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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이다’가 남긴 질문: 넷플릭스가 지상파의 퇴로가 될까.

한발 떨어져서 봐야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다. 뉴욕대 교수 클레이 셔키는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는 속도보다 낡은 것이 더 빨리 망가지는 것이 혁명”이라면서 “어떤 실험의 중요성은 그것이 나타나는 순간 분명하지 않으며, 큰 변화는 지연되고 작은 변화는 확산된다”고 말한 바 있다.

MBC가 만들고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나는 신이다’는 변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지난 19일 제주도 신화월드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강원대 교수 이종명은 ‘나는 신이다’를 “사건 중심의 보도와 탈맥락화된 보도 경향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OTT 플랫폼을 활용한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적 실천”이라고 평가했다. “단편적인 논쟁을 넘어선(Over-The-Topic) 장기적인, 긴 호흡의 문제제기이자 사회 변혁으로서의 저널리즘 실천”이라는 평가다.

“넷플릭스에 가서 보세요.”

여기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첫째,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MBC는 ‘나는 신이다’를 만들지 못했을까. 지상파라는 과점적인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굳이 다른 플랫폼에 돈을 받고 태워야 하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신이다’는 잘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선정성과 폭력의 재현 이외에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밍숭맹숭하게 다뤘으면 이렇게 화제가 됐겠느냐”는 반론은 거꾸로 말하면 화제성을 만들기 위해 공영 방송의 족쇄를 벗어나야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플랫폼을 확장하고 영향력을 넓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지상파 플랫폼을 낡은 플랫폼으로 규정하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패배의식이 깔려 있다.

게다가 ‘나는 신이다’는 예외적인 경우다.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하게 있었고 시나리오도 명확했다. MBC의 제작 역량을 인정 받았다는 평가도 많았지만 그건 업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고 이런 시도가 MBC의 브랜드와 확장성, 영향력에 어느 정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확실히 ‘나는 신이다’는 MBC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지만 넷플릭스가 사겠다는 콘텐츠는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콘텐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K드라마가 펼쳐놓은 종말론적 세계관을 보라.)

둘째, 지상파 방송사의 플랫폼 전략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지난 15일 파산 신청한 바이스미디어는 한때 기업 가치가 7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단순히 미디어 기업 하나가 문을 닫은 사건이 아니라 한 시대의 퇴장을 알리는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지나서 돌아보면 페이스북 기반의 콘텐츠 바이럴이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신이다’를 둘러싼 엇갈리는 평가는 어떨까. 언젠가 “방송사들이 넷플릭스에 예능이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갖다 팔던 때가 있었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테이프를 빌려다 보고 했었지, 하는 느낌으로.)

  • 그게 방송사들 몰락의 시작이었지, 하게 될까. 아니면,
  • 그래서 MBC는 살아남았지, 하게 될까.

바이스미디어의 몰락을 두고 뉴욕타임스는 “매출 성장과 독자 확보를 둘 다 소셜 미디어에 의존하는 미디어 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많은 뉴미디어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의 배포 모델에 베팅했지만 플랫폼이 디지털 광고를 빨아들일(siphon off) 거라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지금 지상파 방송사들도 비슷한 함정에 빠져 있는 것 아닐까. 우리의 플랫폼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싸우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지상파 플랫폼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MBC 사장 안형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넷플릭스 진출을 ‘다매체 시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두 가지 질문이 있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납품하면 더 많은 오디언스를 만나게 되는 거라고 봐야 하나. 공영 방송이 만드는 콘텐츠를 유료 플랫폼에 태우면서 오디언스를 제한하고(넷플릭스에 가서 돈 내고 보세요) 넷플릭스의 파워를 더 키워주는 건 아닐까.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다. 소셜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존하다가 무너진 바이스미디어 모델로 갈 것인가. 또는 포털에 뉴스를 헐값에 넘긴 한국의 신문사 모델로 갈 것인가. BBC나 뉴욕타임스처럼 독립적인 브랜드와 신뢰로 자리 잡을 것인가. 선택과 집중, 핵심 경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9년 전인 2014년, 포털과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를 위탁 받아 네이버와 다음에 제공하고 광고 영업도 직접 한다.

당시 스마트미디어렙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OEM(주문자 부착 상표)로 납품하다가 우리가 직접 매대를 만들어서 장사를 하고, 백화점에 장소 사용료를 내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방송사들이 플랫폼 주도권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는데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다시 읽어보면 과연 주도권을 가져 온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셋째, 지상파 플랫폼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한국에서 지상파 직접 수신 가구는 이제 5%가 채 되지 않는다. 압도적인 도달률을 확보했던 플랫폼의 경쟁력은 무너진 지 오래다. 앞자리 채널 번호와 누적된 평판과 신뢰, 그리고 오디언스의 습관이 그나마 지상파의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신이다’ 논란에서 확인했듯이 공영 방송의 공적 책무와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확장성의 족쇄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플랫폼을 외주화하고 채널을 다변화했지만 콘텐츠 패키지와 브랜드가 희석되고 여전히 낡은 플랫폼 정체성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메가 콘텐츠의 회당 제작비는 100억 원을 웃도는데 광고는 완판해도 5억을 못 넘기는 게 현실이다. ‘스위트홈’이 30억 원, ‘수리남’이 60억 원 들었는데 지상파에서는 10억 원 이상 제작비를 들여 만들면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주 제작사에 제작비를 떠넘기니 PPL 떡칠을 하지 않고는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MBC가 ‘피지컬:100’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넷플릭스가 제작비 100억 원을 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넷플릭스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왜 MBC는 더 이상 메가 콘텐츠를 만들 수 없는 쇠락한 플랫폼이 됐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제 누군가가 사주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뭔가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돈을 받아 넷플릭스에 납품하는 것으로 이 본질적인 위기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OTT 저널리즘’이라는 이질적인 질문.

제주대 교수 이서현은 이날 토론에서 “‘나는 신이다’가 ‘나는 MBC다’를 넘어 ‘나는 넷플릭스다’로 수렴되는 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넷플릭스가 아니면 이런 시도와 성과는 있을 수 없다는 고백으로 들릴 수도 있고 저널리즘이 거대 자본에 포섭된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서현은 “지금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본원적인 탐색이 숙고돼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건국대 교수 허찬행은 “넷플릭스라는 철저히 상업적 플랫폼이 공공 저널리즘의 가치 구현을 위해 해당 콘텐츠를 내보낸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 “공영 방송 MBC의 제작 역량과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시장으로 통하는 플랫폼과의 협업이 ‘공영 미디어로의 공진화’가 될 수 있는지는 좀더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MBC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MBC가 이렇게 쪼그라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침 윤석열 정부 들어 MBC의 신뢰도가 급격히 반등한 것도 고무적인 신호다. MBC는 MBC가 가장 잘 하는 것과 잘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사이드가 아니라 본판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대가 부풀어 올랐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넷플릭스는 MBC를 구원할 수 없고 당연히 저널리즘을 구원할 수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좀 더 야심만만한 실험과 도전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에 올라탈 수 있다면 올라타야 한다. 새로운 형식 실험을 반복하면서 제작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자다. 다만 본판의 경쟁력과 브랜드를 강화하는 게 핵심 전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상파 라이브 뿐만 아니라 다시 보기와 OTT, 넷플릭스, 포털 등의 도달률을 통합한 새로운 지표와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레거시의 DNA를 극복하고 미디어 기업으로 진화하는 게 지상파 방송사의 과제다.

편집자 주.

5월19일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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