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설경구 장필순 황정민 윤종신 이선빈 김현철 안내상 윤도현 이정은 장현성 나윤선 김대명 박학기 이종혁 … 공통점은 ‘학전 출신’이라는 것. 학전의 산파이자 산모 ‘아침이슬’ 작곡가이기도 한 ‘살아 있는 전설’ 김민기에 관한 3부작을 만든 ‘SBS 스페셜’ 이동원 고혜린 PD 김명정 작가.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 수상 인터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끈질기게 미제사건 실마리를 추적해온 이동원 PD, [TV동물농장]에서 가수 이효리와 반려견 순심의 이별 이야기로 반려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고혜린 PD, [집사부일체]에서 다양한 분야 사부들을 통해 깨달음을 선사한 김명정 작가. SBS를 대표하는 시사, 교양, 예능프로그램 PD와 작가가 정통 다큐멘터리 [SBS스페셜]로 뭉쳤다. 33년 만에 문을 닫는 학전과 학전을 탄생시킨 김민기를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동원 PD와 고혜린 PD는 학전과 김민기를 다룬 [SBS스페셜]을 제작하며 “설레는 마음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제작기간 내내 이동원 PD를 옆에서 지켜본 김명정 작가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살인자 뒤만 따라다니다가 문화예술계 산을 좇는 다큐를 찍다 보니 청년 같은 얼굴로 설레어했다”고 덧붙였다.
[SBS스페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3부작은 대중문화 산실 학전의 역사를 다채롭게 담아내고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가 민주화운동과 함께하며 헌신한 예술인으로서 모습을 잘 그려낸 점을 평가받아 2024년 6월 ‘민언련 이달의 좋은 보도상’을 받았다. 제작진의 마음을 설렘으로 채운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동원 PD와 고혜린 PD, 김명정 작가를 만났다.
설레던 작업
정통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느낌은 어땠나.
김명정 : 예능 작가로 30년 일하다 보니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남들이 우리 회의하는 거 보면 정말 골치 아프겠다고 말이다. 예능은 웃기는 거, 웃음과 공감에 목숨을 거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능작가나 교양작가나 크게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다큐는 팩트와 의미 전달, 공감이 중요하지 않나. 아무래도 예능할 때는 웃음 전달이 먼저였는데 다큐를 만드니 의미 전달이 우선 되면서 사명감도 들고 마음이 좀 무거워지더라.
예능은 좀 더 휘발적이어도 되고 프로그램을 즐기고 맺는 데 있어서 별로 마음이 무겁지 않은데 이 다큐는 굉장히 오래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다큐는 ‘김민기 선생과 학전을 다루는 단 한 번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 모두 예능과 교양의 경계를 떠나서 마음이 가볍진 않았다. 이번 다큐 제작기간이 인생 살면서 가장 안 웃었던 주간, 가장 얌전하고 지적이었던 주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웃음).
고혜린 :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기본 기조는 같다. 주목받지 않은 존재, 하지만 언제나 우리 옆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명하자는 거다. 이런 기조는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큐는 [TV동물농장],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주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정말 주목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이냐고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분야이지 않나. 그래서 다른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와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설레는 마음이 컸다.
이동원 : [그것이 알고 싶다]를 4년 가까이 했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나쁜 일, 나쁜 사람들, 불행한 사람, 슬픈 사람, 피해 본 사람 등 불행한 일들이 기반이 되고 거기서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다큐는 사실 처음에 [SBS스페셜]로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학전 다큐’로 하겠다고 시작했던 거라 설렜다. ‘대학교 때 공연을 보러 다녔던 학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좋았다.
김명정 : 이동원 PD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살인자 뒤만 따라다니다가 이번에 이야기가 풍부한 문화예술계의 큰 산을 좇는 다큐를 찍다 보니까 계속 청년 같은 얼굴로 설레어 하더라(웃음).
이동원 : 모자이크 안 해도 되고 음성변조 안 해도 되니 너무 좋았다(웃음).
수많은 인터뷰이… 이선빈?
2개월 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제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고혜린 : 시간이 없다고 느낄 때는 대부분 프로그램을 채울 내용이 없을 때다. 그럴 때 정말 촉박하게 느껴진다. 이번 다큐는 내용이 없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내용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
김명정 : 취재하면 할수록 채굴되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많은 이야기 중 무엇을 골라서 방송해야 할까 하는 것 때문에 숨이 찼지, 내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간이 촉박하고 숨이 차진 않았다.
이동원 : 2달여 동안 1940년대생부터 2000년대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100여 명 인터뷰이들이 인터넷에 찾아본다거나 어느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인터뷰 당일에 해주셨다. 저희는 매일같이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매일같이 수십 년을 넘나드는 새로운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이야기 조각을 맞추고 연결함에 있어서 고민할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이로 설경구, 황정민 배우는 예상했는데 이선빈 배우는 의외였다.
