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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꼭 배워야 하나요?” 

영어교육, 특히 초등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성인은 당연히 배워야 할 것으로 간주하지만, 나이가 어린 학생이라면 답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 질문에 관해 제 생각을 정리합니다.

문법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럿이지만 문법교육의 필요 여부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개념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형법으로서의 문법’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만드는 마법 상자’로서의 문법입니다.

알파벳 A a

‘형법’으로서의 문법

형법(刑法)으로서의 문법은 법규를 제시하고 이를 어기는 사람을 처벌합니다. 언어라는 세계에는 엄격한 법칙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문법입니다. 다양한 문법규칙은 형법 세부 조항들이고, 이를 어기는 일은 범법행위가 됩니다. 문법은 감시하고, 배제하고, 처벌합니다. 문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언어라는 세계의 시민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처음부터 완벽한 문법을 구사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에 해당합니다. 언어는 오랜 기간 서서히 성장하고 발달합니다. 몇 가지 사항을 열심히 암기한다고 해서 ‘짠~’하고 문법이 완성될 수는 없죠.

피겨 스케이팅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프로선수의 점프를 요구하거나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학생에게 정교한 연주 기술을 요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영문법의 경우엔 처음부터 정확성을 요구합니다. 문법서들은 ‘자 이제 규칙을 배웠으니 올바르게 쓰는지 볼까? 자 얼마나 틀리는지 한번 보자.’라고 속삭이죠. 적지 않은 교사들은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가르칩니다.

범죄자가 될까봐 아이들 입을 다물게 하는 영문법 교육?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입을 다물게 하는 영문법 교육?

이 상황에서 학생들은 ‘잠재적 범법자’가 됩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틀릴까 봐’ 또 ‘놀림당할까 봐’ 입을 닫습니다. 글을 써도 정확성이 늘 걱정입니다. 결국 문법을 배우면서 언어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발견하기보다는 ‘나는 늘 틀리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그릇된 정체성을 키우기 일쑤입니다.

‘마법 상자’로서의 문법

이와는 반대 관점이 존재합니다. 바로 ‘의미를 만드는 마법 상자’로서의 문법입니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문법은 다양한 의미를 끝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몇 가지 도구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생각을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주장을 펼칠 수도,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약속도 고백도, 유혹도 심지어는 배신도 할 수 있습니다. 문법은 그야말로 마법 도구 상자인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통적인 문법에서 영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3형식 문장은 대개 아래와 같이 설명됩니다.

[box type=”info”]

  • S + V + O
  • 주어 + 동사 + 목적어
  • 주어(행동하는 사람) + 동사(행동을 나타내는 말) + 목적어(행동의 대상) 

[/box]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서 압박을 느끼지 않을 학생들도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문법 용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중학교 때 영어가 싫어졌다는 학생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설명에는 구체적인 의미가 빠져 있습니다. 구조만 달랑 있는 겁니다. 마치 뼈만 앙상한 엑스레이(X-ray) 사진을 보는 것 같달까요.

영어 문법 교육은 자칫 영어교육을 뼈만 앙상한 엑스레이 사진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영어 문법 교육은 자칫 영어교육을 뼈만 앙상한 엑스레이 사진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이 구문을 가르칠 때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자자, 오늘은 영어로 거짓말하는 사람을 잡아내 볼 거예요. 우연히 철민이가 동철이를 미는 걸 봤다고 해봐요. 철민이가, 동철이를, 밀었다. 그럼 ‘push’라는 동사를 써서 ‘철민 pushed 동철’이라고 쓰면 됩니다. 철민이가-밀었다-동철이를. 영어에서는 이 순서죠.

근데 이걸 순서를 바꿔 봐요. ‘동철 pushed 철민’ 이럼 무슨 뜻이 될까요? 맞아요. ‘동철이가 철민이를 밀었다’가 되죠. 그럼 이건? 거짓말이죠. 실제 있었던 일과 완전히 반대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순서를 ‘샤샤샥~’ 바꾸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 다음에 누군가가 이렇게 순서를 ‘샤샤샥~’ 바꾸면 ‘거짓말이네’ 할 수 있겠죠?

이런 문장 형식을 가지고 거짓말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좀더 멋진 일도 가능하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고요? 예를 들어 볼게요.

영어로 ‘hit’이라는 말이 있어요. ‘들이 받다’, ‘충돌하다’ 이런 의미예요. 그럼 ‘자전거 하나가 벽을 (들이)받았다’는 A bicycle hit the wall.’이 되죠. 자전거를 잘 못 타면 이런 일이 벌어지니 조심해야겠죠?

근데 여러분, 벽이 움직이는 거 봤어요? 맞아요. 절대 안 움직이죠. 근데 만약 ‘The wall hit a bicycle.’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벽이 자전거를 받았다’가 되어버리죠?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에요. 벽이 자전거를 받다니요.

근데 생각해 보면 이게 상상의 세계에서는 가능하잖아요. 밤이면 몰래 움직이는 벽이 있어요. 맨날 같은 자리에 꼼짝없이 있어야만 하는 벽이 너무 답답해서 가끔 기지개를 켜는 거예요. 으쌰으쌰. 팔도 쭉 펴고 허리도 굽혀 보고 다리도 훠이 훠이 움직이고. 아무도 모르는 야심한 밤에만 일어나는 일이예요.

그런데 어느 날은 조심성 없이 막 움직이다가 옆에 서 있는 자전거 하나를 받아버린 거죠. 이런 상황이라면 ‘The wall hit a bicycle.’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상상 속에서 말이죠. 다음 날 자전거 주인은 어리둥절할 거예요. ‘벽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러면서요.”

Steve Wilson, CC BY https://flic.kr/p/6yBrES
Steve Wilson, CC BY

이상의 예는 주어-동사-목적어 구문을 가르치되 구조에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짓말도 할 수 있고, 상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도 있는 거죠. 물론 이 형식 하나만 가지고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주어 + 동사 + 목적어’라는 체계가 ‘지켜야 할 법칙’이라기 보다는 “사실을 설명하거나 왜곡할 수도, 상상의 세계를 만들 수도 있는 마법의 도구”로 제시된다는 점입니다.

문법을 꼭 배워야 할까요? 

그럼 맨 처음 제기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문법을 꼭 배워야 할까요?

저는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상황에서 문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형법으로서의 문법’은 학생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고, 언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생산하는 마법 상자’로서의 문법은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문법교육을 통해 ‘언어는 또 하나의 세계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문법을 배워야 말아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는가’를 고민할 때입니다. 수십 년간 내려온 ‘법칙 제시 → 문제 풀이 → 채점 → 자괴감’의 고리를 끊고, 의미의 세계를 만드는 다양한 도구로서의 문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정교하게 말하는 법을 가졌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이를 가르칠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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