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56화] ‘정명(正名)’의 덕목을 망각한 기득권 두 정당을 바로잡으려면 (유성진/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3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지만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던 대학 시절, 수강했던 어느 과목의 과제는 [논어]를 세 번 원고지에 필사(筆寫)하는 것이었다. 내용에 관한 이해보다는 그저 옮겨적기에 바빴던 그 시절에도 ‘정자정야(政者正也;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한다)’ 두 문구에 탄복했던 기억이 난다.

정명, 이름을 바로잡는 것
공자가 이야기했다는 두 문구는 막 정치학을 접하기 시작했던 나에게도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특히 공감했던 것은 두 번째 문구였다. ‘이름을 바로잡는 것’은 ‘직책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바,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위정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된 배경에는 작금의 정치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망각한 채로 직무를 수행하다 결국 내란으로 온 나라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던 전직 대통령 그리고 그 전횡을 바로잡기는커녕 이에 편승하여 부화뇌동한 일부 위정자들이 떠오르겠지만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전히 위헌·위법적인 계엄에 대한 사과와 극우와의 단절에 주저하며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한 국민의힘은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통 큰 정치로 갈등의 실타래를 풀려 하기보다는 갈등의 격화 또는 지속 속에 정국 주도권의 유지에만 골몰하는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명’의 도리를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 너마저…
내란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단합을 외쳤던 민주당은 예전의 무책임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과 다양성 강화를 위한 정치제도 개선은 뒷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통합을 내세웠던 초심과 달리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일방성을 드러내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여러 차례 목격된 일부 민주당 상임위원장들의 독단적인 운영과 일탈은 상임위원장 자리가 주는 공적인 무게와 책임감을 이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결국 ‘정명’의 덕목과 일깨움은 혹자가 이야기하듯 ‘비민주적 견제’와 ‘비타협적 정치’로 국민의 삶과 무관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기득권 정당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현 시점 선거제도의 이점으로 파생된 양당 체제에서 우리의 기득권 정당들이, 양자택일 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선거환경에서 안락함을 누리는 정치적 상황이 존재한다. 정당 간 선거경쟁이 약화된 이같은 상황에서는 양당 모두 생산적인 정책에 기반한 경쟁보다는 상대 정당에 대한 비판과 실정에 따른 반대급부를 얻는 데에만 집중한다.

‘정명’ 망각한 두 기득권 정당 문제 바로잡으려면
더군다나 정당 간 균형이 상실되고 한 정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 머물러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한 정당 간 경쟁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정당 간 경쟁이 없는 정치에서 유권자의 선호에 기반한 권력의 위임과 주권자 중심의 통치라는 대의민주주의 본연의 모습이 발현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정명’의 덕목을 망각한 기득권 두 정당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제도적인 안락함 속에 상호 경쟁의 여지가 줄어든 기득권 양당 체제를 약화시키고 이들이 선의의 경쟁에 나설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당 간 활발한 정책경쟁을 담보해야 한다.
기득권을 갖지 못한 군소정당의 적극적인 변화, 그리고 지역의 현안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정당의 출현과 약진은 제도적인 안락함에 스스로의 책임과 역할을 잃어버린 기득권 정당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2026년 지방선거를 지방자치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만들고 주민이 원하는 정치를 현실화하는 것은 지역 유권자의 몫이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지방정치를 이야기하고 지방자치 본연의 목적과 임무를 내세우는 정당과 대표들을 선택함으로써 주권자의 힘을 다시 보여줄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