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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폭격과 포격, 자살 테러로 엉망이 된 이라크 바그다드. 미국이 점령한 2005년의 바그다드 거리는 깨어진 콘크리트 조각과 돌무더기, 폭탄 파편 들로 어지럽다. 주정뱅이에,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찬 거리의 고물수집상인 하디 (Hadi)는 자살테러로 산산조각난 시체의 신체 부위들을 하나둘 모아 실로 꿰매어 성한 몸으로 만든다. 그런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작업을 벌이는 하디의 이유이자 목표는, 정부 당국이 그런 신체 부위들을 ‘사람’으로 인식해서 그들에게 온당한 장례를 치러주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그렇게 공들여 꿰매놓은 시체가 사라지고, 돌연 잇단 살인 사건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한 가지 기묘한 것은 범인이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고,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하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범인은 바로 자신이 만든 괴물임을 깨닫게 된다. ‘걔 뭐야’, ‘그 놈’, ‘그 괴물’ 정도로 얼버무릴 수 있을 법한 ‘와츠이츠네임’(Whatsitsname)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그 괴물이 살육의 장본인임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살인의 이유였다. 괴물은 인간의 살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했다.

SPC Ronald Shaw Jr., U.S. Army (퍼블릭 도메인)
SPC Ronald Shaw Jr., U.S. Army (퍼블릭 도메인)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in Baghdad; 아메드 사다위 지음 / 조너선 라이트 영역 / 원월드 펴냄 / 272 페이지 / 2018년 2월 출간)은 전쟁의 포화에 갈가리 찢긴 이라크의 비극적 현실에, 메리 셸리가 불멸화한 괴물 프랑켄슈타인의 변주를 더해,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되는 이라크 전쟁의 참화, 그 안에서 속절없이 죽고 죽이고 상처 받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간접적으로 고발한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in Baghdad; 아메드 사다위 지음 / 조너선 라이트 영역 / 원월드 펴냄 / 272 페이지 / 2018년 2월 출간)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in Baghdad; 아메드 사다위 지음 / 조너선 라이트 영역 / 원월드 펴냄 / 272 페이지 / 2018년 2월 출간)
영국의 ‘가디언-옵저버’는 현실과 상상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희극과 비극을 적절히 버무린 ‘주목할 만한 책’으로 낯설고 폭력적이면서도 짖궂을 만큼 웃기다고 상찬했고,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전쟁의 잔혹성을 판타지 형식으로 그려냈다고 평했으며,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의 참담한 현실에 유머와 풍자를 더한 알레고리라고 긍정적인 눈길을 보냈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걷어내고 보면, 과연 수십년에 걸쳐 이어지는 외전과 내전의 포화에 희생당한 이라크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비극적인 개인사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가슴 뭉클한 현장 고발이거나, 심지어 잘 취재된 다큐멘터리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런 점은 저자가 소설가, 시인, 극작가일 뿐 아니라 영화제작자라는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2010년, 유망한 40세 이하의 아랍 작가 39명중 한 명으로 ‘베이루트39’ 명단에 들기도 했고, 이 소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2017년 ‘국제아랍소설상’ (International Prize for Arabic Fiction)을 받았다. 이라크인으로는 최초였다.

사다위가 소설에서 묘사하는 이라크는 황폐하다. 오랜 전쟁 탓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당연히 비참하고 우울하다(어쩌면 세계 곳곳을 상대로 ‘영원한 전쟁’(forever war)을 벌이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환치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미국의 침공과 이라크내 여러 종교 파벌 간의 분열과 분쟁을 묘사하고, 그로 인해 자식과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슬픈 사연을 그리지만, 간간이 웃음과 유머도 섞여든다. 괴물을 뒤쫓는 기자(편집자), 전직 바스주의(Baathist; 바트당) 장교, 이발사, 빈털터리가 된 호텔 주인, 호텔 경비원, 점성술사, 영화감독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소설을 한층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만든다.

어쩌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전 세계에서 전쟁을 벌이는 미국 자체가 아닐까?
전 세계를 상대로 ‘영원한 전쟁’을 벌이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

책의 제목 때문에라도 소설은 메리 셸리의 원조 프랑켄슈타인과 따로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소설 속 괴물 ‘와츠이츠네임’도 그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오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결코 악당이 아니고,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시도한다.

