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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1996년, 신도림역 부근. 세 가구만 남은 아주 작은 철거촌. 더는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찾은 곳은 서울대 법대 학생회였다. 그 세 가구와 학생들은 철거촌에서 함께 잠자며, 고민을 나눴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당시엔 영구 임대주택을 구청장이 지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인 구청장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그 날을 박주민은 이렇게 기억한다.

“그때 눈이 엄청 왔어요. 철거민 가족 꼬마도 있었거든요, 두 명. 구청장이 만나준다고 해놓고, 아침에 갔는데 5시까지 기다려도 안 나오는거에요. 들어오라는 얘기도 안하고… 주차장에서 꼬마들이랑 머리에 눈이 이렇게 쌓일 때까지 맞았어요. 그래서… 결국 못 만났죠. 돌아가는 저녁 버스 속에 차창에 막 눈발이 휘날리고, 에이씨, 왜 우리가 하루종일 기다려도 안만나주는걸까? 그때 처음으로 사법시험 볼 생각을 했어요. 내가 변호사가 돼서 운동하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것 같다. 그때가 4학년 때였어요. 좋다, 그럼 내가 5학년때까지 학생운동 1년만 더 하고, 군대 갔다 와서 공부해 변호사가 되야지. 그때 처음으로 마음먹었어요.”

2012년, “야간집회금지 헌법불합치판결의 주인공” 박주민은 7년 차 변호사로 활발하게 ‘운동’하며, 틈틈이 글도 쓰고 있다. (박주민의 동분서주) 트위터 @2mb18nomA 에 대한 행정소송 1심 패소 직후, 사건 대리인 박주민 변호사를 그가 일하는 ‘한결’에서 만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변호사’ 로 알려진 그에게 민변의 한계와 의미, 변화하는 법률시장에서 민변과 변호사의 위상, 그리고 그의 ‘운동’과 ‘지향’에 대해 물었다.(@2mb18nomA 계정의 주인공인 ‘임영박’과 함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상대로 한 시정요구 취소 행정소송의 쟁점 인터뷰는 곧, 별도로 발행할 예정이다.)

1. 민변, 다른 시민단체와는 다르다.

– 민변에선 소장파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활동은 얼마나 하셨죠?

“허리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허리 바로 아래 정도죠. 민변 회원이 된지는 7년이 됐습니다.”

– 민변의 내부적인 관계, 속성과 역학, 누가 주도를 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런 것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그렇죠. 잘 알려져 있지 않죠. 대부분 분들이 민변이라고 하면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와 똑같은 조직인 걸로 아세요. 그래서 ‘민변 변호사’라고 하면, 민변이라는 단체에 속해서 거기서 마치 시민단체 활동가들처럼 그렇게 활동을 하는줄 아는데 그렇지 않죠.”

박주민 변호사

– 민변 상근 변호사들은 얼마나 되나요?
“세 명 있습니다, 세 명. 현재 상근 변호사는 세 명 있구요. 나머지는 다 비상근이에요. 자기 회사와 자기 사무실이 있는 상태에서 민변 회원으로서 민변이 부여하는 과제라든지 역할을 수행하는거죠. 그게 보통 시민단체들하고 많이 다르고요. 또 다른게 뭐냐면, 일반 시민단체들이나 인권단체들은 시민들에게 후원금을 받잖아요. 그런데 민변은 (변호사 회원들로부터) 회비만 받아요. 그러니까 회원들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회비가 상당히 세요. 민변 회원 3년차 이상이면 월 10만원씩 회비를 내요. 회비 이외에 일반 후원금 같은 건 없죠. 물론 나꼼수의 ‘표현의 자유 기금’이라던지, 2008년의 ‘촛불 소송기금’ 등을 모으긴 했었는데요. 그 이유는 워낙에 민변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니까 회비만으로는 충당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촛불기금이나 나꼼수 기금을 모아서 민변이 변론기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주신거죠.”

– 나꼼수 기금은 얼마나 모였고, 얼마를 민변이 쓸 수 있는거죠?
“지금 대략 모여진 돈이 3억 몇천만 원 정도고요. 민변이 대부분을 쓸 수 있죠. 물론 민변이 맘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선거시기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라든지, 또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국가로부터 공격받았을 경우에 변론기금으로 쓰거나, 또는 표현의 자유 신장을 위한 연구나 서적 발간 등으로 용도가 정해졌죠.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어요.”

