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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리포트] 보수 진영이 윤석열을 포기하는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대구 칠성종합시장을 방문한 윤석열(대통령). 2023년 11월 7일. 대통령실 제공.

김태우(전 강서구청장)를 특별 사면한 건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치자. 굳이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에 김태우를 내리 꽂고 정권 심판 선거로 키운 게 윤석열(대통령)이다. 질 게 뻔한데도 김기현(국민의힘 대표)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질질 끌려갔고 참패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혁신위도 별다른 감동이 없다. 이제 집권 1년 반인데 공공연하게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는 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야권 연합 200석 이야기가 나오고 탄핵과 개헌 이야기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이 뒤늦게 메가시티에 공매도 금지까지 포퓰리즘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반응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슬퍼런 검찰 공화국도 이재명(민주당 대표) 구속 영장 기각 이후 명분을 잃었고 이제 와서 판을 흔들기에는 여론이 차갑게 식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언제나 그랬지만 보수 언론에 보수 정권의 대통령은 쓰고 버리는 말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보수 기득권 세력의 아성은 공고하다. 이해관계가 맞을 때는 싸고돌지만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말을 갈아탄다.
  • 2011년 6월 이명박 지지율이 데드 크로스를 넘겼을 때 조선일보는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정권 교체”라는 기묘한 논리로 이명박 정부를 레임덕으로 몰아붙였다. 이명박이 죽어야 박근혜가 뜨고 그래야 보수 정권을 연장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 2016년 10월26일 최순실 태블릿 사건이 터졌을 때도 조선일보는 발 빠르게 박근혜와 손절했다.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 제목은 “부끄럽다”였다. 애초에 우병우(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를 내쳐야 한다고 조언한 것도 조선일보였고 미르재단 의혹을 가장 먼저 보도한 건 TV조선이었다. 정권 연장에 실패했지만 적어도 조선일보는 순장조가 되지는 않았다.
  • 요즘 조중동의 지면을 보면 윤석열을 언제 손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조중동이 윤석열을 버리는 순간이 온다.


  • 그날이 빨리 올지도 모른다.
  • 총선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한데 윤석열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 조중동이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타격감이 없기도 쉽지 않다. 지면을 보면 보수 언론의 실망과 짜증, 누적된 분노가 느껴진다. 조중동의 윤석열 탈출은 동아-중앙-조선 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순덕의 분노.


국민의힘 지도부와 점심식사 후 용산어린이정원에서 산책하는 윤석열(대통령). 2023년 10월 18일. 대통령실 제공.

조선제일검, 한동훈이 이것밖에 안 됐나.


  • 조중동의 신뢰가 결정적으로 무너져 내린 건 이재명 구속 영장이 기각됐을 때다. 이태원 참사 때도 오송 지하차도 사고 때도 해병대 사망 사건 때도 결연하게 ‘쉴드’를 치던 신문들이 멘탈 붕괴의 증상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판사 한 명의 결정에 ‘명운’을 걸었다”며 뒤늦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 김창균(조선일보 논설주간)은 영장 기각 다음 날 “고도의 정치적 선택을, 정치가 개입되면 절대 안 되는 법률 판단에 맡긴 셈”이라고 뒤늦게 불만을 쏟아냈다.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가려지는 것을 기다리면 되는데 구속 먼저 시키겠다고 안달을 낸 검찰의 집착도 이 꼴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는 대목에서 한동훈(법무부 장관)에 대한 강한 실망이 읽힌다.
  • 한동훈이 영장 발부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에 보수 언론의 실망과 충격, 배신감이 더 컸을 것이다. “증거가 차고도 넘친다”고 했고 이재명을 겨냥해 “잡범도 이렇게는 안 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확률이 반반이었다 하더라도 애초에 불확실한 게임에 정권 차원의 승부수를 건 것부터 패착이었다. 정치는 검찰 수사와 다르다.
  • 검찰 수사와 법원 판단에 요동치는 요지경 정치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넘어 넌더리를 내는 지경이 됐다”는 동아일보 사설은 싸잡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윤석열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 송평인(동아일보 논설위원)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 무렵이다. “올라가는 집값을 못 잡은 정부는 많이 봤지만 저절로 떨어지는 집값도 못 잡은 정부는 처음 본다”고 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문재인 정부보다 나은 게 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 양상훈(조선일보 주필)은 “윤 대통령은 안정적으로 40%를 넘은 적이 없다”면서 “윤 대통령 스타일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여러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문제는 ‘이 일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그동안 눌러 왔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집권 1년 반의 풍경이다.
한동훈(법무부장관), 이것밖에 안 되나? 세계법무부장관 회의 참석 모습. 2023년 3월 22일. 법무부 제공.

이런 걸로 안 된다.


‘쉴드’치는 데도 한계가 있다.


  • 돌아보면 조중동은 열심히 방어를 했다. 다수 여당의 횡포라고 비난했고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논점을 돌렸다. 무엇보다도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과 이재명의 위선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런데 이재명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어도 2~3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 이태원 참사 때는 뭉갰고 양평 고속도로 논란 때는 물타기 했다. 인사 참사가 계속돼도 문재인 정부는 더 심했다는 말로 넘어갔다. 이재명 리스크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이제 공격과 수비가 뒤바뀌었다.

곳곳이 폭탄이다.


전망.


  •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만 임기 5년의 단임제 시스템에서 지지율이 곧 권력이다. 박근혜는 태블릿 PC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40%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지켰고 문재인은 40%가 넘는 지지율로 정권을 마무리했다. 윤석열은 애초에 0.7% 차이로 당선된 데다 역대 가장 낮은 지지율로 출발했다. 문재인은 180석을 확보한 집권 여당이 있었지만 윤석열은 여소야대로 출발한 데다 내년 총선에서 뒤집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
  • 조중동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는 건 윤석열의 좌충우돌 행보가 보수 기득권 진영의 헤게모니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내년 총선에서 완패하면 남은 3년은 식물 정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경희(조선일보 논설위원)는 아예 “윤석열의 시간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조중동은 윤석열에게 볼모로 잡힌 상황이다. 윤석열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년 총선은 집권 여당이 참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남은 3년도 문제지만 다시 정권을 빼앗길 거라는 공포가 조중동의 지면을 지배하고 있다.
  • 최근 들어 이준석의 뉴스 비중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SBS 폴리스코어에 따르면 11월7일 기준으로 한국의 주요 뉴스 가운데 이준석 관련 뉴스 비중이 21.2%로 윤석열(19.7%)이나 이재명(6.4%)보다 높게 나타났다. 윤석열이 정국 주도권을 잃는 것과 비례해서 차기 권력으로 힘이 분산되고 이합집산하면서 전선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크다.
  • 윤석열은 15일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잠깐 한국을 들렀다가 26일까지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한다. 12월에는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다. 외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지지율이 반등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 공식이 윤석열 정부 들어 안 먹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자칫 올해 안에 20%대 지지율을 찍게 될 수도 있다. 총선 패배 이후 조중동까지 등을 돌린다면 윤석열의 권력 기반은 급속도로 무너질 것이다.
  • 윤석열이 조중동의 경고 메시지를 읽지 못한다면 조중동이 윤석열을 포기하는 시점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조중동마저 윤석열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그때가 진짜 레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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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지금 상황에 꼭 필요한 글이네요. 김순덕 씨와 안혜리 씨의 논조 변화를 통시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건 신선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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