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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속 태극기: 태극기 소각 청년 체포에 부쳐

지난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태운 청년이 어젯밤(2015년 5월 29일)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국기 소각에 관한 두 개의 판결

“미국에서 미국인이 성조기를 태우면 죄가 아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이 성조기를 태우면 죄가 된다.”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비슷한 시기(1984년 미국, 1982년 한국)에 똑같은 행위(성조기 소각)를 했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성조기를 태운 미국 국민이 죄가 없다고 판단했고, 한국 대법원은 성조기를 태운 한국 국민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미국: 

1984년 텍사스 주 댈러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성조기를 불태운 시위자. 텍사스 주 검찰은 이 시위자를 기소했고, 텍사스 주 법원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의 행사로 판단, 미 연방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성조기 소각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피고인들이 당초부터 시위의 성격을 반미, 반독재 시위로 규정하여 반미투쟁의 상징으로 시위 도중에 성조기를 소각하는 한편 (…중략…) 피고인들의 행위는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우리 사회경제 체제를 미.일등 제국주의의 식민지 내지 매판체제 또는 종속적 지배관계로 허위선전하여 반미활동을 책동하고 있는 북한공산집단을 이롭게 한 것이라 볼 수 있고, 피고인들의 지식 정도로 보아 피고인들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반국가 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을 이롭게 하는 내용이라는 것쯤은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을 적용함이 정당하다.”

– 대법원 1983. 2. 8. 선고 82도2655 판결

쓰레기통 속 태극기

태극기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야간 유세 현장 인근 쓰레기통에서 담뱃재와 함께 버려진 태극기 (2012년 12월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 앞,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위에 ‘예시’한 사진에는 2012년 12월 11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야간 유세 현장 인근의 쓰레기통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담뱃재와 함께 쓰레기통에서 뒹굴고 있는 태극기가 보입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소지해 온 태극기일 것으로 넉넉하게 추정합니다.

하지만 이 모습은 그리 특별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시’라고 썼습니다. 왜냐하면,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태극기는 소위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 집회장에서는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수단체의 집회 현장에서만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언론의 분노 vs. 언론의 침묵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를 훼손한 청년을 조선일보은 1면 헤드라인으로 실었습니다.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에서 기사와 칼럼으로 대서특필했습니다.

2015년  4월 20일 자 조선일보 1면

2015년 4월 20일 자 조선일보 1면

“세월호를 빙자해 국기를 뒤흔드는 단골 시위세력의 대한민국 모독 행위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 2015년 4월 20일 자 동아일보 사설.

“정부에 반대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다. 세월호 추모집회가 갈수록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조짐이다”
– 2015년 4월 20일 자 중앙일보 사설.

“이 정도면 ‘반(反)대한민국’ 수준이다. 7년 전 괴담을 앞세워 이명박 정부를 흔들던 ‘광우병 광풍’을 상기시킬 정도”
– 2015년 4월 20일 자 문화일보 사설.

세월호 집회 현장의 국기 훼손에 대해선 이렇게 분노했던 언론이 ‘쓰레기통 속 태극기’에 대해서 “대한민국 모독 행위”라거나,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조짐”이라거나, “반(反)대한민국 수준”이라고 보도한 사실을 접한 바 없습니다. 제가 과문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보도를 알고 계신 독자가 계시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정치인의 분노 vs. 정치인의 침묵 

언론뿐만 아닙니다. 태극기 불태운 청년에  대해 여당 의원과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분노를 표했습니다.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대한민국을 불태운 것이다.”
–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엄정히 처벌할 것을 촉구한다.”
–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국의 국기를 불태우는 것은 살아있는 부모를 불태우는 거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철저히 조사하겠다.”
– 황교안 법무부 장관.

새누리당 의원들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총리 후보자)에게 묻습니다. 똑같은 논리로, 태극기를 쓰레기통 속에 처박은 것은 대한민국을 쓰레기통 속에 처박은 것 아닙니까? 왜 그때는 침묵하셨습니까? 태극기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은 살아 있는 부모를 쓰레기에 처박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닙니까? 왜 그때는 가만히 계셨습니까? 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나서지 않으셨습니까?

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지 않아 모르셨습니까? 지금이라도 이렇게 알려드립니다. 이 기사를 읽는 관계자, 그 지인이라도 위 김진태 의원, 유승민 의원, 이군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그리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쓰레기통 속 태극기에 대해선 어떤 말씀을 하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경찰 검찰의 집념 vs. 경찰 검찰의 직무유기

그리고 끝으로 경찰과 검찰에 묻습니다. 한 달이 훨씬 넘는 추적을 통해 기어코 청년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은 집회 당시 채증한 사진과 영상 자료,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끝에 전날 어머니 집 인근에 있던 김씨를 체포하고 용산구에 있는 김씨 집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경찰, 세월호 집회서 태극기 태운 20대 남성 체포 (2015년 5월 30일)

왜 이런 집념을 ‘쓰레기통 속 태극기’에는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쓰레기통 속 태극기는 국기 훼손이 아닙니까? 이것은 국기모독이 아닙니까? 채증 사진과 영상 자료가 부족합니까? 폐쇄회로 TV를 분석할 인력이 없으십니까? 같은 국기 훼손 사안이라면, 그렇다면 경찰과 검찰은 적극적으로 직무를 유기한 것은 아닙니까?