– 촛불기금은요?
“2008년도 촛불 집회 때 ‘미국산 쇠고기 고시’ 있잖아요? 고시가 위헌이라는 걸 시민들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소송을 진행했어요. 시민들이 헌법소원 청구인으로 들어가면서 만원씩 낸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이 모이셔서 3억 원 이상이 모인 거예요. 그때 한번 또 돈이 모여서 남은 돈이 있죠. 남은 돈은 촛불집회 끝나고 지금까지도 소송이 계속되거든요. 변호사들한테 건당 실비로 얼마씩 주는 식으로 해서 촛불집회와 관련된 사건들은 그 기금을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총 청구인단 10만3476명으로 사법사상 최대이고, 모금된 참가비는 3억6천여만원이다.)

-촛불집회 관련해서 아직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는데요. 어떤 사건들이 있죠?
“지금 대부분의 촛불집회 관련 형사사건은 ‘추정’이란 게 있습니다. ‘추정’이란 게 뭐냐면 재판의 변론기일이 정확히 잡혀 있지 않고, 향후에 봐서 기일을 잡겠다는 거예요. ‘추후 지정하겠다’ 이런 뜻인데요. 왜 그러냐면 지금 ‘야간 시위’ 조항이 헌법재판소에 올라가 있어요. 이미 ‘야간 집회’ 부분은 헌법불합치 위헌으로 판결받아서 효력이 상실됐잖아요? 그런데 ‘야간 시위’ 부분은 그때 판단을 안 했어요. 그래서 법원은 어차피 ‘야간 집회’에서 위헌이 나왔다면, ‘야간 시위’도 똑같이 위헌이 나올 수 있으니까,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뒤에 판단하겠다는 거고, 형사 재판 대부분이 진행이 안되고 미뤄져 있는 상탭니다. 민사소송 진행했던 것들도 대법원까지 올라가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러니까 시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하는 경우…”

[toggle style=”closed” title=”* 참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 (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시간)”]”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

위 조항은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위헌 판결의 일종)을 받아 ”입법자가 2010. 6. 30.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계속 적용하되, 만일 위 일자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위 법률조항들은 2010. 7. 1.부터 그 효력을 상실”한다. 현재 아직 법조항이 개정되지는 않은 상태지만, “집회”와 관련해선 그 효력을 상실한 상태다.[/toggle]

– 이런 촛불 사건들이 현재 모두 몇 건이나 되나요?
“형사 사건 경우엔 뭐 셀 수도 없죠. 한 200건 정도 될 거에요. 민사소송 사건은 5, 60건 정도 될 겁니다. ”

– 민변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앞서 말했던 나꼼수 기금, 촛불 기금 같은 예외적인 기금 외에는 시민들에게 돈을 받지 않아요. 그래서 시민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있죠. 다른 시민단체들은 일반 시민회원에게 돈을 받으니 당연히 후원해주시는 시민회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겠지만, 민변은 그런게 별로 없어요. 그냥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는 거죠.”

– 여느 시민단체들과 달리 시민회원들이 아예 없으니 간섭이 적다?
“네, 그런 압력이 없죠. 일반 시민들로부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후원을 받지 않으니까. 회원들의 의사합치로 진행이 되니까, 독립성이랄까, 좋은 말로는 독립성, 나쁜 말로는… 뭐랄까, 자칫하면, 시민들과의 호흡이 떨어질 수 있는 그런 측면이 있죠. 또 대규모 사업도 못하고… 돈이 없으니까.”

– 민변 상근 인력이 세 명뿐이란 건 새삼 놀라운데요. 어떤 어떤 분이죠. 민변을 대표하시는 분들인가요?
“아니요. 대표나 실제로 사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은 비상근이시고요. 민변 사무처에 실무를 담당하는 세 분이 계세요. 회원교육을 담당하는 교육팀, 회원을 관리하는 회원팀, 변론사건 지정을 담당하는 변론팀. 이렇게 세 팀을 상근변호사께서 맡고요. 사무처의 나머지 세 팀은 또 비상근이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민변 사무처에 있는 변호사들도 비상근이 훨씬 더 많아요.”

