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정부, 여야 국회의원들 모두 합심해서 표현의 자유를 전방위적으로 침해하고 위축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핵심을 이루는 국가 검열을 재연하고 있다. 더욱 개탄스러운 점은 이런 흐름에 야당 역시 편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이 조속히 표현의 자유의 근간과 원칙을 제고할 것을 촉구한다.
윤, 중립성 의무 포기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임기 시작후 이를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11월 10일에 대통령은 ‘편파방송’을 이유로 해외 순방시 이용하는 대통령 전용기의 MBC 기자단 탑승을 “불허”했다. 대통령은 가짜뉴스로 동맹국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MBC의 악의적인 행태에 대한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건의 보도에 대한 근거 부족을 이유로 국가의 대통령이 언론사 전체에 대한 보이콧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정당화해서도 안 된다. 국가는 특정한 비전을 가지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국정을 운영할 수 있지만 이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언론의 취재를 차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지켜야 할 국가의 중립성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문화예술 검열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부처의 검열도 다시 시작되었다. 하물며 블랙리스트로 막을 내린 박근혜 정부 시절의 그것보다 더욱 노골적이다. 문체부는 10월 4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하, 진흥원) 주최로 개최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인 ‘윤석열차’의 선정과 전시를 문제삼았다. 문체부가 교부한 예산 집행시 “정치적 의도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작품”을 결격 사항으로 진흥원에 공지하였으나 진흥원이 누락하였기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신속히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블랙리스트의 부활이다. “정치적 의도”는 성격상 평가하는 자의 입맛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텐데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억제하려는 의도만이 읽히기 때문이다.
11월에는 부마항쟁 기념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기로 섭외되었던 가수 이랑과 공연 연출을 맡았던 강상우 감독이 약자의 항거를 주제로 한 공연을 준비 중에 행정안전부의 “요청”으로 하차하게 되었다. 행정안전부는 “미래세대와 부마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주최 측에 전달한 바” 있을 뿐 검열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매년 예산을 지원받는 수혜 대상으로서는 단순히 ‘의견’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원청이 하도급업체와 계약한 직원에게 갑질하듯 이루어진 검열이라 책임 소재를 쉽게 덮을 수도 있어 더욱 문제다.
지방 정부에 의한 검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 9월 전주시에서는 전주시가 행정안전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공간을 조성하고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우깨컴퍼니, (주)문화다양성공존 등 여러 민간단체에게 위탁하여 운영해오고 있는 성평등전주가 ‘제3회 페미니즘 예술제: 지구탈출’전을 주최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가진 사상이 기관이 지향하는 가치관·사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식심사를 통과한 작가 3인을 전시에서 퇴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성평등전주는 국비와 시비가 사용된 예술지원사업에서 정치적 의견 또는 사상을 이유로 특정 예술인을 배제하는 차별행위를 하고, 예술인의 예술 활동에 개입한 것으로 명백하게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
고위공직자들의 명예훼손 고소 남발
정부 부처 장관들의 잇단 명예훼손 고소 역시 이명박 정부 시대 남발되었던 입막음 소송을 재연하는 모양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으로 임명된 직후부터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진행될 당시에는 자녀에 관한 의혹을 제기한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청담동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심야 술자리 회동을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언론매체 더탐사를 고소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변호사 시절 청탁 사건 연루 논란을 다룬 한겨레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다.
두 장관의 고소 남발은 국가 기관을 이끄는 부처의 장관들이 공직 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제도를 남용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국제인권기구들은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및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국가 검열의 도구로 남용될 가능성이 있어 수십년째 폐지를 권고해왔다. 특히 민주와 독재의 대결이 한창인 아프리카의 케냐, 레소토에서는 바로 그런 이유로 위헌 판정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는 이명박 정부에서 기승을 부렸다가 박근혜 정부 때 비교적 잦아들고 문재인 정부 들어 거의 사라졌다. 이처럼 거의 사라진 제도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돌연 부활했다. 대통령 임명 후 불과 7개월 정도를 지나는 짧은 재임기간 동안 벌써 몇 차례에 걸쳐 고위공직자들이 동료 공직자인 검찰에 자신들의 평판을 보호해달라는 요청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오픈넷은 창립 당시부터 명예훼손 형사처벌제도 자체가 국가 검열의 도구로 남용될 위험에 대해 계속 경고해왔다. 실제 세월호 구조활동에 대한 비판자를 해경 명예훼손이라는 빌미로 구속하였던 사건을 법률지원하여 최종 무죄 확정을 받기도 했다.
편승하는 야당
더더욱 개탄스러운 점은 대통령과 정부가 하는 일을 견제하고 감독해야 할 야당이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3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100m 이내에서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집회와 시위는 국민들이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직접적인 행동이므로 집회와 시위의 주체와 대상이 서로를 볼 수 없는 곳,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게토화해서는 안 된다. 또 집회시 발생하는 소음 규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등 규율 가능한 다른 방법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법을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대통령의 책임보다 대통령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우위에 두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원수 소재지 인근에서 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태국 정도이다. 야당의 대응도 여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속한 정치세력의 수장이었던 자를 옹위하겠다는 의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민주당을 향한 국민의 신뢰는 한층 더 허물어졌다.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논평을 쓴 임미리 교수 고발 사건, 언론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 가득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등의 선례에 또 하나의 사례를 추가한 것이다. 정녕 표현의 자유를 무력으로 찍어누르던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해 싸워온 당사자와 그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 세대들인가 의심스럽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촛불의 경고를 잊었는가? 야당은 촛불의 약속을 잊었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 당장 검열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중단하라. 또 지위 보전과 정쟁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 역시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