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후원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넷’). 많은 훌륭한 시민단체가 있고, 많은 훌륭한 독립언론이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곳에 후원하고 싶지만, 내 가난한 살림살이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에게 진보넷 후원은 작은 위안이다. 내 초라한 통장에서 가장 빛나는 광채를 담고 세상으로 스며드는 월 1만 원일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 진보넷이 20년이 됐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진보넷의 성년 잔치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내 나름으로 진보넷의 성년을 축하하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병’ 님께 인터뷰를 청했다. 그리고 지난 4월 12일 광화문 한 카페에서 오병일을 만났다.
- 인터뷰이: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 인터뷰어: 민노씨
- 2019년 4월 12일, 서울 광화문 어느 카페
= 자기소개.
진보넷 활동가 오병일이라고 한다.
= 어느새 20년이다.
그러게.
= ‘함께하는시민행동’도 올해 20년이고, 올해 20년을 맞는 시민단체들이 꽤 된다.
아무래도 김대중 정부 시절(1998년 2월 25일–2003년 2월 25일)에 많은 시민단체가 설립됐다.
= 모르는 분을 위해 진보넷을 간단히 소개하면.
1998년 11월 14일에 설립했다. 당시는 사회의 정보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던 시기다. 사회운동단체로서 그 정보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리고 사회운동의 정보화는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에 관한 사회적 고민이 있었다. 그런 고민이 반영된 시민단체가 진보넷인 셈이다. 작게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부터, 크게 보면 사회운동의 정보화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역량에 대한 요구를 받아 안고 시작했다.
= 우선 시사 이슈 몇 가지만. 이미선 후보자 자격은 어떻게 보나.
자세히 검토하진 않았지만, ‘왜 저렇게 돈이 많아?’ ‘왜 저렇게 많은 돈을 주식에 투자했어?’ 이런 감정적 거부감이나 도덕적 의구심은 당연히 생길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많거나 주식에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곧바로 인사에 적합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서 적당한지를 좀 더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참고로 문재인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순방 중인 오늘(2019년 4월 19일) 이미선,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전자결재 방식으로 재가했다. -편집자)
= ‘정준영 음란물 유포’에 관해선.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정준영이라는 한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정준영식 범죄 행위가 하나의 온라인 소비 행태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다수 남성들도 채팅방에서 정준영이 했던 것과 유사한 소비 활동을 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또 하나의 쟁점은 권력기관에 관한 신뢰의 문제라고 본다. 수사기관을 믿을 수 없고, 이들이 새로운 권력인 대중문화 권력과 공모적인 관계를 구성하고, 담합하고 있거나 그렇게 의심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본다.
= 인공지능 윤리에 관한 논의가 외국에선 비교적 활발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도 토론회나 세미나에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편이다. 다만, 그 내용이 외국에서는 이런 논의가 있다는 식이 대부분이다. 국내의 자체적인 규범이나 자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윤리라고 폭넓게 평하면, 개인정보 이슈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로 인한 프로파일링이나 차별까지 포괄하는 문제다. 국내에서는 영향 평가나 규범 형성으로까지 나아가진 못한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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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왜 어떻게 태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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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넷의 모체가 되는 활동이 있었다고 안다.
정보연대 ‘싱(SING)’의 활동이다. 싱은 1994년 서울대학교 내 동호회로 출발했다. 싱은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제작하기도 하고, 당시의 유명한 포털인 야후처럼 진보디렉토리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으며, 학술DB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책적으로는 사적이지 않은 비개인정보는 공유하고, 개인정보는 보호해야 한다는 이상을 품고 연대활동을 했다.
그리고 통신연대라는 네트워크가 있었는데, 정보화를 사회운동으로 접근해 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을 진행했다. 당시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이런 3대 통신망의 진보동호회도 참여했다. 한국과학기술청년회도 참여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김진균 교수의 지식인연대도 검열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PC통신 참세상도 참여했다.
= 그런 활동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진보넷이 창립된 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신연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김형준 씨(PC통신 참세상 운영자)가 진보넷 설립을 제안했다.
= 창립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96년 12월 26일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신한국당)가 있었고, 곧이어 총파업이 있었다.
= 아, 그 역사적인 96년 노동법 날치기!