– 민변 조직도가 잘 나와 있는 곳이 있나요? 가령 민변 홈페이지라든가, 블로그라든가…
“아마 잘 안 나와 있을거에요. (정말 그렇다) 왜냐면 홈페이지 자체에 신경을 잘 안써요. 올해와 내년에 홈페이지를 개편하자는 게 사업들 가운데 하난데요. 아시다시피 일반 시민분들에게, 가령 참여연대처럼 시민들이 보시기에 편하게 만들어야겠다, 뭐 이런 압박이 별로 없죠. 그래서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제는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늘리자는 취지에서 신경을 쓰려고 하죠. 왜냐면 시민들의 기대도 높아졌고, 민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부분도 많아졌고, 또 저희들도 뭔가 입법운동이나 판례변경운동 등을 하려면 시민들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혀나가자’가 올해, 그리고 내년의 핵심 과제 중의 하납니다. 그 일환으로 홈페이지를 접근성이 뛰어나게,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게 개편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 시민들과의 호흡과 접촉면 확장… 일단 홈페이지 개편 작업, 어떻게 전망하세요?
“하하. 잘 될지요? 모르겠습니다.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뭐 하겠다고 하셨으니까 잘 되겠죠…하하. 뭐 저희 변호사들이 막 한다, 이런 건 아니고, 용역을 주겠죠. 참여연대가 용역을 주었던 IT업체 등에 용역을 줘서 1년 정도 작업을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고,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습니다.”

– 올해 민변의 주력사업은 뭔가요?
“올해 민변은 시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혀가는 것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대중서적을 출간할 예정이고, 시민분들이 쉽게 민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도 개편하려고 하며, 시민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시민강좌도 개설하려고 합니다.”

– ‘시민들과의 호흡면을 확장’하는 것 외에 판례변경이나 입법운동의 차원에서 민변의 주력 목표가 있나 싶어서 질문 드린 건데요.
“시민들과의 호흡을 넓히고, 회원을 늘리자는 게 주력이구요. 현재로선 그런 (입법운동이나 판례변경을 위한 사업목표) 건 없고, 사건은 그때그때 생기면 합니다.”

2. 민변의 한계와 변화 노력: 과대평가와 과소평가 사이에서

– 민변 변호사로 7년 동안 왕성하게 활동하셨는데요. 외부에서 민변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대평가된 부분도 있고, 폄하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일단 과장된 이미지라고 스스로도 생각하는 건 어떤게 있을까요?
“일단 민변 변호사들이 엄청 많은 걸로 알고 계세요. 사실 회원수는 꽤 돼요. 이제 뭐, 800명 정도되니까. 회원은 꽤 많은데, 실질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근데 많은 분들이 ‘민변’하면 변호사들도 엄청 많고, 활동하는 변호사들도 엄청 많은 걸로 알고 계신데요. 그렇진 않다는 거죠.”

– 열혈 활동 변호사는 적다는 거죠?
“네. 그러니까 엄청나게 적은 인원이 과부하 걸리도록 일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의외로 연대사업을 할 때 민변이 기민하게 못움직여요. 왜냐면 사람이 없거든. 그런데 일반적인 시민단체들은 그걸 잘 모르시고, ‘아씨, 왜 민변 이렇게 오만하게구냐’이러시기도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거죠. 두 가지인데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첫 번째고, 한편으론 재는 부분이 있긴 해요. 왜냐면 법률가 조직이기 때문에 한쪽에 너무 치우치면 말에 신빙성이 사라져요. 민변에서 의견을 냈을 때, 민변이 어느 쪽에서 일하든 간에, 최소한 그 말 자체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 색채가 아주 강한 연대사업에 대해선 주저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하하.”

– 과대평가된 부분이면서 또 한계이기도 하네요.
“그렇죠.”

