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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선다는 것.

연주자는 무대에서 스스로 발가벗겨짐을 느낀다. 연주라는 것은 그 자체로 내밀한 나 자신과의 만남이자 표출이니까. 극도의 나르시시즘으로 관철된 그 내밀함을 진솔한 고백으로 보호해주고 멋지게 포장해주는 건 다름 아닌 무대라는 공간이다.

무대는 연주자에게만 온전히 허락된 자유의 장소이고, 연주자만이 누빌 수 있는 권력의 장소이며 연주자를 감싸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나르시시즘을 망설임 없이 분출할 동안 관객은 관객석에 붙들린 채로 예술가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대와 객석은 수직적이다. 그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기 위해 관객 역시 자신의 에너지를 무대로 보내려 한다. 무대는 권위적이고 능동적이다. 객석은 수동적이고 억압적이다. 그러한 무대와 관객석이라는 장소에 연주자도 관객도 다른 방식으로 박제가 된다. 서로가 각자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 서로 경계를 허물어 가는 공연.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얼굴의 모공까지 보이는 거리에서, 관객에게 둘러싸여 하는 공연.

그런 공연은 서로에게 어떤 느낌일까.

소파사운즈 서울

7월의 어느 무더운 평일 저녁, 찌는 듯한 무더위에 거리도 한산했던 그 날. 공연이 아닌 주거만을 목적으로 지어진 사각의 공간에서 공연은 열렸다. 공연 이름은 ‘Private House Concert Sofar (Songs From a room) Sounds.’

소파사운즈

공연 당일까지 연주자 비공개와 공연장 비공개(2일 전 공개함), 또한 공연장에 맞춰 수용할 수 있는 관객 수가 달라 인원 수에 맞춰 초대장을 발송하는 ‘은밀한’ 공연이다. 연주자에 대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초대받고 오는 걸까 하는 호기심까지 더해져 한껏 공연에 관한 기대감은 증폭됐다.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표정을 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여느 공연장에서 볼 수 없었던 진풍경(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을 뒤로 한 채 공연이 시작되었다.

소파사운즈

‘Dolfish Music’ ‘뷰티핸섬’ ‘피터팬 컴플렉스’

저 멀리 클리블랜드에서 왔다는 이 형제들은 덥수룩한 외모 속에 감추어진 미성의 목소리를 뽐내며 관객 참여와 호응을 자연스레 유도하며 ‘내 집 안방에서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는 듯한 산뜻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소파사운즈 소파사운즈

그들을 필두로, 이름처럼 예쁘고 잘 생긴 멤버로 가득했던 ‘뷰티핸섬’. 소파사운즈 무대는 두 번째라는 이 팀은 리드 보컬의 독특한 말투와 발성, 유머러스하면서도 여유 있는 표정 변화와 무대 매너로 처음 보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보컬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하는데, 여러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관객에게 어필했다는 후문.

소파사운즈 소파사운즈

그렇게 처음 보는 팀들이지만 공연에 만족도는 높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갈 즈음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피터팬 컴플렉스’였다. 전 공연들과는 조금 달리 잔잔하게 공연을 정리하는 분위기였지만, 스스로 온갖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연애의 흐름처럼, 나지막이 노래하고, 이야기 들려주던 그들은 결코 춤을 추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결국 현란한 춤을 선보이며 심지어 관객의 핸드폰을 가져가 노래 부르는, 이른바 ‘셀피’(Selfie, 자가촬영사진) 공연까지 하며 관객 만족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소파사운즈 소파사운즈

이렇게 다른 듯 비슷한 사운드와 분위기의 음악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설렘의 표정은 열띤 감동의 표정으로 변해갔다. 주거 공간은 공연장으로 거듭나 연주자와 관객의 가까운 거리감만큼이나 연주자의 열정을 관객은 그대로 빨아들였고, 다시 관객이 연주자들에게 그 공감을 돌려주는 순환과 소통의 과정이 일어났다. 그 에너지로 가득 찬 공연이 끝날 무렵엔 모두가 아쉬워서 발을 떼지 못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멋진 공연들이 주는 만족감과 반비례하게 마음 한편이 불편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소파사운즈

위화감

공연 내내 자유로운 소통을 표방했지만, 시작부터 자유로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혹은 어울릴 수 없는 묘한 위화감이 있었다.

