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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레이마니 암살, 그 다섯 가지 함의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인 쿠드스군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사령관이 지난 3일(현지 시각)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암살당한 지 나흘이 지났다. 주말 간 해외 주둔 및 거주 미국인에 대한 산발적인 공격이 이어졌지만, 우려했던 미국-이란 간 전면전의 시그널은 아직까지 표출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중동 정세를 통째로 흔들 많은 동인을 가지고 있으며,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수뇌부의 의사결정 체계에 내포된 총체적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거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년 11월3월 11일-2020년 1월 3일, 향년 62세, 사진은 2013년 당시 모습, 출처: Tasnim News Agency, CC BY 2.0)

거셈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1957년 11월3월 11일-2020년 1월 3일, 향년 62세, 사진은 2013년 당시 모습, 출처: Tasnim News Agency, CC BY 2.0)

#1. 펜타곤의 오판: 배수진을 쳤지만 물귀신이 되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솔레이마니 암살은 이미 펜타곤이 지난 12월 28일경 트럼프에게 제공한 여러 가지 ‘옵션’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라크 내부에서 계속되는 이란의 세력 확대 및 미국에 대한 공격은 명백히 솔레이마니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트럼프는 최초에는 솔레이마니에 대한 암살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펜타곤이 과거부터 자주 써먹던 ‘배수진’ 전략이었다고 전해진다.

펜타곤의 배수진 전략은, 미국에 대한 도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의 문제에 있어, 다소 무디지만 그 파급효과가 크지 않은 대안 하나와 화끈하지만 상당히 극단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안 하나를 동시에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들은 대개 큰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는 쪽을 선호하고, 결국 펜타곤이 의도한 대로 위험 수위를 조절해 가며 미국의 적에 대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역시 처음에는 솔레이마니 암살 대신 이란이 배후인 것으로 의심되는 시리아 민병대에 대한 공격을 선택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 것은 며칠 뒤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이 느닷없이 공격받게 되면서였다. 트럼프는 펜타곤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앞서 제시했던 대안 중 ‘배수진’ 을 망설임없이 선택했고, 이를 지체없이 실행에 옮겨 버렸다. 미 의회의 동의도 없이 말이다. 트럼프가 처음부터 솔레이마니를 저세상으로 보낼 생각은 아니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원래 암살할 생각은 없었다. (출처: Gage Skidmore, "Donald Trump", CC BY SA https://flic.kr/p/9hKqAn)

솔레이마니 암살은 펜타곤이 트럼프에게 제안한 여러 옵션 중 하나였고,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트럼프 역시 처음에는 이를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트럼프는 저질러 버렸다. (출처: Gage Skidmore, “Donald Trump”, CC BY SA)

#2. 펜타곤은 왜 물을 먹었는가: 망가진 NSC

미국의 많은 전문가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많은 극단적인 결정을 그나마 막아 왔던 펜타곤의 배수진 전략이 실패한 이유로 백악관 NSC(국가안보회의)가 상당히 망가졌음을 이유로 들고 있다. 미국의 국방부 장관은 펜타곤의 수장이지만, NSC 내에서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때문에 트럼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안보보좌관 등 여타 정규·필수 참가자들이 이를 제지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경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경질, H.R. 맥매스터 안보보좌관의 경질 등을 통해 트럼프와 조금이라도 대립각을 세웠던 각료들이 모조리 트위터(…) 등을 통해 하루아침에 해고돼 버린 영향으로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특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경우 우리나라에는 ‘매드독(Mad Dog)’ 이라는 별명으로 마치 대단히 호전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의 그는 무력 사용에 신중한 온건파였다.

특히 매티스 국방장관의 경질은 중동 지역에 있어 필연적인 역량의 공백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매티스 장군이 과거 미 중부군 사령부의 책임자이자 걸프전과 아프간전, 이라크 전쟁 등을 모두 두루 겪은 베테랑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매티스 장관의 뒤를 이은 마크 에스퍼 현 국방장관도 과거 걸프전 참전 경력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유럽에서만 오래 근무했으며, 최종 경력은 방산업체 레이시온의 임원이라 현장 감각이 뒤떨어진다.

