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대이동

2000년 전후 한국 개신교에는 신자들의 대이동이 있었다. 이는 대략 다섯 범주로 분류된다.

  • A: 중상위 계층의 대이동
  • B: 하층 청년층의 대이동
  • C: 하층 남성 노년층의 이동(여기에만 ‘대’가 없는 건 그 규모가 작아서다. 하지만 그 담론적 파장은 크다.)
  • D: 청년과 중산층의 대이동(이동D)
  • E: 청(소)년층의 온라인공간으로의 대이동(이동E)
A: 중상위 계층 대이동 ⇨ 후발 대형교회 현상

이동A는 강남권(강남+강동+분당 지역)의 일부 교회로 이동하는 현상인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대형교회들이 출현했다. 나는 이를 ‘후발 대형교회’(이하 ‘후발’) 현상이라고 부르겠다.

한국 개신교는 두 번의 대형교회 출현 러시가 있었다. 한데 이 둘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선발 대형교회’(이하 선발)는 대부흥기의 정점에서 나타난 것으로 대략 1980년 전후 시기에 일어났다. 반면 ‘후발’은 성장세가 정체된 2000년 전후에 집중적으로 출현했다. 새 신자의 유입이 현저히 줄었는데도 대약진을 이룩한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신자들의 수평이동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또 선발은 전국 대도시에서 두루 나타났는데, 후발은 압도적으로 강남권에 집중되어 있다. 해서 후발은 자산이 많고 학력이 높으며 상징권력을 더 많이 가진 계층이 대거 몰려든 결과다. 이 시기 한국 사회에 문화계급이 탄생했는데 그들의 문화적 실천의 장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후발이라고 나는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를 ‘웰빙+보수주의’로 논한 바 있다.

B: 하층 청년층 대이동 ⇨ 신천지의 대대적인 성장

이동B는 신천지의 대대적인 성장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신천지는 대략 2000년 경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초고속 성장세를 보였다. 이때 신천지로 유입된 이들 중에는 개신교에서 이탈한 하층 청년층이 대단히 많았다. 가정폭력, 학교폭력, 일터폭력 등의 피해자들을 포함해서, 소비사회의 역동적 발전 과정에서 자존감 추락을 심각하게 겪었던 이들이 ‘안전(한 관계의) 공간’으로 이동한 현상의 일부로 해석된다. 한데 그 안전공간은 대체로 반 사회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데 유용한 공간이 아니었다.

C: 하층 남성 노년층의 이동 ⇨ ‘거리의 전도자’ 급증 현상

이동C는 2000년대 즈음에 급증한 ‘거리의 전도자’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들 다수는 산기도원을 전전하던 일종의 부흥회 중독자들인데, 그 과정에서 노동능력이 무력화되었다. 노동현장의 폭력성에 시달리던 이들은 부흥회를 통해 자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기도원이 쇠락하면서 개신교는 이들을 포용할 장소를 잃었다. 어디에도 귀속하지 못한 채 그들은 사회 속에 내던져졌다. 바로 이 시기에 서울에는 ‘거리의 전도자’들이 급증했다. 그들은 대체로 하층 남성 노년층이었다.

한편 2010년대 후반 거리의 전도자들이 갑자기 줄었다. 그들 다수가 이른바 ‘태극기 전사’가 된 것이다.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가 출현했다. 전광훈 현상에는 이들 하층 노년층이 대대적으로 극우 전사로 변신한 것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박사모 탄핵 반대 집회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D: 청년∙중산층 대이동 ⇨ ‘떠돌이 신자’ 급증 현상

이동D는 ‘떠돌이 신자’ 급증 현상을 가리킨다. 1990년대 전후 신자들의 자존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탈 권위주의 시대정신이 기반이 되었고, 새 신자가 두드러지게 줄어든 데다, 성직자보다 긴 교회 연륜의 신자들이 훨씬 많아지게 되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또 성직자보다 권위자원(authority resources)을 더 많이 보유한 신자들이 많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주권 신자화’(sovereignization of believers)라고 부른다.

반면 성직자들은 퇴행 주체로 전락하고 있었다. 매스미디어는 성직자들이 교회의 낡은 권력을 수호하는 데 집착하고 퇴행적 언행을 일삼는 모습을 집중 조명했고, 그런 공적 이미지 실추 과정은 성직자들의 자존성 추락을 더욱 심화시켰다.

일부 주권 신자들은 낡은 성직자 권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평신도 권력층이 되었다. 하여 성직자의 권력 세습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았는데, 평신도 파워엘리트들이 교회를 권력 세습의 장으로 활용하는 현상은 거의 주목받지 않았다. 그 결과 일부 교회, 특히 ‘후발’은 평신도 파워엘리트의 집결소가 되어갔다. 실제로 파워엘리트의 40% 이상이 개신교 신자였다.

한데 낡은 권력의 장이 된 교회 혹은 새로운 권력 세습의 장으로 작동하는 교회에 불만을 품은 주권 신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교회 내에서 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교회를 떠나 유랑하는 신자가 되었다. 나는 이것을 ‘떠돌이 신자’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떠돌이 수행 과정에서 눈부신 성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이동은 교회 간, 종교 간, 그리고 종교와 비종교를 아우르는 경로로 이어졌다. 이는 탈 장소적 신앙, 아니 ‘신앙 너머의 영성’(spiritual but not religious)의 출현으로 나타났다.

E: 청(소)년층의 ‘온라인 공간’으로의 대이동 ⇨ 교회 청(소)년층의 대대적 이탈

이동E는 교회 청(소)년층의 대대적인 이탈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탈 종교화하거나 유사종교(the religious)의 대중이 되어갔다. 주목할 것은 최근 극우화된 청(소)년 대중과 팬덤대중이 오프라인의 사회정치적 공론장과 맹렬하게 접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접속을 통해 전자는 더 극우화했고, 후자는 더 많은 민주주의 주체가 되어갔다.

