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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태임이 MBC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 중 상대 출연독] 이태임, ‘띠동갑내기’ 욕설 소란으로 하차‘ -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워 하차한 것으로 확인됐다.”

– 일간스포츠 ‘[단독] 이태임, ‘띠동갑내기’ 욕설 소란으로 하차, 2015년 3월 3일 자. 

 

“예원은 찍소리 못 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울고불고… 욕만 5분 넘게 하면서…”

– MBN, 이슈 파헤치기 ‘86년생 섹시女들의 저주?’, 2015년 3월 4일 자. (현재 해당 제목 동영상은 삭제 상태 – 편집자)

 

“갑자기 이태임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언니, 춥지 않아요?” (예원) “CB, M쳤냐? XX버린다” (이태임) (…) 이태임의 분풀이는 약 2~3분간 계속됐다.”

– 디스패치,  ‘[D피셜] “제주도, 욕바람, 인증샷” …해녀가 목격한 그날, 둘’, 2015년 3월 6일 자. 

일간스포츠 ‘단독’에서 디스패치 ‘사형선고’까지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제주도 방송 촬영장에서, 해녀들과 자맥질을 하다 해안으로 올라온 배우 이태임이 방송인 예원에게 화를 내며 험구를 작열시켰다는 것. 이것이 사건을 최초로 알린 일간스포츠 ‘단독’ 보도의 요지다.

어뷰징 뉴스와 악플의 ‘콜라보’를 타고 소문은 눈덩이 구르듯 몸집을 불렸다. ‘찌라시’가 등장했다. 이태임이 인터뷰를 했다. 촬영 환경이 힘들었고 예원이 반말했단다. 예원 측이 반론했다. 반말한 적 없단다. 결국, 이태임이 사과했다.

연예가 ‘팩트 종결자’, 디스패치가 뛰어들었다. 포털 사이트 댓글 창에선 사형선고를 내리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디스패치의 '예원-이태임' 관련 보도에서 편집.
디스패치 ‘[D피셜] “제주도, 욕바람, 인증샷” …해녀가 목격한 그날, 둘’에서 재편집

반전(反轉): 한 편의 동영상

하지만 2015년 3월 27일 저녁, 동영상 한 편이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사건은 반전했다. ‘욕설 스캔들’의 현장을 담은 1분 26초짜리 영상이었다. 이태임은 욕설을 했지만, 느닷없이 광분하진 않았다. 미묘한 긴장이 조성된 전후 맥락이 있었다.

예원은 반말이라 느낄 소지가 있는 말을 했다. 말없이 눈물을 떨구는 예원은 거기 없었다. 동영상은 1분 30초 안에 기승전결을 마쳤다. ‘5분’ 또는 ‘2분에서 3분’은 허구의 숫자였다.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전히 이태임에게 있다고 말할 수도, 관전자들의 인간관계 감각에 따라 다르게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 처음부터 이 정황 그대로 사실이 알려졌다면, 이태임은 그만큼 난도질당하진 않았을 거다. 이태임 ‘욕설 스캔들’은 180도 뒤집혔다. ‘마녀’는 ‘희생양’으로 승천했다.

1. 범인 하나, 디스패치

사건엔 두 명의 공범이 있다. 동영상이 공개된 후 성난 군중은 디스패치를 광장에 끌어냈다. 디스패치는 3월 6일 발행한 기사 ‘[D피셜] “제주도, 욕바람, 인증샷” …해녀가 목격한 그날, 둘’에서 제주도로 내려가 증언을 수집하며 취재한 ‘탐사보도’를 풀었다.

디스패치가 검증한 ‘욕설의 진실’은 세간을 떠돌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카카오톡 대화창으로 극화되고, 토막 나고, 납작하게 압축된 후 매콤한 양념을 친 ‘진실’이었다. 과연 ‘뉴스는 팩트’였을까? 뉴스는 ‘소설’이었다.

디스패치에 의해 퍼즐은 맞춰지고, 이야기는 완성됐다. 하지만...
디스패치에 의해 퍼즐은 맞춰지고, 이야기는 완성됐다. 하지만…

디스패치는 동영상이 유출된 다음 날 3월 28일, ‘[D-eye] “그래서, 제주도를 가야 했습니다”’란 기사를 발행하며 앞선 기사를 수습했다. 물론 디스패치가 나서기 전에도 루머는 걷잡을 수 없었고, 대중은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루머에 바탕을 둔 구설수였다. 제주도 해안까지 찾아가 ‘증인’들을 만나고 루머를 ‘오피셜’로 승격시킨 건 디스패치였다. 사람들은 마음속 신뢰의 여백을 완전히 지워버릴 알리바이를 얻었다.

