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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sense] 2015년 7월 5일 진행된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이른바 채권단 제안을 반대 61%, 찬성 39%로 거절했다.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 그리스와 유럽 경제의 방향을 분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리스 재정 위기의 원인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

한국의 지역 전문가는 미국, 일본, 중국 등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외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언론·방송사는 지역 전문가들과 이제야 그리스 현장을 방문해 이번 그리스 재정 위기를 보도하고 있으나 그 깊이는 딱한 수준이다.

재정 위기와 복지 연결하는 아전인수 논쟁들

‘복지 때문에 망했다’‘복지 때문에 망한 것 아니다’와 같은 아전인수 논쟁이 주를 이룬다.

한겨레의 [그리스 르포] “카페마다 사람들 북적…’부도 국가’ 맞나 싶다”를 보면 자신이 목격한 자동인출기(ATM)에는 장사진을 목격하지 못했다며 사실을 왜곡하는 한국 언론을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공영방송 ARD의 르포 영상 “오! 그리스여,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고통 받고 있나”를 보면 자동인출기 주변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영상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금세 젖게 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접근 방식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FXhw3IYGXk

그리스 경제 위기에 관한 다양한 독일 자료를 살펴보면서 얻은 잠정적 결론은 이번 그리스 경제 위기는 ‘그리스 좌우 기득권과 국제 자본의 합작품’이다.

원인 1: 국제 자본과 그리스 정치권의 결탁

그리스 경제 위기 주범 중 한 명은 ‘루카스 파파디모스’다.

루카스 파파디모스 그리스 총리 (출처: " target="_blank">위키백과 공용. CC BY-SA 3.0)
루카스 파파디모스 전 그리스 총리 (출처: 위키백과 공용. CC BY-SA 3.0)

그는 미국 MIT에서 경제학 박사, 1975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고 1980년에는 미국 연준의 최고 경제학자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스 정부는 이런 그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고, 파파디모스는 그리스 사민주의 정부의 다양한 경제 자문역을 맡았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파파디모스는 그리스 중앙은행장으로서 2001년 그리스의 유럽연합 단일통화 가입을 주도한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그리스 총리는 사민주의정당(PASOK)의 “콘스탄티노스 시미티스”였다. 문제는 당시 그리스 경제가 유로화 가입 조건, 이른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가입하려면 한참 부족한 상태였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유럽의 시작을 상징하는 그리스의 가입을 절실하게 원했다. 파파디모스 총리는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협조 아래 골드만삭스를 고용해 그리스 경제, 정부 예산 등의 통계를 조작했고 분식회계를 정부의 관행으로 만들었다.

그리스의 유로존 가입 공로를 인정받아 파파디모스는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의 자리까지 올라갔으며, 그 이후에도 그리스 사회민주주의 정부로부터 재무장관 등 다양한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 위기가 본격화된 시기인 2011년에 파파디모스는 스스로 그리스 총리가 된다.

1990년대 이후 그리스 경제는 파파디모스 경제였고, 그 뒤에는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있었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골드만삭스, 유럽중앙은행 등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원인 2: 상위 1% 자본가와 결탁한 정치권과 공무원

그리스의 선박과 숙박 시설 가격에 매기는 세금

해양업, 관광업 기업과 공무원의 결탁

그리스 제1산업은 해양업이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해양업은 관광업과 동의어다. 관광객이 이용하는 선박과 숙박 시설 가격에는 이른바 ‘관광세’라는 지방세가 포함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해양업, 관광업 기업의 로비스트와 공무원 사이의 촘촘한 결탁이 형성되어 왔다. 세금을 내지 않거나 깎으려는 기업가의 노력은 정치권과의 결탁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정치인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뽑는 등 국가기관을 사유화했다. 서로의 부정을 눈감아 주며 이들은 그리스의 기득권으로 성장했다.

낮은 재산세

그리스는 기업과 자산가에게는 낙원과도 같은 나라다. 그리스의 재산세는 15.9%다. 비교하자면 독일은 24.4%, 영국은 42.7%다.(2007년 기준) 탈세로 상징되는 그리스의 블랙마켓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40% 규모로 추정된다. 비교하자면 독일의 블랙마켓 규모는 15%다.

엄청난 수의 공무원 규모

그리스의 부패 또한 유명한데, 이 부패의 핵심에는 그리스 공무원이 있다.

출처: KOTRA 해외비즈니스정보포털 - 그리스 출장 시 유의사항·참고사항
출처: KOTRA 해외비즈니스정보포털 – 그리스 출장 시 유의사항·참고사항

먼저 공무원 규모를 보자. 2010년 그리스의 공무원 수 통계가 역사상 처음으로(!) 집계되었다. 그 숫자는 768,009명이다. 인구 총 1,100만 명 수준의 그리스에 공무원 수가 8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 실업률 12.5%를 기록하고 있었던 2010년 당시 그리스의 고용 노동자 수는 438만 명이었다. 다시 말해 고용 노동자 중 17.49%가 공무원인 나라가 그리스다.