당시 언론은 총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도했다. 그래서 통신연대는 온라인을 통해서 총파업을 지지하는 활동을 기획했다.
= 예를 들면?
가령 ‘블랙리본’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노동법 날치기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이를 상징하는 ‘근조 민주주의’를 까만 리본에 새겼다. 파업 속보를 전달하고, 뉴스레터를 제작했다. 시민기자처럼 직접 현장 소식도 전하고, 영문 페이지도 만들었다. 그런 활동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적극적인 연대를 이끌어 냈다.
= 그러다가?
97년 말에 서울국제노동미디어 국제회의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많은 영상 활동가가 참석했고, 인터넷 활동가가 참석했다. 노보를 만드는 분, 다양한 미디어와 노동운동에 관한 체험을 가진 분들이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관련 행사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도 하고. 각국의 노동 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참여했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에도 노동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노동 네트워크?
그렇게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심과 바람이 모여 98년 초에 피시통신 참세상 운영자인 김형준 씨가 진보넷 설립을 제안했고, 98년말에 창립했다.
= 김형준 씨의 기여가 상당하네.
다만, 창립을 제안하고, 설립 이후에는 진보넷에 크게 관여하지는 않았다.
= 진보넷(진보네트워크센터)과 참세상(언론사)의 관계는 어떤 건가?
처음에는 ‘진보네트워크센터'(라는 단체)가 ‘참세상'(이라는 플랫폼)을 서비스한 것으로 보면 된다. 나중에 2005년에 참세상이 언론을 분리하면서 ‘민중언론 참세상’이 됐다. 처음에는 진보넷이 참세상을 운영했지만, 결국 완전히 분리됐다.
= 창립 그룹은 순전히 통신(인터넷)에 기반했나. 학연과 지연이 개입하진 않았나.
통신연대가 기반됐고, 학연과 지연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인권운동 사랑방, 경실련 등도 기존의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과는 다르게 학연과 지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곳으로 안다. 특정 학교나 지역에 기반하지는 않았다.
= 설립 초기 가장 큰 이슈는 뭐였나.
PC통신(인터넷) 검열 반대 이슈와 전자주민카드를 통한 프라이버시 위협 문제가 당시 가장 큰 이슈였다. 즉, 정부의 검열과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시민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정보화 이슈 중에서도 검열과 프라이버시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도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기둥이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운동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이 진보넷의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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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중세: 디지털 봉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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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전과 비교하면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물리적인 환경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환경이 변했는데.
특히 거대 IT 기업에 의한 상업화와 독점화가 심화했다. 진보넷을 시작할 때만하더라도 사회운동의 포털을 만들자. 그런 목표를 세웠는데. 포털이나 거대 IT 기업의 자본집약적인 비즈니스가 인터넷을 독점하고, 강화했다.
= 기업집단과 시민사회를 굳이 분리하면, 기업집단의 완전한 승리로 귀결됐다고 보인다.
2000년대만하더라도 진보넷과 같은 비영리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가 있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그런 비영리 ISP의 연합체인 국제 진보통신연합(APC)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비영리 인터넷 단체들은 대체로 상업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리거나 아니면 아예 상업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APC는 건재하고, 비영리 ISP의 네트워크에서 정보 인권 단체들의 국제 네트워크로 변신했다. 그리고 진보넷은 APC의 회원 단체다.
= 인터넷(웹)의 파편화와 상업화 그리고 독점화에 관해선 ‘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도 여러 번 직접 비판한 바 있고, 웹 탄생 25주년을 기념한 2014년 강연에서는 ‘웹을 위한 권리장전’을 주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거대 IT 기업의 독점을 통한 인터넷의 파편화와 상업화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보나.
지금으로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큰 거대담론이다. 그 거대담론만으로 운동하기는 힘들다.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개인정보문제나 공정한 경쟁의 문제를 존중되도록 압박하고, 국가가 제대로 규제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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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의 호소
“만약 우리 웹 사용자가 이러한 흐름(거대 IT기업의 독점을 통한 웹의 파편화)을 용인한다면, 웹은 조각 조각 떨어진 섬들로 변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웹페이지를 연결할 수 있는 자유를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팀 버너스-리, 2010.)