네이버에 송고한 ‘[D피셜] “제주도, 욕바람, 인증샷”…해녀가 목격한 그 날, 둘’에 달린 베스트 댓글을 보라. 25,000개가 넘는 공감을 얻고 1위에 등재된 댓글이다. ‘진실’의 결정타 같은 ‘팩트’가 허구로 드러난 지금, 그 ‘팩트’는 진실을 교란한 주범일 뿐이다.

“이 기사가 제일 중요한 게 예원이가 이태임을 도발한 그 어떤 건덕지도 없었다는 걸 알려줌.”

‘정신과 의사’ 디스패치 

디스패치의 ‘D피셜’은 의아하고 생뚱맞은 점 투성이다. 이 기사는 두 개의 큰 단락으로 구성돼있다. 첫 단락에선 어딘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동정적 논조로 이태임의 행적을 전한다.

(이태임이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해녀에게 안겨 연예인으로 빛을 보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글썽였다든가. ‘욕설’ 사건 전까지 이태임과 예원이 사뭇 살갑게 대면했다든가. 이태임이 해녀가 차려준 밥상에 염증을 냈다는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라든가.)

차후의 해명 기사에서, 디스패치는 이를 들어 자신들 기사에 순기능도 있었다 주장했다. 이 대목이 이태임에 관한 지엽적 루머를 일정 부분 해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욕설의 진실’을 선정적으로 공개하는 뒤의 단락과 지극히 부자연스럽게 단절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독자들이 이태임의 언동을 병리적 현상으로 인지케 하는 효과가 생긴다. 3월 6일 자 해당 기사 네이버 베스트 댓글 3위에 오른 댓글이다.

“(…) 내 생각엔 이태임은 지금 너무 우울증이 심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 같으니 연예활동 쉬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나아 보임.”

해명 혹은 변명, “그래서 제주도에 가야했습니다” 

디스패치는 “그래서 제주도를 가야했습니다.”라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항변한다. 내가 볼 땐 구태여 제주도로 갔던 것이야말로 문제다. 거기 가보아야 증인을 만나는 것 말고 할 게 없는데, 다툼을 목격한 루엔키니 씨는 한국말 이해력에 한계가 있는 이주민이다. 처음부터 그 증언엔 큰 의미를 둘 수 없었다.

다툼의 현장에 다른 사람이 없던 것도 아니다. 촬영 스태프들이 있었고, 당연히 다툼 당사자들이 있었다. 디스패치는 각기 다른 입장을 교차 검증하거나, 이것이 과연 진지하게 밝힐 가치가 있는 취잿거리인지 고민하는 대신, 제주도로 날아가 ‘현장’과 ‘제3자’라는 ‘중립성’의 환상을 강변했다.

이 기사는 표면상 중립성을 강조하지만, 특정한 프레임으로 독자를 인도하는 구조로 읽힌다. 말다툼 상황에서의 예원의 ‘반말’이 쟁점인데, 현장을 목격하지도 않은 장광자 씨에게 예원이 반말을 했는지 묻거나, 다툼이 벌어지기 전 상황에서의 예원의 태도를 루엔키니 씨에게 듣는다.

“예원이 울었던 화장실 사진”은 도대체 무슨 맥락으로 삽입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급기야, 사실관계를 제시한 후 독자를 향해 결론을 열어 놓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예원에게 분출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라며 자신의 결론을 드러낸다.

그러고선 이제는 “목격자의 증언에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며 애꿎은 ‘목격자’와 ‘증언’에게 책임을 돌린다.

23. 목격자의 증언에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 그의 말은 ‘절대적 진실’이 아니라 ‘참고할 사실’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신중하고, 더 신중하겠습니다.

24. 혹시 ‘디스패치’의 보도를 “예원의 반말없음. 이태임의 일방적 욕설”로 받아들였다면, 이 또한 저희 잘못입니다. 기사의 덕목은 전달력이니까요.

