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고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 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구급차로 실려 간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317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사망 후 검찰은 두 차례나 부검 영장을 신청하여 부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족 측은 사망의 원인이 분명한 바 부검을 거부한다고 했다. 백남기 농민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병사”라고 기록했다.

서울대 특별조사위원회는 사망진단서 관련 조사를 끝낸 후 주치의가 적은 사망원인을 그대로 두겠다고 발표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난 궤변들을 살펴보자.

주치의의 궤변 

1. 수술 직후, “이미 거의 뇌사상태” 

백남기대책위는 11월 14일 저녁부터 15일 새벽에 걸쳐 백남기 농민을 수술한 주치의 설명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YouTube 동영상

“이때 오셨을 때는 응급실 기록상으로는 아무런 뇌뿌리… 뇌뿌리라고 해서 우리가 숨을 쉬고 의식을 깨어있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조절 중추가 있는데, 그쪽에서 살아있다는 신호를 체크하는 게 있어요. 뇌뿌리반사라고 하는.

그런데, 그게 전혀 없었고, 동공이 완전히 확대가 되서 통증을 줘도 전혀 반응이 없었고, 그 상태는 거의 뇌사상태였거든요. 이때는 수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보존적인 치료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그렇게 했었고.

또 보고받고 와서 한 번 더 봐서 10시 조금 넘어서 봤을 때는 통증을 주니까 조금 움직이시더라고요. 여기 기침반사를 했을 때 조금 돌아오고, 완전히 뇌뿌리가 망가진 그런 상태는 아니어서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자. 그 뇌뿌리 반사가 한번 없어졌기 때문에 회복될지 어떨지는 모르는데, 일단은 그래도 아직 뇌뿌리 반사가 일부 남아있으니깐 이제 수술을 하자…”

– 백남기 농민 수술 직후 주치의의 수술 경과 설명 중

2015년 11월 16일 새벽, 주치의는 응급실에 실려 올 당시 이미 뇌뿌리반사가 없는 뇌사상태라고 설명했다. 수술한 이유도 뇌뿌리가 완전히 망가진 게 아니니 회복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상황이었음도 밝혔다.

2. 수술 317일 후, 사망원인은 “심폐정지”

2016년 10월 3일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사망일 6일 전부터 시작된 급성신부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발생한 고칼륨증에 의한 급성 심폐정지”를 사망원인으로 본다고 밝혔다. 의사협회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에서 쓰지 말라는 심장마비, 심장정지, 호흡부전, 심부전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급성 심폐정지의 원인인 급성신부전은 가족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아서 치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최선의 치료를 시행했는데도 불구하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했다면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을 “외인사”로 표기했을 거라고 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73984.html
2016년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3. 외부 충격으로 뇌사상태인 환자가 사망하면 “병사”?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밝히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을 풀어쓰면 아래와 같다.

  1. 직접적인 사망원인(심폐정지): 갑자기 심장과 호흡이 정지됨
  2. 1번의 원인(급성신부전): 급격하게 신장 기능이 저하됨
  3. 2번의 원인(급성경막하출혈): 뇌를 둘러싼 경막 안쪽 뇌혈관이 갑자기 터져 피가 뇌와 뇌 바깥 경막 사이에 고임

백선하 교수는 수술 당일 백남기 농민이 거의 뇌사상태였으며 뇌뿌리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니 ‘회복될지 어떨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주장을 앞세워 수술했다. 수술 후에도 환자는 회복하지 못하고 의식불명 상태만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아서 심폐정지의 원인인 급성신부전 치료를 하지 못했다며 환자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 발언했다. 이에 관해 이윤성 특조위 위원장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선하 교수는 “심부전이 왔을 때 ‘혈액 투석’을 했더라면, 그때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족들이 혈액 투석을 원치 않았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게 유족 측이 혈액 투석을 원치 않았음은 그게 ‘불법적으로’ 원치 않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연명의료계획서라는 것을 유족들이 두 번 작성했고요. 두 번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혈액 투석을 원치 않는다’고 이미 표시가 돼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족 측이 ‘혈액 투석을 원치 않는다’는 연명의료계획서는 고인의 평상시의 뜻을 반영한 것이고, ‘적절’했고, ‘적법’했습니다. 단지 아마도 백선하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백선하)은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했으면 이때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을 표명했고요.

