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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와 신비가 운영하는 서울 약수역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카페 [어쩌면 사무소]. 근사한 인테리어를 ‘구경’하거나, 숙련된 바리스타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사무소]엔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꿈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은 그 꿈을 매일 조금씩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소박하지만 멋진 모험담을 슬로우뉴스에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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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무소의 어쩜 면장님을 소개합니다.
어쩌면 사무소의 어쩜 면장님을 소개합니다.

어쩌면 사무소에는 면장이 없었다. 아니, 그럴 예정이었다. 어쩌면 프로젝트니까 어쩌면 사무소. 그렇게 즉흥적으로 이름을 짓고 보니 그럼 면장은 누구냐는 질문이 불쑥. 하지만 막상 일을 벌인 코기토와 신비는 둘 다 손사래를 치며 면장직을 거부했다. 코기토는 어릴 적 어르신들이 면서기 정도면 동네에서 제일 출세한 것으로 쳐줬다며 ‘면서기’가 제일 좋단다. 조직이나 직위 같은 것에서 적어도 당분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었던 나는 그 어떤 직책도 없는 그냥 ‘꿍꿍이’를 자청했다. 그래서 결국은 뭐, 면장 없는 면사무소도 괜찮지 하며 공석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9월 11일이 왔다. 두 달 동안 이어온 공사를 끝내고, 베타 오픈으로 수줍게 문을 연 지 겨우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

성내골 사람들 놀러온 날
성내골 사람들 놀러온 날

그날 저녁에는 첫 단체손님이 와있었는데, 늘 존경하는 친구이자 활동가인 녹색당 이유진과 동네에너지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성대골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참 수다가 무르익으며 10시를 넘길 무렵, 밖에서 웬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진과 나, 코기토 셋이 나가보니 고등학생쯤 되는 남자아이 두셋의 발치에서 조그마한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앵앵거리고 있었다. 혹시 동물학대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놀라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이 녀석이 공원에서부터 저희를 쫓아와서 버리지도 못하고 데려가지도 못하고 있다며 난처해하는 거다. 하여, 평소 길냥이라도 마주치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코기토가 얼른 다가가서 녀석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그 남자아이들이 부탁이니 잘 키워달라며 아기고양이를 들어 훌쩍 떠넘기고는 꼬리가 보일세라 서둘러 뛰어서 달아나는 게 아닌가!

난데없이 두 손에 얹힌 녀석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 일단 데리고 들어와 보니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당장 뭐라도 먹여야겠는데 모여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전화로 물어보니 우유는 안된다고 하고 병원은 열 시간이 아니고… 급한 대로 멸치 몇 마리 물에 넣어 끓이는 사이, 녀석은 낯선 환경과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겁에 질린 모양인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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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가 아기를 낳으면,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 아기가 헤매다 집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혹시 어미 고양이가 근처에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지만, 꼬질꼬질하고 바싹 마른 녀석의 상태만 봐도 그냥 잠시 떨어진 행색이 아니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픈 건 확실해 보였지만 그밖에는 어떤 처치를 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

게다가 우리는 막 카페를 연 터였다. 공간운영도 장사도 커피도 모든 것이 처음인 우리에게 이렇게 작고 위태로워 보이는 어린 생명을 돌보는 책임이 더해진다는 건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었다.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러지나 공포증이 있을지도 모르고… 집에서는 키울 상황도 안 되는데… 하지만 신기하게도, 머리로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입으로는 ‘어쩜 좋아!’를 계속 외치면서도 우리는 이미 녀석을 품에 거두고 있었고, 농반진반으로 ‘면장님이 부임하신 것 같아’라며 어쩌면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첫 순간’들

그날 밤, 커다란 부직포 가방에 수건, 담요, 천조각 등을 잡히는 대로 주섬주섬 깔고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 방 한편에서 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울음소리도 움직임도 없어 들여다보니 온몸이 차가워진 채로 누워 잠들어있었다. 고양이는 사람보다 체온이 약간 높아서 열이 나는 듯 따뜻하다는데 그렇게 차가워질 정도면 정말 체력이 바닥이었던 모양이다. 수건으로 꽁꽁 싸서 서둘러 근처 동물병원에 데려가니 수의사는 녀석이 너무 작고 말라서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 달쯤 키워 다시 데려오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동물용 분유 한 통 사 들고 돌아와 녀석을 어쩌면 사무소 바닥에 놓아주었다. 밝은 빛에서 다시 보니, 밤에 본 모습보다 더욱 심각했다.

처음, 안쓰러웠던 어쩜 면장님의 모습
처음, 안쓰러웠던 어쩜 면장님의 모습

불안하고, 쇠약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을 한 채, 면장님의 어쩌면 사무소 부임 첫날 첫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첫 식사. 첫 목욕. 첫 그루밍. 첫 일광욕. 첫 화장실… 우리는 그 모든 처음들을 여기서 함께 겪었다. 그러는 사이 꼬질꼬질하던 얼굴과 털이 조금씩 때를 벗고, 앙상하던 녀석의 다리에는 근육이 살짝 붙어가고, 조마조마하던 우리의 마음에도 여유가 천천히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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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사람을 이어주는 면장님

면장님 부임 후 첫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마감하고 청소를 하려는데 처음 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들과 함께 빼꼼 문을 열었다. 여기 공원에 있던 아기고양이 여기서 거두셨다고 들었다며, 걱정돼서 와보았다고 했다. 들어오시라고 하고 녀석을 보여주니 아이들과 함께 어찌나 기뻐하던지.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공원에서 울면서 헤메길래 우유도 주고 그랬는데 데려가 키울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단다.

그 다음 날, 저녁 무렵 또 한 젊은 커플이 찾아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키운다니 너무 반갑다고 기쁘다고 한다. 그리고 또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동네 여자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뛰어오기를 두어 번… 그리고 또…

이때까지 면장님은 따로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앞의 아주머니가 며칠 후에 또다시 들러서는 이름은 뭐라고 지었느냐기에 아직 없고 그냥 면장님이라 했더니, 어쩌면 사무소니까 어쩜이가 어떠냐 했다. 아니 어쩜 그렇게 딱 맞는 이름을! 어쩜 좋아! :)

그렇게 우연히 만난 아기고양이는 면장님이 되고, 어쩜이가 되어서 어쩌면 사무소와 우리의 삶 모두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어쩜 면장님을 보러 온 동네 아이들
어쩜 면장님을 보러 온 동네 아이들
어깨 위의 어쩜
어깨 위의 어쩜

차갑고 삭막한 도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지나가는 행인은 어디에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사는 동네라고 생각해도, 이렇게 작은 생명 하나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면장님의 부임으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줄곧, 동네와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는 면장님을 보면 ‘공간, 사람, 동네…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라는 문장 하나로 시작한 우리의 프로젝트가 그런대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아니 적어도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나간 시간은 좋은 추억들로 미화되기 마련. 글을 쓰면서 지난 사진과 영상을 뒤적이다 보니 조마조마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는 이후 또 몇 차례에 걸쳐 풀어놓기로…

어깨 위의 어쩜 by 김승수
어깨 위의 어쩜 by 김승수

/다음 회에서는 어쩌면 사무소의 첫 손님이 등장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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