‘표현의 자유’ 좌우할 것 없는 모두의 권리

정치적 의사를 맘껏 표시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민주주의의 요체입니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그 중핵입니다.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시가 가능해야 그 공동체는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끄럽더라도 싸우고, 토론하며, 쟁명해야 더 밝고, 더 살맛 나는 나라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저 얻어진 자유와 권리가 아닙니다. 매 맞아가며 피 흘려 가며 역사라는 거대하게 숨쉬는 그 현장 속에서 획득한 국민의 권리입니다. 이 권리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나와 너가 따로 없으며, 여와 야, 좌와 우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는 모두의 권리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태극기 소각 사건은 그 정치적 의사표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2012년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유세장에서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숱하게 벌어진 ‘태극기 훼손’ 행위, 쓰레기통 속 태극기에 대한 언론 그리고 정치인과 정부의 침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직무유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공안검사 출신의 법무부 장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 태운 청년이 체포됐습니다. 이는 국가의 존엄을 확인하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입니까? 아니면 민주주의의 중핵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권력의 남용입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될 것이 분명한 ‘쓰레기통 속 태극기’는 어찌해야 할까요? 끈질긴 집념으로 추적해 모두 잡아 체포하고, 재판에 부쳐 처벌해야 할까요? 그 뿌리까지 발본색원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태극기 쓰레기통

대리인의 전언과 압수수색 상황 일문일답 등

청년 대리인(정민영 변호사)과 전화 통화: 1차 (29일 밤, 30일 새벽) 

– 2015년 5월 30일 오전 0시경 통화.

1. 지난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1주년 추모 집회 현장에서 ‘태극기 태운 청년’이 조금 전(5월 29일 늦은 밤)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청년의 대리인(변호사)으로부터 전화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2. 현재 청년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대리인은 전했습니다.

3. 대리인은 아마도 지금 이 순간 청년을 접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4. 청년은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구속영장 없이 48시간 인신 구속이 가능합니다. (현행법률상)

청년 대리인(정민영 변호사)과 전화 통화: 2차 (30일 정오 쯤)

– 2015년 5월 30일 오후 0시경 통화.

1. 현재 청년의 휴대 전화는 압수된 상태라고 합니다. 따라서 청년과의 전화 통화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2. 청년은 어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어젯밤(29일 자정, 30일 새벽) 대리인으로서 청년을 접견했다고 말했습니다.

3. 구속 여부는 내일(5월 31일)이나 모레(6월 1일) 윤곽이 잡힐 것 같다고 합니다. 불구속수사가 원칙인 만큼 구속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이 사안은 구속수사할 사안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4. 대리인은 오늘(5월 30일) 오후 5시에 다시 청년을 접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압수수색’ 상황 일문일답 (5월 30일 오후 1시 경)

청년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셰어하우스 관계자에게 어젯밤(5월 29일) 압수수색 상황을 물었습니다.

– 청년의 주소지가 셰어하우스인가. 

그렇다. 셰어하우스다. 청년은 지금 여기에 살지 않지만, 그 전에 살고 있었다. 여기에 주민등록(전입신고)이 되어 있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 어젯밤(2015년 5월 29일) 압수수색 상황을 듣고 싶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11시 30분경, 청년과 함께 경찰 6명이 찾아왔다. 노크하고 경찰 신분을 밝혔다. 집에는 나만 있었다. 특별히 위압적인 상황으로 보이진 않았다.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보여줬고, 옷가지 등을 살피면서 “열어봐도 될까요?” 정도로 물으며 수색을 진행했다. 다른 경찰은 캠코더로 촬영하며 채증했다. 특별히 여기에 청년의 물건이 없어서 10분 정도 수색하다 끝내고 청년과 함께 돌아갔다.

– 그밖에 특기할만한 점은 없었나. 

경찰관은 서류봉투에 들어갈 정도로 적은 부피의 ‘압수 물건'(휴대 전화 등으로 추정)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옷가지 등을 확보한 것으로 보였다. 경찰이 휴대전화 외에 노트북을 압수하려고 했던 것 같고(청년과 경찰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봄), 이미 확보한 노트북 외에 공용으로 사용하는 노트북의 소재를 청년에게 묻고, 청년이 답하는 대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 압수수색 전에 조짐이 있었나. 

어제 낮에 사복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봤다는 동거인 중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 어제 압수수색 현장에서 청년의 모습은.

특별히 평상시와 다르지 않았다. 깔끔한 모습이었다.

– 청년과는 평소 친하게 지냈나.

그럼. 1년 가까이 같이 살았는데. 친하게 지냈지.

– 평소 청년의 모습은.

평범한 청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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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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