사실 제임스 매티스 장관이 트럼프의 미움을 산 이유물고문의 부활에 대한 반대(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및 예정대로 이뤄진 시리아 철군이었다는 점을 볼 때, 트럼프 정부의 안보 정책은 현재 총체적 난국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대통령 본인의 감정상태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전 미 국방장관(제26대, 출처: Monica King, 2017년 미군 공식 사진, 퍼블릭 도메인)

제임스 매티스(James N. Mattis) 제26대 미 국방부 장관(임기:  2017년 1월 20일~2018년 12월 31일)은 ‘매드독’이라는 별명과는 달리 무력 사용에 신중한 온건파였다. (출처: 미군 포토, Monica King, 퍼블릭 도메인)

#3. 단결하는 중동: 2003년의 재림이 되나

솔레이마니의 암살 이후 또 하나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사실은 이란과 이라크에서 들끓고 있던 반정부 시위가 사실상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라크에서는 반정부시위뿐만 아니라 반이란 시위도 자주 벌어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미로 전환되었다. 솔레이마니 암살이 가져온 결과다. 벌건 대낮에 자국의 장성이 살해당한 이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외국이 자국 수도에서 마음대로 드론을 사용하는 꼴을 본 이라크 역시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이란과 이라크에서 불거지는 반미 감정은 역으로 솔레이마니라는 사람이 이슬람권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미국의 암살이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여겨진다. 한편 이라크 정부 역시 자국의 수도에서 백주대낮에 이웃나라 군 장성을 암살한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상당히 거세며, 이라크 의회는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이는 솔레이마니가 단순히 이란의 장군으로 미국과 맞섰다는 점에서만 발로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기본적으로 이란과 이라크와 미국은 서로 친하지는 않을지라도 ISIS의 위협에 맞서 몇 년을 함께 싸우기도 했다(물론 미국의 역할이 가장 작고 이란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 이 과정에서 핵 협정까지 체결하는가 했더니만, 느닷없이 트럼프가 등장하여 핵 협정도 파기하고 경제 재제를 재차 시작한 것이다. 이란 입장에서는 솔레이마니 암살은 결정적인 반미 감정을 느낄 만한 일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미국의 솔레이마니 암살은 오히려 중동 내의 친미 세력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솔레이마니는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시절부터 경험을 쌓아 온 이란의 전쟁 영웅 중 한 사람이며, 최근에는 이란의 중동 맹주화의 선봉장이 되어 이란의 영향력을 증진시키고 있던 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솔레이마니 암살은 인구 1억의 이란을 단결시키기 충분한 상황이 될 것이다.

#4. 러시아와 이란의 문제: 새로운 동맹의 가능성

현재 중동의 새로운 맹주를 노리는 국가는 에르도안의 터키와 로하니의 이란이다. 이 두 국가의 공통점은 과거 완전한 친미 성향의 국가였다는 점이며, 또한 러시아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트럼프가 핵 협정을 파기하자마자 러시아에게 접근했으며, 이번에 암살당한 솔레이마니는 러시아를 자주 오가며 푸틴의 중동 전략에 도움을 준 적도 있다. 특히 러시아가 시리아 시아파 정권인 아사드의 생명 연장을 도운 것에 솔레이마니의 공이 지대하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때문에, 러시아와 이란을 잇는 가장 단단한 끈이었던 솔레이마니의 암살은 오히려 러시아와 이란 간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킬 요인이 될 수 있다. 현재 반미 감정이 대대적으로 증폭된 이란의 입장에서 중동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지금 시점만큼 러시아의 역량을 끌어들이기 적당한 타이밍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는 미국과 대대적으로 한 판 붙는 상황은 달갑지 않을 것이므로, 이란이 내민 손을 적당히 간을 봐 가며 잡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번 솔레이마니 암살이 중동에서 미국의 외교적 입지를 축소시킬 것은 분명하며, 그 틈새를 파고들어 가장 많은 이익을 꾀할 것은 아마 러시아가 될 것이다. 이쯤 되면 푸틴은 트럼프에게 감사패라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행보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2019년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연 로하니 이란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왼쪽부터, 출처: 크레믈린) http://www.kremlin.ru/events/president/news/56152/photos/51379

사진은 지난 시리아 내전 문제 해결을 위해 2019년 11월 22일 소치에서 정상회담을 연 로하니 이란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모습 (왼쪽부터, 출처: 크렘린, CC BY)

#5. 재선의 문제: 전쟁은 노인이 일으키고 죽음은 청년이 짊어진다

트럼프의 재선에 대한 문제는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의 마지막 징병은 베트남 전쟁이었으며,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9.11 테러를 제외하고 본토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경험은 없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에게 전면전은 역시나 매우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실제로 솔레이마니 암살 이후 ‘징병’ 에 대한 검색과 문의가 급증했다는 점은 이러한 두려움을 방증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포 분위기의 조성이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꼭 도움이 되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에는 분명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집하는 지지층들은 물론 ‘전쟁에 끌려갈 염려가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대개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노인은 전쟁을 일으키고, 청년은 죽음을 짊어진다.

노인은 전쟁을 일으키고, 청년은 죽음을 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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