조사 기간 마다 공무원 규모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독일 쉬피겔의 2011년 보도를 보면 총 고용 노동자 수 대비 그리스의 공무원 비율은 24%다. 이를 따르면 고용 노동자 4명 중 한 명이 공무원인 셈이다. 독일 FAZ는 그리스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를 출처로 밝히면서 공무원 비율을 19.33%로 밝히고 있다. 이를 따르면 노동자 5명 중 1명이 공무원인 셈이다.

이들 공무원 수에는 당시 74개에 이르던 그리스 공기업의 노동자는 포함하지 않았다. 또한,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자문위원회에서 일하는 사람 수도 포함하지 않았다. 2010년 FAZ의 또 다른 보도를 보면, 그리스 자문위원회에는 약 1만 명이 일을 하며, 이들 위원회 운영비로 매년 약 1억 유로(약 1,240억 원)가 쓰이고 있다. (2010년 당시 그리스 정부는 200개의 자문위원회를 없앤다고 약속을 했다.)

높은 공무원 비율에는 군대 또한 한 몫하고 있다. 인접 국가 터키와의 국경 갈등은 그리스의 군사비 지출을 꾸준히 높여왔다. 2005년 국내총생산 대비 2.9%, 국가재정지출 대비 6.6%가 군사비 지출규모다. 그리스 경제 위기 과정에서 이 부분은 크게 줄어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2.2%, 국가재정지출 대비 4.7% 수준이다.

공무원이 받는 다양한 특혜

그리스 공무원 문제는 그 규모에 제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특혜가 사회문제다.

첫째, 공무원은 1년에 14개월 치 월급을 받는다. 공무원은 부활절 때 1번, 크리스마스 때 1번 추가 월급을 받는다. 상여금 제도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그리스 경제에서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리스 정부는 현재 이를 삭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 공무원의 연금 혜택이 크다. 공무원은 55세부터 연금 생활자가 될 수 있다. 공무원이 아닌 경우 61세다. 공무원 연금은 또한 부분 상속이 가능하다. 공무원 연금 수령자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가 수령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리스의 경우 공무원 연금 수령자가 사망할 경우, 그의 결혼하지 않은 딸 또는 이혼한 딸이 사망한 부모의 연금을 결혼할 때까지 계속해서 수령할 수 있다. 이를 그리스에서는 ‘유령 연금생활자’라 부른다. 2011년 공식 발표는 유령 연금생활자 규모를 21,000명으로 밝히고 있으나 2012년 그리스 연금기관은 63,500명으로 그 규모를 재조정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연금 지급은 2012년 멈췄다. 이를 통해 4억5천만 유로, 한화로 약 5,600억 원의 공무원 연금 지출이 줄어들었다)

한편 OECD는 2012년 기준 그리스의 연금 지불액이 국내총생산의 13% 규모라고 밝히고 있다. 비교하자면 OECD 평균은 7.8%다. 한국은 2012년 기준 2.1%다. 그리스의 경우 2012년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지출 규모가 53.7%다. 사실상 그리스는 정부지출 중 약 25%를 연금 지불에 사용하고 있고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공무원 연금이다. 그리스는 기업뿐 아니라 공무원의 낙원이다.

극소수 이익 보고 대다수 손해 입는 시스템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는 2009년 영화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기득권의 구조화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유익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경제구조에 대한 통제권이 없는 대다수 사람이 손해를 입고 극소수가 이익을 보는 시스템이다.”

국제 금융자본과 국내 기득권의 결탁 그리고 국내 자본과 국내 기득권의 결탁이 그리스 경제 위기의 중심축이다. 특히 그리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보수정당은 국가 기관을 사적 기관으로 만들며 그리스 경제를 몰락으로 이끌었다.

[box type=”note”]이 글은 독일어 위키백과 ‘그리스 국가 채무 위기’ 항목과 여러 데이터를 함께 정리한 내용이다. (필자)[/box]

[box type=”info”]본문 서술 중 수치 계산에 착오가 있어 이를 정정했습니다. (편집자, 2015년 7월 11일 오후 7시 24분)

  • 원문: 그리스는 정부지출 중 약 50%를 연금 지불에 사용하고 있고 (후략)
  • 수정: 그리스는 정부지출 중 약 25%를 연금 지불에 사용하고 있고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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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결국 그리스의 문제는 3가지로 요약가능하죠.
    과세정책의 비효율성, 정부기관에의한 분식회계 그리고 국제자본권력의 위험성.

  2. 흔히 좌편향적인 시각의 기사, 글들에서 그리스 문제를 소수 엘리트, 부자와 국제 자본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논조는 참으로 불편하다. (이 기사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당장 이 글에서 나오듯이 그리스의 ‘공무원’ 집단은 무려 임금노동자의 20~25%이다. 다시 말해 임금노동자의 1/4~1/5이 가담한 사기극을 ‘소수’ 기득권층이 ‘대다수’ 서민을 물먹인 구도라고 보는게 정상인가? 오히려 엘리트고 서민이고 할 것 없이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사기 빚잔치에 뛰어들어 나눠먹기를 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사기극의 선두에 섰던 사람들은 파파디모스처럼 사민주의자를 자처하던 그리스판 ‘강남 좌파’들이었다. 그리스가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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