“여러분은 어떤 웹을 원하시나요? 저는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파편화되지 않은 웹을 원합니다. (중략) 저는 민주주의에 견고한 기반이 되는 웹이 되기를 원합니다. (중략) 우리 모두 웹을 위한 권리장전을 만드는 데 함께 참여합시다.”(팀 버너스-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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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정확히는 ‘월드 와이드 웹’)이 탄생한지 30년이다. 정보 민주주의의 이상은 실현되고 있다고 보나. 아니면 정보 독점이나 정보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고 보나.
민주주의라는 건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는 거다. 그리고 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자기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 거다. 하지만 정반대다. 점차 소수의 권력이 통제권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시장에서는 기업의 독점과 권력이 초법적으로 강화하고, 고전적 권력체계에서도 정부의 통제권이 강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이겠지. 그에 반해 평범한 사람들은 그 통제의 틀 안에 갇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아주 동의한다.
보안학자 브루스 슈나이어는 기술을 모르는 대다수 인터넷 거주민들은 사이버 안전을 위해 정부의 감시를 수용할 것을 강요받고, 이를 결국 수락하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디지털 봉건주의’라고 명명했다.
즉, 봉건제에서 봉노들은 지주의 보호를 받지만, 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이버상의 위험이나 범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인터넷 사용자들은 기업이나 정부에게 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결국 정부나 기업의 안락한 시스템에 안주하게 된다고, 즉 자기 스스로 자신을 노예화한다고 슈나이어는 지적한다. 적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 플랫폼 기업의 진화 방향이 결국은 ‘API 위 노동’ 장악함으로써, 즉 알고리즘이 인간의 노동을 통제하고, 인간이 알고리즘을 위해 노동하며, 이를 통해 기업 수익이 극대화하는 경향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소수의 독점적 플랫폼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나아가 기존의 산업구조나 노동력까지 재배치하고 있다. 단지 인공지능이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독점화와 산업구조의 변화가 실업문제나 파편화된 플랫폼 노동과 같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내게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할 역량은 없다. 다만,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마치 기득권 세력이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식의 담론만이 너무 커져 있고, 정부 역시 혁신 산업 진흥에만 매달려있는 것이 우려스럽다.
= 디지털 경제를 중심으로 한 초집중과 초권력화의 속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는 것 같다. 사회적인 양극화를 심화하는 디지털 (경제)의 양극화에 대해선 적절한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IT에 특화된 현상으로 이 분야만 따로 보기보다는 디지털 산업이 산업이나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사회구조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경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의 변화나 사회인식의 변화, 양극화의 문제 등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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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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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년의 활동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있다면.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물론 그 한계가 있지만, 2000년대 초반 네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 투쟁을 계기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운동을 펼쳤고, 결국 불완전하지만 법을 제정했다(2011년). 이제 제대로 된 감독기구를 설립하고, 개인정보보호법을 좀 더 제대로 보완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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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보호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개인정보의 처리 및 보호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 주민등록번호 및 영상 등을 통하여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해당 정보만으로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를 말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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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밖엔?
진보넷이 주도하거나 참여해 다수의 위헌판결들을 이끌어 냈다는 점도 보람이다.
- 불온통신의 단속조항 위헌 (2002)
- 인터넷실명제 위헌 (2012)
- 주민등록번호 변경 불허 헌법불합치 (2015)
- 통화정보 무작위 수집 ‘기지국 수사’ 헌법불합치 (2018)
- 통신사 실시간 위치 추적 헌법불합치 (2018)
- 국가정보원의 패킷 감청 헌법불합치 (2018)
= 객관적인 성과 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순간은?
어느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국내 개인정보의 보호체계를 계속 조금씩 진전시켜왔던 것.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겐 소중하다.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 반면에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랄까, 짜증났던 순간도 있었을 건데.
성과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100% 성과도 아니고, 실패도 많았다. 성과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왜곡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가령, 불온통신 위헌을 받았는데, 정부는 그 이름을 ‘불법통신’으로 바꿔서 계속 검열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일은 괴롭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 그리고?
인터넷실명제는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다수 사이트에서 실명 확인하고 있고, 정부는 본인확인기관제도를 통해 이를 부추기고 있는 형편이다.