– 디스패치, [D-eye] “그래서, 제주도를 가야 했습니다”, 2015년 3월 28일 자.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목격자의 주관"이라는 새로운 변명의 알리바이 모색하는 디스패치.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목격자의 주관”이라는 새로운 알리바이 모색하는 디스패치.

하지만 죄 없는 자, 디스패치에 돌을 던져라 

다른 언론과 뉴스라고 나을 건 없었다. ‘욕설 스캔들’이 증식된 양상에선 차라리 가십을 거래하는 한국 언론계가 처한 총체적 난맥을 엿볼 수 있다. 이태임에 관한 기존 이미지와 루머는 이번 사건에 불을 지른 땔감이다. 그 저급한 뉴스들이 유통되는 본새엔 연예가 뉴스의 해묵은 병폐가 농축돼있다.

언젠가 한 연예부 기자는 케이블 TV 토크쇼에 나와 “xx양이 ‘자연산 가슴’을 무기로 베드신 출연료를 협상했다.”는 입증할 수 없는 괴소문을 퍼트렸다. 한 매체는 ‘욕설 스캔들’이 터지자 “이태임이 촬영장에서 반찬 투정을 했다”는 대단한 ‘특종’을 보도했다.

연예인 사이 완전한 사적 다툼을 ‘단독’ 보도한 일간 스포츠, 항간에 나도는 ‘찌라시’를 받아쓰기하며 전파를 낭비한 MBN, 그리고 온갖 쓸모없는 소음으로 포털 사이트 밤하늘을 수놓은 어뷰징의 불꽃놀이. 한 줌의 사실관계를 뜬소문의 성찬이 뒤덮으니까, 명확한 ‘진상’을 알고 싶다는 대중의 호기심이 몸부림친다.

그 고질적 호기심을 매의 눈처럼 노리며 디스패치 같은 연예뉴스 ‘탐사보도’ 매체가 히트한 것이다. 이것이 디스패치 문제의 본질이다. 검색어 순위와 포털 사이트를 매개로, 타 매체가 터트린 단신과 시중의 루머를 끝없이 재생산하며 조회 수를 노리는 언론 생태계는 문제의 토양이다.

'디스패치, 이태임'으로 구글에서 검색한 모습. 디스패치 기사가 아니라 디스패치 기사를 소위 '우라까이'(베끼기)한 허핑턴포스트 기사가 먼저 올라온다. (검색 시각: 2015년 3월 31일 오후 1시 50분 경. 디스패치 기사는 세 번째로 올라왔지만, 화면에선 캡처화면에선 생략했다. 네번째로 올라온 기사는 조선닷컴의 기사다.)
‘디스패치, 이태임’으로 구글에서 검색한 모습. 첫 번째로 검색된 기사는 디스패치 기사가 아니라 디스패치 기사를 소위 ‘우라까이'(베끼기)한 허핑턴포스트 기사다. (검색 시각: 2015년 3월 31일 오후 1시 50분 경) 디스패치 기사는 세 번째로 올라왔지만, 캡처 화면에선 생략했다. 네 번째로 올라온 기사는 조선닷컴의 기사다. – 강조는 편집자.

디스패치는 3월 31일 자 프레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특별한 게 아니라, 현장에 가는 연예매체 기자가 없는 게 문제다.”

– 프레시안, “이민호‧수지 열애 보도, ‘MB 비리’ 덮으려 했다?”, 2015년 3월 30일 자

디스패치 입장에서는 사실 정당한 지적이다. 문제는 이번에는 디스패치가 다른 매체들의 ‘소설’을 ‘팩트’로 따돌린 게 아니라, 디스패치의 ‘소설’을 다른 매체들이 받아쓰기했다는 것이다.

지금 연예 매체에 필요한 것은 연예인이 머문 현장으로 출동하는 ‘팩트’ 제일주의보다 무의미한 구설수를 가려내고 선별하는 가치판단이 아닐까?

2. 범인 둘, 바로 대중

그러나 되새겨보라. 이것은 지독히도 낯익은 풍경이다. 아무개 연예인을 악플로 몰매를 줬는데, 알고 보니 무고하더라는 허무개그 스토리 말이다. 이 잔인한 소극의 책임을 과연 언론에만 물을 수 있을까? 여기에 두 번째 공범이 있다.

