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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022. 7. 21.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없이 통신사업자에 이용자의 인적사항(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가입 및 해지일자, 전화번호, ID 등 가입자 정보)을 직접 요청하여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 ‘통신자료제공’ 제도(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헌법재판소 2022. 7. 21. 선고 2016헌마388 등 결정).

지난해(2021년) 상반기 기준 수사기관에 제공된 전화번호는 약 256만 개, 문서는 약 49만 개에 달한다.

환영한다 

헌법재판소는 본 결정에서, 당사자의 기본권 제한 사실에 관한 통지는 당사자가 기본권 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본 제도는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절차를 두지 않고 있는 점이 적법절차 원칙을 위배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다.

본 결정에서 통신이용자 정보의 제공·취득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위이며 통신 감시 대상자에 대한 통지의 중요성을 확인한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이용자들이 전기통신사업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의한 경우에만 제공 여부가 드러났지만, 본 판단에 따른 법 개정 이후에는 이용자에게 의무적으로 통지를 해야 하므로 국가에 의한 사적 정보 취득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프라이버시는 실체적 보호만큼 절차적 보호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며 국가 감시의 투명성이 증진된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

하지만 아쉽다: 영장주의의 문제 

그러나 본 제도에 의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은 강제성이 없으므로 영장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아쉽다. 통신자료제공 요청과 취득이 강제력이 있는 공권력 행사가 아니라면 전기통신사업자들의 이용자 정보 제공은 자발적 행위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용자 정보 제공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경우 전기통신사업자들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신사업자들의 이용자 정보 제공이 법령이 정한 형식과 절차에 맞춘 것이라면 적법한 행위라며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국민이 국가의 강제력 없는 요청과 다른 사인의 자발적인 협조로 기본권 침해를 당해도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의3은 통신이용자로서의 신상정보를 국민의 프라이버시 보호영역에서 제외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낸 것이며, 이번 헌법소원은 그런 법에 대한 실체적 심사를 요청한 것인데 이에 대한 숙고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헌재는 본 제도가 수사 초기 단계에서의 수사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취득 대상 정보의 범위나 사유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반되지 않는다고도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이 같은 법제 하에서는 전기통신을 하는 순간 국민들은 익명통신의 자유를 잃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통신자료제공은 신원정보 취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전기통신에 참여한 사실이 수사기관에 알려진다는 면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정도가 압수수색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카카오 닉네임과 이용자 신원이 매칭되는 것 뿐만 아니라 해당 이용자가 수사 대상 카카오창에 참여하고 있다는 비밀스러운 사실이 공개된다는 것이다.

또, 네이버, 카카오 등의 사업자들은 논란 이후 영장주의에 입각하여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명령이 있을 때만 신상정보를 제공하는 관행을 실행해왔는데 관련 수사가 현저히 어려워졌다는 정황도 없다. 즉, 영장주의를 준수하면서도 수사의 필요성이라는 공익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침해의 최소성이 부정되었어야 한다. 이번 결정때문에 네이버 카카오 등이 영장없는 통신자료제공에 협조하기 시작할 위험도 있다.

카카오 네이버는 개인정보 논란 이후 ‘영장주의’를 요구하는 관행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영장을 요구하는 관행을 포기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미지 출처: 진보넷)

영장주의의 근본 정신 돌아봐야 

우리는 참여연대와 함께 소송 및 캠페인 등을 통해 이용자가 통신사에게 요청하여 자신의 통신자료제공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본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 공론화될 수 있었다. 또, 통신자료제공 제도의 인권침해성을 지적한 2015년 UN 자유권위원회 권고, 2016-2017년 아티클19 및 프라이버시인터내셔널의 의견서, 2017년 David Kaye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의견서, 2019년 조셉 카나타치(Joseph Cannataci )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의 한국방문 보고서를 이끌어냈다.

현재 통신비밀보호법상 통신의 형식적 정보인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취득을 위해서 법원의 허가를 요건으로 하고 있듯, 통신자의 신원정보를 제공하는 ‘통신자료제공’ 제도 역시 이에 버금가는 절차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신원정보를 통신의 내용이나 형식 정보에 비해 가볍게 취급하는 것은 익명통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개선 입법 의무를 넘겨받은 국회가 정보 제공의 정당성을 판별할 수 있는 충분한 사후 통지 절차를 규정하고, 이에 더 나아가 영장주의의 근본적 정신과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성숙한 입법안을 도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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