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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에세이: 넌 음주운전 vs. 넌 공갈협박

조우성 법률 에세이

“그냥 겁만 줬는데, 200만 원을 주더라고. 놀랐어.”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수 씨(23세)가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철구 씨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철구 씨가 대리운전 콜을 받고서 술 취한 손님 차를 대신 몰았는데, 손님이 아파트 입구 길가에서 차를 세우라고 하더니 자기가 몰고 가겠단다. 그런데 약속했던 대리 비용을 깎자고 요구해서 철구 씨랑 승강이를 벌였다. 돈을 다 받지 못한 철구 씨는 손님이 차에 올라 차를 운전해 가는 모습을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다음 날 손님에게 전화했다.

손님 연락처는 전날 대리 콜 신청을 받으면서 확보하고 있었다. 철구 씨는 손님에게 ‘당신이 어제 음주운전을 한 영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영상을 보내줬다. 영상을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자 겁을 먹은 손님이 만나자고 하더니 200만 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 대기업 다닌대. 차를 갖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은데 음주운전으로 형사 처분 받거나 면허 정지 받으면 회사에서 큰 문제가 될 거라면서 완전 쫄았더라고. 사실 그 정도로 겁을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엉겁결에 술 취한 운전자를 촬영하고는…

며칠 뒤 동수 씨는 자정 넘어 콜 전화 안내를 받고 구로동에 가서 술에 취한 손님으로부터 차를 넘겨받은 다음 대신 운전해서 상계동까지 갔다. 상계동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자 뒷자리 손님이 동수 씨에게 말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꺼억~. 골목으로 한참 들어가야 아파트가 나오는데 나중에 내려오려면 힘들 테니 내가 몰고 갈게요.”

동수 씨는 술 드셨는데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손님은 ‘괜찮다’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순간 동수 씨는 며칠 전 철구 씨가 해준 얘기가 퍼뜩 떠올라 몰래 휴대전화로 그 장면을 촬영했다. 그때는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이 없었지만, 술 취한 채 운전대를 잡는 손님을 보자 철구 씨의 말이 떠올라 엉겁결에 촬영했다.

다음 날 동수 씨는 촬영한 동영상을 돌려보며 고민하다가 어제 손님 전화로 조심스럽게 동영상을 첨부한 문자를 보냈다.

“어제 음주운전 하는 모습을 찍은 겁니다.”

외근 중이던 차준혁 씨(38세)는 동수 씨가 보낸 문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어라, 이놈 봐라?’ 하고 중얼거린 다음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문자를 보낸 일 자체가 문제 되는 게 아닌지 물었다.

변호사는 문자 발송 자체를 협박으로 볼 수도 있고, 만약 상대방이 돈을 요구하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나올 경우 형법상 ‘공갈죄’에 정확히 해당할 것이라 대답했다.

공갈협박을 하는 상대에게…

ROTC 장교 출신이라 자부심이 강하고, 화통한 성격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준혁 씨는 동수 씨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겁을 먹은 체하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겁이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보세요.”

동수 씨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좀…… 기분 나쁘시더라도 그냥 넘기는 편이 좋을 테니 100만 원, 아니 200만 원 정도 차비 조로 주시면 좋겠는데요.”

“아, 200만 원요? 알겠습니다. 며칠만 말미를 주세요!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동수 씨는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하고 있었다. 음주운전을 빌미로 신고할 것처럼 얘기하면서 돈을 요구했으니 변호사 설명대로 공갈죄 당첨이다!

준혁 씨는 선배 변호사를 찾아갔다.

“선배, 이런 놈은 진짜 혼 좀 나야 돼요. 녹음도 했으니 공갈죄로 고소할 수 있죠?”

“그러다가 너도 음주운전이 문제 되면 서로 피곤해질 텐데? 일을 너무 크게 만드는 거 아냐?”

“경찰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녀석이 보내준 영상만으로는 음주운전 인정되기 어렵대요. 만약 음주운전 인정돼도 제가 뭐 공무원인가요? 전국을 돌아다니는 자영업자니, 벌금 좀 나와도 괜찮아요.”

“전국을 차로 돌아다니면서 접대도 많이 하는데, 기사라도 한 명 쓰지 그래?”

“제 형편에 무슨 기삽니까? 하기야 대리운전비가 만만치 않게 들긴 합니다. 고소장 작성 좀 해주세요. 시답잖은 일 부탁드려 죄송합니다. 선배님.”