‘욕설 스캔들’은 뜨악하고 우스운 가십이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갑자기 ‘5분간’ 쉬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는데, 사실이라면 언프리티 랩스타 파이널 무대엔 치타 대신 이태임이 진출해야 한다. 그만큼 사회인으로서 상식적 범위 내에서 잘 해명되지 않는 괴악한 행동이다.

네티즌은 그런 기괴한 ‘특종’을 의심하지 않았다. ‘에이, 너무 미심쩍은데? 이태임 입장도 잘 들어봐야지, 정확한 사실은 모르는 거 아니냐?’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반문이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나타났다 해도 왜 ‘쉴드질’이라며 두더지 망치를 맞고 땅속으로 꺼졌을까.

대중이 원하는 ‘현실 속’ 드라마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럴 리가 없다. 차라리 그들이 미리 결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거다. 서른 줄에 이른 여자 연예인의 히스테리, 우리네 직장에서 지겹게 겪는 선후배 ‘갑질’ 구도, 암탉들의 불꽃 튀는 벼슬 쪼기 싸움, 그리고 방송가에서 한창 뜨는 ‘베이글녀’가 떨군 한 방울 눈물.

황색 저널리즘의 위용이 웅장한 이 ‘시추에이션’은 말 그대로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사실 여부를 의심하고 판단을 지연한다면, 서사는 중단되고 감정이입도 유보된다.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면, 이태임이 ‘죽일 년’이니, 예원은 ‘순진한 듯 여우’라느니, 뒷말의 관계도를 그려봐야 주말 연속극 주인공을 씹는 것 보다 재미날 게 없다.

사람들은 불투명한 정황을 확증 짓는 현실 속 드라마를 원했다. 디스패치의 ‘D피셜’을 위시한 연예가 단신들은 안성맞춤의 명분을 상납했다. 사람들은 댓글의 카니발을 벌이며 ‘마녀’를 처단했다.

마녀 화형식
마녀 화형식 (그림: 위키백과 공용)

부부싸움도 특종 보도할 텐가? 

이번 스캔들은 방송 전파를 타고 공연성을 획득한 사건이 아니다. 방송을 만드는 과정 뒤편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사적이고 폐쇄적인 사건이다. 설령 공인이라 해도 사적 다툼은 공적 시비의 대상이 아니다. 이명박과 김윤옥이 야심한 시각 청와대에서 부부싸움을 했다고 특종 보도한다면 그냥 ‘TV 조선’ 아닌가?

두 사람의 문제는 두 사람의 문제로 놔두자는 말이다. 둘은 ‘세상에 알려진다’는 결과를 꿈에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속살을 노출하게 된 것이다. 인간은 우아하게 식사하고 추하게 배설하는 동물이다. 누군가의 파스텔색 표지 일기장 안에는 증오와 질투의 기록이 빼곡할 것이다.

이것이 프라이버시의 본질이다.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내밀하고 개인적인 치부를 숨기고 그를 존중받는 것 말이다. 이 말다툼의 해프닝은 처음부터 외부로 유출한 사람이 잘못이지, 유출 당한 사람 잘못은 아니란 거다.

오인과 폭력의 정당화

이 모든 오인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무엇일까.

  • 첫째, 연예인은 부와 명예를 손에 쥔 공인이다. 그러므로 사적 영역 따위 없다.
  • 둘째, 연예인은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대중의 ‘을’이다. 그러니까 무겁고 가혹한 책임도 응당 걸머져라.

마녀 사냥

한 마디로 너희는 우리 때문에 존재하니까 엄지를 내려 생사여탈 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 가히 폭군 네로의 태도다. 그리하여 진실의 일각이 드러난 지금, 그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어느새 가면을 바꿔 쓰고 책임을 떠넘길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다.

바로, 예원에게 칼끝을 돌리는 것이다. “싹수없이 선배한테 대들며 피해자 코스프레한 불여우.” 괴물같이 우악스럽고 추한 마녀에서, 뱀처럼 요사스런 어린 요녀로의 서사 챕터 전환.

“연예인이 이태임처럼 처신했으면 퇴출당해 싸지!”라고 을러대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원은 우리를 속였으니 (대중은 전능하시다!) 이태임보다 더한 죄인이다.”라고 말을 바꾸며 괘씸함에 이를 간다. 천인공노할 패륜에 분노한 듯 집단 가학적 손맛을 즐기며 “우리 예원이” 지킴이를 자처하던 정의의 흑기사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아래위 없는 후배에게 수모를 당한 기억을 서랍 속에서 꺼내며 통렬한 가상의 복수전을 댓글 창에서 거행하는 중이시다.

