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 직후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비롯해 국민의힘 인사 일부는 판사가 법원 내 특정 연구모임 소속이라며 “정당 자치를 훼손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이 있고 이상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된 것 같다”고 말했는데요.
언론은 주 비대위원장 발언을 검증 없이 받아쓰기했고, 비슷한 보도는 우후죽순 쏟아졌습니다. 급기야 8월 26일 밤 서울남부지법이 “(‘가처분’ 재판장인) 황정수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회원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언론공지문을 발표했습니다.
주호영 비대위원장 일방적 주장 검증 없이 받아쓴 언론
관련 보도를 살펴본 결과, 서울남부지법이 언론공지문을 발표하기 전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쓴 언론은 총 35개사입니다. 공영방송 KBS와 뉴스통신사 연합뉴스, 뉴시스 등은 주 비대위원장 주장을 그대로 전하며 기사 제목에도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이라는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의 언론공지문 발표 뒤에도 주 비대위원장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가 있는데요. 이데일리, 뉴스1, 노컷뉴스, 매일경제, MBN, YTN, 굿모닝충청 등 7개사입니다.
- 서울남부지법 공지 발표 전, 주호영 비대위원장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쓴 언론사(35개사): KBS(3), 강원일보, 머니투데이, 연합뉴스TV(3), 아이뉴스24, 헤럴드경제, 뉴시스(3), 시사저널, 연합뉴스(2), 뉴스토마토, 부산일보, 조선비즈, 매일신문, 뉴스1(3), 뷰스앤뉴스(2), e대한경제, 한국경제(2), 경향신문(2), 여성경제신문, 비즈니스포스트, 중앙일보(2), 세계일보(2), 국제신문, 파이낸스투데이, MBN, 채널A, MBC, UPI뉴스, 한겨레, JTBC, OBS, YTN(2), 미디어펜, 뉴데일리, 조선일보 (※ 괄호 안은 보도건수)
따옴표 저널리즘, 일방적 주장을 객관적 사실로 인식할 우려
이런 보도행태는 취재원이 한 말을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기사로 옮겨놓는 ‘따옴표 저널리즘’에 해당합니다. YTN 라디오 [열린라디오 YTN] (2020년 10월 17일)에서 조수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는 “취재원의 말 또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까 이에 대한 상반된 의견도 취재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검증을 한 뒤 하나의 기사로서 실리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는데요. 앞선 기사들은 검증을 하기는커녕 일방적 주장을 제목에까지 인용했습니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의 제안으로 2016년 시작된 좋은저널리즘연구회는 한국 10대 일간지와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더타임스, 일본 아사히신문의 2016년 기사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 제목의 직접 인용구 유무 비율을 분석했습니다. 기사 제목에 직접 인용구를 사용한 비율이 뉴욕타임스 2.8%, 더타임스 0%, 아사히신문 13.9%인 데 반해, 한국 10대 일간지는 59.1%에 달했습니다. 주요 외신은 따옴표 제목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데요. 뉴욕타임스는 “제목에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편집지침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따옴표 제목을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의 일방적 의견이나 주장이 기사제목이 되면 객관적 사실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 주장이 객관적 사실로 인식될 경우 여론이 왜곡될 위험도 있습니다. 언론이 특정인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 없이 인용하는 행태에 우려의 시선이 이어진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번에도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주장을 검증 없이 기사에 싣고 제목으로 내거는 한편, 서울남부지법의 사실 확인 후에도 여전히 인용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따옴표씩 인용과 다를 바 없는 기사와 칼럼
주호영 비대위원장 주장을 인용하진 않았지만, 인용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기사와 칼럼도 있습니다. 동아일보 [여, ‘주호영 직무정지’ 판사에 원성…6·1지선때도 ‘악연’] (8월 27일 이윤태‧이소정 기자)은 제목에서부터 국민의힘과 가처분 결정을 내린 판사가 ‘악연’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해당 판사가 특정 연구모임 소속이 아니라는 서울남부지법 설명을 싣긴 했지만, “(해당 판사가) 집권 여당의 지도체제를 뒤흔드는 결정을 내리면서 여권에서는 재판부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며 국민의힘 주장만 실었습니다. “(해당 판사가) 6‧1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을 곤란하게 만드는 결정들을 내렸다는 점도 다시 부각됐다”며 제목에서 언급한 국민의힘과 해당 판사 간 ‘악연’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뉴데일리 [‘주호영 직무정지’ 황정수 판사…중요 사건마다 국민의힘 지도부 ‘발목’] (8월 27일 어윤수 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남부지법 설명을 전하긴 했지만, 제목에서부터 해당 판사가 국민의힘 지도부의 ‘발목’을 잡았다고 단정지었습니다. 소제목엔 주호영 비대위원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해당 판사를 비판하는 일방적 주장만 실었습니다.
데일리안 [정기수 칼럼/‘이준석 100대0 완승?’…과연 그럴까?] (8월 30일 정기수 자유기고가)는 재판부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해당 판사는) 좌파 성향 우리법연구회의 초기 핵심 멤버”인데 “(우리법연구회는) 문재인 정권의 법원 요직을 두루 점령한 ‘법조 하나회’”로 “윤석열 정부가 단호히 척결에 나서야 할 개혁 대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설과 칼럼이 의견 기사라고는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은 여느 기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데일리안은 서울남부지법 설명은 물론 삼권분립 원칙마저 무시한 일방적 주장을 ‘칼럼’이라는 형태로 버젓이 내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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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니터 대상: 2022년 8월 26일~3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 관련 기사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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