예술가와 관객과의 허물없는 소통과 홍보를 강조했지만, 공연 자체는 시작부터 한정적으로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었다. 끝까지 공개를 거부했던 연주자는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답답함과 ‘기왕 왔으니 들을 수밖에!’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함께 안겨주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공연이 좋았기 때문에 다행이다는 느낌이랄까.)

공연하는 뮤지션들은 철저히 짜인 셋 리스트를 따라서 정해진 곡들만 공연했다. 앞선 두 팀을 향한 앙코르는 거부당했고, 동선과 세팅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진행으로 인해 집중력은 저하되고 지쳐갔다. 그나마 마지막 공연 팀이었던 피터팬 컴플렉스가 앙코르를 받아주었다는 것이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유일하게 앙코르를 받아준 피터팬
유일하게 앙코르를 받아준 피터팬 컴플렉스는 나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단체여행 온 관광객처럼 

정해진 곡들만 연주한 뒤 앙코르를 외치는 관객들에게 향후 머지않은 공연을 홍보하며 “그곳에 오시면 맘껏 들으실 수 있어요.”‘라고 하는 것은 마치 1분 미리 듣기를 한 심정이었으니(…) 비단 그뿐만 아니다. 공연 내내 계속하여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르길 강조하고, 페이스북 댓글로 사연을 올려달라 부탁하는 진행자를 보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소셜서비스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인지 잠시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다.

마치 여행사에서 짜인 계획에 따라 관광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과장일까. 여행지의 문물과 음식 자체는 정말 훌륭하고 마음에 들었으나 관광객에게 한치의 자유도 허용치 않는 억압적 분위기가 매번 피로감만을 안겨주며 여행의 느낌까지 퇴색되게 하는 그런 관광 말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여행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련함을 배가시키며 애잔함마저 생길지니.

하지만 이런저런 답답함보다 더 앞선 감정은 단체 여행의 피로도로 인해 희석되어 버린 여행지의 보석 같은 매력에 대한 애잔함 같은 안타까움이었는데, 그 안타까움의 방향은 무대에서 아낌없이 열정을 분출한 아티스트들을 향해 있었다. 관객과 가까워서 좋았다는 뷰티핸섬, 바다 건너 미국에서부터 소파 커뮤니티를 통해 온 돌피 뮤직, 앞으로 버스킹(busking; 거리 공연)을 시도하겠다고 말하며 관객과 대화하듯 공연을 한 피터팬 컴플렉스.

이렇게 만족스러웠던 공연이 조금(?) 서툴렀던 공연 진행 방식으로 인해 그 감동은 희석되었고, 공연이 좋았던만큼 답답함은 더 커졌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었으면 좋았을까.

소파사운즈

수줍은 관객 마음 좀 더 귀 기울인다면 

페이스북 친구가 된다고 하여 정말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듯, 단순히 신발을 벗고 함께 마룻바닥을 누빈다고 하여 자유로운 공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여러분 이거 해주세요.’
  • ‘왜 안 하세요’
  • ‘나를 따르라’

그 의도는 분명 권유였겠지만, 그런 권유도 계속되면 부담으로 다가온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낯설어하는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권유하는 것은 좋으나 수줍어하는 관객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조심스레 접근해 관객 반응을 기다려보고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소파사운즈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가진 사람들일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들면서 자발적 호응과 감동을 끌어내는 것. 그런 방법을 고민하고 개선한다면 다음 소파사운즈는 훨씬 더 편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와서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터놓고 즐기며 끝난 후에도 공연의 여운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이제 9회째를 맞이해 두 자리 회차로 넘어가는 소파사운즈가 ‘프라이빗 하우스 콘서트’라는 모토에 걸맞게 또 찾고 싶은 매력적인 여행지가 될 것 같다.

소파사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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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소규모 공연이 주는 즐거움은 그 밴드가 주는 경험을 거의 온전히 나 혼자만을 위해 사유화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하지만 그 반대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익명성이라는 자유가 사라지고 공연의 일부로서 동참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됩니다. 나와 내 주변 관객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밴드에게 피드백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주최측이 취한 행동도 일정 부분 공연을 한 밴드들로부터 나온 “관객들이 너무 수동적이야. 그래서 재미가 없어” 등의 피드백에 기초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관객과의 직접적 의사소통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주최측의 실수도 있었지만 관객들도 이런 공연에 가려면 공연의 일부로써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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