이동원 : 소속사에서 본인 연예인이 학전 출신인 걸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학전 출신 배우가 그 정도로 많기 때문일 거다.
김명정 : 학전과 김민기 선생 관련 다큐를 제작한다고 하니 나중에는 학전 출신 배우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인터뷰가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먼저 말씀하시더라. 보통 인터뷰는 제작진이 찾아가 부탁해서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인터뷰를 스스로 해주시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 거다. 이런 경험은 아마 우리 모두 처음 해봤을 거다.
인터뷰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궁금하다는 느낌은 진짜 오랜만에 받아본 것 같다. 이미 인터뷰한 사람이 많은데도 다른 인터뷰이가 뭐라고 이야기할지가 정말 궁금했다. 방송일이 며칠 안 남은 걸 생각하면 인터뷰를 정중히 고사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말씀해주신 것들을 다큐에 많이 못 담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다.
김민기 선생과 함께 일했던 공장 노동자는 어떻게 인터뷰할 수 있었나.
이동원 : [궁금한 이야기 Y] 출신 이서인 작가가 찾아낸 건데 정말 신기했다. 김민기 선생이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있는데 작가님이 함께 일했던 공장 노동자를 찾아주셔서 인터뷰를 하게 되니 정말 깜짝 놀랐다.
김명정 : 저희 팀에 [궁금한 이야기 Y]나 [그것이 알고 싶다] 출신 작가와 PD들이 있었다. 제가 교양 작가랑 PD들하고만 일한 건 처음인데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더라. 형사 저리 가라다. 예능 작가들은 토크쇼를 하다 보면 ‘그 연예인이 옛날에 그런 아르바이트한 것까지 알아냈니?’ 정도가 놀라는 일인데 그걸로는 상대가 안 된다. 켜켜이 쌓여 있던 취재력이 정말 대단하다. 다큐 제작하며 덕을 많이 봤다. 농담으로 PD 그만두면 흥신소를 차리거나 민간조사원을 하면 끝내주겠다고 할 정도였다(웃음).
수많은 인터뷰, 가장 기억에 남는 세 사람
100여 명의 인터뷰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김명정 : 공장 노동자 곽기종 씨가 기억에 남는다. 그분이 50년 전 소년공이었을 때 김민기 선생이 스쳐 지나가듯 ‘계산적으로 살지 말고 느끼는 대로 살아라’라고 하셨는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이 각인돼 가훈으로 삼고 사신다고 하더라. 50년 전 들은 말을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훈으로 삼고 살아가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더불어 자기가 말한 대로 평생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동안 제가 본 분 중에 계산적으로 살지 않고 느끼는 대로 말한 대로 살아가는 분은 김민기 선생이 유일하다. 김민기 선생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다큐를 찍는 짧은 기간 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된 거다. 그런 면에서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고혜린 : 야학에서 공부하셨던 장남수 씨가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를 못 가고 신정야학에서 공부하면서 김민기 선생한테 직접 가르침 받은 거다. 김민기 선생이 학전에서 어린이극을 시작할 때처럼 당시에도 ‘굳이 왜 그런 걸 하냐, 그런다고 뭐가 바뀌냐’는 시선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김민기 선생을 포함한 젊은 청년들은 야학을 해냈다. 그렇게 40년 전 심어놓은 나무가 어느 순간 단단한 나무가 되어 인터뷰에서 제작진에게 본인의 잎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40년 전에 의미 없는 일로 치부했을 야학으로 그분의 삶은 많이 바뀐 거다.
그런 점에서 오는 울림이 있었다. 김민기 선생은 신정야학부터 학전의 어린이극까지 ‘그런 거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세상이 달라지냐’ 같은 시선을 마주할 일들을 쭉 고집해오셨다. 장남수 씨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김민기 선생이 왜 그런 일들을 고집해 오셨는지 이해가 되더라.
이동원 : 방송에 스쳐 지나가듯 나온 윤형근 씨가 기억에 남는다. 윤형근 씨는 한살림에서 오랫동안 임원을 하셨던 분이다. 한살림의 시작도 김민기가 함께했기에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인터뷰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서 방송에 담지는 못했다. 그분은 20대 초반 첫 직장 한살림에서 김민기를 사무처장이자 인생의 첫 사수로 만났다고 했다.
철두철미하게 계산해서 나눠주려 하고 독일 책이든 일본 책이든 영상이든 가릴 것 없이 굉장히 방대한 양을 공부하는 모습 등 옆에서 지켜본 인간 김민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김민기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곳에 관심을 가질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고민했을까’ 같은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김민기 선생을 옆에서 지켜봐온 윤형근 씨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인 의문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뒷것’이었지만 누구에게나 ‘보물’이었던 김민기
김민기 선생에게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일까.
