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기존 세대론 틀로 담기 어려운 올림픽공원 시위의 의미를 분석한다. (최성용 / 성공회대 강사) (⌚5분)
6·3 지방선거를 거치며 국면이 달라졌다. 12·3 내란이 종식되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지난 일 년간 대체로 안정적인 통치의 국면이 지속됐다. 그러나 지선 직후 부정선거론이 재점화되고 극우세력이 준동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국면이 열렸다.
6.3지방선거 이후 정치 구도 변화
이 새로운 국면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12·3 내란으로 돌아가야 한다. 12·3 내란은 헤게모니를 상실한 채 장기적인 위기에 빠져 있던 보수세력이 ‘1987년 체제’(이하 87년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우익 혁명’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화 이후 보수여당이 재편 불가능한 여소야대 상황에 놓인 최초이자 유일한 경우였고, 비상계엄 선포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실패했지만, 그 이후의 내란정국은 1987년 체제의 안정적인 구도와 규범을 크게 뒤흔들었다.
기존의 정치 구도와 연동된 채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규범과 언어체계에도 도전이 발생했고 혼란이 일어났다. 이를 견인한 것이 ‘저항권’을 부르짖으며 서부지법 폭동을 ‘민주항쟁’이라 일컬은 극우세력이었다. 극우세력은 그간 민주주의를 확장해 온 규범적 언어들을 전취해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했다.
내란 이후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사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지만, 지선 이후 올림픽공원 시위와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표현을 통해 잠복해 있던 부정선거론과 혐오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며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극우의 ‘재반격’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재반격’을 넘어 더욱 심대한 정치적 변동의 표현이기도 하다. 극우의 재반격 이면에는 87년 체제 아래서 정치세력 간의 안정적인 시소게임을 통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화되어온 체제에 대한 불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세대담론으론 포착하기 어려운 올림픽공원 시위
초기의 올림픽공원 시위는 무척 혼란스럽고 불가해한 모습으로 보였다. 그간 정치적 이슈에 거리를 두던 이들이 시위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극우와 자신을 구분짓는 시위 참여자 또는 지지자들은 대체로 민주진보세력을 기득권으로 보는 반(反)민주당 정서를 공유하되, 국민의힘을 자신들의 대의 세력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 시위는 기존의 정치적 언어와 서사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못하던 개인들이 그 존재를 공적으로 드러낸 것으로서, 시위 참여자들을 규정할 적절한 범주를 찾기 어렵다.

그간 한국의 정치담론은 이런 불가해한 집단에 ‘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타자화하곤 했다. 세대 범주에 관한 성찰적 연구들은 이 정치적 세대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가령 올림픽공원 시위에 참가하거나 그를 지지한 이들은 청년세대라는 이름으로 포착되며 ‘2030 극우화’ 담론에 힘을 보태는 현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청년세대의 ‘전부’가 아니다.
거리에서 12·3 내란 종식에 가장 앞장선 집단 역시 청년이었다. 세대라는 프리즘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탓에, 기존 정치담론에 적확하게 포착되지 않는 잔여적 현상들을 놓치거나 오해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공원 시위와 그로 인한 세간의 혼란은 우리에게 적절한 ‘해석틀’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의제의 측면에서 올림픽공원 시위 참가자들은 ‘참정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 규범의 기표를 내세우지만, 그 속에는 그간 민주주의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탈한, 이질적인 맥락까지 섞여 있다. 비(非)극우 시위 참여자들은 극우세력과 선을 긋고는 있지만,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거대한 기득권의 의도로 보는 부정선거론에는 다소간 동조하고 있다.
선관위의 부실이 아니라 의도적 부정이 있다는 서사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막연한 우파 포퓰리즘의 서사를 공유하면서 이를 민주주의와 참정권의 문제로 언어화하고 있다. 비판 대상인 기득권을 주로 민주당과 관련짓고 있지만, 그것이 국민의힘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기존의 정치적 구도와 연동된 언어에 익숙할수록, 이 시위는 불가해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87년 체제를 흔드는 극우의 혐오 서사
정부여당은 12·3 내란 이후, 대중의 불만을 해석할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하기보다는 ‘중도실용’이라는 87년 체제 하의 익숙한 선거 승리 공식에 기반해 대선을 치르고 정국을 관리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안일한 전략으로 지선을 치렀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중도실용’이라는 전략은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임시방편의 대응에 가깝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차별금지법 등 사회운동의 요구에 대해서는 급진적이라며 배제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부여당은 불만을 조직할 수 있는 왼쪽 영역의 정치세력을 고사시키는 한편, 이 불만을 해소할 대안적인 서사는 제공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선 이후 진행되고 있는 여당 내 권력투쟁 역시 노선이나 가치의 대립과는 거리가 멀다.
그 빈 공간에 언어를 제공한 것이 체제의 정당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극우세력이다. 올림픽공원 시위에서 주도권을 잡은 극우세력은 공공연히 혐오를 표출하면서 이를 폭력으로 발전시켰다. 12·3 내란 내란 당시 내건 비상계엄의 명분부터가 ‘반국가세력’과 ‘입법독재’라는 표현에서 보듯 정치적 반대세력을 비국민화한 것이었다.
이어진 내란 정국에서도 극우세력은 ‘빨갱이’나 ‘중국인’ 등 온갖 혐오의 표상들을 제기했다. 올림픽공원에서도 극우세력은 시민들을 감금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한편, ‘중국인’,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등의 비국민 표상을 통해 ‘대진연’이 아닌 집단으로서 극우를 ‘국민화’하고 있다.

계엄령은 실패, 계몽령은 성공? 극우와 대중의 호응
국민의힘 또한 이번 지선을 통해 극우세력에 의존하여 불리한 국면을 버티면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공식’을 재확인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갈수록 극우세력과 동조해간다. 이들은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표현을 계기로, 부정과 혐오의 논리에 동조하며 87년 체제의 민주주의가 쌓아온 성과들을 과격하게 공격하고 있다.
그 공세는 우파 포퓰리즘의 서사와 결합된다. 이들이 제기하는 ‘5·18 성역화 비판’이라는 논리 속에는 광주를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약자를 오히려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이를 정부여당과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래서 12월 3일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계몽령’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민주진영, 진보진영, 시민사회 전부를 하나의 기득권 집단으로 묶는 서사를 통해 12·3 내란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6·3 지선 이후 극우의 대대적인 재반격과 이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이 서사가 합리성의 차원이 아니라, 기득권을 상상하며 혐오에 동조하는 ‘정동(情動; 좀 더 명확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감정보다 추상적인 정서 상태, 그런 단계. 편집자.)’의 차원에서 대중적 호소에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12·3 내란은 87년 체제에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현재 이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설명하는 서사는 극우에서 나오고 있다. 바로 이 서사야말로 한국현대사의 오래된 혐오와 폭력의 유산에 근거한 퇴행적 상상력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