– 폄하된 부분은?
“그러니까, ‘어휴, 저 변호사 같지도 않은 놈들’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변호사 집단이나 법조인 내부에서요.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죠. ‘쟤네들은 무슨 맨날 기본권만 얘기해?’라던지, ‘쟤들은 법조인 같지가 않아!’ 어떻게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지금 기존에 확립된 판례라든지, 현행 법질서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계속 제기하다 보니까, 기존 법조인들이 봤을 때는, ‘아니 판례가 이런데 왜 저런 주장을 해’ ‘아니 법이 이렇게 있고, 법원이 이렇게 계속 해석해 왔는데 왜 틀렸다 그러는거야, 이런 공부도 안하는 놈들’ 이런 식으로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들이 봤을 때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선 법조인들 사이에선 많이 폄하가 된 것 같고…”

– 그 외에 이건 참 속상하다, 이건 좀 황당하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음.. 조금씩 극복되어가고 있는 건데요. 제가 변호사 3년 차 쯤에 법조기자들과 우연히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기자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면, ‘민변이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서면이나 이런 걸 보면 참 내용이 없다.’ (“허~” 짧게 김빠지는 웃음) 이런 얘길 해요. 제가 그 자리에서도 막 반박을 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예를 들어서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같은 경우도 논문을 뒤져보면, 최근에야 진보적인 교수들이 논문을 쓰시지, 예전엔 다 경찰대에서 쓴 거에요. 우리가 참고하거나 할 자료가 아예 없었다는 거죠. 변호사들이 학자처럼 막 연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우리는 나와 있는 자료들을 찾아서 분석하고, 가공해 전달하는 역할이 주인데요. 대표적인 악법인 경직법(경찰관직무집행법)이나 집시법만 해도 제대로 된 논문도 없었어요. 최근에야 민주법연 같은 곳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쓰고 그러시죠.

그러니까 민변이 전문적이지 않다고 그러시는데, 그런 비판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당장 싸워야 할 적은 앞에 있고, 시간은 급하고’ 저희가 참조할 수 있는 자료는 상당히 빈약한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바깥에서 보기엔 상당히 논리가 빈약한 걸로 비춰졌던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조금씩 나아진 것 같아요. 제가 봐도, 확실히 논문만 해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고, 자료도 많아진 것 같고. 민변 내부에서도 뭐라고 할까, 네트워킹 같은게 생기면서 필요하면 바로 바로 교수님들과의 토론회 같은 거 잡아버리거든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바로 바로 생산을 해주세요. 그래서 그렇게 얻어진 자료를 통해서 소송에 임하고요. 그런 식으로 요즘은 좀 기민하게 작업을 하고 있죠.”

3. 민변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 민변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법률 전문가 집단이 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계속해서 사회의 부조리와 제도의 모순에 대해 발언을 한다는 그 자체에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법이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거죠. 그런데 법과 판례를 개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발언을 계속 하는 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런 측면에서 역할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 같다.

– 그럼 역으로 민변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사회가 크게 상처(?)를 입거나, 시민들이 굉장히 아쉬워하거나 그랬을까요? 가정한다면…
“민변이라는 조직체가 없다 하더라도 변호사들 가운데 일부는 그런 작업을 계속 할 겁니다. 변호사 개개인의 양심으로. 하지만 민변이라는 조직으로 묶여서 거의 25년 동안 해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좀 더 강하게 작업들을 해왔던 거죠. 그래서 그런 조직체로서의 장점이 있는 것 같고. 공부를 하면서 느낀건데, 미국에선 변호사들이 계속 ‘기본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는 거죠. 기본권의 범위를 확장한다던가 하는 일이요. 민변도 어느 정도는 그런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고정적인 법해석이나 틀을 깨고 새로운 식으로 해석해보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하여튼 민변이라는 조직이 없더라도 누군가는 했을텐데, 민변이라는 조직이 있어서 좀 더 강하고, 효율적으로 해왔던 것 같다. 또 그런 역할을 해오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고…”

– 민변이 주도하고, 참여한 소송들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는 소송을 뽑자면 어떤 사건이 있을까요?
“제가 민변의 역사를 꿰고 있진 못합니다. 제가 경험한 7년 정도에서는 여러가지 소송이 있어요. 하나만 꼽기는 참 어려울 것 같고, 예를 들면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판결도 작년에 나왔었지요. 현대차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 야간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도 저는 상당히 중요한 판결이라고 생각해요. 몇 십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틀을 깨는 중요한 소송들이었던 것 같아요. 이 소송들은 성과를 낸 소송들이고요. 그 외에도 제가 생각하기에 실패하긴 했지만, 끊임없이 바꾸려는 시도들이 있어서, (그 소송들이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소송이 더 중요하다고 딱 집어서 이야기하긴 좀 곤란한 부분이 있어요.”