병원비 돈 때문에…

동수 씨는 준혁 씨와 만난 이후 심히 불안했지만, 목돈이 생길 듯해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동수 씨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산다. 청소 일을 하는 어머니가 최근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여동생 월급과 동수 씨 대리운전비가 수입의 전부인데, 어머니 수술비, 치료비, 약값 등을 대기가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중이라 이런 간 큰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동수 씨가 오후 늦게 어머니와 함께 병원 통원치료를 다녀오자 유치원에서 돌아온 동생 수연 씨가 동수 씨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

“오빠, 이게 뭐야?”

수연 씨는 동수 씨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아까 집에 두고 병원 다녀왔나 보다.

“전화가 하도 울려서 내가 대신 받았는데, 그러다 오빠가 딴 사람에게 보낸 문자랑 영상을 봤어. 왜 그랬어? 응?”

동수 씨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수연 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빠, 우리 없이 살아도 이러지는 말자. 요새 힘든 거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다.”

동수 씨는 머리를 감싸 안았다.

media.digest CC BY 2.0

고소장을 다 작성하고 보니…

준혁 씨는 고소장이 다 작성됐다는 선배 변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서 동수 씨에게 전화해서 한바탕 욕을 해줄 작정이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동수 씨였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영상은 다 지우고 없던 일로 할 테니 사장님도 그냥 잊어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 죄송하다고? 아직 공갈죄를 문제 삼기도 전인데 왜 이러지? 준혁 씨는 어리둥절해서 동수 씨에게 전화를 걸어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제가 실은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다가…… 아, 그냥 뭐에 씌었나 봅니다. 사장님,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울먹이는 동수 씨의 설명에 준혁 씨도 당황했다.

“나도 사실은 말이야, 당신을 공갈죄로 고소하려고 했는데, 피차 깨끗이 정리하고 갑시다. 만나서 합의서 하나 씁시다.”

동수 씨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합의서 앞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준혁은 동수 씨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동수 씨는 풀죽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나와 준혁 앞에서 설명했다. 나는 이렇게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얘기 들으셨겠지만 준혁 씨는 동수 씨를 상대로 공갈죄로 고소하려고 했습니다. 녹음한 증거도 다 있고요. 하지만 동수 씨가 이렇게 사과하니 준혁 씨도 없던 일로 하려고 합니다. 동수 씨도 더는 준혁 씨를 상대로 음주운전으로 시비 걸지 않기로 하고요. 그런 내용으로 제가 합의서 쓰겠습니다. 괜찮죠?”

동수 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합의서 문안을 만들었다. 준혁은 동수 씨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을 건넸다.

“동수 씨, 아니 동수 군이라고 해도 되겠지? 내 조카뻘이니까. 지금 대리운전만 하는 거야? 월수입이 얼마쯤 되나?”

“새벽까지 콜 열심히 받아 운전해도 회사에 내는 수수료랑 교통비, 통신비 빼면 60~70만 원 정도 됩니다.”

나는 합의서 문안을 완성한 다음 출력해 와서 두 사람 앞에 내놓았다. 준혁은 합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동수 씨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동수 군. 운전은 잘하나?”

“예. 군대에서도 운전했습니다.”

“그래? 어디에서 근무했는데?”

“예. 9사단 수송대였습니다.”

“잉? 백마부대잖아? 몇 년도에 거기 있었어?”

군대 얘기만 나오면 눈에 힘이 들어가는 준혁은 역시나 동수 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눈에 띄게 살갑게 굴었다. 그날부로 동수 씨, 아니 동수 군은 전국을 돌아다니는 판매왕 준혁의 기사로 채용되었다. 내가 준비한 합의서와 고소장은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흐뭇한 마무리였다. 나는 멋진 사나이 준혁의 사업이 대박나기를 빌어주었다.

사람과 얽힌 문제 안에는 사람이 있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20년 차 변호사로서, 수많은 분쟁을 직·간접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이에 관해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사람과 얽혀 있는 문제라면(사실 대부분 문제가 그러하다) 문제 자체가 아니라 얽혀있는 사람에 집중하자.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도 결국은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이자 남편이며, 팍팍한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의 환경은 어떠한가?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그의 아픔은 또 무엇인가? 이처럼 상대에 대한 전인격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면, 문제를 그 사람과 분리해 독립적으로 생각할 때보다 훨씬 다양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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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우성
초대필자. 변호사.

기업분쟁연구소 소장, 20년차 변호사로서 분쟁의 사전예방에 관한 컨설팅과 교육을 담당합니다. 변호사 업무 외에 법 에세이, 협상, 인문학 관련 컬럼 작성도 하고 있습니다.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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