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용자에 대한 통보절차가 없는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수집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 헌법상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고,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본권에 대한 미흡한 인식으로 몹시 우려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고려대 법전원 박경신 교수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 헌법재판소 2022. 7. 21. 선고 2016헌마388,2022헌마105,2022헌마110,2022헌마126(병합)
- 재판장 유남석 이선애 이석태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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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21일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없이 통신사업자에 이용자의 인적사항(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일자, 전화번호, ID 등 가입자 정보)을 직접 요청하여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 ‘통신자료제공’ 제도(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헌법재판소 2022. 7. 21. 선고 2016헌마388 등 결정).
헌법재판소는 본 결정에서, 당사자의 기본권 제한 사실에 관한 통지는 당사자가 기본권 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본 제도는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절차를 두지 않고 있는 점이 적법절차 원칙을 위배하여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다. 단, 본 제도에 의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은 강제성이 없으므로 영장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하였다.
프라이버시 보호 범위는 ‘법률’과 ‘관행’으로 결정된다
프라이버시의 보호 범위는 동어반복적인 측면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수사기관에 대한 프라이버시의 보호 범위를 “프라이버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privacy)”로 어정쩡하게 정의할 수밖에 없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즉, 기존 법률과 관행에 따라 프라이버시 보호 영역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부동산 소유자의 이름은 부동산등기부를 통해 공개되도록 되어 있고 이 제도가 안착되어 있는 현재 누가 특정 부동산의 소유자를 알아보든 해당 소유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특정 전화번호의 소유자를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핸드폰 번호를 그 사람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침해로 생각하는 관행이 있다. 그 관행이 얼마나 확고하면 “그대의 이름도 성도 나 필요없소. 하지만 정말 나 원하는 게 하나 있소 네 전화번호”라는 노래가 대히트를 쳤겠는가?
물론 핸드폰 번호를 알고 그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통신자료제공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의 필요에 따라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핸드폰 번호의 소유자를 통보해줄 것을 허용하고 있다. 해당 법 83조의 제목은 ‘통신 비밀의 보호’로서 전기통신사업자가 이용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법인데 제3항에서 그 보호 범위에서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통신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
통신자료 요청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법률에 의해 프라이버시 보호 범위가 확정된 것으로 보고 이에 따라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들로부터 핸드폰 번호 소유자들의 신원정보를 취득한 것도 합헌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이 타인의 핸드폰 번호를 프라이버시로 생각하는 현재의 안착된 관행에 어긋나게 타인의 프라이버시 보호 범위를 과도하게 좁혀 위헌이라고 봐야 할까? 헌법재판소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했어야 하는데 위 결정에서 그 기회를 놓쳤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 조항이 영장 없이 내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하여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사기관 등이 전기통신사업자에 대하여 통신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응하거나 협조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지 않으며, 달리 전기통신사업자의 통신자료 제공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고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조항에 따른 통신자료 제공요청은 강제력이 개입되지 아니한 임의수사에 해당하고 이를 통한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취득에는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아니하는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그러나 통신자료제공 요청과 취득이 강제력이 있는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면 전기통신사업자들의 이용자 정보 제공은 자발적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이용자 정보 제공에서 발생하는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서는 전기통신사업자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신사업자들의 이용자 정보 제공이 법령이 정한 형식과 절차에 맞춘 것이라면 적법한 행위라며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즉, 83조3항에 따라 수사의 필요에 따라 통신자료제공 요청을 하는 경우 ‘제공할 수 있다’라고 허용하고 있으며 통신사업자들은 법이 허용한 행위를 하였으니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종합해보면 결국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의3은 통신이용자로서의 신상정보를 수사기관에 대한 공개 국면에서는 국민의 프라이버시 보호 영역에서 제외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법으로 이름과 핸드폰 번호 조합이 실린 전화번호부를 발행하도록 허용하거나 또는 법으로 자동차 선팅을 못 하게 해서 자동차 내부가 외부에 공개되도록 하면 그만큼 국민의 프라이버시의 보호 범위가 축소된다.