– 그렇다면 박주민 개인에게 가장 의미가 있는 사건은요?
“제가 개인적으로 성과를 낸 소송은 야간 집회 금지와 관련한 소송이었죠. 변호인단에 참여했었으니까요. 사실 그때 엄청 기분이 좋았고, 뭔가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고요. 그 힘으로 아직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헌법의 전문에 기록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 두 가지(3.1 독립운동과 4.19혁명)는 모두 집회, 시위였고 현행 헌법을 탄생시킨 1987년 민주항쟁 역시 국민들의 뜨거운 참여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회, 시위였다.”

– 박주민, ‘아름다운 밤이에요!’,, 서울: 해피스토리, 2011, 106쪽

4. 법률시장의 경쟁 격화와 ‘민변계 로펌’, 그리고 대형로펌을 선호하는 이유

– 잠깐 화제를 돌리면, 지금 계신 법무법인 이 소위 ‘민변계 로펌’으로선 가장 큰 규모인가요?
“저희 로펌을 ‘민변계 로펌’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뭐 그거야 여러 사람들의 평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불리는 민변계 로펌들 가운데 꽤 큰 규모죠. 현재 50여 명의 변호사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민변계 로펌’이라는 표현을 최근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긴 해요.”

– 어떤 이유인가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법률 시장 경쟁이 격화되잖아요?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소송, 기업일을 해야돼요. 왜냐면 기업만큼 돈을 주는 데가 없거든. 경쟁이 격화되면 가격이 다 떨어지는데, 그나마 돈을 주는데가 기업이예요. 그런데 기업은 반기업적 성격을 갖고 있는 로펌에는 절대 일을 안줘요. 그런데 ‘민변계 로펌이다.’ 이렇게 분류되면 일을 못 가져오죠. 그렇기 때문에 법무법인도과 합병했던 거고. 색깔을 없애버리는거죠. 저희들도 그렇게 시도할 수 있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는데, 이제 전반적으로, 자체적으로 후배들도 지향성 있는 친구들이 안들어오고, 위에 있는 분들도 더 이상 활동 안하면서, 스스로 그렇게 ‘민변계’로 부르거나 그런 일은 구태여 하지 말자. 스스로 규정하진 말자. 왜냐하면 시장에서 도움이 되면 그렇게 하는데, 저희도 변호사만 있는 게 아니라 직원들까지 200여명이 있기 때문에… 먹여 살려야 되잖아요? 돈이 어디선가 들어와야 되는데, 기업말고는 돈이 들어올 데가 없다는 거죠. 이 정도를 먹여살리려면. 그런데 반기업적이다. 친노동적이다. 친환경적이다. 반정부적이다. 이런 걸론 절대 돈 안되죠.”

– 사족이지만, (교보빌딩 16층)이 예상보다 너무 크고 화려해서 평소 박 변호사 이미지 때문인지 배반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하. 저는 구석탱이 정말 작은 사무실 써요.은 좀 규모가 있는 로펌이예요. 아무래도 화려한 로비나 럭셔리한 회의실, 이런 건 클라이언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죠.”

–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에 소위 실력이 우수한, 물론 그 실력이란 게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연수원 성적이 좋은, 그런 인력들이 몰리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제가 보기엔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하나는 금전적인 보상. 금전적인 보상이라는 게 단순히 돈이 아니라, 돈도 있지만. 내 몸값, 나의 가치, 이렇게 생각을 하죠. 내 몸값을 높게 쳐주는 곳, 나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돈’이라는 부분. 또 하나는, 변호사들은 이런 욕망을 갖고 있어요, 뭐냐면 마치 외과의사가 아주 전문적인 수술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좀 더 전문화되고, 좀 더 상승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처럼, 저희 회사 내에서도 많은 변호사들이 뭔가 자기 전문분야를 갖고, 더 전문화되고, 이런 걸 꿈꿔요. 그런 걸 위해서는 사실 대형로펌이 더 낫죠. 왜냐면, 이런 거예요, 작은 병원에선 간단한 심장 수술 밖에 못하는데, 큰 병원에선 더 복잡하고, 어려운 심장 수술을 해볼 수 있잖아요. 대형로펌에 가면 변호사들이 접할 수 있는 사건의 종류와 폭이 훨씬 더 대단하죠. 그러니까 그런데 가면 더 빨리 전문가가 될 수 있고, 보다 더 전문화가 될 수 있고, 그러니까 그 쪽을 많이 선택하는 거예요. 두 가지 그런 욕구 때문에 많이 그 쪽으로 가는 것 같고…”