아직 하나 더 있다 

한 가지 환기하자. 아직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공개된 것은 겨우 1분 30초짜리 조각난 영상일 뿐이다. 카메라 앵글은 예원을 향해 온전히 붙잡혀 있었고, 이태임이 말하는 표정과 제스처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 말싸움 전후로 두 사람 사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사단이 터졌는지도 모른다.

이태임 ‘5분 욕설’ 특종 때와 비슷한 징조가 어른거리지 않는가? 그러나 네티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이 조리돌림의 연쇄는 IT 기술이 멸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태임의 ‘꼬장’도, 예원의 ‘싸가지’도 아니다. 정확히 언론의 보도 행태와 네티즌의 변덕과 폭거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네티즌이 주관하는 정의의 심판은 거의 언제나 정의롭지 않았다.

세일럼 마녀 재판과 관련하여 윌리엄 A. 크래프트가 그린 "Pioneers in the Settlement of America" (1876년)
세일럼 마녀 재판과 관련하여 윌리엄 A. 크래프트가 그린 “Pioneers in the Settlement of America” (1876년)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금까지 글을 읽은 당신은 이렇게 항의할지 모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는 마녀사냥을 하는 게 아니야. 예원의 싸가지를 욕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저 ‘언플’로 세상을 속인 예원의 행동을 비판하는 거야. 논점 일탈 하지 말라고.’

실제로 인터넷 각지에선 이런 양상으로 심판의 논리가 재빨리 재조직되고 있다.

오래전 이미 예고된 참사 

언플? 그럴지도 모르지. 반말한 적 없다고 했는데, 어쨌든 반말을 하긴 했으니까. 그것이 이태임을 향한 비난을 가열하고,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을 거다. 하지만 왜 그런 ‘언플’이 효과를 발휘했을까? 낯 뜨거운 가십에 탐닉하며, 피해자를 순결화함으로써 가해자를 악마화하려는 대중의 욕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디스패치 같은 황색 언론이 이만큼 공신력을 얻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연예인에게 사생활은 없다.”, “대중을 이용해 돈을 벌면 책임도 져야지?” 같은 말로 인권 침해 파파라치 보도를 용인하고, “애증의 디스패치”, “드디어 디스패치가 나섰다!” 같은 말로 그 ‘탐사보도’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 여론 때문은 아니냔 말이다.

대중이 알고 싶어 하지만 알려주기 부적절한 사실을,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보도해왔다는 점에서, ‘D피셜’의 참사는 오래전 예고된 것이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주범 

책임은 언론과 ‘언플’에만 있지 않다. 이 모든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가십을 승인하고 소비한 것은 결국 대중이다. 이 열띤 사육제의 한복판에서 언론이 쥐여준 칼을 제물의 등에 꽂으며 손에 피를 묻힌 주체는 악플을 달던 사람들이다.

아니, 저 모든 ‘언플’과 가십은, 선정적 호기심과 가학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공급되었다는 점에서, 대중이 정범이요 나머지는 종범에 가깝다. 이 분명한 진실과 이 난장판을 벌인 언론의 면면을 기억하자. 저들의 책임을 단단히 따져 묻는 한편, 타인의 불화를 밀렵하고 거래하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자각하자.

가십의 중독자, 연예인의 심판관에서 뉴스의 소비자, 공론장의 책임자로 거듭나자는 말이다. ‘연예인 욕설 스캔들’에 분노하는 당신이, 또 다른 ‘거짓말’을 막을 방도는 그것밖에 없다.

Partha S. Sahana, CC BY
Partha S. Sahana,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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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필자(윤광은)가 미디어스올린 글을 퇴고한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발행 원칙에 맞게 다시 한 번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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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댓글

  1. 이 기자가 미쳤나.. “범인 둘, 바로 대중” 이라니?
    그냥 그런일이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대중도 있을건데.
    그냥 무턱대고 대중이 두번째 범인이라니?

  2. 글을 읽어보면 여기서의 비판하는 대중은 해당 이슈를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적극 소비하는 사람을 지칭한 것 같은데, 그걸 본인을 향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는 것 같군요.