= 주민등록제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주민등록번호 같은 경우도 변경해주지 않는 것에 관해서는 위헌 판결을 받았는데, 우리는 주민번호 체계 자체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길 바랐다. 그런데 정부는 위헌성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정책에 반영하는 형편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 좀 허탈하다.
= CCTV 얘기를 잠깐 해보자.이제 CCTV는 전국을 완전히 커버할 정도로 일반화됐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불편하다기보다는 이 험한 세상, 나쁜 범죄자를 잡는 범죄 증거 확보 수단으로 CCTV를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보인권을 지향하는 시민운동가로서 좀 난감할 것 같은데.
CCTV를 그렇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진보넷의 입장은 일반 대중의 보편적인 감성이나 상식과는 다를 때도 있다. 그건 다른 인권운동도 마찬가지다. 가령 난민에 대한 태도가 그 예다.
= 그렇다면 CCTV 이슈와 같이 대중적인 인식이나 감성이 진보넷의 입장과 다를 때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할까. CCTV가 형사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는 보나.
모든 경우에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CCTV 외에 다른 수단이 있는가. 그런 고민도 필요하다. 혹은 공간을 바꾸거나 순찰을 활성화하거나 가로등을 더 보충한다거나.
중요한 것은 CCTV를 비판하거나 반대한다고 안전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정치인이나 정부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많다. 어린이집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어린이집에 CCTV를 보충하겠다고 나선다거나 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CCTV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 교원의 처우 문제나 교원에 대한 인권 교육,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인권 의식을 높이는 것이야 말로 근본적인 접근법이다. 우리는 어떤 문제의 표피가 아니라 그 현상 안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원인, 그 현상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CCTV를 예로 들면, CCTV가 도입된다고 할 때 어떤 목적과 원칙으로 도입하고, CCTV를 어떻게 운영하며, 이를 어떻게 관리감독해 CCTV 오남용을 줄이고, 본래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하는 게 그저 CCTV를 ‘많이 도입하자’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그나저나 요즘 시민운동 전반이 좀 침체라는 느낌이다.
우선 재정이나 인적 자원의 어려움은 하루이틀 문제는 아니다. 그런 고민은 진보넷 초기부터 항상 해왔던 것이다. 다른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한국은 특히나 공익재단이 부족해서 더 그럴 것 같다.
= 시민들이 시민단체를 좀 멀리하고 있다고 느끼나.
시민단체들이 일반 대중에 의해 좀 배제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가령, ‘깃발은 가라’는 식. 시민 개개인이 사회변혁의 주체로 나서면서, 단체의 리더쉽에 대한 거부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자발적 움직임이 많은 것은 좋은 현상이다.
= 그렇지만…?
그렇지만, 사회운동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번에 해결되는 사회문제는 거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아니면 개인으로서는 아무리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운동의 지속성을 가지기는 힘들다.
= 아주 공감한다.
단체가 시민을 선도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시민도 시민단체의 존재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것 같다. 단체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단체에서도 시민을 선도한다는 식으로 의도성을 가지는 것은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다.
= 시민운동이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분명히 발전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운동, 장애인운동, 성소수자운동 등 부문별로 운동이 세분화하고,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위축됐다고만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운동이 분화하고, 확대발전해온 측면이 있다.
=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본다. 교수하다가 사업하다가 정치인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한편으로, 사회운동을 하다보면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욕구(직업 정치인이 되고 싶은)는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본인은 어떤가.
정치인도 소질이나 스타일이 맞아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정치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것 같다.
=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진보넷하겠나.
다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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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시자를 감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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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각에서는 ‘리벤지 포르노’의 증거물을 경찰이 보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피해자에게 민감한 정보인데, 검찰 혹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해당 수사자료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지 않으면 그 해당자료를 계속 보관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피해자에게는 큰 고통이고, 피해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관해선 어떻게 판단하나.
