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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지만, 경선의 목표는 후보를 추려내는 데 있다. 각 당에서는 무수한 후보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후보, 이길 후보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극적이면서도 동시에 깔끔하게 이루어지느냐가 흥행의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공화당은 극적이기는 했지만, 깔끔한 경선과는 거리가 멀고, 민주당은 그 반대에 가깝다. 전통적인 대결을 보여주는 경선이지만, 손에 땀을 쥐는 볼거리는 공화당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3월 중반을 지나면서 그러한 혼전 양상도 정리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트럼프-크루즈를 막아낼 후보 둘(케이식, 루비오)이 모두 승자독식을 하는 대형 주(오하이오, 플로리다) 출신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으려면 자기 주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오하이오 주지사 케이식은 자신의 주에서 승리했고, 플로리다 상원의원 루비오는 자신의 주에서 트럼프에 패배했다. 그리고 곧 캠페인 중단을 선언했다.

DonkeyHotey, Marco Rubio - Portrait, CC BY https://flic.kr/p/vVS1fD
캠페인 중단을 선언한 루비오 (출처: DonkeyHotey, “Marco Rubio – Portrait”, CC BY)

작전명: 케이식

2015년 말부터 루비오는 공화당 기축세력의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끝내 신뢰를 얻어내는 데 실패하고 그 바톤을 케이식에게 넘기게 되었다. 만약 케이식이 “작전대로” 성공할 수 있다면 이런 식이다:

루비오를 지지하던 기축세력의 표가 앞으로 케이식에게 대거 모여들고, 그 여세를 몰아 남은 주 경선에서 대의원 사냥에 나선다. 물론 트럼프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목표는 트럼프가 대의원의 과반수를 가져가는 걸 저지하는 데 있다. 물론 이 방법이 통하려면 크루즈도 분발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면 중재전당대회를 열어 자유롭게 풀려나는 대의원들을 몰아 반(反)트럼프 전선을 구축하고 기축세력이 지지하는, 힐러리를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다.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https://flic.kr/p/kvdqFN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중재전당대회가 되면 굳이 현재 캠페인 중인 후보들 중에서 뽑아야 할 필요도 없다. 가령, 하원의장에서 물러난 존 베이너는 현재 하원의장인 폴 라이언을 그렇게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후보로 추대하자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물론 라이언 측은 곧바로 그럴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이미 밋 롬니의 러닝메이트로 2012년 대선에 나왔던 라이언이 대권에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그런 의사를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신중함이 폴 라이언을 대선 후보감으로 보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은 베이너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트럼프에 대한 혐오보다는 크루즈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고 본다는 사실이다. 베이너는 트럼프와 친구 사이이지만, 크루즈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인물이다. 크루즈는 의회를 볼모로 잡고 의장의 힘을 무력화시킨 “잭에스(jackass)”이자 “악마(Lucifer)”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녔고, 틀린 말은 아니다.

존 베이너 (출처: Medill DC, Rep. John Boehner, CC BY) https://flic.kr/p/bf2kBB
존 베이너 (출처: Medill DC, “Rep. John Boehner”, CC BY)

물론 중재전당대회의 가능성은 작고,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루비오의 지지자들도 많지 않았고,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케이식에게 몰려간다는 보장도 없다. 케이식을 민주당과 공화당 경계선쯤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크루즈가 두렵다고 과연 케이식을 선택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앞으로 다가올 뉴저지, 애리조나, 델라웨어, 사우스다코타, 몬태나 모두 트럼프를 뽑아줄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작년 말, 아니 올해 초까지만 해도 3월 중순이면 다른 후보들 다 떨어져 나가고 케이식만 남아서 트럼프-크루즈를 상대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갈랜드 카드: 오바마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Gage Skidmore, Hillary Cliton, CC BY SA https://flic.kr/p/Cvim7G

힐러리 클린턴(사진)은 지난 화요일의 프라이머리를 사실상 휩쓸었다. 그를 통한 대의원 확보도 엄청났지만, 특히 오하이오의 승리는 샌더스에게는 대형 펀치였다. 샌더스에게 유리하다는 곳에서도 승리하는 모습을 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드디어 “이제 준비운동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으로 언론은 해석한다.

샌더스와의 대결을 통해 경선 흥행을 하는 것도 좋고, 맷집도 키우고 토론실력을 향상하는 것도 좋지만, 트럼프가 괴물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 어서 후보를 결정해서 트럼프를 타겟으로 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결정한 듯한 모습이다.

화요일 프라이머리 결과를 확인한 다음 날 백악관은 스칼리아 대법관의 공석을 채울 후보를 발표했다.

지난 글에도 썼듯, 오바마에게는 몇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옵션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여성-소수민족-진보 판사를 임명해서 공화당과 정면 대결을 하고, 그런 대결을 민주당 후보를 중심으로 표를 결집하는 구심점으로 만드는 방법
  2. 공화당이 거부하기 힘든 온건한 (특히 과거에 공화당이 청문회에서 호감을 보였던) 반대할 아무런 명분이 없는 후보를 내세워서 국민에게 “공화당이 정쟁을 위한 정쟁을 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압박을 하는 것.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미 모든 가능성을 전부 테이블 위에 두고 후보들을 접촉했다. 그 과정에서 물망에 올랐던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 (흑인 여성)과 브라이언 산도발 네바다 주지사 (히스패닉), 스리칸스 스리니바산 판사 (인도계) 등은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릭 갈랜드

오바마는 온건진보에 속하고, 백인 남성인 메릭 갈랜드 판사(Merrick Brian Garland, 1952년생, 사진)를 선택했다. 갈랜드는 오바마가 공화당에 ‘나도 많이 양보했다’는 카드다. 첫째, 공화당 주장대로 다음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면 힐러리 클린턴이 초반 강공으로 훨씬 더 진보적인 판사를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대개 50대의 판사를 임명해서 최대 30년까지 대통령 자신의 레거시를 지켜줄 사람을 고르는 관행에서 벗어나 60대 판사를 선택했다. 즉, 한 20년 정도가 지나면 다시 공석이 될 후보를 택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축소한 것이다.

이제 공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물론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여전히 청문회도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앞으로 회기 중 휴식에 들어가는 시점이라 물밑작업이 벌일 기회가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클린턴 대결구도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갈랜드 카드를 내놓은 것은 (내 개인적으로는) 참 오바마다운 행동으로 보인다. 큰 욕심을 내거나 모험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은 천천히 압박하면서 실리도 챙기는 것이다. 자신의 유산을 보장할 수 있는 기한을 스스로 줄이는 희생도 각오한 것은 물론이다. 지난 7년여를 돌아보면 오바마의 이런 카드는 짜릿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작은 손해를 보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큰 틀에서 승리를 안겨주었다.

USA-CHINA/ by lednichenkoolga (CC BY 2.0)
USA-CHINA/ by lednichenkoolga (CC BY 2.0)

갈랜드 카드는 영화 [대부]의 비토 꼴리오네가 했던 말과 같다:

“그녀석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한을 할 생각이야.”
(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오바마의 갈랜드 카드는 공화당 입장에선 거절해서 좋을 리가 없는 제안이다. 거절하면 내년에 민주당에 큰 승리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받아들이려면 이제까지 자신들이 외쳤던 말을 다 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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