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 이하 ‘매그넘’)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사진작가들의 협동조합 같은 건데, 폐쇄적 회원제로 운영됩니다. 회원은 한 50명 정도입니다. 한 사진가의 말을 빌리면, 매그넘 작가가 된다는 건 사진가로서 노벨상을 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 엘리어트 어윗(Elliott Erwitt, 1928년, 프랑스 파리 출생)
- 알렉스 웹(Alex Webb, 195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 데이비드 알란 하비(David Alan Harvey, 194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 게오르기 핑카소프(Gueorgui Pinkhassov, 1952년, 소련 모스코바 출생)
- 요셉 쿠델카(Josef Koudelka, 1938년, 체코 보스코비체 출생)
사진계의 전설이라 불릴 만한 귀에 익은 이름이 여럿 매그넘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두 명의 거인, 두 개의 흐름
“시대의 맥박을 느껴라(Feel the pulse of the times)”
매그넘의 그야말로 있어 보이는 미션 아래 작가들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미지를 생산합니다. 사람마다 스타일도 주제도 다르지만 크게 보면 매그넘 안에는 두 가지의 흐름이 있습니다.
- 구성의 정교함과 찰나의 미학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한 예술적 사진을 찍는 부류
- 전쟁, 기아, 난민, 산업화의 그늘 등 우리가 알아야 하지만 모른 척 잊고 지내는 인류의 공통과제를 끊임없이 고발하는 저널리즘 사진을 찍는 부류
이렇게 둘입니다. 기원을 따라 올라가면 처음 매그넘을 만들기로 결의한 창립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로버트 카파가 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결정적 순간’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년~2004년, 프랑스)은 일상의 르포, 길거리 사진가 스타일의 원조입니다.
브레송이 일상 사진만 찍은 것은 아닙니다. 간디의 장례식(1948), 마오에게 승리를 안겨준 중국 내전(1949)을 시작으로 인도와 중국에서도 오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어요. 이름마저 고급스러운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35mm 필름을 담은 라이카를 주로 썼습니다. 사진을 숱하게 봤지만, 카르티에-브레송의 작품을 봤을 땐 브레송 이후의 모든 사진은 브레송의 변주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매그넘 안에는 디지털로 전환하지 않고 라이카만을 고집하는 작가들이 몇 남아있습니다. 브레송이 직접 매그넘에 영입했다는 이안 베리는 필름을 갈아 끼울 시간이 없는 상황을 대비해 적게는 두 대에서 많게는 일곱 대에 이르는 라이카를 몸에 지니고 촬영을 합니다.
이안 베리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어요. 한 번은 화장실 간다면서 저에게 세 대의 라이카를 맡긴 적 있었죠. 전 카메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대로 달아날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ㅡ_ㅡ;)
로버트 카파, ‘떨리는 손’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slightly out of focus)”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년~195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헝가리계 유태인이자 미국인)는 전쟁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 중일 전쟁 등 공식적으로만 무려 다섯 개의 전쟁을 필름에 담았습니다. 헝가리 출신인데 나치의 핍박 때문에 유대인식 이름인 ‘프리드먼 엔드레 에르뇌'(헝가리어: Friedmann Endre Ernő)를 버리고 미국식 이름 로버트, 그리고 어릴 적 별명인 카파(‘카파’는 헝가리어 ‘차퍼(Cápa)’에서 유래한 말로 ‘상어’라는 뜻)를 성으로 삼아 스무 살 때부터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진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초기, 스페인 내전에서 찍었던 ‘병사의 죽음'(the falling soldier)이라는 사진이 라이프지에 실리면서 카파는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찍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초점 없이 흔들렸지만, 오히려 그것이 긴박감을 담았다며 2차 세계대전을 찍은 대표적 이미지로 손꼽힙니다.
카파는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배우였던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었지요. 그 인연 때문에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인 이사벨라 롯셀리니가 카파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레이션을 맡기도 했습니다. 불꽃 같은 삶을 살던 카파는 고작 마흔 한 살에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고 맙니다.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브레송과 카파의 이야기를 할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의 진짜 목적은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게 아니거든요. 제가 진짜 소개하고 싶은 한 사진작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