경찰은 수사정보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모든 수사기록을 보관한다. 범죄 자료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피의자)나 참고인에게도 모두 민감한 자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경찰이 하나의 시스템만 운용하지 않고, 지문정보 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수사정보 보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경찰이 어떤 시스템을 운용하고, 관리 감독하고 있는지에 관한 감시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즉, 외부적인 관리 감독이 없다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파일은 행안부에 등록하게 되어 있는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독립하면, 행안부가 아니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경찰은 보유한 자료들은 행안부에는 등록하지 않아도 되는 ‘등록 예외’가 적용되는 것이 문제다. 요는 경찰이나 국가기관이 보관한 자료들에 권력이 남용되고 있는지, 그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관한 실태 파악조차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 리벤지포르노의 피해자가 경찰이 보유한 자료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수사과정이라면, 수사과정에 있는 자료는 당연히 지울 수는 없겠지. 수사가 끝난 뒤에도 공적인 수사기록으로서는 일정한 요건 하에서 남아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나 이 자료를 함부로 볼 수 있게 되면 문제라는 거다. 그 자료를 어떻게 보관을 할 것인지, 누가 이 자료에 접근할 수 있고 없는지, 그리고 이런 자료관리를 누가 관리 감독하고 통제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가령, 건강보험관리공단은 엄청난 양의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한다. 그런데 그런 국민의 개인정보가 목적 외에로 열람된 사례가 너무 많다.[footnote]2014년~2017년 7월말 현재 개인정보 무단 열람 등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 유출은 15차례나 발생했다. 출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송석준 자유한국당 위원이 ’17년 10월 23일 건보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름. (편집자) [/footnote]
= 그런 경우엔 어느 정도로 처벌되나.
대체로 내부 징계 정도로 끝난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 처벌 경중이 달라지긴 한다(참고).
= 리벤지 포르노 자료 경우에 수사가 완결되면, 피해자나 참고인들은 그 자료 자체만으로도 불안할텐데. 리벤지 포르노와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형사수사자료의 일반원칙이 아니라 특별한 별칙(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그 특별법을 구성할지를 먼저 논의해야 할텐데(…). 가령, 리벤지 포르노와는 좀 다른 영역이지만, 경찰의 시위자 채증 시스템이 있고, 경찰이 그 자료를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경찰에 물어보면, 경찰 공식 입장은 채증 자료 없다고 말한다. 그런 공적인 보관 시스템에 관해서는 독립된 제3기구(가령, 독립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체계적이고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
= 개인정보보호위원회를 언급했으니 생각나는 게, 최근 유영민 장관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 ‘보호’를 떼고, 그냥 위원회로 만들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규제가 너무 많고, 그런 규제가 4차산업혁명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했는데.
유영민 장관의 발언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취지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가령 질문해 보자. 포털이 내 개인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개인이 통제할 수 있나.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정보처리자(기업이나 정부)가 제대로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있는지 관리감독할 기구가 필요한 거다. 그리고 그런 기구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고, 그래서 기구의 독립성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유 장관의 발언을 보면 이런 기초적인 상식에 관한 이해가 전혀 없다.
= 이는 유영민 장관 개인 문제로 보나. 아니면 문재인 정부 전반의 인식 수준을 대변한다고 보나.
문 정부 전반의 문제로 보인다. 모든 권력기구는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쓰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을 관리감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스스로 개인정보 보호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3의 독립기구에서 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존재를 ‘개인정보 활용을 도모하는 기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관리감독기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전혀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이건 유영민 장관이나 문재인 정부의 무지일까? 아니면 개인정보보호 가치에 대한 무시일까?
둘 다. 무지하기도 하고, 그래서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정보 문제를 하나의 비용으로만 생각한다. 보호와 활용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말장난에 불과하다. 유 장관이 말하는 균형이라는 것의 내용은 개인정보를 ‘활용’해야 하니 개인정보보호를 양보하라는 식이다. 균형의 의미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다.
= 균형의 의미를 오해? 왜곡?
개인정보의 ‘균형’이라는 것은 개인정보를 활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의 적법성, 즉 개인정보 사용에 있어서 개인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개인의 동의는 적법절차의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정보의 균형이란 개인정보의 적절한 보호에 관한 기준이 만들어지면, 그 기준에 맞게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즉 보호와 활용은 별개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는 개인정보를 사용하기 위해서 보호를 완화해야 한다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한다. 그게 대체로 문재인 정부의 시각이고,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이어져온 시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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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결합 판매,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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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도 중요하게 여겼으면 하는 이슈는.
