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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사에서도 제목은 중요하다. 보도국에서도 그랬고 신문사에서도 그랬다. 초기의 신문을 살펴보면 제목은 기사를 요약한 문장에 가깝다. 처음 나온 독립신문이 4페이지였고 일제강점기의 조선일보가 6~8페이지 선이어서 기사를 다 읽어도 그리 많지가 않았다. 요즘 신문은 30여 페이지가 되고 섹션 면까지 하면 50페이지를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 제목만 보고 관심이 가지 않으면 굳이 기사를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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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기사 송고량 = 1천 건 이상

대형 방송사에서는 하루에 기사 수백 건이 나온다. 신문사는 지면 기준으로 100여 개 수준이다. 두 회사의 기자 수가 다르고 방송과 신문의 차이가 있어 일률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대략 이렇다. 통신사의 기사를 받아쓰는 기사를 제외하면 이 숫자는 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기자가 몇 명 되지도 않는 이 회사에서 나오는 기사는 하루 1천 건을 상회한다. 그 기사를 다 읽고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부 관리자조차 그 기사를 다 읽지 않는다. 직원들도 독자가 이 모든 기사를 전부 읽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몇 개라도 대형 포털에서 이 회사의 기사를 클릭해 들어오기를 바라며 물량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독자가 기사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기사 유입을 유도할까? 대형 포털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클릭하면 관련 뉴스가 쭉 나온다. 그 상태에서 보이는 것은 제목과 작은 썸네일, 기사 몇 줄 정도다. 썸네일은 선정적인 기사일 경우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찢어진 드레스 같은 기사의 사진 말이다. 하지만 선정적인 기사가 아니라면 기사가 두어 줄 검색어에 굵은 표시가 되어 나온 것만 가지고 기사 수준을 파악할 수는 없다. 포털의 기사 검색은 이 기사에 특정 검색어가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네티즌에게 클릭을 직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요소는 기사 제목이다. 제목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하게 표절하지 않는 제목

표절이 일인 어뷰징 담당자들도 기사 제목만은 표절하지 않는다. 제목이 같으면 포털에 걸러진다는 이유도 있지만 최대한 자극적인 제목을 뽑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기사 대부분을 베껴야 하는 어뷰징 담당자가 그나마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네티즌은 제목을 클릭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것을 기대하겠지만 언론사 입장에서는 제목을 클릭하게 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독자가 무엇을 보고 나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가 낚였다고 생각할지, 좋은 기사를 잘 썼다고 생각할지는 나중 문제다.

어뷰징 업체 입장에서는 네티즌이 트래픽만 올려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 어뷰징 담당자는 같은 텍스트를 갖고도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선택해 제목을 작성한다. 제목이 기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는 역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제목을 보고 놀라서 기사를 클릭한 네티즌이 막상 내용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른다. 이른바 낚시 기사다. 우연히 낚시 기사가 나온 것이 아니다. 작성자의 목적 자체가 낚시다.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고품질의 기사를 쓰는 게 쉬울까, 별것 아닌 기사를 제목만 잘 써서 중요한 내용인 양 포장하는 게 쉬울까? 보통은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트래픽만 올리면 된다. 그러기 위해 기사는 한 건이라도 더 써야 하고 제목은 최대한 자극적으로 달아 타사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한다. 인터넷 기반 언론사들이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달기 위해 애쓰고 정보 소비자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중무장한 언론 환경에 노출된다.

일어날 리 없는 자정작용

자정 작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다를 것 없는 두 기사를 올려 하나는 기사를 대표할 수 있는 주제문을 선정해 달고, 다른 하나는 기사의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골라 그 이야기만 부각한 선정적인 제목을 단다면,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의 조회수가 훨씬 높게 나온다. 수차례 내부적인 데이터를 누적한 결과다.

말 몇 마디만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는데 어느 언론사가 먼저 손을 들고 나서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소모적인 경쟁을 그만두자고 할까. 자극 경쟁은 서로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지만 누구도 이 악순환을 포기하지 않는다. 상당수 기사의 제목에 충격이라는 단어가 삽입된 것도 그 탓이다. 이 사회에 충격받을 일이 그렇게 많았으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없거나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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