그렇다면, 백선하 교수 말처럼 “최선의 치료가 이루어졌다면” 고 백남기 씨가 의식을 회복하고, 병상에서 일어났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혹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다시 이윤성 위원장의 말을 인용하면, “혈액 투석을 해서 이 고비를 넘겼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두 달 내에 다른 합병증, 또 다른 합병증이 계속 발생했을 거고, 의식 회복 등의 적극적인 개선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망의 시기는 아마도 좀 더 뒤였을” 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divide style=”2″]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고,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가 잘못된 사망진단서임을 명확히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box type=”info”]

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 논란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

우리협회가 2015년 3월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 최신판은 의료현장에서 필요한 각종 진단서의 올바른 작성방법을 제시한 지침이다. 故 백남기 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을 기준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직접사인을‘심폐정지’로 기재한 점이다.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흔한 오류 가운데 하나가 직접사인으로 죽음의 현상을 기재하는 것이다.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라고 할 수 있고,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 52~53쪽)

둘째,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기재한 점이다.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직접적인 사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선행 사인으로 결정해야 한다. 고인의 경우 선행 사인이 ‘급성 경막하 출혈’인데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다. 외상성 요인으로 발생한 급성 경막하 출혈과 병사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다.

사망원인(死因, COD;Cause of Death)은 “왜 사망하였는가”에 해당하고, 의학적인 이유이며, 사망원인에 해당하는 진단명은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를 따라야 한다(의료법 시행규칙 제9조 제3항). 또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사망원인이란 사망을 유발했거나 사망에 영향을 미친 모든 질병, 병태 및 손상과 모든 이러한 손상을 일으킨 사고 또는 폭력의 상황을 말한다. (진단서 등 작성 교부지침 40쪽)

이번 사건을 통해 의료현장의 각종 진단서가 공정하고 충실한 근거를 갖추며, 무엇보다도 진실을 바탕으로 작성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이 충실히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란다.

2016. 10. 05.
대한의사협회

[/box]

[divide style=”2″]

서울대 특조위·이윤성 위원장의 궤변  

서울대 특별조사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발표를 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위원장 이윤성 교수와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74030.html
2016년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위원장 이윤성 교수와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1. 외인사면 외인사고 병사면 병사지, 외인사이지만 병사다?

조사위원장을 맡은 이윤성 교수가 직접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조사위원회의 결론은 “외인사”다.
  • 조사위원회는 백선하 교수에게 사망원인이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과는 ‘다르게’ 작성됐다고 설명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 위원장은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를 납득할 수 없다.
  • 하지만 백선하 교수에게 외압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 그리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는 주치의 백선하 교수에게 사망원인을 고쳐쓰라고 권고하지는 않겠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특조위는 우리의 결론은 ‘외인사’지만, 정작 사망진단서에는 백선하의 ‘고집'(?)을 존중해 ‘병사’로 내버려 두겠다고 공공을 향해 발표한 셈이다. 즉, 아무것도 정정하지 못한 채, 하다못해 사망원인을 바꾸라는 ‘권고’도 하지도 않고, 공식 기록으로 남는 사망진단서 사망원인은 ‘병사’로 놔뒀다.

2. “뇌수술은 백 교수에게 받겠지만, 사망진단서는 맡기지 않겠다”? 

화제가 됐던 이윤성 교수의 발언이다.

“내가 만일 뇌수술을 받으면 백 교수한테 가서 수술을 받겠다. 그러나 내 사망진단서를 백 교수에게 맡기지는 않겠다.”

이 발언을 보면 마치 동료 전문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의 의견에 강하게 반박하는 전문가의 의견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의 전문 분야 외적인 부분은 발언하지 않음으로써 전문가로서의 의견만 담담하게 표현한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이윤성 교수가 백선하 교수에게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면, 사망진단서를 누구에게 맡길지 판단할 필요 없이 무조건 백선하 교수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것이다. 즉, 저렇게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예로 드는 것은 (완곡한 풍자의 수사로서는 이해할 못할 바 아니지만,) 전문가의 언어가 아닌 정치적인 언어다.

지금 필요한 건 (위원장 개인의) 재치있는 말장난이 아니라 서울대를 대표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특조위 전체의 입장이 담긴 공식적 언명이다. 앞서 본 것처럼 특조위는 서울대를 대표하는 집단으로서는 그 책임을 방기했고, 다만 위원장 개인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특조위에 대한 외부 비판을 무마하는 대응을 해왔다.

2016년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위원장 이윤성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074068.html
2016년 10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위원장 이윤성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3. 전문성보다 진정성?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했음을 확인” 

이윤성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망원인이 사망진단서 작성 원칙과) 다르게 작성된 것은 분명하나 담당 교수(백선하)가 주치의로서 헌신적인 진료를 시행했으며 임상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했음을 확인했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기관인 서울대학교병원이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이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가 각각 발간한 매뉴얼을 정면으로 위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이 사망진단서가 “진정성을 가지고 작성한 것”이라며 매뉴얼도 지키지 못한 사망원인을 그대로 두겠다고 발표했다. 사망진단서는 주치의의 권한이고, 의료기관이 작성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서울대학교 병원은 전문성을 앞세우지 못하고 진정성을 앞세우는 ‘자칭 전문가 집단’이 되어버렸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