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의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box]
박씨와 정씨는 벌써 열흘째 아파트 경비원과 주민을 피해 다니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전체 27개 동 입구마다 ‘배달사원 승강기 사용 자제’라고 적힌 경고문(사진)을 붙였다. “배달사원(신문·우유 등)들은 배달시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배달해 주시기 바란다”고 적혀 있다.
배달원이 엘리베이터 타는 전기값이 정 아까우면, 우유와 신문은 경비실 옆에 있는 우편함에 꽂아 두게 하면 될 것 아닌가. 아파트 주민들이 배달 서비스 비용을 아끼는 유일한 방법은 내 몸을 바지런하게 하는 도리밖에 없다. 내가 돌아봤던 나라들은 그랬다.
상식적으로 엘리베이트를 타지 못해 배달 시간과 노력이 증가하면, 배달 비용이 올라야 한다. 위 기사의 아파트 주민들이 서비스 변화에 따른 비용 인상 요인이 있는데, 비용 인상은 거절하고, 서비스 변화만 요구하는 건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공정’하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지도 않다.
왜 우유배달원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정작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위 기사에서 기자가 우유배달원에게 물었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우유상자를 싣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주민이 쳐다보면서 ‘전기세 내고 이용하는 거냐’고 따졌어요. 할 말이 없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개만 숙였지요. (위 한겨레 기사 중에서)
왜 우유배달원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왜 이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나? 아파트를 무수히 드나드는 상인들, 전도하는 사람들, 선거 홍보 운동하는 이들, 그리고 옆집 방문객들에게는 왜 그렇게 따지지 않을까? 이들은 주민들에게 어떤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데…… 오히려 내게 유용한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이리 핏대를 세우고 공박하는 걸까?
혹 이런 모습은 배달 서비스 이면에 은밀히 작용하는 갑을 관계,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일상의 권력 관계가 발현된 모습은 아닐까? 그래서 식당 이모는 세상에서 가장 막 대해도 되는 이모가 되고……
인심이 각박해서? 일상과 내면에 스며든 차별적 인식
이 기사는 이 문제를 “인심이 각박”한 것으로 돌렸다. 한가한 진단이다.
10년 동안 강남구 아파트에서 우유를 배달해온 정씨는 “배달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서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은 있는 사람들 인심이 더 각박하다”고 덧붙였다. (위 한겨레 기사 중에서)
나는 이 문제를 소위 ‘강남’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로 ‘강남’에서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높겠지만, 문제의 핵심에는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자리한다. 한겨레 기사는 여러모로 사실 자체와 강남에 대한 날 선 감정이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있는 사람이 더 그럴 수 있느냐는 식이다.
이일청 박사의 지적처럼, “민주주의에서 투표나 다수결 원칙 등 형식적 제도만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즉, “아파트 주민 자치, 아파트 관리인의 주민에 관한 책임, 주민들의 의견 표명 등은 모두 있지만 정작 배달원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공 토론은 결여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이유야 어떠했던 간에, ‘왜 최종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배달 노동자이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한겨레 기사는, 이렇게 미안해까지 하는 노동자를 타박하는, 아파트 주민의 몰인정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그게 아주 불편하다. 우리 일상에 숨어 스멀스멀 살아 꿈틀거리는, 그렇지만 못 본 체하는, 그런 권력관계가 확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직시해야 하는 건 우리 안에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스며든 ‘저 배달원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 그 자체다.
같은 시민이라도 노동자라고 바라보는 순간 대부분의 인식에서는 자신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노동자일 경우가 많을 텐데 사용자가 되는 순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남편도 회사원(사무직 노동자)이면서 아파트 관리인의 노동을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자녀에게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고 한다네요! (김남석)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부산물의 하나죠.
돈으로 포장된 천박한 인간성이죠.
올라갈 때만 타면 되지
참…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 생각한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은 배우면 유식해진다는데 상식밖의 무식함은 어디서들 배워오는걸까요. 기업은 재화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비용을 지불하는게 경제라고 알고있는데 지금은 소비자는 과한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는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행태에서 비롯된 악순환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봅니다.
지불한 비용만큼의 정당한 재화는 서비스를 하는 하청업체가 아닌 기업에게 요청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바꿔야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 배달원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스스로의 편협함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입으로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다만 제가 보기에 주민들 불만의 초점은 ‘전기값’보다는 마음이 바쁜 아침시간 ‘층층이 서는 엘레베이터’가 아닐까 합니다. 경고문을 읽으면 각층마다 눌러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며 그로인해 발생하는 불편 중 하나로 ‘전기료’를 명시하고 있는 것이고, 경비원도 공동부담 전기료에 항의를 받은 것이고 엘레베이터 전기료는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마치 전기료가 경고문이 붙은 주 이유라는 편향된 느낌을 줄 수 있는 인터뷰들만 사용된것 같아서 기사가 좀 더 공정했어야 할 필요는 있었다고 봅니다.
이일청 박사님이 말씀하신 내용처럼 이해관계자가 모두 참여한 형태의 토론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합니다.
두가지 생각이 드네요.
하나는 그깟 전기료가 얼마나 나오길래?
