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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처벌법(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유감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6는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 악법으로 꼽히며 국내·외로 폐지 촉구 목소리가 이어진 법조항인데요. 대법원은 해당 법조항에 근거하여 자행된 육군의 ‘성소수자 군인 색출’ 당시 기소된 군인들이 무죄라며 전향적 판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월,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92조의6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소수자 간의 합의된 성관계가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며 편견과 아집을 그대로 드러낸 헌법재판소의 결정,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이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2023년 10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소위 ‘동성애 처리법'(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위헌법률심판에서 해당 법이 합헌 이라고 결정했다. 벌써 네 번째 결정, 15년째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동성 군인간 성관계 처벌 위한 ‘동성애 처벌법’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과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을 징역 2년 이하의 형에 처하는 법이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엇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인지 알기가 어렵다. 얼핏 보면 특정 성관계 체위를 처벌하는 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녀 간에도 항문성교를 할 수 있으니 법조문에 충실히 따르자면 군인 부부가 항문성교를 하는 것은 징역형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일 수 있다. ‘그 밖의 추행’도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2013년 이 법이 개정되기 전의 법문 내용을 보면 취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원래의 법문은 ‘계간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다. ‘계간’은 남성 동성 간의 성관계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즉, 이 법은 남성 군인 간의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성애 처벌법’인 것이다.

국내 인권단체들과 유엔 등 국제기구는 오랜 세월 추행죄를 한국의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 악법으로 꼽으며 폐지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실제 추행죄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의 수가 많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사문화’된 법으로 취급되었다.

2017년, ‘사상 초유’ 성소수자 군인 색출 기소… 다행히 무죄


그러다 2017년, 육군에서 대대적인 성소수자 군인 색출이 벌어져 수십 명의 군인이 추행죄로 형사 입건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당시 육군본부 소속의 군사경찰은 전국 각지의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아웃팅 협박, 함정 수사 등 위법수사를 자행하며 성소수자 군인들을 찾아냈고 이들에게 다른 군인과의 성관계 사실을 캐물어 입건했다. 육군 군검찰은 확인된 성관계 횟수가 1회 이하면 기소유예, 2회 이상이면 기소라는 황당한 기소지침까지 하달했다.

일련의 사태엔 육군참모총장의 왜곡된 종교관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도 있었다. 결국 23명이 입건되었고, 9명이 기소되었으며, 11명이 기소유예, 3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성소수자 군인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추행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이때 기소된 9명 중 8명은 1심 군사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이 중 4명은 개인 사정으로 항소를 포기했고, 4명은 항소했으나 2심 군사법원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은 뒤 상고했다. 나머지 1명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전역하여 민간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재판을 맡았던 서울북부지방법원은 2018년 2월, 합의한 성관계는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례적인 판결을 내리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22년 4월,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따른 성행위를 한 경우를 처벌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 판시하며 종전의 판례를 갱신, 전원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실상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추행죄의 존재 이유를 부정한 판결이었다.

기대 많았던 헌재 결정… 하지만 추행죄 그대로 존치


이런 맥락으로 헌법재판소에 남아있던 위헌법률심판에 대한 기대 역시 높았다. 10월 26일 선고에서 헌법재판소는 추행죄와 관련한 사건을 총 14건이나 다뤘다. 그만큼 법이 악용된 사례가 많다는 뜻이고, 위헌 결정도 충분히 기대해 볼 법한 상황이었다. 14건 중 2건은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과 무관하게 각급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한 사건이었고, 3건은 상고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사건 3건의 당사자 4명이 소송 진행 중에 제기했던 헌법소원, 8건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색출 피해자들이 제기한 처분취소헌법소원, 1건은 동성 간 성추행 피해자임에도 추행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군인이 제기한 처분취소헌법소원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추행죄를 그대로 존치하는 결정을 했다. 대법원 판례에 의해 사적 공간에서 합의된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게 되었으니 문제도 다 해결되었다는 식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례 뒤에 숨어 자신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간의 합의된 성관계를 ‘국가 안전보장 및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지는 국군의 전투력 보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한다’, ‘군인 상호 간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군 생활에 집중을 할 수 없게 한다’고 평가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적 발상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반면, 헌재는 기소유예 처분취소를 구하는 9건의 헌법소원은 또 전부 인용했다.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은 존치되어야 한다면서 그 법을 적용해 불이익을 본 이들은 구제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행죄로 기소유예? 의무 외면한 헌재


특히 주목할 부분은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행죄로 기소유예를 처분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동성 상급자에게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군검사가 일부 성관계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상호 합의에 의한 것 아니었냐며 도리어 추행죄를 적용해 기소유예를 처분한 사건이다.

군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데 추행죄를 끌어다 쓴 것이다. 헌재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추행죄를 적용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서 처분을 취소했다. 그런데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는 추행죄가 사라지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거꾸로 된 판단을 내놨다. 법률이 악용되는 것을 버젓이 보고도 법률의 위헌성을 살피는 일은 외면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합헌 결정은 일부 재판관들이 가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결정이다.

추행죄에 대한 2022년의 대법원 판결은 법이 헌법에 비추어 문제가 있으니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하던지 국회가 폐지하라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외면했다. 편견과 아집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면 헌법재판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위헌 법률로 피해 보는 사람들의 호소가 우습게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존재를 형벌로 의율하는 야만적인 법을 존치시킨 헌재의 결정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광장에 나온 판결: 245번째 이야기

: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 헌법재판소 2023.10.26. 선고 2017헌가16등(2017헌가16, 2017헌바357, 2017헌바414, 2017헌바501, 2020헌가3)
– 재판관 유남석(재판장),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판결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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