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속세의 질문을 던졌으나 선계의 답이 왔습니다.

이원흥 카피라이터(28년차 카피라이터, 현 농심기획 대표)에게 카피와 카피라이팅, 카피라이터에 대해 물었습니다. 조금은 솔직하고 현실적인 말씀을 듣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물론 작가님이 솔직하지 않은 답을 주신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덕이 높은 선승께서 답을 하신 것처럼 곰곰히 고민하고 따져야 할게 많은 답을 주셨습니다.

이제 막 출가를 한 어린 스님이 “스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고, 도를 닦는건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큰 스님이 딱 한마디 하십니다. “머리나 깍아라.” 딱 그런 느낌입니다. 어린 스님은 평생을 이고 가야 할 갈 화두를 큰 스님으로부터 받는 순간입니다. 자, 이제 속세의 질문에 대한 선계의 답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농심 새우탕 옆에 카피라이터계의 큰 스님 이원흥 작가님입니다. (머리는 안 깍으셨습니다. ㅎㅎ)

이원흥
이원흥 농심기획 대표

 

[divide style=”2″]

= 카피란 무엇인가요.

카피는 미련한 제가 어쩌면 가장 잘 할 수도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기도 하구요, 계산적인 태도를 배우게 된 행복의 원천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카피에서 배운 계산적인 태도 덕분에 밋밋한 일상이라는 삶의 시간 위에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점을 또렷하게 찍어가며 살 수 있게 되었거든요.
= 가장 큰 영광을 가져다 준 카피는 무엇인가요.

노래 한 곡이 반짝 히트하고 그걸로 가수 인생이 끝인 경우를 원 히트 원더라고 합니다. 카피라이터의 세계도 어쩌면 비슷합니다. 한두 개 반짝 히트 카피를 쓴 사람보다는, 어떤 프로젝트에서도 큰 프레임을 잡을 줄 알고 선명한 방향성의 중심을 스스로 잡으며 그 안 에서 여러 다른 구질의 카피 아이디어를 스펙트럼 넓게 펼칠 줄 아는 카피라이터가 롱런합니다.

= 국내외 여러 번 광고 관련 수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들로 수상을 하셨는지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을 받았던 사례들보다,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어떤 상을 받은 것보다 보람있었던 프로젝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라면 하정우 편인데요, 기교나 기법적 새로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카메라 앵글도 거의 고정이예요. 라면 씨즐 컷 하나 없이, 맛있다는 멘트 한번 없이, 청춘에 대한 카피만으로 15초 온에어시켰더랬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구요. 신라면이 아무리 맛있어도 1분만에 됩니까? 라면이 가장 맛있는 4분30초, 누구에게나 4분30초의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같은. 그런 광고 한번도 없었습니다. (참고로 이원흥 작가는 칸 국제 광고제와 2013년 한국광고대상을 수상했습니다.)

YouTube 동영상
YouTube 동영상

= 반대로 실패한 카피는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리고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실패는 무지하게 많습니다. 실패의 이유도 무지하게 많습니다.

= 언제 카피라이터의 일이 정말 나의 일, 내가 평생을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셨나요.

그런 결심의 날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스타일이라서요… 예를 들면 오늘은 좋은 카피를 써서 뿌듯하고, 그 다음날엔 카피를 제대로 못 써서 왜 그랬나 따져보고, 그래서 그 다음날엔 적어도 그 전날보다는 나아진 것 같고, 그런 식이죠. 하루가 쌓여 인생이 된다,고 믿는 편입니다.

= 카피를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가장 필요한 것 한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계산적인 태도, 다른 말로 하면 전략적인 사고의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관련 전공(광고홍보학) 공부 외에 비전공자라면 어떤 것들을 공부하는게 좋나요.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공부보다는 좋은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다 다르고 또 사람은 다 같다는 걸 끊임없이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공부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 카피라이터로 취업을 하고 싶다면 광고 회사의 공채를 소식을 챙기는게 가장 좋은 건가요.

최근 들어선 큰 광고회사도 워낙 채용의 문이 좁습니다. SNS 등을 활용하여 인턴이나 채용의 소식을 놓치지 않게 챙기시는 게 좋겠구요, 작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회사마다 다르고, 광고 성격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한 명의 카피라이터가 일년에 몇 개의 카피를 쓰나요.

몇 개의 카피를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밤새 백개의 카피를 썼다 한들 한 줌의 쓰레기일 수도 있고, 일 분 만에 던진 한 문장이 프로젝트 전체를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 남자 카피라이터, 여자 카피라이터 누가 더 많나요 그리고 성별에 따른 카피 특징의 차이 같은게 있나요.

