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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년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문화창조벤처단지에 입주해있는 기업 중 한 곳의 대표입니다.

의원님, 의원님께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기사에서 의원님께서 저희 벤처단지 내년도 예산을 아예 없애버리신다는 보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은 “다른 기능이 다 없어졌는데, 회사들이 융합벨트 단지에 남아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면서 “남은 예산도 전액 삭감해 회사들이 다른 사무실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준 뒤 다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예결위 소위서 교문위 의견대로 ‘최순실 예산’ 삭감 (2016. 11. 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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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 중 삭감된 예산은 약 877억 원이고, 남은 예산은 약 400억 원이다. 오늘(11월 29일) 오전 김태년 의원실에 확인한 결과, ‘남은 예산 전액 삭감’이 김 의원실의 입장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논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김태년 의원의 입장(주장)이 곧 그대로 최종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의원실은 논의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관해서는 “아직 논의 중”이라고만 말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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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저희 대표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매일같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저희는 벤처이고, 스타트업이며, 또는 1인 기업이기도 하고, 그리고 문화예술 쪽 기업이고 하다 보니 자금을 아끼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모든 것에 도전합니다. 그런 차에, 정부 사이트에서 임대지원 사업이 떴고, 도전했고, 밤새워 제안서 쓰고, 발표 준비해서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주에 성공했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기업이 여기에 도전했는데, 제가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기쁨 환희 열정 청춘 젊은 희망

반지하 사무실 빼서 다 재투자했었고, 다른 기업들도 많이들 저희와 비슷한 처지입니다. 들어올 땐 월급 받는 직원이 저 포함 3명이었는데, 여기 와서 이제 계약직 취업 예정 인원까지 9명의 스타트업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총 9명이 의원님의 말 한마디에 목이 걸려 있는 기분을 느끼며 의원님의 손끝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얌전히 결정을 기다려야 옳겠지만, 9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어 외람되게도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문화예술업 종사자로서, 큰 사업이 시작된다는 보도를 봤을 때, 이제야 정부가 이쪽의 힘든 사정을 알아주는 거라고 생각해고 기뻐했습니다. 제가 바로 시나리오 작가이자 인디밴드 출신이고, 저희 감독님은 이번에 저희 회사 들어오면서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4대 보험이 생기고 명함이 생긴 배우이기 때문이며, 제 주위가 다 문화예술인이기 때문입니다. 전 문화예술의 장기성이, 드디어 나라의 이해를 받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흔히 많은 문화예술인이 그렇듯 저 역시 여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지원 사업에 도전한 이유는,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이란 것이 (정권 영향은 어느 정도는 받겠지만) 관련된 분들 모두가 책임을 걸고 결재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책은 오로지 대통령 한 명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야가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배웠고, 또한 정권이 현재 누구에게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항상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 걱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제 국가 사이트에 뜬 지원 사업을 저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저희가 지원사업 공고문만으로 부패를 꿰뚫어 볼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또 이번처럼 불똥은 우리가 맞고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평생 ‘벤처단지’ 꼬리표가 주홍글씨처럼 따라오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모든 지원이 끊기고 암흑기가 오는 것은 아닌지, 스타트업 지원이 모두 뒤엎어지고 ‘성과 없음’으로 섣불리 판결 나서 관 뚜껑에 못 박히는 것이 아닌지, 아니, 그 이전에 약속되었던 내년 1년의 기한조차 지켜지지 않고 아홉 식구가 한겨울에 나앉는 건 아닌지, 회사를 접어야 하는 게 아닌지. 이제 저와 제 친구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기회가 영영 끝난 건 아닌지, 저는 너무 두렵습니다.

불안 공포 재난 손 좌절 우울 심각 미안

청년 취업 대책의 일환으로 창업하라고,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격려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희는 정부의 말을 믿고 도전했고, 13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결과, 부역자라는 낙인을 얻었습니다. 고생하고 도전한 결과, 누군가에게 던지는 돌을 함께 맞아주는 총알받이가 되었습니다. 이 벤처단지 입주는 저에겐 자랑이자 훈장이었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수치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정부 사업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됐다’, 이 허탈한 한 문장이 전부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정부 사이트에 누구나 자격만 되면 신청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이 공개적으로 떴고, 아무것도 모르는 또 다른 1,000개가 넘은 기업들과 경쟁하여 저희가 따냈을 뿐입니다. 이 혹독한 오디션 과정에서 그 누가 의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만약 그때 떨어지고 다른 기업이 붙었다면, 그 기업이 부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부라면, 정부가 공인한 사업에 의심 없이 지원했다는 이유로, 정책을 믿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해 보는 국민이 없도록 보호해 주어야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국민 취급하며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원님, 저희는 그 말대로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입주한 이후의 사업적 성과로 의원님께 증명하자고 저를 말렸습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제가 어떤 대표님에게도 알려드리지 않고 저 혼자 결정해서 보낸 것입니다. 물론 저도 사업적 성과를 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만, 성과를 보여드리고 인정받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으로 성공을 해야만 비로소 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만 시험에 들어야만 하는 국민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역시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같은 국민입니다. 저희가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 건물에서 나가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야 한다는 상황을 아이러니로 여겨주십시오. 다들 지나가며 ‘저기래’ 하고 손가락질하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하소연이 담긴 기사에는 ‘부역자’라며 욕설이 달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여성 대표님의 경우에는 ‘차은택과 잤대’ 라는 댓글이 달리기 때문입니다.

고민 여자 사람 좌절 슬픔

부디 저희가 당당히 어깨 펴고 촛불 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문화예술계에 일자리를 하나라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왔고, 앞으로 어떤 정권이 와도 계속 그렇게 뛸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저희도 의원님이 지켜주셔야 하는 국민입니다.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이 모든 사태에서 가장 ‘웃픈’ 코미디는, 저희가 ‘부역자’로 몰리고, ‘조리돌림’당할 동안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같은 교문위 ‘주요’ 의원은 자신이 삭감한 이른바 ‘최순실 관련 예산’을 자기 지역구 예산으로 추가 편성해 234억 원 더 챙겨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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