살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와츠이츠네임에 대한 언론의 집착은 점점 더 커진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까지 진행된다. “나는 최초의 진정한 이라크 시민이오”라고 괴물은 선언한다. 혹은 주장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양한 배경 – 민족, 종족, 인종, 사회 계급 – 을 가진 사람들의 신체 부위들로 만들어져, 과거에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불가능한 통합을 대표하기 때문이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된 지 200년 만에 나온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상징적인 의미 말고도, 소재의 독특함, 주제의 당대성, 작품의 완성도 등에서 국내 번역을 고려해 볼 만하다.

프랑켄슈타인 탄생 200주년

방금 언급한 대로, ‘프랑켄슈타인’이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1818년)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지 올해로 200년이 되었다. 이를 기념한 저작이 숱하게 출간되었거나 출간될 예정이다. 이제는 하도 자주 써서 식상해진 표현이지만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세상을 바꾼'(change the world)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후세의 소설, 특히 과학소설 (SF)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단어는, 사실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지만 오히려 전자의 상징으로 더 자주 쓰이는 준 보통명사로 고착된 것도, 그런 영향의 한 증거라 할 만하다. 영어권에 견주어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한국 독자의 관심은 다소 적은 편이지만, ‘프랑켄슈타인 200주년’이라는 상징성에 기대어 메리 셸리의 소설 같은 삶을 다룬 평전이나, 프랑켄슈타인과 관련된 문화사/과학사를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퍽 의미있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아마존닷컴에 ‘프랑켄슈타인’을 입력하면, 원작을 빼고도 수십 권에 이르는 근작들이 소개된다. 여러 매체의 리뷰를 바탕으로 호평을 받은 몇 권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마존닷컴 '프랑켄슈타인' 검색 화면 일부 발췌. 프랑켄슈타인의 지속적인 생명력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닷컴 ‘프랑켄슈타인’ 검색 화면 일부 발췌. 프랑켄슈타인의 지속적인 생명력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 메리 셸리에 초점을 맞춘 경우

[메리 셸리를 찾아서: 프랑켄슈타인을 쓴 소녀] 

[메리 셸리를 찾아서: 프랑켄슈타인을 쓴 소녀] (In Search of Mary Shelley: The Girl Who Wrote Frankenstein; 피오나 샘슨 지음 / 프로필 북스 펴냄 / 304 페이지 / 2018년 6월 출간 예정)
[메리 셸리를 찾아서: 프랑켄슈타인을 쓴 소녀] (In Search of Mary Shelley: The Girl Who Wrote Frankenstein; 피오나 샘슨 지음 / 프로필 북스 펴냄 / 304 페이지 / 2018년 6월 출간 예정)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메리 셸리의 몇몇 에피소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딸을 낳고 난 직후 벌어진 어머니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죽음,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의 교육 스타일, 급진적 사상가 시인 철학자 작가 들로 늘 북적거렸던 집안 환경, 시인 퍼시 셸리와 함께한 가출과 유럽 여행 등.

저자 피오나 샘슨은 그러나 메리 셸리를 다룬 전작들은 대부분 중요한 대목, 메리 셸리의 ‘문학적 전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메리 셸리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왜 그처럼 드라마틱한 삶의 궤적을 보였고, 그 때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2세대 낭만주의자들’로 불리는 메리와 그 친구, 동료들은 삶의 심리적 측면 (psychological aspects)에 특히 깊은 관심을 보였는데, 정작 그런 부분에 대한 천착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신과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그러나 당대의 상황과 생태학을 깊이 이해하면서 생동하는 필체로”(‘가디언’과 ‘런던타임스’의 평), 저자는 마치 자신이 창조한 괴물을 좇아 북극을 횡단했던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메리 셸리의 생애를 추적한 끝에, 어떻게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토록 암울하고 불가사의하고 비통하고 심리적으로 날카로운, 하여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과 공명하는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밝혀낸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이 책이 메리 셸리의 생애를 깊은 통찰과 공감을 유지하면서 흥미진진하게 풀었다고 평가했다. 저자인 피오나 샘슨은 영국의 저명한 시인으로 왕립문학협회와 왕립예술협회의 회원이다.

