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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 철폐 요구에 대해 공당 대표가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폄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참여연대는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차별에 대해 짚어보는 세 편의 판결비평 시리즈를 준비합니다.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첫 번째 특집은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지자체와 버스 운송회사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마련하라는 적극적 의무 조치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 판결이 차별구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해당 판결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나동환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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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동권은 생존의 기본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의 실현을 위한 수단이 되는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속버스와 광역형 시내버스 등 시외버스에 저상버스나 휠체어 탑승 설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은 탓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시외로의 이동에 많은 제약을 받아야 했다.
이에 2014년,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은 시외버스 운송사업자인 금호고속, 광역형 시내버스 운송사업자인 명성운수,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이라 함)상 교통행정기관인 대한민국(국토교통부 장관)·서울특별시장·경기도지사를 상대로, 장애인에게 저상버스나 휠체어 탑승설비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제4항)를 위반한 차별행위의 시정에 필요한 적극적 조치를 구하는 차별 구제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8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원심의 판단을 유지하여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음은 물론, 원심에서 버스 회사들에 휠체어 승강 설비를 마련하라는 적극적 조치를 명한 부분마저 파기환송하도록 판결함으로써,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법에 명시된 이동권 보장에 대한 당연한 요구를 완전히 외면해버렸다.
장애인은 스스로 “구체적, 현실적 개연성”을 입증하라 (대법원)
원심(2심)은 “피고 금호고속은 시외버스에 관하여, 피고 명성운수는 시내버스 중 광역급행형, 직행좌석형, 좌석형 버스에 관하여, 원고들이 위 각 유형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휠체어 승강설비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피고 버스회사들이 자신들이 보유·운행하는 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 리프트 등 장애인의 승·하차 편의를 돕는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및 교통약자법 시행령에 규정된 교통사업자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위반한 것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이러한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하면서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여야 하는 대상 버스와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의무의 이행기를 따로 정하지 않은 것은 비례의 원칙에 반해 과도하고 재량권을 벗어났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원심은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대상 노선을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한정하여, 그 노선 범위 내에서 휠체어 탑승설비를 단계적으로 설치해 나가도록 차별행위의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의 내용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이 “원고가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대상을 제한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서 명백한 차별적 판단이다. 비장애인은 본인의 주거지나 직장이 어디인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여행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인은 향후 자신이 이용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음을 입증한 노선에 한하여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의 범위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것에 다름없다.
또한, 이처럼 대법원이 차별행위의 시정조치 이행 대상을 소를 제기한 원고들과 직접적·구체적·현실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은 향후 장애인들은 차별행위의 시정을 위해 각자 따로따로 수천 개의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으로서, 차별 구제 청구소송이 갖는 공익소송으로서의 의미도 퇴색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 및 지자체는 장애인 이동권 책임질 필요가 없다?
1심에서는 교통행정기관인 국토교통부장관 및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등 지자체장은 교통약자법의 규정 및 지자체 조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이동편의시설에 관한 정책 및 절차의 수립, 심사 등을 통하여 이동편의시설 설치를 위한 제반 조건 및 토대로서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주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 및 지자체가 시내버스 및 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설치하는 것에 관하여 어떠한 일체의 계획 내지 방안도 마련하고 있지 않는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러한 판단은 2심에서 뒤집혔고,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대법원은 피고 대한민국과 서울시장, 경기도지사가 교통약자법에 따라 피고 버스회사들이 이동편의시설인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지도·감독하는 것을 소홀히 한 점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적·행정적·재정 지원을 다하지 않았더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차별행위의 유형(직접차별·간접차별·정당한 편의제공의무 등)에 포섭되지 않으므로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버스회사 등 교통사업자들이 교통약자법의 해석상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제공으로서의 휠체어 승강설비와 같은 이동편의시설의 직접적인 설치의무 주체라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국가의 행정계획·표준마련·재정지원·지도감독 등이 필수적이며, 이러한 뒷받침 없이는 교통사업자들의 정당한 편의제공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대한 차별에 관해서는 교통행정기관이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통약자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장애인이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이용하여 이동할 권리 및 승하차를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가 법률화된 지 10여 년이 흘렀음에도, 장애인은 고속버스 등 시외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직접차별을 당하고 있고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교통행정기관이 부담하는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부정한 것은 국가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책임을 사실상 면제해주는 것으로서 심히 부당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장애인의 접근권과 이동권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교통약자에 대한 이동권 보장 책임은 쏙 빠지고 그 몫은 온전히 민간사업자에 떠넘겨지고 만 것이다.
90%에 이르는 지하철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생겼고 저상버스의 도입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등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과거에 비해 나아진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단체들은 매일 아침 혜화역에서 선전전을 펼치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 마련을 촉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사실상 전면 부정한 본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국가와 운송사업자들이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더딜 수도 있겠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울려 퍼져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모든 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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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판결:
- 쟁점: 장애인 당사자의 시외버스 등의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미비에 대한 차별구제
- 1심: 서울중앙지법 2015. 7. 10. 선고 2014가합11791, 지영난 판사, 김두희 판사, 정혜승 판사
- 2심: 서울고법 2019. 1. 25. 선고 2015나2041792, 배준현 판사 손철우 판사 이재신 판사
- 3심: 대법원 2020. 2. 17. 선고 2019다217421 차별구제 박정화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노태악 대법관(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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