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잊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사고가 발생한 지 7시간이 지나 나타난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내놓은 엉뚱한 소리들을. 그 시간까지 청와대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기 위해 2014년 몇 건의 정보공개소송이 법원에 제기됐다.
이날 청와대에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 만들어 내려보낸 문서들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나는 이 중 한 건의 소송에서 정보공개를 청구한 한겨레신문을 대리했다). 청와대는 이 문서들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다.
소송이 몇 년 동안 늘어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고, 그 사이 황교안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은 이 문서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했다. 참고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최대 30년의 기간 동안 정보공개소송을 통해서는 해당 문서를 받아볼 수 없다. 몇 년이 지나 결국 법원은 “해당 문서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어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갔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목록’이라도 달라! – 1심 승소
3년이 지나 대통령기록관을 상대로 또 다른 정보공개소송이 제기됐다. 당시 만들어진 문서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어 볼 수 없다면, 당시 만들어진 문서들의 “목록”이라도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참사 당일 생산된 문서들의 목록을 보면, 제한적으로나마 당시 청와대의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송에서 원고는 “세월호 참사 당일 만들어진 문서들의 ‘목록’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보호되는 지정기록물에 해당하지 않으니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정보공개청구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그 문서를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에 해당 문서를 비공개로 법원에 제출할 것을 명한다. 재판부가 문서를 살펴보고, 공개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지 법에 따라 판단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공개를 청구한 ‘문서 목록’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보호되는 지정기록물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법원이 비공개로라도 이 문서를 받아보아야 했다.
실제로 재판 진행 과정에서 1심 재판부는 국가기록원 측에 원고가 공개청구한 문서의 목록을 제출하라고 명하였으나 대통령기록관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면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 청와대의 공무수행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로서 다수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특별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의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이고, 게다가 관련 문서의 ‘목록’에 불과하기도 한 만큼, 공개 여부에 대해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법원의 비공개심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심 판결문 중에서)
뒤집힌 1심 판결 – 항소심 패소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 법원은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세월호 참사 청와대가 만들어진 문서가 대통령지정기록물임을 전제할 때, 그럼에도 ‘문서 목록’은 예외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면서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는 이유로 비공개처분을 한 대통령기록관이 소송에서 입증을 다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항소심 중에서)
항소심 판결대로라면, 청와대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서 정한 요건과 상관없이 재임 중 만들어진 모든 문서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해 비공개하더라도 국민이 이를 다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서들을 비공개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이 법 제16조 제1항에서는 “대통령기록물 역시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다만 법에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공개를 제한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사유 등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가기관에 있다.
1심 판결이 지적했듯, 원고가 공개를 청구한 문서 목록이 ‘적법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는 점’ 에 대하여는 당연히 국가기록원이 재판 과정에서 입증해야 한다. 국가기록원이 정보공개소송에서 최소한의 입증 책임도 다하지 않는데 법원이 나서서 공개를 막아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가 만든 문서의 ‘목록’ 조차 최소 십 수년이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버티기와 시간끌기
정보공개소송은 대체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소송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법원은 판결의 부담을 던다. 우리 정보공개법에는 공공기관이 정당한 이유없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고, 그렇다보니, 정보공개소송이 진행되더라도 공공기관은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4년 세월호 문건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진행하던 당시 청와대 측은 법원에 뜬금없는 사실조회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대통령기록물에 대해 정보공개제도를 운용하는지 ‘사실조회’를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도 검색할 수 있는 내용을 굳이 해당 국가의 한국대사관에 ’조회‘하겠다는 청와대의 목적은 소송을 지연시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소송이 길어지면서 대통령 임기가 끝났고, 해당 문서들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되어 공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햇볕은 최고의 살균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가 만든 문서 목록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송기호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했고, 현재 대법원의 심리가 진행 중이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확정시킨다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직무상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의 감시는 원천 봉쇄된다.
미국의 브렌다이스(Louis Brandeis) 대법관은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햇볕은 최고의 살균제이며 전등빛은 가장 효율적인 경찰”
“Sunlight is said to be the best of disinfectants; electric light the most efficient policeman”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공개제도의 취지를 잘 살펴, 대법원이 전향적인 판단을 내려주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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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생산문건 목록 정보공개소송 항소심 판결
-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 재판장 김광태 부장판사
- 2018누5967
이 글의 필자는 정민영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실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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