개인정보 보호 이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관련해 개인정보에 관한 새로운 규칙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요는 정부와 기업은 빅데이터를 위해서는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대부분은 개인정보니까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지금도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으면 개인정보 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는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기 힘드니 동의 없이 수집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고, 다른 기업의 정보도 가져와 결합하고 싶어한다.
한마디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기업의 입장이고, 정부는 4차산업혁명이나 정보화 산업 혁신이라는 미명으로 그런 요구를 들어주려고 한다.
= 예를 들면.
박근혜 정부 때 개인정보 비식별화 가이드라인(이하 ‘가이드라인’)을 통해 개인정보의 결합을 용인했다. 인터넷진흥원이나 정보화진흥원을 비식별조치 전문기관으로 만들어 데이터 연계를 허용해 줬다. 그 결과 약 3억 4천만 건의 정보가 결합됐고, 진보넷이 2017년 말에 이를 고발했다. 한화와 SKT 등 개인정보를 결합한 20개여 기업과 기관을 고발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이 이를 무혐의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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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없는 개인정보 결합 및 제3자 제공 사건 개요
- 사건 개요: 4개의 비식별 전문기관과 20개의 기업이 지난 박근혜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제정한 ‘개인정보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신들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정보주체인 시민들의 동의없이 결합하여 3억 4,000만여 건의 데이터로 가공하여 제공하고 제공받음.
- 시민단체 고발(2017. 11. 9.): 12개 시민단체는 4개의 비식별 전문기관과 20개의 기업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
- 검찰 불기소(2019. 3. 25.): 검찰은 위 고발에 관하여 혐의없음(증거불충분) 불기소처분(이하 ‘이 사건 불기소처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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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의없음?
한마디로 해당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기업이 가이드라인을 따랐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거다. 우리가 보기에는 완전히 개인정보다. 두 기업이 가진 개인정보를 결합하려면, 공통의 식별자가 있어야 하고, 이름과 같은 정보를 지웠다고 하더라도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식별자(공통 분모)가 있어야 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가’에 달렸을 텐데.
우리는 특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고, 검찰이나 기업, 정부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
=어느 쪽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확정할 수 있나.
식별자의 존재 자체가 개인이 특정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주민번호, 이름, 전화번호를 지웠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용해서 대체 정보(=식별자)를 만들었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정보를 결합했다면 당연히 해당 개인이 누구인지 특정하는 게 가능할 수 있고, 기업은 그 개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발해도 안 되는 문제인데.
항고하긴 할텐데…. 우리가 고발한 뒤에 가이드라인은 존재하긴 하지만, 그 가이드라인을 활용하는 것은 중단된 상태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하는 중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여러 개인정보 이슈에 관해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천명했고, 그런 목적으로 마련된 행사가 ‘해커톤’(hackathon)[footnote]해커톤은 원래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프로그래머나 관련된 그래픽 디자이너,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자, 프로젝트 매니저 등이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는 소프트웨어 관련 프로젝트의 이벤트. 이 글에서는 이런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다기보다는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마련한 ‘해커톤’ 행사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한정한다.(편집자) [/footnote]이다. 2018년 2월 4월에 논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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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정보,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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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커톤에는 참여했나.
그렇다. 이은우 변호사, 김보라미 변호사 등도 참여했고, 학계나 기업, 시민사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 해커톤의 논의 내용을 정리하면?
개인정보보호법의 체계를 대전제로서 다음 세 가지 정보가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 개인정보: 명백한 개인정보
- 가명정보: 문제는 가명정보!
- 익명정보: 익명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다. 예) 통계 정보
= 가명정보가 가장 문제겠네.
그렇다.
= 우선, 가명정보를 정의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일부 제거해서 그 자체로는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지만, 다른 정보과 결합해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정보를 가명정보라고 한다.
= 가명정보에서 가장 큰 이슈는 뭔가.
가명처리된 정보를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다. 정부는 가명 처리를 하면, 기업의 내부적인 R&D 등 신상품 개발을 위해서도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반면에 우리(시민사회)는 학술연구나 통계의 목적으로 가명정보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 학술연구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는 개인정보주체의 이익을 희생할 수 없고, 그럴 그럴 이유도 없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학술 연구(시민사회) vs. 그냥 연구(기업과 정부)
= ‘그냥’ 연구?
