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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엄청난 평등자입니다.”
“It’s the great equalizer.”

“그것은 당신이 부자인지, 당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당신이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당신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2년 전쯤(2020. 3. 22.) 마돈나는 꽃잎이 흩뿌려진 고급 욕조에서 여유 있게 목욕하는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코로나19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많은 이들이 마돈나의 오만하고 잔인하며 철딱서니 없는 발언을 비판했습니다.

(거의) 2년 전 오늘, 꽃잎이 흩뿌려진 고급 욕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평등론’을 설파하신 마돈나. 마돈나의 철딱서니 없는 발언이 담긴 게시물이 많은 이들의 비판에 직면하자 마돈나는 자신의 게시물을 삭제됐다. (출처: 마돈나의 인스타그램)

바이러스는 모든 인간을 공격한다는 점에서는 얼핏 ‘평등’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작용에 있어 전적으로 생물학적이거나 병리학적인 바이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죠. 기저질환자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더 취약합니다. 노인들도 마찬가지죠.

병리학적 이유와는 별개로, 사회적 취약 계층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바이러스 공격에 ‘불평등’하게 노출됩니다. 자영업을 하는 ‘평범한 이웃‘을 생각해봅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그 무수히 많은 이웃은 스스로 자신을 위험한 환경에 밀어 넣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심에 있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시 외곽에 사는 이웃들은 어떨까요. ‘부동산 불평등’은 코로나19가 더 불평등하게 작동하도록 강제합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많은 잠재적 위험 환경에 자신을 스스로 노출시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가능하고, 안정적인 임금을 받는 (정규직) 직장인과 비교하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평범한 이웃들은 훨씬 더 코로나19에 취약하겠죠.

마돈나 망언으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코로나19의 깊고 어두운 터널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K-방역’을 자랑했던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더 처참합니다. 코로나19는 평등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더욱 코로나19를 겪는 모든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코로나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책은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오늘(2022. 3. 23.) 오전 11시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코로나19 대확산, 전향적 해법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독자에게, 정부 관계자에게 이들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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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대확산, 전향적 해법을 요구한다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

코로나19가 원인이다

정부는 1월 중순 오미크론이 코로나19 우세종이 됨에 따라 방역 정책의 방향을 7일 후 격리 해제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감염 7일 후에도 위·중증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은 작년 12월 말 격리 해제 기간을 20일로 발표했을 때부터 이미 예고되었다. 환자들은 코로나19 감염으로 폐에 염증이 차고, 숨이 가빠서 산소치료를 시작한다. 기관 삽관을 하고 그도 부족하면 기도를 절개하고, 에크모 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7일이 지나면 코로나19 감염병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7일이 경과하면 정부가 발표하는 위·중증 환자의 숫자에서 빠진다. 7일이 경과하여 사망하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의 진료기록에는 여전히 코로나19 감염증이 병명으로 적혀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이의 사망진단서에도 코로나19라는 단어가 적혀있는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코로나19 감염병은 아니라고 한다.

더 모욕적인 것은 이 고통에 대해 정부가 ‘기저질환 치료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답을 전해온 점이다. 우리는 기저질환 치료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치료받을 권리 보장을 요구한 것이다. 정부 입장이 무엇이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중환자실 환자들은 코로나19의 감염으로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코로나19가 원인이다.

위·중증 환자 중심의 방역체계, 위·중증 환자를 지우다

치명률이 낮고, 전파력이 높은 오미크론 유행으로 방역체계는 위·중증 환자에 대한 적극적 관리체계로 변했다. 3월 내내 정부 발표의 위·중증 환자 수는 약 1,000명을 오르내리고 있지만,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3월 22일 기준 1,104명). 하지만 위·중증환자가 사용 중인 병상 수는 3월1일 1,324개에서 3월 22일 1,914개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사망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위·중증 환자 수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로 위·중증 병상에서 치료받는 환자 수는 800명이 넘어서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병상을 비울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미 병상에서 밀려난 환자들의 수를 더하면 그 규모를 추산한 자료조차 찾기 어렵다.

이것이 위·중증 환자 중심의 방역체계의 실상이라면, 정부의 공적 책임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중증 환자의 숫자에서 이들을 지우고, 코로나19 사망자 숫자에서 사람들을 지우는 것이 위·중증 환자 중심의 방역체계는 아니다.

