항군'을 연상시키는 바이스의 유튜브 채널 카테고리들 (캡처: 유튜브에 있는 '바이스' 채널)
마치 ‘저항군’을 연상시키는 바이스의 유튜브 채널 카테고리 (유튜브 바이스 채널)

그럼 바이스뉴스의 정치적 당파는 어느 쪽일까? 바이스는 어떤 진영을 대표하는 걸까? 바이스뉴스를 이런 질문을 촌스럽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싸늘하게 거부한다. 창업자 세 명 중 한 명인 셰인 스미스(Shane Smith)는 2008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정형화된 좌우 기준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두 쪽 모두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정치성은 민주당 논리인가, 아니면 공화당 논리인가? 둘 다 끔찍하다. 게다가 어느 쪽이든 별반 상관없다. 미국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We’re not trying to say anything politically in a paradigmatic left/right way … We don’t do that because we don’t believe in either side. Are my politics Democrat or Republican? I think both are horrific. And it doesn’t matter anyway. Money runs America; money runs everywhere.

‘업월디’ 동영상 큐레이션으로 사회적 미션 수행 중!

업월디(upworthy)는 [생각 조종자들](Filter Bubble)의 저자이자 무브온 이사장이던 엘리 프레이저가 만든 웹사이트다. 본격적인 큐레이션 사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유튜브 동영상 중에 가장 ‘볼 만한’, ‘봐야 하는’ 콘텐츠를 골라서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인 게 끝이다. 분량도 트위터보다 조금 더 긴 수준에 불과하다.

일단 페이지 들어가면 이렇게 뜬다. 심플하다! 첫 화면에 몇 개 없다.

아주 심플한 업월디의 첫 화면 (캡처: 업월디)
아주 심플한 업월디의 첫 화면 (캡처: 업월디)

메인 기사 하나 클릭해서 들어가 보자. 들어가면 유튜브 동영상에 정말 몇 마디 설명 붙인 게 전부다. 당신이 꼭 이 동영상을 봐야 하는 이유를 솔깃하게 낚시해주는 글. 그리고 보고 좋으면 바로 트윗하거나 페북 올리라고 간단하게 클릭을 유도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의미 있는 콘텐츠를 널리 멀리 전파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on a mission to spread meaningful content far and wide) 이메일 주소를 남기면 날마다 메일로 보내주마 한다.

업월디의 이메일링 서비스 문구 (캡처: 업월디)
업월디의 이메일링 서비스 문구 (캡처: 업월디)

단순한 유튜브 동영상 큐레이션 서비스. 그런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미디어다. 순 방문자 증가 그래프를 보라.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업월디의 가파른 성장 속도
업월디의 가파른 성장 속도

지난해 9월 ‘테크니들’은 업월디를 비디오 입소문 서비스로 소개하면서 800만 달러 펀딩을 받은 얘기를 소개한다. 업월디는 시의적절한 정보보다는 의미 있고 중요한 정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업월디는 빈곤이나 양성평등 등 사회적 이슈에 집중하는 미디어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하지만, 대중적으로 관심을 끌기 어려운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기사를 직접 쓰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 동영상 중에 (동영상 제작에 직접 나서진 않지만, 그 또한 앞으로 가능하리라) 당신이 놓치면 안 되는, 꼭 봐야 하는 짧은 클립들을 콕콕 찍어 소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 업월디.

트래픽이 쏟아지고, 당연히 기업 니즈도 생길 테고, 투자 받을만하다. 그러면서 사회적 미션도 수행한다. 근사하다.

경이로운 짧은 스타일: ‘나우디스뉴스’ ‘인스타팩스’

모바일 세대를 겨냥한 미디어가 짧고 강렬한 건 당연하다. 아빠는 CNN, 엄마는 허핑턴포스트를 본다. 그러면 우리는? 뉴스 따위 왜 봐? 뭐 이런 세대를 겨냥한 미디어와 시도가 통하고 있다.

동영상과 사진이 긴 담론보다 선호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긴 텍스트는 어차피 찾아볼 사람들은 찾아보게 마련이다. 일단 다수 대중에게 노출되는 게 미디어의 목표 아니겠나? 짧다. 확연히 짧다. 강정수가 소개한 나우디스뉴스나 BBC의 인스타팩스(인스타그램 전용 뉴스)는 그 짧은 스타일이 경이로울 정도다.

나우디스뉴스를 살펴보다가 ‘당신이 그래미에서 놓친 것’(What You Missed At The Grammys)도 운 좋게 접했다. 15초짜리 슬라이드쇼 스타일부터 32초짜리 나레이션 버전 뉴스도 있고, 이렇게 아주 긴 2분 24초짜리도 있다. 뉴스의 시각부터 좀 다르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만에 관한 동영상 (캡처: 나우디스뉴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배우 필립 시모어 호프만에 관한 동영상 (캡처: 나우디스뉴스)
아메리칸 드림은 끝장이라고, 부자는 여전히 부유하니 걱정말라는 저 냉소적 타이틀이라니…… (캡처: 나우디스뉴스)

나우디스뉴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스타팩스(Instafax)에 대한 평가가 “인스터팩스가 게임을 바꿨다”(Instafax is a game changer)라는 극찬부터 “역대급 최악의 아이디어”(worst idea ever)까지 분분하다는 건 재미난 반응이다. 일단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인스타그램 전용 뉴스를 만든 BBC의 '인스타팩스'(Instarfax)
인스타그램 전용 뉴스를 만든 BBC의 ‘인스타팩스'(Instafax)

뉴스타파도 조금 더 짧게 끊은 클립을 더 시도해보면 좋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뉴스타파 동영상보다는 그 동영상을 요약 정리해놓은 버전을 더 본다.

심장이 뛴다! ‘뉴스타파’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당대의 저널리즘이 수명을 다한 것은 이제 부인하기 어렵다. 기성 매체가 여전히 사회적 의제를 이끌어 가고, 주류 매체가 침묵하면, 대다수 대중은 세상사에 대해 눈과 귀가 가려진다. 하지만 저널리즘에 대한 분노와 연민도 최근 우리 사회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정보를 대다수 시민이 모르는 정보비대칭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절름발이 미디어, 곡학아세하는 미디어 틈에서는 그 어떤 모색도 힘을 얻기 쉽지 않다.

그래서 내 고민은 늘 미디어로 돌아온다. 기성 매체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변화와 도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도 뉴스타파슬로우뉴스, ㅍㅍㅅㅅ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있다. 슬로우뉴스의 진지한 시선, ㅍㅍㅅㅅ의 쿨한 감각과 뉴스타파의 탐사보도 노력은 분명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뉴스타파,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뉴스타파,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다만 아직 모바일 시대의 디지털 코드에 최적화된 모양새는 아니다. 바이스나 업월디와 같은 대중적 반응을 이끌어내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21세기, 기성 매체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온갖 시도가 쏟아져나오는 시대, 어쩐지 두근두근하지 않나? 미디어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위안이 된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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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본문 꽁지 부분에 ㅍㅍㅅㅅ 여기도 꽤 맘에 드네요. 덕분에 RSS 한개더 추가 했네요.
    그런데 ㅍㅍㅅㅅ 뜻이 뭔지? 폭풍 그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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