개인정보보호법에 관한 정부 입장이 나왔는데, 인재근 의원이 정부 입장이 담긴 개인정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해당 입법안을 보면 “과학적 연구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고 하는데, 정부는 모든 기업의 연구를 포함하려 하고, 그러면 결국 ‘그냥 연구’가 되는 셈이다.
= ‘그냥’ 연구로 가명처리된 정보의 활용 범위를 설정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개인정보를 사용해 연구할 때 어떤 안전조치를 해야 하냐. 얼마나 정보주체가 보호되느냐에 관해서 아주 큰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면 KT가 상품 개발을 위한 연구에 네이버가 보유한 개인정보가 필요하다고 할 때, 정부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인재근 의원의 대표 발의안(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2018년 11월 15일 제안, 현재 위원회 심사 단계)에 따르면 가명처리해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가정적으로 질문해보자. KT가 개인정보를 필요하다고 할 때 네이버가 KT에 개인정보를 공짜로 주겠나?
= 개인적으로 쇼킹했던 게 심평원이 국민의 의료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먹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건의 파장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 같아 더 놀랐다. 심평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팔아 먹는 일은 홈플러스와 같은 사기업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팔아먹는 것과는, 물론 둘 다 최악이지만,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국가기관의 개인정보 보유에 관해 국민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지만, 국민은 정부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소비자라면, 해당 기업을 이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국민은 정부를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4차산업혁명’이라는 그럴듯한 외피로 위장된 ‘혁신’이라는 싸구려 정치 구호가 만연하고 있다고 느낀다.
동의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측면도 있다. 보수지나 경제지는 유영민의 프레임(‘개인정보가 4차산업혁명의 발목을 잡는다’)을 강화하고 있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일부 경제지나 보수지를 보면 우리나라가 유럽보다 개인정보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이에 관한 기업 규제가 심한 것처럼 말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가장 대표적인 게 주민등록제도다. 그 존재만으로도 세계에 유래가 없다. 거기에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독립적인 감독기구는 존재하지 않고, 행안부나 방통위나 금융위에서 개인정보감독의 역할이 있지만, 이 정부부처들은 오히려 기업의 입장에서 개인정보 활용에 앞장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 기업과 정부, 그리고 경제지와 보수언론의 프레이밍은 ‘미래의 먹거리(=4차산업혁명)를 위해 개인정보보호는 한 수 접어도 되지 않나’ 그런 골격을 가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나.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낮을수록 기업이 사업하기 좋고 혁신이 된다는 논리인데,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전 세계는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않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산업을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희생할 수밖에 없나. 그래도 좋은가.
기술이나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엄밀한 조사나 분석 없이 개인정보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은 한마디로 근거가 없다. 오히려 개인정보에 대한 국민과 소비자의 신뢰가 있어야 빅데이터든 인공지능이든 좀 더 활성화할 수 토대가 쌓인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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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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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독립 이슈로 다시 돌아가보자.
현재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은 행안부, 금융위, 방통위 등으로 분산돼 있다.
- 개인정보보호법은 행안부
- 정보통신망법은 방통위
- 신용정보법은 금융위
이런 식이다. 즉, 법도 분리돼 있고, 부처도 분리돼 있는 상황이다.
= 그래서?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집행 권한이 없다. 가령, 조사권과 시정요구 등이 불가능하다. 조사도 불가능하고, 처벌도 불가능하다. 현재 이런 권한은 행안부, 방통위, 금융위가 가지고 있다. 이래선 개인정보를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
행안부, 방통위, 금융위가 가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권한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일원화하고, 그 기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만이 이 문제를 풀 해법이다.
= 현재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어떤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행안부의 권한와 방통위의 권한을 일원화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흡수하는 안(인재근 의원= 정부안)이다. 정부안이라서 통과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 반대는 없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 법에 반대한다.
= 반대 근거는.
개인정보 활용이 부족하고, 감독 기구가 너무 강화되면 기업의 개인정보 활용이 위축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 어떻게 전망하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은 확실히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위의 권한까지 흡수하지 못했고, 독립성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도 한계다.
= 독립성이 완전하지 않다?
