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도 짙은 악연을 이어 왔던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결국 건강 문제로 사임할 예정이다. 한 차례의 실패 후 ‘아베노믹스’ 로 화려하게 부활한 그는 전후 내각을 통틀어 최장수 총리로 장기집권하며 일본을 진두지휘 해 왔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우경화와 함께 대한민국과의 충돌 역시 이전보다 상당히 잦아졌다는 특징을 지닌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아베는 상당히 미운 사람이지만, 아베 시대에 대한 평가는 차차 진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향후 이웃나라 일본의 정치경제적 향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차근차근 알아 보도록 하자.
# 누가 ‘포스트 아베’ 가 될 것인가?
현재 아베의 후임 총리로 거론되는 사람은 총 여섯 명 정도이다. 그 여섯 명의 간략한 프로파일은 아래와 같다.
- 아소 다로(79세): 재무상, 친 아베 성향
- 기시다 후미오(63세): 자민당 정조회장, 친 아베 성향
- 스가 요시히데(71세): 관방장관, 친 아베 성향
- 이시바 시게루(63세): 자민당 전 간사장, 반 아베 성향
- 고노 다로(57세): 방위상, 중립
- (깍두기)고이즈미 신지로(39세): 환경상, 알 수 없음
현실적으로 아베 총리 사임 이후에도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은 없다. 일본의 야당들이 모두 지리멸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자민당의 수장이 교체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여론조사상 가장 지지율이 높은 것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지만, 이시바가 실제로 당장 후임 총리가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후임 총리를 선출함에 있어 당 대회를 통하지 않도록 아베가 손을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의 당 총재는 전임 총재 유고시 원칙적으로 당칙 제6조 제1항에 의거 당 소속 의원과 당원 전체가 참여하는 당 대회를 통해 선출된다. 그러나 당칙의 같은 조 제2항에서는 당 총재 선출이 상당히 긴급할 경우 양원, 즉 참의원(상원)과 중의원(하원) 및 각 도도부현 연합 대표자들의 투표만으로 당 총재를 선출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이 경우 자민당 내 계파가 중요해진다. 사실상 의원만으로 총재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현재 자민당 내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세이와 정책연구회)는 이미 총리인 아베 신조를 배출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총재를 다시 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유리한 것은 의석 56석을 점유하고 있는 아소파(지공회)의 수장 아소 다로다. 이시바 시게루의 경우 지지율은 높지만, 그의 계파인 수월회가 고작 의석 19석짜리 미니 계파이며 굉지회(47석), 헤이세이 연구회(47석) 등 타 계파와의 연합도 쉽지 않다.[footnote]굉지회 역시 총리 후보인 기시다 후미오의 계파이며, 헤이세이 연구회(타케시타파)는 친 아베 성향이 짙기 때문이다.[/footnote]
때문에 아베는 자신의 반대파인 이시다파(수월회)를 견제하기 위해 코로나 19 정국을 핑계삼아 양원 총회로 총재를 선출하려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아소 다로 또는 스가 요시히데가 유력해진다. 스가의 경우 계파색이 옅지만, 현재 아베가 추진하고 있는 관광 부흥 정책을 스가가 간판으로 밀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다소 고령인 편인 아소 다로가 스가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확률도 높다고 본다.
즉, 다가오는 2021년 제49회 중의원 선거에서 본 게임을 치를 4년짜리 총리가 선출될 것이고, 이번 후임의 경우 롱릴리프 성격을 지니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총리 교체만으로 아래에 설명할 일본의 정책 변화를 확실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 일본 정책 및 대(對)한국 관계 전망
후임 총리가 사실상 친 아베파 후보로 결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사실상 아베의 정책들은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재의 총리는 친 아베파이기는 하나, 일본 자유민주당 계파들의 이합집산은 꽤나 자주 일어나는 편이며 아베 총리는 건강 관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므로 상왕 노릇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내년의 중의원 총선 이후로 본 게임을 맡아 일본을 운영해 나갈 총리는 결국 이시바·기시다·고노 이 셋 중 한 명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이 세 사람의 성향이 될 것이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5″]이시바 시게루[/dropcap]의 경우 대표적인 반 아베파인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베의 정책들을 상당수 폐기하거나 수정할 전망이다. 특히 이시바의 경우 중앙은행의 완화적 정책 및 재정 확대를 일관되게 반대해 왔기 때문에, 이시바가 총리가 될 경우 현재의 아베노믹스 즉 엔화 약세 기조에 큰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이시바의 경우 평화헌법 개정을 찬성하지만 상당히 온건한 개헌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시바의 집권 시 한일관계의 경색은 다소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 역시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시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의 납득을 얻을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특히 그는 중의원 시기에 김일성 조문까지 행했던 이력이 있는지라, 북일관계의 전환 역시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시바 역시 강제징용 문제에 관해서는 한·일 기본조약으로 종료됐다는 입장도 고수하고 있어 현재의 외교적 갈등이 완전히 해결될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5″]고노 다로[/dropcap]가 집권할 경우 양국간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다로의 경우 아시다시피 외무상 시절부터 방위상 때까지 지속적인 대(對)한국 강경노선을 유지해 왔으며, 한일관계 출구전략의 액션 하나로 고노의 경질이 거론돼 왔을 만큼 그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그의 경제 정책은 현재 분명하지 않으나 아베의 정책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때문에 경제 측면에서 큰 변화는 없을 듯 하다.
[dropcap font=”arial” fontsize=”25″]기시다 후미오[/dropcap]의 경우 아베와 가장 가까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탓에, 본인 계파인 굉지회에 이어 호소다파의 지지까지 얻어 총리가 될 가능성도 높은 인물이다. 다만 기시다의 경우 스스로는 당내 온건파를 자처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강경 개헌파이며, 친아베 노선을 유지하고 있으니만큼 기시다의 총리 선출 시에도 이시바만큼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시다의 경우 대중적 지지기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총리 교체는 당장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아베가 거의 9년 가까이 집권하며 그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길게 늘어뜨려 놓았으며 모든 후보들이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이시바가 선출될 경우 한일관계는 다소 그 난맥상이 풀릴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경제적으로는 현재 막대한 부채로 인해 공격적인 재정 편성이 어려워진 일본의 입장에서, 아베노믹스가 계속 유지된다 한들 어떻게 유효한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이 분야에서도 확고한 철학이 있는 이시바가 집권할 경우 아베의 정책들은 수정되겠지만 그것이 일본 경제의 재성장을 가져올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본 경제는 그 부채 이외에도 상당히 다양한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