남녀의 차이보다는 개인의 차이가 더 크고 중요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강점을 잘 아느냐의 차이가 중요하더군요.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좋은 카피를 쓰는 습관 l 이원흥 저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285570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좋은 카피를 쓰는 습관 l 이원흥 저 | 좋은습관연구소 | 2020년

= 카피라이터에게 프레젠테이션은 절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완벽한 프레제테이션이란 어떤 프레젠테이션인가요. 그리고 프레젠터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하나요.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압도하고 장악했거나, “내가 생각한 게 바로 저런 거지!”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거나. 그러기 위해 프레젠터가 가장 중요하게 챙겨야 할 건 설득력 아닐까요?

= 회의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책에서 자주 언급했습니다. 회의실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와 반드시 해야 할 것 한 가지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회의실에서 절대 하지 말야야 할 건 냉소적 태도와 무반응이고, 반드시 해야 할 건 적극적 리액션입니다.

= 카피라이터도 이직이 잦은 직업 같습니다. 곧, 이직을 앞둔 카피라이터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이직을 앞 둔 카피라이터에겐 이런 말을 당부 삼아 해주고 싶군요. “당신이 있는 곳의 문패를 당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지 마시길! 제일 큰 광고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당신이 제일 가는 카피라이터라는 의미는 아니며, 20위 권의 광고회사에 다니는 카피라이터라고 해서 당신이 20위 권의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 카피라이터에게 이직은 필수인가요. 커리어 관리상 필요한가요.

이직이 좋다 나쁘다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 그 회사를 ‘도망쳐야’ 하는지에 대한 제 생각은 책에 썼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일이 되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상황.

서류가방

= 광고 업계에는 수많은 업무 파트가 있는데, 유독 카피라이터들이 책을 쓰고 책을 내고, 직장인이 아닌 에세이스트로 인기를 얻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광고 카피를 위한 관점의 훈련은 결국 세상과 삶에 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되지 싶습니다.

= 카피라이터는 개인 브랜딩을 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제는 필요한 일이고,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인가요.

브랜딩은 그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드는 모든 일을 의미할 겁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 사람들은 히트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만 기억합니다. 그분들만 언론이나 미디어에 노출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런 면에서 다른 파트의 분들이 카피라이터에 대해 시기심을 가지거나 부러움 같은 것을 가지는 시선이 있나요.

누구나 자기에게 없는 걸 부러워 하는 게 인간이니까요. 카피라이터는 또 자기에게 없는 걸 가진 아트디렉터나 감독이나 전략의 플래너나 혹은 광고 일을 하지 않는 자를 부러워하지 않을까요.

= 대표 이사로 계시니 수많은 카피라이터를 만나보셨을텐데요. 카피를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뭔가요.

책에도 썼지만, 겸손한 열정과 집요한 긍정을 들고 싶습니다. 낙관은 태도이기도 하지만 능력이기도 하거든요.

= 카피라이터도 젊은 직종인 것 같습니다. 마흔이 넘고 쉰이 넘어가는 카피라이터도 있나요.

쉰이 넘은 카피라이터도 있냐고 물으셨나요? 제 나이를 몇이라 보셨는지요? (웃음)

= 독서량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한달에 몇 권 정도 책을 보시나요.

전에는 탐욕스럽게 읽던 적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보는 책, 회사에서 보는 책, 출퇴근하며 보는 책, 다 따로 동시에 진도를 나가기도 했지요. 최근엔 눈이 힘들어서 그렇게는 독서 못 하구요. 책 역시 얼마나 읽었느냐 보다 얼마나 주체적으로 읽었느냐 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나에게 그 책의 무엇이 울림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죠.

책

= 좋은 카피를 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 질문에는 항상 ‘산책’이라고 대답합니다.

= 책을 읽은 분들에게 그 다음 책으로 바로 이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을까요.

딱히 맥락은 없습니다만… [어린 왕자]를 한번 다시, 또는 처음으로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그냥 제가 [어린 왕자]를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원흥 대표의 책을 읽은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어떤 행동은 서로에게 신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 제 책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divide style=”2″]

후기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카피라이터라고 하면 무슨 무슨 히트 카피를 쓴 사람으로만 기억하지만, 업계에서 진짜 인정해주는 카피라이터는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이해하고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카피를 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더 쳐줍니다. 완벽한 카피를 불쑥 내놓는 사람보다는 가능성이 높은 여러 방향의 카피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낫죠.

그런데 카피에서 배운 계산적인 태도는 뭘 뜻하는 걸까요? 그것은 카피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카피란 것은 궁극적으로 누군가의 지갑을 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를 훌륭히 표현하기 위해선 고객의 속 마음까지 읽어내는 계산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될 수도 있고, 타인에 비춰 내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태도는 바로 작은 것 하나에서도 감동과 인상을 얻을 수 있는 시선을 가져다 줍니다.

이 책을 읽고 떠올린 작은 생각이 어떤 행동을 유발한다면 이왕이면 그 생각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행동이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지만 자기만을 바라보진 않습니다. 오히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바로 ‘우리’ 입니다. 서로에게 신이 되는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사이입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