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감옥에 있는 한상균 위원장의 옥살이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쌍용자동차노조 지부장 시절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투쟁을 벌이다 이미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스물 여덟 명의 노동자가 차례로 죽었던 바로 그 쌍용차 투쟁을 이끈 혐의였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다. 어느 새부터 삶이 투쟁이 된 한상균 위원장은 임기 시작부터 정권과 싸우기 시작했다. 2015년 말부터 민주노총의 주도로 진행된 민중총궐기는 지속적인 실정(失政)으로 누적된 불만들이 표출되는 장(場)이자, 소위 ‘이명박근혜’로 불리는 적폐들이 쏟아낸 결과물들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대단위 항의였다.
그러나 정권의 작고 귀찮은 적이었던 한상균 위원장의 투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2016년 1월, 민중총궐기를 포함한 13건의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그에게 집회시위법 위반,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를 물어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오늘 대법원은 한상균 위원장의 항소를 기각,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한상균의 죄목
1심 재판 당시 법원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형을 선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위원장이 불법행위를 지도하고 선동해 큰 책임이 인정된다.”
‘이명박근혜’의 시절을 9년이나 겪으며 참다못해 뛰쳐나온 사람들이었다. 경찰은 불법을 자행해서라도 이들을 진압했고 쥐 잡듯 잡아다 법정에 세웠다. 누구는 벌금형을 받고 누구는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법원은 시위의 내용도, 주체도 다양했던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책임을 한상균에게 다시 한번 대표로 물었다. 징역 5년(1심 기준), 87년 이후 집회 주도자에게 부여된 최고 형이었다.
법원은 한상균 위원장에게 “범죄가 파생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도 합리적 조처를 취하지 않아 실제로 예상했던 범행이 발생했다면 암묵적인 범행공모가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의 이 같은 논리가 일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민중총궐기 당시 법원은 살인적인 물줄기로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던 공무집행에 대해 “경찰의 일부 시위진압 행위가 위법하다고 해서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하진 않다.”며 경찰의 위법행위에 대한 정당방위였다는 한상균 위원장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금으로 운영되며 공적인 제한과 엄격한 통제 속에 운영되어야 하는 공권력에는 개인의 일탈이란 이름의 면죄부가 쥐어졌고,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지 않은 시민들과 함께 가느다란 밧줄 몇 개로 정권을 위협한 노조 위원장에게는 이례적인 중형이 내려졌다.
지금 감옥에 있는 건 그날 거기에 있었던 우리의 목소리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기 전,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죄수 번호 503번이 되기 전부터 누군가는 적폐와 싸우고 있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 공이 누구에게 있냐는 이야기가 아니다. 탄핵 정국을 민주노총과 한상균이 주도했다는 염치없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그날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날 거기에 있던 목소리를 누군가는 힘으로 짓누르고 살인적인 물줄기를 쏘아대며 막았다는 이야기다. 광장의 목소리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까지 자기에 대한 일말의 비판도 허용하지 못했던 권력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금 감옥에 있는 건, 한상균 위원장 하나가 아니라 그날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 전부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바로 그렇게 당선되었기 때문에 한상균 위원장을 사면해야 한다. ‘청산’되어야 할 적폐의 시간에서, 온갖 부정의 결과로 신음하던 이들이 광장에서 냈던 목소리를 ‘무죄’로 선언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한다. 또한, 형식적 법 논리로 시민의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현행 집회시위법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 및 검토가 이뤄지길 의회에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