  3. 결국 기사의 논지는 연예인들 사건사고 찾아다니면서 비뚤어진 욕구 충족하지말라는거네요. 하지만 그러다가 아싸 되기 딱 좋죠.

  4. 대중? 김대중을 말하는건가? 아니면 public people의 대중? 글쓰는 사람이 대중이라는 말을 쓸 때 은근히 ‘자기 빼고’라는 엘리트 의식 있는거 알아요? 반성하세요. 대중이라는 말만 안썼어도 욕을 먹지는 않을텐데.

  5. 진짜 웃기네.. 범인은 대중? 그럼 기사를 똑바로 쓰던가. 글쓴 사람은 지는 아닌척 글 멋있게 마무리할려고하네 솔직히 지금 대중탓하는 미디어들 이해 안돼.
    사람들이 기사보고 댓글다는거 한두번인가? 동영상이 거짓말하나? 아닌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거지 이런식 훈계는 애들가르칠때나 쓰세요. 웃기지도 않아

  6. 저는 이게 떠들썩 할 때 별로 관심도 안 가졌고, 이 글의 대중이 저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요?

  7. 솔직히 비평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기사를 보고 댓글다는거나 문화현상을 놓고 비평가들이 자기의견 말하는거나 차이없다 좀 더 배웠다는걸로 있는 말로 좋게 포장할뿐 나도 비평을 배웠지만 마지막 사진을 넣고 훈계처럼 마무리짓는 거 정말 잘못되었다. 엘리트 의식뽕에 취한것처럼 보인다

  8. 이 기사에서는 대중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언플하는, 댓글을 다는 네티즌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거 같네요. 읽어보니 딱히 틀린말은 없는거 같습니다.
    저도 처음 디스패치기사 읽을 땐 ‘그냥 그랬구나~’ 하고 별생각은 없었지만 이 기사를 읽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기사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글이 사실적인지에 대해선 비판하지 않고 무심코 ‘이태임이 그랬다던데?’하는 의견을 내비쳤던 것 같습니다. 반성하고 앞으로는 좀더 신중히 판단해야겠습니다!

  9. 저도 그런데요? 그런데도 이 글이 이상하다고 안 느껴지세요? 이번에 이 사건을 처음 접했지만 이 비평글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왜 욕을 먹는지 생각해보시죠

  10. 왜 기분이 좋지 않나요? 저는 이 글에서 말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고, 제 주위에는 이 일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기에 이 글을 보면서 어떤 뜻인지 잘 이해했는데요. 그래서 기분도 나쁘지 않았고요.

    저는 여기서 말하는 대중이 대한민국 국민 전체도 아니고 네티즌 전체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글이 자연스러운데, 저에게 당신도 대중이라고 하시는 님께서 그냥 바로 말씀해 주세요. 왜 욕을 먹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11. 언급도 안하고 관심도 안가지시면 자연히 이런 쓰레기 언론들은 사라지지않을까요? 남의 사생활을 화제로 삼는 사람은 그자리에서 면박을 주는 것이 좋더라고요. 공범이신 분들이 많이 찔려하시는 것 같네요 ㅎㅎ

  12. 에휴 그러면 너가 직접 저사건에 달린 댓글들 보고와라 그러고도 그런말할수있는지 보자.

  13. 여기서 열폭하는 분들은 결국 저 마녀사냥에 참여했던 저기에서 말하는 ‘대중’이겠지 그때 공정한 눈으로 판단을 내렸거나 관심도 없이 지나친사람은 쓸대없이 찔려서 그걸 이 기사로 덮으려고 할필요는 없을태니

  14. 잘못된 행실에 대한 비판은 무조건 올곧고 완벽한 사람이 하는건 아닙니다. 모두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런것에 대한 점을 수용하고 고치자,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생각을 가지고 살자고 말하는데 작가는 엘리트 의식 등등을 언급하는 사람들을 볼때는 욱하는 감정밖에 보이지가 않아요. 못난것이 있으면 수용하고 고치면 되는데 왜 또 비방하고 누구는 못났고 이러면 뭐 발전이 될까요? 남을 고치기 전에 자신이 고쳐지고 행동합시다. 아 참고로 저는 진짜 못난 사람입니다.

