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규정입니다. 법률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누구든 법이라는 기준을 통해 자신의 평등권을 침해받지 않고 내가 혹시 책임질 일이 생겼을 때도, 혹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봤을 때도 공정하게 판단을 받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누구나 평등이라는 원칙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은 장애인
하지만 ‘대한민국은 과연 법 앞에 평등한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장애가 있는 국민에게 법은 별로 평등하지 않습니다. 2019년 1월 특수학교에서 교사들이 장애 학생을 상대로 12차례나 폭행하거나 폭행을 방조한 행위에 대해서 검찰이 교사 12명 중 8명에 대해서 불기소 처분을 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해당 부장검사는 “장애 학생의 도전행동 때문에 주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교사들이 다른 훈육방법을 찾기 어려웠다”라고 결정에 대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장애 때문에 어려움이 있으면 폭행을 허용할 수 있다는 당시 검사의 태도는 비단 그 사람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여전히 법원도 장애인이 거주 시설이나 특수학교 또는 관련 기관 등에서 폭행을 당했을 때 장애인의 예상치 못한 행동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태도 속에 폭행을 묵인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2020년이 된 오늘까지도 장애인에 대한 폭행은 오히려 법의 방관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장애가 있는 여성이 비장애인 남성과 이혼을 할 경우 비장애인과는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많은 여성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혼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혼소송 진행 시 결혼 기간이 길 경우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도는 부부가 모두 동일하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 남편이 결혼 기간 부인을 보살폈다고 전제하면서 남편의 기여도를 더 높게 판단합니다.
비단 돈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자녀의 연령이 어릴 경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엄마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이 보편적인 법원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장애가 있는 경우 법원은 장애가 있는 엄마는 아이를 양육할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심지어 몇 년 전 상습적인 가정폭력으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비장애인 남성에게 엄마가 중증장애인이라 아이를 키우기 어려우니 아빠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집행유예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기왕증’
이렇게 사회 전반의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고스란히 법정에서의 판단으로 이어지면서 장애인은 법 앞에서조차 끊임없이 차별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이에 지난 5월 14일 항소가 기각된 ‘장애인의 교통사고 사망 사건’에 대한 재판은 이러한 현재 법원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장애인차별상담소에서 일한 10여 년 동안 보험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기왕증’입니다. 10여 년 전 처음 보험 관련 사건에서 듣게 된 ‘기왕증’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의 보상문제에 있어서 항상 맨 앞에 등장하는 말입니다. 기왕증은 이미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으로 기존에 이미 가지고 있었던 질병이나 장해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험 관련 사건의 보상문제에 있어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의 경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판단 기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판단 기준으로 보상 관련 사건들에서 매우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하는 기왕증이 장애인과 관련될 경우 장애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작용하면서 별다른 검토와 판단 없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저 휠체어나 목발 등 보장구를 사용하는 경우, 시각 장애인이 다리를 다친 경우, 청각 장애인이 손을 다친 경우에도 기존의 장애와 현재 상황이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도 모두 기왕증이 있다고 판단하여 보상의 기준을 다르게 가져가는 것입니다.
판사님, 장애인의 죽음은 가족에게 덜 고통스럽습니까?
이번 사건도 운전자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고 휠체어를 사용하여 이동하고 있던 장애인은 그저 길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나 예상하기 어려운 교통사고 상황에서 지체 장애가 있어서 휠체어라는 보장구를 사용했을 뿐인데, 지체 장애와 이 사고의 발생으로 인한 죽음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위자료는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입니다. 그런데 이미 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과 그 가족이 어떤 부분에서 비장애인보다 덜 고통스러웠을 것으로 판단한 것인지 재판부에 묻고 싶습니다. 혹은 이미 휠체어를 사용할 정도로 중증장애인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었을 테니 이런 급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해도 별로 놀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요?
가장 공정해야 하는 법원에서 자신들이 정한 기준(법원의 사망 위자료 기준 금액)을 유독 장애인에게만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행위입니다. 또한, 이렇게 사회적 판단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법원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법적 판단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관련한 행위 전반에 있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더욱 고착시키게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단순히 재판 과정에서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보험회사들은 장애인의 보상과 관련한 사안들에 대해서 더욱더 당당히 기왕장해를 들먹이게 될 것입니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기왕장해를 이유로 위자료를 반만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은 이후 장애인이 사고를 당했을 때 보상을 제대로 받기 매우 어려운 근거가 될 것이고, 결국 장애인은 법원도 외면하는 현실 앞에서 사고의 상처와 함께 누구에게나 평등한 판결을 내려달라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고, 장애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법 앞에서 오히려 더 좌절하지 않도록 이제는 법원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빨리 걷어내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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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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