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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법과 소통

장면 1. 철수는 엄마가 야속해

학교에 다녀온 철수는 저녁 먹고 학원가기 전에 LOL(리그오브레전드)를 딱 한 판만 하기로 한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른다. “알았어”라고 대답하지만 지금 게임에서 나올 수는 없다. 5대5 게임에서 한 명이 빠지면 나머지 네 명에게서 어떤 욕을 먹게 될지 뻔하다. 마음이 급해진 철수는 무리하게 싸움을 걸다가 적에게 퍼스트 블러드(첫 번째 킬)를 내주고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방문이 벌컥 열리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엄마가 들어온다.

“밥 먹으란 소리 안 들려?”.

“아 잠깐만 이거 조금만 하면 끝나.”

“너는 게임에 빠져서 밥 먹으란 소리도 안 들리고 &#%%#*&^%@”

엄마가 20분만 기다려주면 될 텐데…

LOL은 한 판에 20~30분 정도 걸리는 게임이다. 한번 시작하면 20분이 되기 전까지는 서렌(항복)할 수도 없다. 엄마가 20분만 기다려주면 깔끔하게 한 판하고 학원갈 수 있을 텐데. 엄마가 소리치지만 않았어도 차분하게 게임을 진행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왜 엄마는 그걸 이해 못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게임을 못하게 할까?

하지만 세상에 그런 엄마는 없다. 엄마의 눈에 철수는 학교 갔다 오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하고, 밥먹으라는 소리도 안들릴만큼 게임에 빠져 있는 철없는 어린애일 뿐이다. 도대체 얼마나 게임에 빠져 있으면 저럴까? 학교에서 공부는 제대로 하는 걸까? 컴퓨터를 빼앗아야 하는 건 아닐까? 어떻게 하면 게임을 못하게 할 수 있을까?

철수 엄마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벽, ‘리그오브레전드’
(사진: 리그오브레전드 홈페이지)

장면 2.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90년대 초반에 VTR, 복사기, 비디오/오디오 테이프 같은 복제 기기에 저작권료를 원천징수하는 법안이 추진되던 때가 있었다. 이들 기기가 주로 개인들이 녹화/녹음/복사하는 데에 사용되고 이것이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나 침해당사자에게 일일이 저작권료를 부과하기는 어려우니 아예 관련 제품 생산 시점에 저작권 사용료를 원천 징수하겠다는 얘기였다.

칼에 살인부담금 지울까? vs. 저작권 보호하자는데 뭔 소리?

정확히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사적복제보상금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던 이 시도는 당연하게도 전자업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전자업계는 “칼이 살인의 도구로 쓰일 수 있으니 모든 칼에 살인부담금을 지우자는 소리냐?”,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는 전자업계에서 삥을 뜯어 문예진흥기금을 확충하려는 것 아니냐?”며 반발했고 문화부와 저작권단체들은 “저작권자를 보호하겠다는데 무슨 소리냐?”며 맞섰다.

당시 IT 전문지에서 해당산업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자연스럽게도 연일 지면을 통해 전자업계의 논리를 전달하는 업계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법안을 추진하는 쪽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대리논쟁을 하게 되는 일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문화부 공보관의 주선으로 문화부 출입기자들과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기회를 얻게 됐는데 그 날이 아마도 내가 ‘소통’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해당사자들이 아니라 ‘기자’들이기 때문에 같은 언어로 진지하게 토론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소통의 벽은 높았다. 전자업계의 논리와 문화계의 논리가 부딪히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아마 그들도 내게 똑같은 감정을 느꼈으리라.

문화부 공보관이 자리를 주선하면서 “전자업계가 왜 이 법안을 반대하는지 문화부 출입기자들이 궁금해해서 초청했다. 기자들에게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할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왜 기자들이 기자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지. 문화계와 전자업계가 얼마나 소통이 없는지. 나는 대화를 하면서 그들이 나를 업자 취급하는 것이 불쾌했고 문화부 기자들은 모든 것을 경제논리와 수치로 말하려는 나를 한심해했다.

게임중독법과 소통의 단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년도 지난 부끄러웠던 옛날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요즘 ‘게임중독법’을 두고 돌아가는 모양새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 같기 때문이다.

게임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마음 담아낸 논리가 있었나

게임중독법과 관련된 게임업계의 움직임이나 게임업계를 대변한 기사들, 칼럼들을 (20년 전 문화부 출입기자들의 시각에서) 아무리 읽어봐도 업계 논리를 벗어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을 찾기가 무척 힘들다. 게임이 수출산업이고 창조경제의 원동력이라는 논리는 게임업계의 이야기일 뿐 실제로 게임하는 아들 때문에 고민해 본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논리는 별로 없어 보인다.

“LOL의 과몰입 요소가 강한 까닭은 단체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빠져나가면 게임이 끝나니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 백재현 의원, 여성가족부 국정감사(2013년 11월 1일)에서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LOL을 조금 해 본 사람이라면 백재현 의원이 저 말이 얼마나 가슴 답답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반박 가능한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나의 논리가 무슨 소용일까? 문제는 저쪽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0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엄마와 밥 먹으라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게임에 빠진 아들 사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소통의 문제는 SNS가 아무리 발달해 전 지구적인 소통망이 발달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굿닥터]에서 주원이 짐승처럼 살아온 어린아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스스로 강아지 흉내를 내며 꼬리를 흔들었던 것처럼 상대방의 시선, 시각, 입장, 눈높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업계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는 중대사안이라면 강아지 흉내가 아니라 스스로 강아지가 되거나 이럴 때 쓸 수 있는 강아지 몇 마리를 미리 사두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극중 '늑대소녀'와 소통하기 위해 강아지 흉내도 불사하는 굿닥터(주원 분)  (사진: KBS2, [굿닥터])

극 중 ‘늑대소녀’와 소통하기 위해 강아지 흉내도 불사하는 ‘굿닥터’
(사진: KBS2 ‘굿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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