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새누리당의 몰락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승리, 그리고 국민의당의 약진이다. 진보정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 글은 20대 총선 결과가 주요 정치인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쓴 인상비평이다. 그러므로 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치한 20대 총선 분석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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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근혜
망했다. 새누리당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다. 레임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 활성화 입법을 국회가 발목 잡는다는 오만한 인식에 국민은 ‘그럼 여소야대로 해보든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친박이 주도해 ‘말아먹은’ 선거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도 친박이다. 특히 핵심 친위부대(이른바 진박)는 대부분 생존했다. 이것은 새누리당이 이중고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포스트 박근혜를 이끌어갈 대선후보급 주자들이 모두 몰락할 상황에서, 청와대와의 대화와 균형을 이끌어갈 이른바 당내 ‘비박계’는 새누리당 내 입지가 매우 취약하다.
박근혜는 이른바 ‘친박 친위부대’라는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여소야대’ 국회와 불통하며 새누리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하는 장애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용어로 ‘애물단지’.
2. 문재인
문재인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그가 선거 전 광주에 내려가 한 약속(더민주가 호남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정계 은퇴)은 자승자박의 모양새가 됐다. 그럼에도 더민주의 실질적인 리더는 누가 뭐래도 문재인이다. 문재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상당수 후보가 당선했고, 상징적인 외부 영입 인사들(표창원, 박주민)도 무난하게 당선했다. 무엇보다 문재인이 없는 더민주를 김종인이 대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재인은 ‘조직’과 ‘대중'(인기)이라는 칼과 방패를 갖췄다. 앞으로 다가올 전당대회에서 김종인이라는 ‘외부 영입 전문 CEO’를 어떻게 대체하고, 조직을 쇄신할지, 또 자승자박의 약속을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문재인에게 남겨진 숙제다. 그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3. 안철수
20대 총선 최대의 승리자는 누가 뭐래도 안철수다. 야권분열의 원흉에서 여소야대 3당 체제의 캐스팅보터로 부활했다. 이것은 과감한 정치적 판단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거듭된 무리수와 더민주의 지지부진한 대응 역량에 따른 반사이익인가.
어느 쪽이든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 체제에 지친 ‘중간층’의 존재를 표(특히 비례대표 정당 득표)로 실증했고, 운신의 폭은 넓어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지적하듯, 호남을 제외하고 전멸하다시피 한 총선 성적표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현실적인 한계다.
더불어 캐스팅보터로서 ‘중간층’을 지지기반으로 두는 정치적 정체성과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해야 하는 야당의 역할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과 사안별 판단력이 다시 한 번 무대에 선 안철수의 진짜 정치력을 시험하지 않을까?
4. 유승민
개인으로선 승리했지만, 당내에 남아 경선을 거쳐 살아남아 당선한 이혜훈 등을 제외하고, ‘유승민계’ 대부분이 낙선했다. 새누리 탈당파의 바람은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하지만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원인(특히 박근혜와 이한구)의 정반대 쪽에 선, 새누리당을 쇄신할 유일한 ‘정당성’을 확보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새누리당 복당과 정치적 입지를 새누리당이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김종인
총선 기간 실질적인 권한을 (독단적으로) 행사해 ‘차르'(tsar)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여전히 김종인의 정체성은 ‘구원투수’다. 문재인은 한시적으로 ‘외부’인사를 불러와 총선이라는 특별한 이벤트의 ‘관리’를 맡긴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 ‘총선 이후'(대선)를 기대하는 더민주 당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있더라도 소수다. 김종인에게는 문재인에게는 있는 조직과 대중, 이 둘 모두가 없다. 앞으로 김종인의 입지는 그 한계가 자명할 것이다.
무엇보다 더민주가 승리한 것은 김종인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와 새누리당 때문이다. 일례로 비례대표 정당 투표에서 국민의당에 밀린 건, 김종인의 총선 전략(중간층 공략)이 유효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이다.
6. 오세훈, 김문수, 안대희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대선후보 경쟁에선 완전히 ‘컷오프’ 됐다.
7. 표창원, 박주민
문재인 영입인사로 전략 공천된 표창원(프로파일러, 방송인)과 박주민(민변, 이른바 ‘세월호’ 변호사)은, 개인적으로, 20대 국회에서 가장 주목하는 정치 신인이다. 표창원이 대중적 호감을 바탕으로 더민주의 외연을 늘리고, 새누리당 다수파 국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받은 세월호의 정치적 함의를 박주민이 다시 길어 올릴 수 있다면, 더민주의 쇄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8. 김무성
당 대표로서, 또 ‘옥새 파동’의 장본인으로서 총선 패배의 정치적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김무성은, 유승민의 복당 여부와 그 정치적 역량이라는 ‘변수’에 의존해야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박근혜와 더불어 새누리당의 실패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대선 후보는 고사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어렵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친박 중심 공천으로 당내 세력은 급속히 축소했고, (탈당파) 비박의 생존율도 낮은 상황에서 운신의 폭은 넓지 않을 것 같다.
9. 심상정, 노회찬
지역구에서 생존한 유일한 ‘진보정치인’은 이제 심상정과 노회찬뿐이다. 양당체제가 3당 체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이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현재의 소선거구제도 하에서 진보정당은 그 세력을 확장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만, 호남을 제외한 지역구에서는 철저히 배제당했지만, 정당투표에서는 제2당으로 올라선 국민의당이 ‘선거제도 개혁’의 파트너십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 있는 돌파구를 20대 국회에서 마련해볼 기회는 생겼다.
10. 은수미
필리버스터의 상징 은수미는 결국, 지역구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노동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아 비례로 국회 입성한 그에게 지역구는 혹독했다. 패거리와 당리당략만 남은 한국 정치판에서 은수미의 열정적인 연설과 눈물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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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거도 정치도 세상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물’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 인물의 철학이 어떤 정책으로 어떤 법안으로 만들어지는지는 국민도 언론도 (상대적으로) 무신경하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그 인물의 철학을 평가하고, 또 평가받는 20대 국회가 되길 바라본다.
기사 잘 보고 갑니다-
단지, 옥쇄 -> 옥새 입니다..
키미 님께
이런, 어이 없는 오타를…;; 본문은 정정했습니다.
꼼꼼한 조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
글 잘 봤습니다
선거 기간이라서 그런지 댓글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제 컴퓨터 환경이 오래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선거와 관계없는 이전 글들도 그랬기에 의아했지만 다시 댓글이 돌아왔군요!!
아무튼 오랫만에 들렀지만 여전히 좋은 글과 정신차리게 해주는 세상이야기를 들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후~ 또 이렇게 선거는 끝났지만 계속 시민들에게 다가오는 정치문화가 자리잡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