 

취약 집단이 가장 위험한 상태에 몰리고 있다

지난 2년간 우리가 깨달은 것은 코로나19 위기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의 취약성을 더욱 증가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감염병 대응은 취약한 집단의 취약성을 살피지 않고 있다. 보건당국은 고령자, 기저질환자가 감염에 취약하다고 하지만 정작 이들을 고려한 조치나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전체 환자 중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고령층이 이용하는 요양기관의 돌봄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내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늘고 있지만, 코로나19 치료제 공급이나 전담 병원 이송이 원활하지 않아 치료 사각지대에 놓였다.

질병관리청 방역대책본부는 21일 최근 5주간 요양원과 주야간보호센터 등 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총 410건 발생했다고 밝혔다. 요양시설 집단감염으로 사망자가 증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 확진도 급증해 업무는 가중되고 돌봄에는 공백이 생겼다. 보건당국은 지난 3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오미크론 정점 위기를 고위험군 보호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보건 시설, 약품을 비롯한 물품,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어떻게 차별없이 접근가능하게 할 것인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개인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책임 외면

일부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격리 해제 7일을 경과한 위·중증 환자들과 사망한 이들은 정부의 모든 공적 지원에서 배제된다. 위·중증 치료의 특성상 상당한 수준의 비급여 치료비가 발생하고, 기존의 건강보험체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사례도 많다.

격리 해제로 병상을 비울 것을 통보 받고, 전원과 전원을 거듭하면서 그 고통은 온전히 환자와 환자보호자에게 남겨진다. 전원은 곧바로 건강상태의 악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치명적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다. 경제적 부담이 커서 재활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

7일 후 예상되는 재난적 치료비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명치료를 처음부터 거부하는 보호자들도 늘고 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황망한 마음에도 코로나19 감염이 아니라는 정부의 답을 듣고 망연자실하는 유가족들의 상당수는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이 고통을 경험하는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지만, 7일을 경과했으므로, 더 이상 감염병예방법으로 지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정부 논리다. 감염병예방법은 통치와 면피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고, 법은 치료를 국민의 권리로 보장한다. 정부가 책임을 피하고 미루는 동안 그 고통은 개인들에게 오롯이 내맡겨진다.

전향적인 해법을 제시해야한다

전체 확진자 규모가 커질수록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도 늘어난다. 전체 환자 중 적은 비율이라고 하더라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생명의 위협을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고, 지금도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들이 있다. 더 이상 위기에 방치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위·중증 환자를 향해 격리 해제 기간까지만 감염병 상태라는 정부의 논리는 재고되어야 한다. 격리 해제 이후 건강보험체계 안에서 치료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재고되어야한다. 한국의 건강보험체계가 보편적 건강보장의 가치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 잘 알려져 있고, 코로나19 대유행은 전례 없던 공중보건 재난 상황이다. 그럼에도 건강보험이라는 기존의 틀 안에서 대책을 찾거나, 지레 대책마련을 포기하고 마는 정부의 자세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할 뿐이다. 코로나19 격리해제 기간과 무관하게 위·중증 환자의 안정적 치료는 보장되어야 한다.

건강보험이 안되면, 별도의 예산지원을 하거나 필요하면 특별법도 고려해야한다. 단순하게 치료비 지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받을 권리의 보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재택치료 중이거나 요양시설의 고위험군 환자들의 의료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빠르게 마련되어야 한다. 약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서 생명을 잃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특히 요양시설의 환자와 돌봄노동자들의 집단감염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돌봄노동자의 과로와 돌봄공백은 노동자와 환자 모두의 건강을 위협한다. 더불어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 돌봄종사자들에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또한, 코로나19 격리 해제 기간과 무관하게 망자의 존엄은 훼손되지 않아야 하고, 유가족들의 애도와 기억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장례지침을 선장례 후화장으로 개정하는데 2년이 걸렸지만, 지금 현장에서 이 지침은 무용지물이다. 코로나19 초기 컨테이너 병상을 긴급하게 늘리는 정도의 노력을 장례 현장을 개선하는데 투입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람 중심의 관점으로 방역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변화하는 질병의 특성을 반영하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에 맞추어 방역대응 정책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목표는 사람이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와 망자와 유가족 모두의 고통을 경감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많은 공무원과 의료진들이 피땀 흘리며 버텨온 방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정부의 공적 책무는 의료자원의 한계를 넘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다는 수치의 홍보활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 환자들의 고통을 파악하고,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정부의 책무다. 환자가 사망하면, 숫자 1이 줄어드는 것으로 안도하는 방역은 잘못이다.

지금 이 시기 가장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와 가족, 사망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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