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이 글은 전문 과학의 영역을 다루고 있으나, 전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글은 아닙니다. 휴먼 지놈 프로젝트와 관련한 하나의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이 시사하는 바를 담은 글입니다. (편집자)[/box]

2000년도에 나온 어떤 논문 하나를 보자.

미미했던, 위대함의 시작

맥주집 논문

폴리스티렌 비드에 스트렙타비딘을 달고, 형광물질과 바이오틴이 결합한 13mer짜리 올리고 DNA를 붙이고 콘포컬 현미경으로 보면 단일 분자의 DNA의 형광을 관찰할 수 있다는 논문이다. 형광을 봤더니 뭐? 그냥 보인다고…

“음…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무슨 DNA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딘가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연구는 아니었다.

연구로 친해진 두 사람

1990년대 중반에 케임브리지 대학 화학과에 부임한 인도 출신의 젊은 교수가 있었다. 이름은 샹카 발라수브라마니안(Shankar Balasubramanian)이고 화학자였다. (이름 읽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 너 브라만 계급인 건 잘 알겠다.) 주특기는 형광물질을 합성하여 뉴클레오타이드에 달고, DNA가 DNA 중합효소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보는 연구를 했다.

그런데 논문을 하나 내려고 했는데, 리뷰어가 좀 빡센 요구를 해서 형광물질 달린 DNA를 가지고 레이저로 뭘 해보라고 한 실험을 해야 했었는데 그의 방에는 그 기기가 없어서 옆방의 생물물리학 교수인 데이빗 클레너먼(David Klenerman)이라는 사람과 협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하나 냈다.

 Shankar Balasubramanian(좌), David Klenerman(우)
Shankar Balasubramanian(좌), David Klenerman(우)

그런 식으로 친해져서 종종 같이 팬튼 암즈(Panton Arms)라는 이름의 펍에서 종종 술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아마도 실험을 직접 했을) 서로의 연구실 포닥 한 명씩을 동반해 4명이 펍에서 맥주를 먹으면서 실험과 연구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바로!

팬튼 암즈
그들이 술 마시던 술집, 여기다. 

뜬금없어 보였던 그 아이디어는 바로…

그런데 이게 너무 뜬금없는 아이디어라서 같이 술 마시러 다니던 포닥 두 명과 하는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어떻게 영국의 벤처캐피털 회사와 접촉을 하게 되었고, 약간의 자본금을 투자받아 벤처기업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이름은 솔렉사(Solexa). 그들이 하는 단일 분자의 DNA에서 따서 Sol, 그리고 왠지 X를 넣고 싶었나 보다.

맥주집 논문

이들이 그 당시 떠올린 아이디어라는 것은 단일 분자의 DNA를 유리판 위에서 증폭한 다음, DNA 폴리메라제(Polymerase)로 한 베이스씩 합성을 하는 것이었다. 단, 이때 형광이 달린 뉴클레오타이드를 이용하되, 뉴클레오타이드가 더는 증폭이 안 되는 종결자 베이스(terminator base)고, 이는 생어 시퀀싱(sanger sequencing)에 사용되는 원리와 동일하다.

맥주집 논문

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종결자(terminator)는 가역적(reversible), 즉, 화학처리에 따라서 다음 베이스(base)가 결합할 수 있도록 블로킹(blocking) 된 O-R기가 O-H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DNA 폴리메라제(Polymerase)를 한 베이스 단위로 합성 – 중지 – 합성의 사이클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 원리이다. 게다가 형광을 내는 화학기 역시 화학처리에 의해서 DNA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맥주집 논문

즉, 다음 그림과 같이

  1. 형광 달린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가 DNA에 합 to the 체.
  2. 억! 수산화기(OH)가 없어 더이상 진행 불능.
  3. 이 사이에 사진 한 장 박으시고
  4. 화학처리로 형광이 떨어져 나가고 OH가 재생!
  5. 네, 다음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

맥주집 논문

위 과정으로 단계별로 한 베이스씩 합성이 진행되고, 이 형광을 모니터링하면 아래와 같이 시퀀스가 뙇!

맥주집 논문

인간 유전자의 1/3을 읽을 연구가 되다

그래서 이 양반들은 벤처캐피털 회사에 돈을 투자해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런 식으로 시퀀싱을 하면 한꺼번에 10억 염기(휴먼 지놈에는 약 32억 염기가 존재한다)를 읽을 수도 있다능!”

그 말을 들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반응은 이랬다.

