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부가 결국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 국가)에서 배제했다.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개정안은 지난 2일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통과됐고, 나루히토 일왕이 이를 공포하면, 공포 21일 뒤에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격하시켰으며, 이를 실제로 행정적 절차로 시행함으로써 그 파장을 상당히 장기화시켰다. 게임은 이제 시작되었고 우리는 좋든 싫든 이 게임에 응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두고 우리가 마치 ‘이번 기회에 일본을 한 번 손 봐 주자.’라든가, ‘일본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와 같은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과 일본의 우익들은 한국의 시민들이 이런 마음을 갖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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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의도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 상실이다
일본 정계에서 한일관계를 이야기할 때 한국은 ‘골대가 자주 움직이는’ 국가라는 이야기가 자주 오간다. 이것인 즉슨 한국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일관계의 원칙이 계속해서 뒤바뀌는 바람에 일본의 입장으로서는 신뢰할 수 있는 이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이다.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 역시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의 사법부 판결이 아니라,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즉 일본은 국제적 협약에 의해 약속된 전략물자의 관리를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하는 국가를 특별대우가 가능한 우방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국제사회에 던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우리의 공식적인 응답은 ‘지금 두들겨 맞으려고 그런 소리 하시냐’가 아니라 ‘너나 잘하세요.’이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이면의 이유는 결국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라는 사법부 판결이 있겠지만, 국제사회의 시각은 이와는 다를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일본에 제대로 맞대응하려면 상대를 향한 과격하고 감정적인 표현을 시민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 경기 시작 전 열띤 응원전을 펼칠 때에야 죽이니 살리니 할 수 있어도, 링 위에 올라서서까지 흥분하여 상대방을 혼쭐낼 생각에 골몰하다가는 상대의 의도에 그대로 말려들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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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는 불매하되 마음은 불매하지 않아야
사실 여태까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없는데, 그 이유는 바로 1번과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불매운동으로 인한 민간 교류의 부수적 피해(Colleteral Damage)가 결국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까 저어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국가가 타국에게 대놓고 경제적 손실을 입히려 드는 마당에 마냥 가만히만 있을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부수적인 피해가 ‘일본국’이 아닌 ‘일본인’에게로 확대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독도 갈등이 불거졌을 때 몇몇 음식점 등에서 “일본인과 개 출입금지”라는 방을 붙인 것을 보고 상당히 황당했던 경험을 적은 임지현 교수의 칼럼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다행히 2019년의 대한민국은 이보다는 훨씬 성숙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인간적 우의를 유지해야 한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일본의 시민사회는 2001년 ‘새역모’ 교과서 사태 때 후소샤판 새역모 교과서 채택률을 0.039%에 그치게 만든 민주적 성숙함을 보유하고 있다. 자민당이 장기집권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우리가 일본국 정부와 우익을 불매할지언정 일본인 개개인들을 배척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한국의 신뢰도를 정말로 상실케 하는 것이며,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노리는 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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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적이라면 더 가까이 두고 그들이 오게 하라
지난 7월 15일 몇몇 언론에서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보도했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2018년 8월 HK사업이 종료된 이후 연구 지원이 끊겨 학술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서 2억 5천만원을 쾌척하여 잠시 숨통이 트였으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한편 몇몇 광역단체들은 스포츠·학술 교류 등 민간교류 일정을 취소하는 행각을 보였다.
외교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가장 어리석은 행위는 우리 쪽에서 먼저 민간교류를 단절하는 것이라고 본다. 상대에게 또 다른 보복의 빌미를 던져줄 뿐더러, 한번 끊긴 민간교류의 맥을 다시 잇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향후 더 큰 갈등의 원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우경화가 지속되면서, 또한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서 지한파 의원들이 대부분 밀려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로가 보이지도 않는 안갯속에서 각자 무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다간 더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일본과의 접촉면을 어떻게든 넓혀서 그들에게 우리의 메세지를 전달할 창구를 좁게라도 남겨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민간교류의 중요성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은 지자체의 민간교류 일정 취소는 결국 특정 정치인들의 공명심에서 발로된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어떤 상황에서 적은 친구보다도 더 가까이 해야 하는 존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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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팩트를 싫어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싫어할 뿐이다.
‘불확실성 해소’ 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들어 보셨을 것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우리 경제에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특정한 금액만큼의 손실이 아니다. 바로 ‘얼마나 손실이 될지 또는 이득이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불확실성이다. 만약 이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윤곽이 드러나면 경제는 자연스레 손실을 치유하는 또는 이익을 향유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때문에 지난 2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승리의 역사를 국민과 함께 또 한번 만들겠습니다”라고 다소간 강한 어조의 메세지를 전달했으나, 앞으로 정부의 일은 지속적으로 시민에게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식 메세지를 내보내는 것보다는, 우리 정부가 예측 가능한 위험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대처하고 있고, 불확실한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옵션을 마련하고 있다는 메세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 심리에 제대로 된 보급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일본에게 막 보복을 당한 터라 한동안은 우리 국민들도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에 호응할 수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2분기부터 시작된 경기 하강 국면이 지속되면 당연히 국민은 지친다. 그리고 정부의 메세지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때도 정부가 돌격 앞으로만 외친다면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는 심리의 집합이며, 그 심리에도 보급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정부의 올바른 메세지에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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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신뢰와 성숙에 관한 게임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셨다면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으실 것이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반도체 특수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현재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을 수준의 특수가스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일종의 낭보, 현대차가 과거로부터 꾸준한 노력 끝에 상당 부분 국산화를 이룩했다는 소식 등이 있을 터이다.
사실 경제 전쟁에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결국 최전선에 나아가 총탄을 주고받으며 전진하는 것은 기업들이 될 수밖에 없다. 분명 한국 대기업의 성장 과정에서는 그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수 존재하였으나, 일본과의 경쟁 과정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쫄지 않고 일본과 맞설 수 있게 된 힘은 결국 기업들이 이만치 성장해 왔기 때문에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기업이 과연 오롯이 적폐스러운 존재일까? 우리는 삼성전자가 일본과 거래가 끊기더라도 차질 없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너나할 것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현대차가 일본산 부품이 없이도 미국에서 다시 잘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경제 발전의 도상에서 기업의 노고는 분명히 존재했으며 이제 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일본과의 이번 갈등은 엄밀히 이야기해서 이기고 지는 차원의 싸움이 아니다. 이는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 중 어떤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더욱 성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인지를 증명하는 게임인 것이다. 검증의 절차는 아마 우리에게도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가혹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오늘도 내일도 친절히 대하는 우리 이웃들과, 머리를 싸매고 대책을 연구하는 반도체 기업의 노동자들, 그리고 바쁘게 뛰어다닐 통상과 외교 현장의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