[괴물: 메리 셸리의 젊은 시절]

[괴물: 메리 셸리의 젊은 시절] (Monster: The Early Life of Mary Shelley; 마크 아놀드 지음 / 망고 펴냄 / 250페이지 / 2017년 10월 출간)
[괴물: 메리 셸리의 젊은 시절] (Monster: The Early Life of Mary Shelley; 마크 아놀드 지음 / 망고 펴냄 / 250페이지 / 2017년 10월 출간)
프랑켄슈타인을 쓸 당시 메리 셸리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그토록 징그럽고 끔찍한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상세히 쓸 수 있었느냐고 묻곤 한다”라고 셸리는 말하곤 했다.

메리의 부친은 당시로서는 비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딸에게 시켰지만 어린 나이부터 근친상간의 피해자로 만들기도 했다. 불과 열다섯 살에 당시 영국에서 가장 각광받던 천재 시인(퍼시 셸리)과 관계를 갖기 시작했고, 열여섯 살 때는 집을 나와 6주간 유럽을 도보 여행하면서 퍼시 셸리, 그리고 이복자매인 클레어 클레어몬트와 삼자 동거 관계를 맺기도 했다.

메리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두 시인이었다. 한 사람은 후에 남편이 되는 퍼시 셸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로드 바이런이었다. 전자는 메리 셸리가 작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고, 후자는 빼어난 작가, 시인, 철학자임을 입증해 보라는 자극을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불과 열아홉 살에 나온 프랑켄슈타인은 그 산물이었고,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꿨다.’

프랑켄슈타인, 혹은 괴물에 초점을 맞춘 경우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강력한 전기의 힘으로 괴물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메리 셸리는 당대의 첨단 과학인 직류전기 요법(galvanism)과 전기를 끌어온다. 화학자이자 작가인 캐스린 하쿱은 [괴물 만들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과학]에서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쓸 당시의 과학사에 주목한다.

[괴물 만들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과학] (Making the Monster: The Science behind Mary Shelley’s Frankenstein; 캐스린 하쿱 지음 / 블룸스버리 시그마 펴냄 / 304페이지 / 2018년 2월 출간)
[괴물 만들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과학] (Making the Monster: The Science behind Mary Shelley’s Frankenstein; 캐스린 하쿱 지음 / 블룸스버리 시그마 펴냄 / 304페이지 / 2018년 2월 출간)
당시 아무런 공식 교육도 받지 못한 열아홉 살 여성이, 어떻게 프랑켄슈타인처럼 비상한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790~1820년은 전기와 생리학 분야의 이해와 연구가 크게 깊어지던 시절이었다. 센세이셔널한 과학이나 기술 시연은 대중의 상상력을 부추겼고, 당대 신문들은 온갖 살인자와 부활론자[footnote]부활론자(resurrectionist): 죽은 이의 부활을 믿는 사람, (해부용으로) 시체를 도굴하는 사람, 시체를 되살리는 사람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footnote]들에 대한 기사와 소문 들로 넘쳐났다.

그렇다고 해서 1818년의 의술이나 과학 수준으로 실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 여전히 불가능에 더 가깝지만 — 훨씬 더 높다. 제세동기[footnote]제세동기(defibrillator): 심장 박동을 정상화하기 위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쓰는 의료 장비[/footnote]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수혈로 생명을 구하며, 장기 이식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일이 지금은 거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현대의 의학적, 과학적 개가는, 저자인 하쿱에 따르면, 온갖 섬뜩한 실험을 수행한 19세기 과학자들로부터 직접 비롯한다.

하쿱의 [괴물 만들기]는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뒤에 자리잡은 과학을 탐구한다. 소생시킨 ‘좀비 고양이’로부터 시체에 대한 전기 실험에 이르기까지, 하쿱은 메리 셸리로 하여금 프랑켄슈타인을 상상하고 창작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은 당대의 과학 현상과 과학자들, 현실의 ‘빅터 프랑켄슈타인’들을 소개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하쿱의 저작에 대해 “과학과 역사를 흥미롭게 버무려 과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뿐 아니라 문학사 애호가들도 만족시킬 만하다”라고 평했다.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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