그리고 그 배달로 얼마나 많이 번다고 없이 사는 사람에게 유세인가 싶네요…
두번째는 층층마다 눌러놓고 배달하다보니 자기가 자기발목을 잡았구나하는것입니다. 처음부터 자기 몸 편하려는 생각을 좀 덜했더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듯…
이 두가지 중 해당아파트는 어느쪽이었을까 궁금하네요..^^
계단 내려갈때 올라갈 때보다 힘이 덜 든긴 하지만, 무릎손상이 덜 가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내가 당장 지각하거나 내가 당장 피곤해 죽겠는데 오래 기다리니 ㅅㅂ 짜증나.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야생의 왕국,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내가 죽겠다고 남을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가 딱합니다. 연대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계단을 올라갈 때는 체중의 3배, 내려갈 때는 체중의 7배까지 하중이 실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고로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배달원의 힘이 덜들지만 그들의 무릎은… ㅡㅡ
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올라갈 때나 내려가는 것 모두 힘이 든다는 거에요.
배달하시는 분들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층층마다 눌러놓고 시간 벌어서 내려오시는거 한 두번 본게 아닙니다..시간 없을때 급할때 얼마나 이기적으로 보이던지..
엘리베이터 이용하지 말라는건 너무 야박한 소리지만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에 요구르트 아줌마는 꼭 출근시간에 엘리베이터 이용하시면서 1층부터 올라오면서 배달을 하시길래 출근시간 피해서 해주시면 안되냐니까 오히려 출근시간을 앞당기면 되지 않냐고 큰소리 치시던데…그런 사람들보면 좋은소리 안나오는건 사실이예요 ㅠ
이명박이니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 있겠군.
어이가 없네. 전기세는 우유시킨집에서 부담하는거지. 왜 배달원한테 그러는거지? 진짜 기본적인 인성도 안된사람인것 같다. 사람이 먼저지 그깟 전기 몇 푼 때문에 사람을 힘들게 하나. 화가나네요!
문제의 본질은 전기값이 아니죠…
출근시간에 배달원이 윗층부터 모든 층을 누르며 내려오다보니 출근하는 주민들이 불만을 이야기 해서 저런 조치가 내려진 것으로 압니다.
저런 주민 불만이 있는 곳은 1층에 배달용 바구니를 만들고 각자 찾아가는 방식이 합리적일 듯~
8층에서 내려갈려고 하는데 17층부터 하나하나 세워가면서 내려오는 신문배달 보면 새벽부터 졸라 기분 좋겠네?
신문도 일반 우편물처럼 그냥 각자 우편함에 넣어 두면 되겠네요. 그리고 각자 자기들이 내려가서 찾아가는 걸로. 그럼 모두 깔끔히 해결. 신문이 귀중품도 아니고 그걸 꼭 집 앞에 놓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또 다들 지랄지랄 하겠죠?
바로 자기 집 문 앞에 신문을 갖다 주길 바라는 욕망은 참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고 신문배달부가 효율적으로 일하는 건 내가 기다리니 싫고…
자신들의 편익은 절대 손해 볼 생각은 없고, 일하는 사람은 죽든 말든, 힘들든 말든 그냥 시키는 거… 이게 이 글이 말하는 그런 거 아닌가요?
자기 자식이, 자기 부모가 신문배달할 일은 절대 없을 거란 의식.
이런 비합리적인 생각은 이제 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아니 간단하잖아. 위에도 써있고 자기네 우편함에 받으면 된다고. 그거 챙겨오는거 싫어서 ‘남의 노동력’ 우습게 보고 우리집까지 가져다달라고 하는거잖아. 그 노동력 제대로 사지는 못할망정 ‘전기료 더 나오고’ ‘아침에 번거롭고’ ‘출근시간 바쁘다’ 같은 소리는 너무 궁색하지.
아직도 이 얘기가 나오네요! 팩트를 안 후에 의견을 내셨으면 합니다.
http://blog.naver.com/jw96306?Redirect=Log&logNo=70145315656
그리고 덧붙이자면 은마아파트는 자식들 8학군 학교, 대치동 학원 보내려 전세로 들어와 사는 주민이 다수인 서민 아파트입니다. 그들의 그릇된 교육열은 탓하셔도 좋지만, 부자라고 탓하실 수는 없는거죠. 부자/서민, 강남/비강남 구도로 몰고 가는 건 바른 언론의 자세가 아닙니다. (참고로 완벽히 바른 언론이란 없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기사 본문은 보셨어요? 강남 문제로 몰아가는 게 옳지 않고, 서민이든 갑부든 간에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잖아요.
ㄴㅋ님 말대로라면 그럼 서민은 우유 배달부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는 건가요? 자식 대치동 학원 보내서 돈 벌어 신분 상승할 것이니 나는 우유 배달부와 관계 없다는 건가요? 글은 좀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러니 “혹시 은마 아파트 주민이세요?” 라고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그럼요. 강남 문제로 몰아가는 게 옳지 않다는 데 본문과 동의합니다 ㅎㅎ 댓글 중 아파트 주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어서, 이용자들 보시라고 “팩트를 안 후에 의견을 내셨으면” 한 겁니다. 글 쓴 분에게 한 소리가 아니고요.
다시 덧붙이자면 죄없는 우유 배달부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저와 같은 강북 거주민도 이런 의견 가질 수 있다는 점 참고해 주세요.
위에서 아무도 강남 이야기한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 열내다가 갑자기 정신차리고 강북이라고 굳이 이야기하는 게 더 웃기네요.
아이피 검사해보면 저 지역에 사는 분이 맞을 것 같네요. 최소한 강남사는 사람일테고. 코미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