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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주기 싫고, 일은 시키고 싶을 때 사용자는 어떻게 할까요? 가령, 12시간을 계약하고 6시간만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 6시간은 휴게시간을 주는 것이죠. 단, 휴게시간에도 노동자에게 사무실을 지키게 하고 갑작스러운 업무가 생기면 적당히 융통성 있게 처리하는 센스도 발휘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이면 휴게시간 동안에는 돈을 주지 않으면서도 노동자를 적당히 착취할 수 있어요. 초과임금을 줘야 하는 야간에 휴게시간을 주면 더 큰 비용 절감이 되구요.
사용자의 이런 착취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최근 압구정 현대아파트 전현직 경비노동자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휴게시간 역시 노동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다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법원이 경비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은영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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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한 것에 대하여 이는 근로시간에 해당하므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면서 제기한 임금체불 진정(서울고용노동부 강남지청) 사건을 시작한 지 4년여만인 2021년 8월, 대법원은 원고 경비노동자들의 청구를 대부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이로써 당사자 간의 법적 공방은 종결되었다.
-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09.19. 선고 2018가합512483
- 2심 서울고등법원 2021. 03. 26. 선고 2019나2044676
- 3심 대법원 2021. 03. 26.선고 2021다225845
아파트 경비노동자(원고)들은 격일제 근무(2개의 조가 24시간씩 일하고 맞교대 하는 방식) 중 6시간으로 설정된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사실상 근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하여 1심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나 2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들이 휴게시간에 근로를 제공한 사실을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대부분 인정하였고, 대법원도 2심 판결과 동일한 사유로 원고 청구를 인정하였다.
원고들의 동일한 청구에 대하여 1심과 2심은 왜 다른 판단을 하게 되었을까? 2심은 어떤 이유로 경비노동자들이 휴게시간 없이 일을 했다고 인정했을까. 왜 경비노동자들은 제대로된 휴게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여러 의문의 답을 찾아가면서 경비노동자의 노동 조건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허물어진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경계
이 사건 경비노동자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아파트의 경비노동자가 격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격일제 근무는 장시간의 야간노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체 피로도가 높은 근무 형태로 일반사업장에서는 거의 이러한 교대근무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경비노동자 직군에서 독특하게 남아있는 교대근무 형태다.
특히 경비노동의 경우 근무시간 중에 장시간 야간근로가 포함될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장, 야간근로수당이 지급되게 되면 임금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근로시간 중간에 장시간의 휴게시간을 포함시켜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장시간 사실상 사업장에 체류하면서도 낮은 임금 수준에 머문다.
그런데 만약 근무시간 도중 부여된 장시간의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심지어 업무를 수행했다면 그 노동자는 약속한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노동을 제공한 것이고 사용자는 그만큼 초과이익을 얻게 된다. 이 사건 소송에 참여한 경비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시간 사이에 휴게시간에 진짜 쉬었는지, 일을 했는지가 소송의 쟁점이었다.
근로기준법에서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휴게시간이 근로시간 중간에 주어지기 때문에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근로시간과 혼재될 가능성이 높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업무, 사업장 특성 등으로 인하여 휴게시간과 근무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경우 휴게시간, 근로시간에 관하여 법적 판단이 필요한데, 원고들의 경우도 휴게시간과 근로시간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쉬지 못한 휴게시간의 흔적들
그러나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었는지, 혹은 쉬지 못했는지를 소송에서 증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일했다는 증거가 남아있어야 하고 누군가 실제 목격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증언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시간을 기록할 수 없고 소송에서 그 시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고 실제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일한 사실의 흔적들을 최대한 모아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 사건 소송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했다는 흔적은 다행히도 많이 남아있었다(그 흔적을 잘 찾아내고 정리한 변호사들의 부단히 노력의 흔적이 판결문에 엿보인다). 경비노동자들이 24시간을 어떻게, 어떤 업무를 하면서 지냈는지에 답이 있었다.
1. 휴게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아무도 모름!
