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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17. 학자금 대출 – “미안해 꾸마우더리” 

지금 돌이켜 보아도,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제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계속 공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입하고 클릭 몇 번만 하면 학자금 전액을 지원해 주는 감사한 제도다. 추가로 백만 원의 생활비 대출까지 받을 수 있어서, 그것 역시 늘 함께 신청했다. 내가 대출받을 때의 이율은 6% 정도 되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이면 3% 정도의 고정이율이 적당하지 않나 싶지만, 그때는 그게 비싼지 싼지 고민도 없이 그저 원리금, 원금, 균등납입, 어쩌고 하는 용어들을 휙휙 넘겨 버리며 대출 버튼을 눌렀다.

한 학기 등록금이 5백만 원 정도 되었으니 생활비 대출 1백만 원을 더하면 6백만 원, 1년에 1천2백만 원씩 고스란히 빚으로 쌓였다. 그렇게 석사 과정 4기, 박사 과정 4기를 수료하고 내 나이 스물아홉, 학자금 대출 원금만 5천만 원에 이르렀다. 한 달에 몇천 원씩 나가던 이자가 곧 몇만 원이 되고, 십 몇만 원이 되고, 어느새 이십 몇 만 원까지 늘었다.

한 번에 그런 금액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내내 어느 날은 1만 원, 어느 날은 5천 원, 그리고 갑자기 5만 원, 이렇게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월급이 들어오면 그간 밀렸던 학자금 대출 이자가 한 번에 상환되는데, 출금을 알리는 뱅킹 알림이 휴대폰 화면을 가득 채우곤 한다.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614256.html
(제공: 민중의소리)

학자금 대출 이자 상환이 자주 밀리자 언제부턴가 문자가 아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상환을 독촉하는 것은 아니고 “3일 후에 이자 납입일이니까 준비해 두세요.” 하는 식이었다. 박사과정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늦은 가을날로 기억한다. 또 전화가 왔다.

“3일 후에 이자 납입일이니 꼭 신경 좀 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주 연체되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얼마를 준비하면 되죠?”

“네, 1,600원이에요.” 

나는 혹시 금액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서 두 번을 재차 확인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또렷하게 이렇게 말했다.

“네, 1,600원이 맞습니다, 고객님.”

“1,600원 때문에 이렇게 전화까지 하시는 건 좀 너무 하잖아요.”

나는 고작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연구동 옥상에 올라가서 한참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Sirsalis Photography, CC BY  https://flic.kr/p/6HKpLF
Sirsalis Photography, CC BY

너무도 초라한 인생이다 싶었다. 메뉴얼에 따라 일괄적으로 전화하며 벌어진 일이겠다 싶어 전화하신 분께 원망은 전혀 없었지만, 그저 조금 서글펐다. 서른이 넘은 한 인간이 1,600원의 이자 때문에 독촉 전화를 받는 것은 아무래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인생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좀 많이 서글펐다.

연구실에 돌아온 나는 굿네이버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나는 석사과정 수료 후, 2년 넘게 네팔의 ‘꾸마우더리’라는 어린아이를 정기후원해 왔다. 치킨 한 마리 덜 먹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대출 이자가 밀려도 후원금만큼은 제때 내기 위해 노력했다.

2년 동안 몇 번이고 내게는 사치스러운 자기 위안이다 싶어서 후원 중단 버튼을 클릭할 뻔했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연구실 책상 한편에 붙여둔 아이의 사진과 언젠가 온 그림 편지를 보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자금대출 독촉전화가 걸려왔던 2011년 어느 날, 나는 더 버티지 못했고 몇 번의 클릭을 하는 것으로 2년간 이어왔던 일방적인 인연을 역시나 일방적으로 단절해 버렸다.

“어떤 이유로 후원하시나요?”

그 질문에 ‘아, 뭐라고 적지’ 정말이지 2시간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적었던 기억이 났다.

“저를 위해서 후원합니다.”

이제 “어떤 이유로 후원을 중단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그저 미안해요.” 하고 짧게 남기고 창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아이의 사진과 편지를 떼어 책상 깊숙한 곳에 넣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후원을 받았다면 아이는 좀 더 자랄 때까지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감당하지 못할 내 욕심 때문에 지구 반대편 어느 아이가…

아팠다.

그날은 혼자 술을 많이도 마셨다.

많이 미안하다, 꾸마우더리.

그림 편지
꾸마우더리가 보내온 그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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