독립성의 표준인 인사와 예산에 관한 권한은 보장이 되는데, 권한에 있어서 독립성을 보장하려면 국무총리의 감독 지휘를 배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정안에서는 이게 완전하지 않고 일부에서만 배제된 상태다. 좀 더 상술하면, 침해조사는 감독권이 배제되는데, 입법이나 정책에 있어서는 국무총리식에 종속돼 국무총리 지휘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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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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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를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단체들은 여러 주체들과 소통한다. 정부와 소통하고, 외국 시민단체와 소통하며, 무엇보다 시민과 소통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주로 언론과 소통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생기고, 홈페이지를 만들고, 블로그가 생기고, 소셜미디어들이 보편화하면서 단체들도 직접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화두로 떠올랐다. 블로그 글일 수도 있고, 지금은 한물 간(?) 카드뉴스도 등장했으며, 인포그래픽을 만들기도 한다. 언론만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시민단체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도 진보넷도 유튜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만 아니고 많은 시민단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시민단체, 어떻게 유튜브 할 것인가’ 이런 제목의 강좌에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제대로 할 수 있는 단체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생각만 있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동영상을 만들겠다는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시행착오와 자원이 필요한 작업이다. 당장 적용하기 쉽지 않은 문제고.
그런데 진보넷은, 상대적으로는 진보넷이 자원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실험 단계로 고정 인력을 유튜브에 투입하고 있다.
= 채널은 개설했나.
아직.
= 팟캐스트도 유력한 소통수단인데.
할려면 제대로 기획이 필요. 이에 필요한 역량이 투여되어야 하는 문제라서. 지금은 팟캐스트보다는 유튜브 쪽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상태.
= 진보넷 이슈가 좀 평균적으로 어렵고, 전문적이라서 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늘 이메일로 성명서를 지난 6~7년간 꾸준히 접했는데, 평균적으로 좀 어려운 것 같다.
양 측면의 고민이 있다.
- 대중성: 어떻게 하면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전문성: 이슈의 전문화에 상응한 밀도와 심도를 어떻게 높일까
대중적인 요구와 이슈의 전문화라는 두 마리 토끼가 있다. 점점 더 전문화하는 이슈에 상응하는 디테일한 논리를 가지고 전문가 그룹에 대응해야 하는 요구가 있고, 그런 전문가 그룹을 넘어 대중적으로 더 쉬운 언어, 다양한 표현수단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 슬로우뉴스에서 연재했던 ‘정보인권가이드’가 생각난다.
그렇다. 정보인권가이드를 만화 형식의 카드뉴스로 만든 것도 그런 고민의 소산이었다.
= 벤치마킹 대상이랄까. 롤 모델이랄까.
내가 직접하는 건 아니라서…. 유튜브 담당자들은 국내외 사례들을 다양하게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안다. 그런데 좋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우리에 맞게 취사선택해야 할 문제로 본다.
= 문재인 정부의 개인정보 이슈에 관해 중간평가한다면.
4차산업혁명을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희생하는 방향의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과기정통부, 금융위원회는 산업적 이해에 전적으로 복무한다. 가령, 규제샌드박스를 만들어서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을 만드는 식이다. 개인정보 주체인 개인의 동의를 받으면 되는데, 동의를 받지 않겠다는 식의 기업 요구를 수용해 그걸 혁신이라고 강변한다.
보수정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책적으로 반대했던 정책(규제프리존)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름만 바꿔서(규제샌드박스) 통과시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관련 기사).
사실 인터넷 실명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도 노무현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당연히 기존 박근혜 정부보다 진보적이고, 통일이나 인권문제에서 진일보한 정책도 많지만, 정보인권 부문에서 IT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산업중심적인 것 같다.
하긴 이런 경향은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큰 차이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기본 시각이 산업중심적이라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같고, 다만 보수정권에선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억압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정도 차이만 있는 것 같다.
= 끝으로 독자에게 한말씀.
진보넷 회원 가입 많이들 해주시라. 왜냐하면 단체의 지속가능성은 얼마나 안정적이고, 충실한 회원이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일반 시민들이 단체 회원을 하는 게 계속 사회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본인도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 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진보넷 회원 가입 많이들 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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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 후원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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