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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단풍

 

아침에 가을 단풍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참 사진을 보시더니,

“진짜 예쁘네. 단풍은 사실 슬픈 건데, 왜 저리 예뻐 보일까?”

“그쵸… 슬프죠.”

“죽음이잖아.”

“……”

“그래도 저게 다 거름이 되지. 다시 돌아가서”

“다 주는 거죠.”

“그렇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ForestWander.com, CC BY SA
ForestWander.com,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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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국

 

일요일 밤, [청담동 앨리스]를 어머니랑 같이 봤다. 차승조(박시후)가 신인화(김유리)의 제보로 모든 것을 알게 되고, 한세경(문근영)을 처음 만나는 장면.

승조는 진실을 외면하려 애쓰며 세경에게 포도주를 권한다. 그러나 미칠 듯한 괴로움으로 계속 마셔대다가 취해 잠이 든다.

나는 극의 전개와 문근영의 미래를 생각하며 혼잣말로 탄식했다.

“아, 이제 어떡하냐”

“콩나물 국 끓여줘야지”

“………”

너무 큰 미래를 생각하지 말자. 술 취한 사람에겐 콩나물국을 끓여줘야 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해도 늦지 않으니.

출처 미상
출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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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

 

밤늦은 산책.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꽈배기 천 원어치만 사와라”

“네네”

집에 돌아오자마자 까만 봉지를 하늘 위로 치켜올리며 말한다.

“엄마 사왔어요.”

“어어. 천 원어치만 사오지.”

“일부러 많이 먹을까 봐 천 원어치만 사왔죠. 세 개 주던데요.”

“응, 너도 하나 먹을래?”

“네. 하나만 주세요.”

엄마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을지도 모르는 꽈배기를 먹고 있다.

전주 꽈베기 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꽈베기 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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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과 국수

 

불쑥 어머니에게 문자가 왔다.

“점심 먹었니?”

“네, 먹었어요.”

가끔 나오는 메시지 대화 패턴이다. 그런데 오늘은 한 마디를 더 붙여서 물어보신다.

“낮에 뭐 먹었니?”

아, 이건 뭔가. 보통 때는 먹었냐고 물어보시는 게 다인데 오늘은 뭘 먹었냐고 콕 짚어서 물어보시는 거다. 약 1초간의 짧은 짜증. 잠시 후 답장을 보냈다.

“비빔밥 먹었네요.”

저녁이 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할 때 즈음해서 국수를 삶고 계신 어머니. 먹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말씀을 꺼내신다.

“저녁을 준비하는데 네가 점심때 뭐 먹었는지 궁금하더라고. 비빔밥 먹었다고 하길래 밥하려다가 국수, 그 중에도 비빔국수 말고 국물 있는 걸로 준비했어. 맛있을 거야.”

아, 이 이야기를 듣는데 왜 이리 가슴이 뜨거워 오는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짜증을 냈던 내 마음이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가끔 사랑은 성가심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조금 노력한다면 내가 성가셔하는 부분이 사랑의 세심함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마음을 깊이 해야 사랑도 깊이 받을 수 있는가 보다.

avlxyz, CC BY SA
avlxyz,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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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3주기

 

어머니, 3년 전 오늘, 사람들이 여섯 명이나 죽었어요. 그것도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정말 딱 어머니랑 저 같은 사람들이었지요. 우리의 미친 이기심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어요. 이 새벽에 그들을 태워버린 거대한 폭력을 응시해요. 그리고 이 가수가 절규하듯 “더 이상 타는 영혼이 없기를” 기도해요.

어머니, 전 천사가 될 자신은 없어요. 그저 덜 가혹하고,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09년 12월 30일 용산참사 협상 타결 ⓒ 노동과세계
2009년 12월 30일 용산참사 협상 타결 ⓒ 노동과세계

* 2011년 1월에서 2013년 1월 사이에 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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