이번 헌법소원은 그런 법에 대한 실체적 심사 즉 프라이버시의 보호 범위가 실체적으로 축소되는 문제를 다룰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에 대한 숙고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영장주의가 적용되는지 여부는 다루지 않더라도 최소한 83조3항이 통신이용자로서의 신상정보가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가 보호하려고 하는 “통신의 비밀”에서 수사기관이 수사의 필요에 따라 요청하는 통신자 신원정보가 제외되는 것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
과잉금지원칙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본 헌재
물론 헌재는 본 제도가 수사 초기 단계에서의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취득 대상 정보의 범위나 사유가 다음과 같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성명, 직명(職名)과 같이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식별이나 소통에 필요한 기초 정보들은 사회생활 영역에서 노출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국가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일정하게 축적 및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정보들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다른 위험스러운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식별자(識別子) 역할을 하거나, 다른 개인정보들과 결합함으로써 개인의 전체적 및 부분적 인격상을 추출해 내는 데 사용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언제나 엄격한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통신자료제공은 신원정보 취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기통신에 참여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알려진다는 면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정도가 압수수색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카카오 닉네임과 이용자 신원이 매칭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해당 이용자가 수사대상 카카오 채팅에 참여하고 있다는 비밀스러운 사실이 공개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종석 재판관의 소수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다.
“수사기관 등에 제공되는 통신자료들 중 성명,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은 그 자체로는 민감한 정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은 다른 통신 메타데이터와 결합되거나 분석될 경우 사적 통신 내용에 의하여 전달되는 것 이상의 개인의 행동, 사회적 관계, 개인의 취향과 정치성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정보로 진화할 수 있다. 특히 통신자료 중 주민등록번호는 만능키라고 불리울 정도로 단순히 개인을 식별하는 수준을 넘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다른 민감한 정보로의 연결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종석 재판관의 소수의견)
특히 헌재는 적법절차 원칙에 따르면 국가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불합치를 결정했다. 당연하다. 아무리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징수할 수 있는 물건이 있어도 몰래 훔쳐올 수는 없다. 본 결정에서 통신이용자 정보의 제공·취득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임을 확인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용자들이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의한 경우에만 제공 여부가 드러났지만, 본 판단에 따른 법 개정 이후에는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통지를 해야 하므로 국가에 의한 사적 정보 취득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사후통보가 대량으로 이루어지면 수사관들을 포함한 국민 전체가 프라이버시 침해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결국 제공 숫자라도 미국 유럽 등 비슷한 무영장 통신자 신원확인제도를 둔 다른 나라 수준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프라이버시는 실체적 보호만큼 절차적 보호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며 국가 감시의 투명성이 증진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을 환영할만하다.
본질, 국민의 익명 통신의 자유
본론으로 돌아가 헌법재판소는 이와 같은 법제 하에서는 전기통신을 하는 순간 국민은 익명 통신의 자유를 잃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기통신의 이용자가 되면 그 전기통신의 내용 또는 통신사실을 포착한 수사기관은 통신자료제공제도를 통해 곧바로 통신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 통신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설시한 바 있다.
“[전략]익명표현은 인터넷이 가지는 정보전달의 신속성 및 상호성과 결합하여 현실 공간에서의 경제력이나 권력에 의한 위계구조를 극복하여 계층․지위․나이․성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계층의 국민 의사를 평등하게 반영하여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되게 한다. 따라서 비록 인터넷 공간에서의 익명표현이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갖는 헌법적 가치에 비추어 강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2012)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2010년 제기한 인터넷실명제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문(2012. 8. 23. 2010헌마47등) 내용이다. 곱씹어보면 세계헌법사에 길이 남을 명문이다. ‘편집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민주화운동서적들이 유통되었는가. 익명표현이 이렇게 민주주의에 중요하다. 익명통신의 자유는 자신의 실명을 어딘가 보관하도록 강제했을 때(인터넷실명제)만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관된 내 실명을 남이 내 의사에 반하게 꺼내볼 때(통신자료제공)도 침해된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2010년 인터넷실명제와 통신자료제공제도에 동시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12년간의 여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번 결정이 끝은 아니다. 이제 법이 개정되어야 하는데 사후통지에서 끝날 것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최소수집의 원칙은 헌법적인 의미를 갖는다. 제공을 받았지만, 효용이 없는 통신자료는 삭제되어야 한다.
사실 통신자료제공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의 신원도 확인한다는 것에 있었는데 실제 사건에서 실제 그런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이것들은 삭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집회주최자들 식별을 위해 기지국털기(통신사실 확인자료 취득)를 한 후에 수많은 통신자들의 통신자료제공을 받을 텐데 주최자 아닌 사람들의 통신자료는 명백히 삭제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