사용자는 원고들의 휴게시간이 언제인지 알려준 바가 없었다. 원고들은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근무 후 24시간 쉬는 격일제 교대근무방식으로 근무하면서 도중에 총 6시간의 휴게시간을 갖기로 되어 있었지만, 도대체 언제 어떻게 쉴 수 있는지에 대한 업무지시를 받은 바 없고, 입주민들 역시 어느 시간이 경비노동자의 휴게시간인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할 때쯤인 2017년에 이르러서야 구체적인 휴게시간이 특정될 정도로 그 전에는 휴게시간은 그저 근로계약서 속에만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2. 도저히 쉴 수 없는 과도한 업무량
원고들이 담당한 업무를 볼 때 도저히 휴게시간에 쉴 수 없는 상태였다. 전체 아파트 규모와 경비노동자들 인원을 고려할 때 동별 경비초소에 배치된 한 명의 경비원은 평균 약 71세대의 각종 민원에 대응해야 했다. 경비노동자들이 담당하는 업무는 경비업무뿐만 아니었다.
- 단지 안팎 순찰
- 입주민 민원을 관리사무소에 접수하는 일
- 주차관리 및 대행
- 택배보관 및 인계
- 동주변 청소
-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 아파트 시설관리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특히 입주민들의 민원 처리 업무와 주차대행업무는 24시간 언제든지 해야 하는 업무였고, 실제 24시간 언제든지 이루어진 업무였다. 특히 이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이 없는 관계로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하여 경비노동자들이 입주민의 차량 열쇠를 받아 주차 대행 업무까지 하였는데 입주민들의 주차, 차량이동 업무는 업무의 특성상 24시간 수시로 발생하고 특히 저녁·야간시간대에 간헐적·돌발적 요청에 대비하기 위해 경비 초소에 상시적으로 대기할 수밖에 없는 근무환경이었던 점이 인정되었다.
3. 경비일지와 경비감독일지
경비노동자들이 식사시간은 물론이고 야간근무시간에도 빈번하게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한 사실이 경비일지 및 경비감독일지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4. 주차 대행에 관한 업무지시와 관리·감독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노동자의 주차 대행 서비스를 경비노동자의 업무임을 전제로 한 여러 업무지시 사실들이 확인되었고, 결재라인을 통하여 관리·감독이 이루어진 확인할 수 있었다.
5. 휴게공간 부재, 밥먹다가도 민원에 대응
경비노동자가 제대로 쉴 수 있는 독립된 휴게공간은 없었고, 경비초소에 24시간 계속 머무르면서 식사를 하거나 잠깐씩 잠을 사고, 휴게시간 중에도 입주민들의 돌발성 민원(주차대행, 음식배달 및 방문인 확인, 관리사무소 민원 접수 등)이 발생할 경우 대응해야 했다.
이러한 여러 사실이 존재함에도 1심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업무상 지휘·감독을 하였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하였으나 2심 법원은 달랐다. 원고 경비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근무조건과 환경을 볼 때 원고들은 24시간 비좁은 초소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뒤 휴게시간에 근로한 사실을 인정했다.
제대로 일할 권리, 제대로 쉴 권리
원고 경비노동자들은 결국 몇 년에 걸친 소송 결과 휴게시간으로 위장된 근로시간을 인정받았다. 이 소송 결과를 통하여 경비노동자들이 그동안 제대로 된 휴게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됐다.
사실 경비노동자가 그동안 제대로 된 휴게시간 보장받지 못했음에도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비노동자의 고용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거나 1년짜리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안전한 고용형태로 인하여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도 숨어있다. 노동자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휴게시간을 경비노동자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서 경비노동자의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이 어떻게 변화될 필요가 있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1년 아파트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지만, 그 아파트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동을 제공하는 경비노동자의 노동권도 함께 좋아지는지는 모르겠다. 2014년 입주민의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경비노동자 사건에 이어 2019년 주민 갑질로 숨진 경비노동자 사건은 여전히 열악한 경비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비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논의와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9. 10. 서울시와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고용 실태와 함께 여러 가지 제안을 한 바 있다. 그 제안은 다음과 같다.
- 단기근로계약 근절을 위한 조치
- 휴게시간 보장을 위한 규정 마련
- 입주민 갑질 방지를 위한 직장내 괴롭힘 금지 조항 확대 적용
- 경비원 업무 범위 명확화
- 교대제 개선
- 지자체 지원
또한, 서울시는 경비노동자의 장시간 근무교대제,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컨설팅 사업도 시작하였다. 최근 격일제 근무로 인한 경비노동자의 과로사 방지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릴 정도로 경비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시간을 문제삼고 있다.
그동안 실질적으로 각종 아파트 시설관리 업무를 담당했으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경비라는 감시단속적 업무만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기존 업무 내용에 대한 법률적 정비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와 대책 마련이 더 필요하다
변화를 모색하는 주체들은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무엇보다 경비노동자의 노동 조건과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였으면 한다. 이번 판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