김명정 : 생색내지 않는 거. 어른이란 뭘까 고민했을 때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하고도 생색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생색내기 바쁘고 누가 알아줬음 하는 맘으로 평생을 사는 게 보통 사람인데 김민기 선생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쓰면서 평생을 살고 마음만 쓴 게 아니라 행동까지 하지 않았나.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동원 : 그래서 제작진들이 첫날 모였을 때 작가님이 ‘뒷것 김민기’로 하자고 말씀하셨다. 모두 공감했다. ‘뒷것’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모르는 단어이고 낯선 단어이긴 하지만 김민기 선생이 스스로를 안 드러내는 분이라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다큐를 제작하면 할수록 김민기 선생이 본인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고 저는 절대 그렇게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명정 : 김민기 선생은 ‘뒷것’이었지만 말이든 행동이든 누구에게나 ‘보물’이었던 기억이 명확하게 있는 사람이다.
시청률 1위에도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다큐
지상파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오르고 반향이 컸다. 예상했나?
이동원 : 김민기 선생은 시청률이 안 나올까 봐 많이 걱정하셨다. 이걸 누가 보겠냐, 이걸 누가 관심 갖겠냐고 말이다. 혹시나 저희 방송경력에 오점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김명정 :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에게 울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학전과 김민기 선생을 잘 아는 PD님 외에 연차 낮은 스태프들도 많지 않나. 분명 어려서 잘 모를 거고 저분에 대해서 혹은 저 이야기의 앞뒤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스태프들이 모르는 배우나 모르는 분을 인터뷰하면서 이야기를 들을 때 약간 상기되고 들뜬 모습, 에너지를 받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거다. 그래서 다큐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본 사람들의 경우 울림이 있을 거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았다.
이동원 PD와 고혜린 PD는 “많은 분들이 보셔서 더 죄송하고 빚진 것 같고 미안한 감정이 드는 이상한 다큐멘터리”, “최선을 다한 것과 별개로 괜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마음에 빚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그런가?
이동원 : 그렇다. 김민기와 학전을 키워드로 수많은 분들이 인터뷰해주셨는데 이분들이 보셨을 땐 어땠을까, 불편하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들으니 인터뷰해주신 분들 중 본인 이야기가 나오니까 슬퍼서 보지 못하신 분도 많다더라.
그런 분들이 나중에 보셨을 때 어떻게 느껴졌을까, 혹시 부족하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계속 있는 거다. 특히 김민기 관련 최초의 다큐멘터리인데 김민기 선생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계속 스스로에게 ‘열심히 일했겠지?’ ‘잘 만들었겠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김명정 : 아마 10부작으로도 희석되지 않을 마음이다. 저희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뭔가 빚지고 죄송스러운 이 얼룩이 지워지지 않을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고혜린 : 참 희한한 마음이 많이 남는다. 저는 연출가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으로서 김민기 선생을 알게 됐을 때 건강한 콘텐츠나 이야기를 항상 고민하고 동료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어른이라는 점에서 많이 배웠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왔나, 나도 콘텐츠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데 건강한 콘텐츠를 잘 지켜 나가고 있는가, 이런 점에 대해 반성했다. 더불어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존중받고 보호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학전과 김민기 후속 다큐를 기획하고 있나.
이동원 : 3부작이 끝나고 지금 각자의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긴 하지만 셋이 같은 마음인 것 같다. 김민기 선생 이야기를 담고 나니 조금 아쉽고 전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우리가 느꼈던 점을 조금 더 전할 수 있는 기회가 혹시라도 주어진다면 후속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이번 다큐가 저희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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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57년생으로 김선생님은 저의 작은형과 큰형의 중간연령대입니다. 따라서 아침이슬이 처음 발표될때와 금지곡이 될때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tv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다큐도 당연히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22일 비보를 접하고 너무 상실감이 컸습니다.
23일 페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청소년기부터 제 마음 속에 자리한 김선생님의 모습을 라는 제목이었습니다.
23일 저녁에 심난한 마음으로 고인과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비로소 불과 석달쯤 전에 고인의 다큐가 그것도 3부작으로 방송되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을 읽은 분이 고인에 관해 저보다 더 정확하고 깊게 알고 있을 수 있고, 제 글이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서둘러 그 다큐를 찾아 시청했습니다. 다행히 큰 오류는 없었습니다.
안도하면서도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것은 고인이 그만큼 을 사셨기 때문이지요.
이 사회는 일시적 반동기에 접어들어 점차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의 빈자리는 시간이 갈 수록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