– 외과의사 비유가 아주 인상적이네요.
“반면에 그렇다고 다 그러냐. 그렇진 않구요. 최근에도 보면, 동네 변호사 개업을 하시는 분들이라든지, ‘희망법'(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이라는 ‘공감'(공익변호사 그룹)과 같은 그룹도 생겼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다양한 경로로 슬슬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이게 작지만 새로운 흐름들도 있다, 긍정적인 흐름들도 있다. 시민운동 진영의 맨파워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아예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저처럼, 제가 연수원에서 나왔을 때는 선택지가 없어서 로펌에 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로펌 일도 하고, 공익 일도 하겠다고 낑낑대는데, 요즘에는 아예 ‘난 로펌 안가’ 이런 친구들도 많아진거죠. 그러니까 바로 개업을 하던지, 아니면 바로 어떤 단체의 상근을 하던지, 후원으로 운영이 되는 변호사 사무실을 만들어버린다던지 이런 식으로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대형로펌에 몰리는 현상도 있지만, 다른 흐름들도 있는거지요.”

5.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라는 직업

– 왜 변호사가 됐어요? 우선 왜 법대에 들어갔어요?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요. 성적이 서울대 법대 커트라인에서 4,5점이 남았어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더 높은 점수 학과가 없어서 그냥 들어갔어요. (민망한 웃음) 그렇게 학교에 들어갔는데, 1학년 때부터 선배들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래도 법대니까 ‘법서’를 읽어야겠다고 처음 읽은 책이에요. 변증”법”적이라서. 하하. 러시아 교과서로 쓰이는 그런 책이었는데, 지금 보면 아주 교조적이죠. 머리가 시원해지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선배들 쫓아다니면서 운동하니까 더 사시를 보거나 변호사가 되겠단 생각은 없었죠.”(그 이후의 사연은 앞서 읽은 ‘신도림동 철거민’ 에피소드)

– 변호사란 직업이 어때요?
“일단 자유로운 부분이 있어요. 자영업이니까. 그리고 로펌에 속해 있더라도 정해져 있는 틀이 없기 때문에 빡빡한 노동통제가 안되죠. 제가 어디 나가 있으면 일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웃음) 주어진 일만 처리하면 되는 식이니까. 자신의 생활이나 시간을 좀 자유롭게 짜서 쓸 수가 있어요, 로펌에 있다 하더라도. 개업한 사람들은 완전 자영업자죠. 자기들이 맘대로 하면 되죠. 두 번째는 남들이 봐줄 때 좀 전문적이라고 봐주기 때문에, 말을 하면 똑같은 말을 해도 좀 더 믿어주시죠. 뻔하게 틀린 소린데도 믿어주시고… 하하. 그래서 운동하기 편한 면이 있긴 해요. 다른 활동가들에 비해서, 약간 죄송할 정도로 그런게 있죠.”

– 자연스럽게 질문이 연결되는데, 변호사는 대한민국에서 특권층으로 분류될 수 있잖아요. 이에 대한 사회적 자각이 분명히 있을테고, 한편으론 사람이니까 ‘으쓱’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런 부분을 실존적으로 경계하기도 하고 그럴 것 같은데요.
“저는 1,2년차 때엔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부딪히면서 체험하다보니까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을 스스로 갖고 있고, 오히려 겸손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가 일이 더 잘되고요. 이제는 뭐, 활동가 분들께서 저를 보고 ‘활동가인지 변호사인지 구별이 안된다’라고 얘기할 정도니까, 그런 면에선 저 같은 경우엔 그런 생각(특권의식)이 없는 것 같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재밌는 게 제가 활동하면서 만난 활동가 분들이 대단하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진보넷 장여경 활동가 같은 경우에는 그 쪽(정보인권) 파트에선 엄청난 수준이시잖아요? 뭐 말을 할 수가 없는 거고. 각각의 파트에서 너무들 대단하시니까. 정보공개 파트에선 전진한 사무국장 엄청나잖아요? 뭐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배워야 하는 입장인거고. 환경 쪽으로 가면 또 환경 활동가들이 대단하세요.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보면, 우리 운동의 역사가 꽤 됐잖아요? 이제 활동하시는 분들이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분들이 더 많아요. 풀도 커지고, 수준도 높아진거죠. 학생인권의 배경내 씨 경우에는 엄청난 철학적 깊이를 갖고 계세요. 그래서 저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거죠. 변호사라는 거 말곤 내세울 게 없다. 하하.”