“허…… 님들, 만약 당신들이 그거 1/10만 해도 저희는 놀라 자빠질 겁네다. ㅋㅋㅋ”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는 1990년대 말. 약 수조 원의 돈을 들여서 한창 진행 중이었던 휴먼 지놈 프로젝트는 32억 베이스를 읽는 프로젝트고 마치 아폴로 계획에 비견되는 역사라고 선전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어디서 ‘갑툭튀’한 인간들이 한번에 휴먼 지놈의 1/3을 시퀀싱 한다고 하니, “님들, 허세 좀 쩌는 듯…”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듯싶다.

하지만 허세에 쫄았던지 결국 어느 정도의 돈을 펀딩을 하기로 결정했고, 솔렉사는 회사가 설립되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도원결의가 아닙니다. (...) 클린턴이 '좌' 벤터 '우' 콜린스를 세우고 “인류가 휴먼 지놈을 정복했다”고 선언한 것은 2000년이고, 저 두 맥주 덕후 아저씨가 돈 타기 2년 전이다.
도원결의가 아닙니다. (…) 클린턴이 ‘좌’ 벤터 ‘우’ 콜린스를 세우고 “인류가 휴먼 지놈을 정복했다”고 선언한 것은 2000년이고, 저 두 맥주 덕후 아저씨가 돈 타기 2년 전이다.

그렇게 해서 휴먼 지놈 프로젝트가 완성. 그다음에는? “인간은 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의 지놈 시퀀스가 밝혀졌음. 그러나 나와 너님의 차이는 뭐지?”에 대한 의문은 지속되었고, 2002년에는 “아마 이런 걸 알려면 사람의 전체 시퀀스를 병원 가서 한 백만 원에 엑스레이나 MRI 찍는 식으로 휴먼 지놈 시퀀싱해서 모든 유전병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거야. 근데 지금 시퀀싱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잖아. 우린 안될거야.”까지 오게 됐다.

그래서 좀 더 싸게 시퀀싱을 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높아지게 되었다.

솔렉사가 이루어낸 성과들

그러던 와중 솔렉사는 2006년에 최초의 제품(Genome Analyzer)을 출시하였다.

맥주집 논문

솔렉사 1G 지놈 애널라이저(Solexa 1G Genome Analyzer). 시퀀싱 용량은 1Gbp (Read 길이가 25bp라는 것은 안 자랑) 그리고 솔렉사는 2007년 초에 일루미나(illumina)에 약 6억 달러의 가격으로 인수된다. 그 당시의 일루미나는 비드어레이(BeadArray)라는 마이크로어레이(Microarray)를 가지고 당시 마이크로어레이의 최강자이던 에피매트릭스(Affymetrix)에 덤비던 업계의 2인자였다.

그리고 2008년, 일루미나 시퀀서(illumina sequencer)를 이용한 최초의 휴먼 지놈 시퀀싱 논문이 출현한다.

제1 저자는 맥주집에서 술 마시던 포닥, 제2 저자는 맥주값 내던 교수.
제1 저자는 맥주집에서 술 마시던 포닥, 제2 저자는 맥주값 내던 교수.

그리고 이것은 그 이후에 있을 ‘기승전시퀀싱’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한편 일루미나에 인수된 솔렉사의 시퀀싱 기술은 계속 발전하여, 최신 기종인 HiSeq 4000은 한번 러닝에 이제 1000Gb가 넘는 데이터를 생산한다. 10대씩 묶어서 파는 일루미나의 HiSeq X10의 경우 마침내 재료비 기준으로 1명당 돈 백만 원의 비용으로 시퀀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처음 떡밥을 푼 지 12년 만이다.

지난 10여 년간 일루미나의 주가 추이
지난 10여 년간 일루미나의 주가 추이

에피매트릭스와 옥신각신하던 일루미나는 시총 281억 달러의 괴물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들보다 기업 가치가 큰 회사는 딱 3곳이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하이닉스.)

반면 한국은…

문득 최근 실린 한국 신문의 기사가 생각난다.

“그 연구, 돈 되냐?”

출처: 머니투데이 - "그 연구, 돈 되나?"…정부 R&D '더 독해졌다'
출처: 머니투데이 – “그 연구, 돈 되나?”…정부 R&D ‘더 독해졌다’

과연 그들이 1997년 영국 맥주집에서 떠들던 그 ‘연구’는 한국의 관료들이 그 당시에 듣기에 “돈 될 것처럼 보이는” 연구였을까? 그걸 떠나서, 지금 당신들은 미래에 돈 될 연구를 구분할 안목이 있는가?

관련 글

2 댓글

  1. 잘은 모르지만 본문만 읽으면 솔렉스사도 결국 민간 VC투자받아 일어섰다 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면 한국은..이하의 글은 한국에서의 사례가 없네요.
    글의 의도는 마지막 문장으로 공감은 합니다만 결말도출이 너무 빨라서 앞의 솔렉스사의 사례와 어떻게 연결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좀 어렵네요.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