  15. 웃기고 잼 있네. 저기요 당신들이 판을 열린 곳에 국민들이 구경하고 당신들이 준 자료에 욕했는데 끝은 대중의 잘못이래. 웃기네. 기사는 팩트다??? 팩트는 무슨. 제 3자의 말의 확인도 없이 적은게 팩트야?? 이 사건 이후 클라라도 재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네

  16. 쉽게 표현하기 위해 대중이란 말을 쓴거겠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태임 마녀사냥에 동참 했으니까. 기사 쓸때마다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뭐 이런 식으로 써야 하나요? 본인이 아니면 그냥 쉽게 넘어갈 수 있을거 같은데 왜 이렇게 흥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밑에분 말씀처럼 대중보대는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거 같긴 하지만… 저는 이 기사 읽으면서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기사에 쓰인대로 왜 이태임 입장까지 들어볼 생각은 못했는지, 디스패치를 맹신 했는지 반성 합니다.

  17. 궤변이네요, 어디서 대중에게 뒤집어 씌우나요. 언론이 얘길 안하면 관심도 없었을 얘기를. 어디가서 대중 탓 절대 하지 마세요. 사기꾼놈들 말을 믿은 대중이 잘못이다 이전에, 사람을 믿는게 뭐가 잘못인가의 문제인거고, 사기친 놈들이 나쁜놈이다가 먼저 언급되어야하는거 아닌가요?

  18. 기본적은 팩트를 전달하지않고 소설을 쓰는 기자들이 개새끼인거예요. 뉴스도 못믿는 세상을 왜 만듭니까? 그게 대중탓이예요? 보다보니 존나 짜증나네.

  19. 부정확한 보도하는 미디어와 기사 몇 개에 호들갑을 떠는 몇몇 대중의 찰떡궁합을 말하는 건데, 분노하시는 분들이 많구나.

    유유상종, 근묵자흑. 낚시대에 매번 걸고 걸리는 치열한 싸움!

  20. 기자가 말하는 대중은 이태임 마녀사냥했던 네티즌들인 것 같은데 자기를 가리키는말로 이해하신 분들이 많은 듯 여기서 열폭하시는 분들은 결국 ‘이 기자가 지칭하고 있는 ‘대중” 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21. 거짓말한 사람과 욕한사람 중 둘다 잘못이 있지만 더 큰 잘못은 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원인보다 결과가 중요한거죠 잘못된 정보든 아니든 함부로 욕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게 더 큰 잘못이고 거짓말보다 욕과 비난은 자살과 살인까지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꼭 상스러운 말이 아니더라도 인신공격같은 것도 욕이되니 ‘대중들’은 말좀 신중하고 곱게 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요즘 기사에 본인 일도 아니면서 심하게 욕하는 사람들보면 그렇게 스트레스 푸는 것 같은데, 법에 손절단 형벌같은게 있어야된다고 생각됩니다만…

  22. 거짓된 기사도 잘못이지만 욕은 어떤 합리화도 안됩니다. 거짓말은 본인이 잘 판단할 필요도 있고, 때에따라 용서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욕은 정당하지도 누굴 위하지도 않은 화풀이일 뿐이죠. 제대로된 비판은 근거와 기승전결로 구체적인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소비자신고 같은 프로그램처럼 .. 흠… 볼테르가 사람은 할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 말을 남겼죠. 즉.. 할짓없는 대중이 많은걸수도 있겠네요…

  23. 저기요 익명이라고 막말하시는데, 그건 그런 댓글 단 사람들 얘기겠죠. 제 얘기의 요지를 모르시나요? 함부로 생각없이
    수준드러내지마시죠

  24. 우리가 클릭을 하기 때문에 이런 기사/기자/매체가 나오는 거라고 봐요. 저는 연예기사가 지금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거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25. 뭐 흥분하시는 사람들 이해는 되는데, 그러나 1인 언론이라는 말도 있듯 미디어에 긴밀하게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요즘의 대중인 만큼, 이젠 무작정 면죄부를 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 이 주제로만 카톡에서 얼마나 많은 카더라가 돌아다녔으며, 페북이며 트위터며…

    실상 모두가 기레기 중 하나인거죠.