– 본인은 그런데 다른 법조인들은 어떤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검찰이에요. 검찰은 어떠냐면, 검사가 처음 되면 ‘영감님, 영감님’하고 존중해주잖아요? 처음엔 되게 본인들도 되게 불편해하데요. 뭐 저도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무슨…저 좀 편하게 해주세요.’ 하다가, 어느 순간, 거기에 취해버려요. 취하면서 뭔가를 깨닫게 되죠. ‘아, 내가 이렇게 존중을 받고, 기분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건,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 가문, 내가 속한 검찰이라는 가문이 훌륭해서 그렇다.’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지며)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매진해요. 그래서 가문을 건드리면 안되고, 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겠다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돼죠.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가문의 수족처럼. 그렇게 돼요.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거죠. 뭐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그런 분들이 좀 더 많은거죠, 그 쪽에.

뭐 변호사들도 그렇게 (가문의 영광을 추구하는 검사들처럼) 갈 수도 있겠죠. 대한변협에선 변호사 숫자 늘리는 건 절대 반대하거든요. 왜? 적으면 먹고 살게 많아지는데, 이것 뿐만 아니라 많아지면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거예요. 가문의 영광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변협(대한 변호사협회)에 계신 변호사들은 많이 생각하시죠.”

– 얘기 나온 김에 변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편집자 주: 변협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법에 의해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변협은 이익단체의 성격이 많죠. 의사협회, 약사협회 같은 거니까요. 민변하고 변협은 많이 다른거죠. 변협은 직업으로 묶여 있는 거고, 민변은 직업으로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이념’으로 묶여 있는거니까.”

– 로스쿨 제도에 대해선 어떻게 보세요? 특히 정원, 적당하다고 보세요?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많아지면 좋겠죠. 하지만 적정할 필요는 있다 봐요. 적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면, 교육기관의 능력을 신장시키면서 거기에 부합하는 정도로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를 갖고 있어요. 기본적으론 늘어나는 게 맞다고 봅니다.”

6. 박주민의 전문분야, 박주민이 존경하는 사람들

– 공저자로 참여한 ‘호모 레지스탕스’의 글을 보니 헌법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요.
“법을 하려면… 헌법은 밥을 먹여주는 법은 아니거든요. 저는 헌법, 특히 표현의 자유에 관심을 갖다보니까.. 헌법이 우리 사회의 합의 기본내용이고, 그런 내용들이 사회적으로 지켜지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 너무 당위적인데요. 헌법에 관심을 갖게 된 박 변호사만의 사연이나 계기라던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보다니까 기댈 수 있는 법이 헌법밖에 없어요. 기존 법이 아시다시피, 집시법이나 이런 법들이 너무 형편없잖아요. 그래서 상대편과 똑같이 집시법이라는 플레이그라운드에서 놀고, 싸우면 져요. 그러면 당연히 싸움을 헌법으로 가져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거에요. 어떻게 보면 슬픈 현실이죠.”

– 아까 외과의 비유를 통해 전문분야를 이야기하셨는데, 박 변호사의 전문 분야는 어떤건가요?
“제 전문분야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법제들, 기본권 파트에 집중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겠죠. 올해는 그래서 제가 헌법을 전체적으로 공부해 볼 생각이에요. 민변에 스터디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헌법,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의 헌법은 어떤지. 교수들을 초청해서 강의 듣는 식으로 헌법 공부 제대로 한번 해야되지 않을까, 기존의 지식으로는 더 이상 싸우기가… 하하.”

– 전범이나 롤모델, 존경하는 법조인이랄까.
“저는 옛날부터 박원순 변호사를 좋아했어요. 변호사로서의 그 분의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상당히 아이디어가 많으신 분이잖아요. 변호사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변호사 아닌 것처럼 할 수 있구나. 아이디어 풍부하게. 변호사가 고정적으로 스테레오타입화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새롭게 치고 나간달까,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고, 아, 저런 식으로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 조영래 변호사 같은 분은..? (고 조영래는 현재의 민변을 창립한 한국 인권변호사의 대명사)
“조영래 변호사님은 제가 아직 전기도 못 읽어봤어요. (민망한 듯) 하하.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요. 그런 체험을 통해 아, 이 분 참 존경할 만 하다 싶은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민변에서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죠. 또 참여연대 안진걸 팀장 같은 경우는 와, 정말 존경할만하죠. 사람들을 다 공범으로 만들어버리고. 하하. 아무튼 활동하는 분들은 제가 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구요. 천주교 인권위원회의 김덕진 국장 같은 사람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인 것 같고. 다 그래요. 야, 저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주시는 분들이고. 활동하는 분들은 다 존경스러운 분들. 선배들 가운데 존경할 만한 분들은 지금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 같은 분. 정말 10년 가깝게 표안나게 정말 치열하게 사신 분이고요. 김선수 변호사 같은 경우도 민변 회장이라서 존경하는 게 아니라, 그 분이 소송을 진행하는 걸 보면 워낙 뛰어나세요. 뛰어나시고, 잘하시고. 김형태 변호사 같은 경우도 와, 정말 소송하는거 보면 잘 하시고, 그 성실함과 꼼꼼함 존경할만 하죠.”

–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는?
“정치지도자들 중에는 없는 것 같은데. 특별히 누굴 존경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생기면 좋겠어요.”

당신이 어느 날 후원 주점에 가면…

‘박주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후원 주점들이다. 용산 일일호프, 쌍용차 일일호프…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그때마다 좀 비싸다 싶은 경매품들을 싹쓸이하는 박주민. 요즘 표현을 빌자면 ‘경매 종결자’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서너 번 된다. 그 이야기를 물었다.

“으하하.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어서. 사실 제가 없는게 돈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쌍용자동차 같은데 가면 노동자 분들이 저에 대해선 딴 건 모르고, ‘일일호프 때 와서 경품 비싸게 사간 사람!’, 이렇게 기억하세요. 그런데 사실 아시다시피 그렇게 해야 달성되니까. “사실 경매라는 게 흥행을 하려면 누군가가 계속 가격을 높여야 되잖아요. 가격을 높이다 보면 제가 사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한 천만 원 넘어요?)  “그렇게까지는 안돼요. 생각보다 일일호프가 많지가 않아요. 술값이랑 티켓까지 합하면 모르겠지만, 경품 값으론 그 정도까진 안되고, 한 삼사백만 원 될거 에요.”

“그런데 저 보다 더 많이 기부하시는 분들 많은데, 평소에도 기부하고 그래야 하는데, 게으러서 못하는 면도 있고 그래서… 후원주점 가면 못했던 거 좀 해야죠. 평소 못했던 거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는거고, 저희 로펌에 이상희 변호사라는 분이 계신데 그 분도 참 기부 많이 하세요. 제가 항상 부끄러울 정도로 기부를 많이 하시고, 그리고 제 친구 박진석 변호사는 특별히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아닌데 정말 기부를 많이 해요. 정말 흔쾌히 해요. 저는 그렇게 하진 못하고, 평소엔 ‘노동’으로 서포팅을 해드리다가, 하하, 일일호프 같은 곳에 기회가 되면 기부하는 마음으로 하려고 하죠.”

당신이 언젠가 어렵고, 힘든 우리 사회의 일부가 스스로를 돕고자, 함께 서로 나누고자 연 후원주점에 간다면, 거기에서 박주민을 볼 수 있으리라. 가장 비싼 경매품을 결국 낙찰받고 있는 파마머리의 순한 미소를 가진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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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아…훌륭한 변호사가 있겠지만….생각해 봤지…누가 훌륭한 변호사인지는 관심있게 찾아보지 않아 몰랐었는데….위 인터뷰 내용을 탐독하고…링크되어 있는 것 죄다 가 보았네요. 위에 언급된 변호사들을 알게 해 줘서 고맙고… 그것을 링크해 둔 민노씨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2. 저도 박주민변호사의 팬이 되었습니다. 변호사님의 삶은 너무 멋진것 같습니다.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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