  26. 그런데 연예인이란 직업이 가십거리를 통해서 욕을 먹기도 하지만 사실 가십거리를 통해서 인기를 얻기도 하지않나요? 연예인도 그걸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대중의 태도가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사건이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을 때 대중은 연예인을 마녀사냥시키는 가해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네요.

  27. 그 ‘기분’대로 라면 요즘 정치인들 문제다, 라는 표현도 문제지요. 그렇게 문제있는 표현같지는 않은데 쫌 대충 알아들읍시다. 그리고 1인 언론이라는 표현도 있는 시대라 대중이라고 해서 언론인 혹은 언론 엘리트와 구별할 수도 없는 만큼 엘리티즘의 대중 책임전가라고 보기에도 좀 애매합니다.

  28. 이봐요. 물타기 하지 마시고. 욕한 인간보다 거짓말로 남을 모함해서 그 인생을 파탄낸 인간이 천만배는 더 나쁜거죠. 쌍욕은 아무나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쌍욕 한 마디 안 한 사람 있을까요? 님도 쌍욕을 적어도 한번 쯤은 해봤을 텐데요. 하지만 그냥 거짓말도 아니고 거짓말로 남을 모함해서 해치는 짓거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란 말이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욕은 이태임 처럼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해서 실수해서 나온 욕을 말하지 누군가를 줄기차게 쫒아 다니며 욕을 해서 괴롭히는게 아니죠. 저는 이태임예원 사건 일어났을 때 이태임을 비난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있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예원과 소속사, 디스패치에 속아 넘어가 이태임만 쥐잡듯 몰아 세웠죠. 아마 님도 그들 중에 하나였거나 아니면 그 당시엔 이런 댓글 조차 쓰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예원이 욕을 먹으니 쉴드 칠 심산으로 함부로 욕하지 말라 할 지도 모르죠. 이태임이 욕을 먹었을땐 확실한 증거도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요. 그 당시 상황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동영상이 공개됐기 때문이지요. 이걸 보고 예원의 거짓을 비난하는것과 이태임 때 처럼 잘못된 정보로 비난을 하는게 같을까요? 당연히 아니죠.

    거짓말로 남을 모함해 인생을 파탄내고 대중들로 하여금 그사람에게 욕과 비난을 퍼붓게해서 자살로 이르게 하는 것보다 더 추악하고 잔인한게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죄 없는 사람을 욕하고 비난하여 자살로 모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지, 거짓말과 권모술수로 남을 죽이려다 발각된 자를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죠. 님 말대로라면 사기를 쳐서 남의 가정을 박살낸 인간이나 조두순같은 싸이코패스 또한 욕해서는 안되겠죠. 대중이 그들을 욕하고 비난해서 그들이 자살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나요? 이게 말이 됩니까? 예원 같은 부류가 욕을 먹는다고 자살을 할 까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내민 인간이. 자신의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뻔뻔하게 사과 한마디 없이 이 방송 저 방송 잘만 니오는 인간이 자살을 할 것 같습니까? 욕 먹을 짓을 한 자는 욕 먹어야 마땅하고 비난받을 짓을 한 자는 비난받아 마땅하죠. 물론 그 비난의 이유가 되는 확실한 팩트가 있을 때 말이고 이런 행동은 마녀사냥이 아닌 정의실현임과 동시에 다시는 이런 악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행동이지요.

    제겐 님이나 이글을 쓴 기자나 마찬가지로 아닌 척은 하지만, 단순히 예원이 욕을 먹는게 싫어서 대중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대중이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 거리에 목을 맨다고 물타기를 하며 어떻게든지 예원이 비난 받는 걸 막으려고 발악 하는것 같아 참 안타까워 보입니다.

  29. 잘못 아시는게 있군요. 그냥 거짓말도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남을 모함해서 그 인생을 파탄나게 하는 행동은 절대도 합리화가 될 수 없지요. 욕이요? 더러운 거짓말과 권모술수로 남을 벼랑 끝으로 모는 행동을 한 인간은 욕 먹어 싸지요. 진작에 자기들끼리 내부적으로 해결했어야 할 일을 일부러 대중의 관심을 끌으려 기자들을 동원해 보도하고, 피해자 코스프레에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으면,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을 땐 대중의 욕과 비난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볼테르의 말은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려다 발각된 인간을 비난하는 대중에게 적용되진 않죠. 적어도 대중은 할 말이 없는 것 도 아니고 이유없이 비난하는게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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