건국 이후 3번의 개신교 대전환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개신교에는 3번의 대전환이 있었다. 첫 번째가 ‘한경직’으로 상징되는 ‘증오’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종교였다면, ‘조용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성장’ 패러다임이 뒤를 이었다. 이때 개신교는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한데 21세기 전후 새로운 대전환이 도래했다. 이 세 번째 대전환의 핵심 키워드는 ‘웰빙’이다. 물론 이 세 패러다임은 모두 ‘보수주의’와 결합되었다.

웰빙+보수주의 패러다임은 위에서 언급한 대이동 가운데 이동A가 일으킨 효과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후발이 가장 압도적으로 성공한 개신교 분파가 되었고, 다른 범주의 많은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서 열렬히 따라하기 붐이 일어났다.

후발의 웰빙+보수주의 신앙은 세계화 친화적인 신앙 양식으로 발명된 것이다. 무한경쟁 체제 안에서 질주하는 전사들이 후방지대에 웰빙의 문화공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인맥공장의 역할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웰빙에는 중상위층의 문화적·사회경제적 욕구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세계화는 자본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경계를 꿰뚫어 연결하는 체계를 만들어가면서 작동한다. 이런 체계에서는 특정한 정체성에 고착된 주체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체가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해방 이후 개신교 주류파가 추구했던 ‘반공’에 고착된 보수주의(이념적 보수)는 오늘날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특히 ‘후발’에서 더욱 그랬다. 나는 이런 ‘후발’적 보수를 ‘글로벌 보수’라고 쓴다.

후발 따라하기에 열정을 쏟은 많은 교회와 신자들은 점점 더 심한 열패감에 사로잡혔다. 더 큰 문제는 웰빙의 신앙에선 그런 절망이 위로받을 자리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선발의 시대에 주요 신앙 양식은 ‘(닥치고) 축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웰빙+보수주의적 신앙은 ‘윤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윤리는 중상위계층의 문화적 욕구와 접속되어 있었기에 다른 부류에게는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해서 다른 출구가 필요했다. 바로 그런 출구의 하나가 21세기적 극우 개신교 현상이었다.

극우와 개신교의 만남

먼저 열패감에 휩싸인 개신교 성직자들에 주목하자. 그들 중 일부는 교단정치 혹은 교회연합정치에 적극 가담했다. 교회의 빌드업을 추구하는 대신 교회의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집착하겠다는 것이다. 21세기 첫 10년대에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나 기독교정당 운동이 힘을 발휘했던 것은 성직자들 다수가 극우 전선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이동C의 결과인 아스팔트 우파는 전광훈 중심의 정치종교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된 대중이다. 한편 극우 성향의 중산층 신자 다수도 전광훈 현상의 주요 대중이다. 그들은 교회에 기부했던 헌금의 상당 부분을 전광훈에게 보냈다. 그것은 자신들의 교회가 극우 전선에 나서기를 망설였기 때문이고, 그 대신 전광훈이 극우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B의 하층 청년층 다수는 신천지로 이동했다. 이 종단의 일부 소그룹의 극우나 보수 성향의 정치적 행보가 포착되긴 했는데, 종단 차원의 정치행위는 알려진 바 없다. 어쩌면 공적 영역으로부터 안전공간을 찾으려는 신천지 신자들의 ‘은둔의 종교성’ 때문일 수도 있고, ‘비 정치적 종말신앙’의 전통이 강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동E에서 남성 청(소)년의 일부는 극우 성향을 보였다. ‘일베’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스펙을 갖춘 이들이 꽤 많다.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이, 그것으로 인한 좌절감이 그들을 증오하는 정치 주체로 호명하는 데 유효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전면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프라인 공간에서 그들이 접속하고 싶은 주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온라인 극우 청(소)년들이 광장으로 나오기 위해 전광훈 혹은 손현보와 접속했다. 하지만 그 접속은 미국에서 트럼프와 접속했던 대안 우파의 다수 유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임시적이다. 즉 그들은 아직 최선의 대안을 찾지 못했다.

전광훈과 손현보의 출현

한편 대중이 좌절감을 증오로 전환시키도록 자극하는 존재가 있다. 정치학에선 ‘포퓰리스트’, 종교학에서는 ‘(극우) 예언자’, 그리고 현대 실천이론에서는 ‘촉진자’(facilitator)라는 용어에 해당하는 존재들이다. 현재 한국의 극우가 개신교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런 존재로 전광훈과 손현보가 주목을 끈다.

전광훈은 개신교의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출신 지도자다. 해서 그는 전통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 교리도, 직제도, 교회도 얼마든지 해체하거나 재활용하는 것이 그에겐 너무나 쉽다. 하여 끊임없는 이단 시비가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그는 근대 개신교 바깥의 탈 근대적 혹은 전 근대적 지도자로 인식되었다.

전 근대적인 거리의 전도자들에게 그는 친숙한 존재일 수 있었다. 또 탈 근대적인 온라인 극우에게도 상대적으로 이질감이 적게 여겨질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제도 해체적 요소는 그를 다양하게 해독되도록 했다. 하지만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체로 그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손현보는 전형적인 인사이더 지도자다. 해서 그가 극우 대열의 전면에 나서자 많은 개신교 극우 인사들이 지지를 표했다. 전광훈과는 엮일 수 없어도 손현보이기에 가능했다.

그가 극우의 전사로 부상한 것은 미국발 극우적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movement)과 엮이면서부터다. 이 분파는 개신교 주류 사이에서 이단시되곤 한다. 그 운동이 제도적 직제를 해체하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개신교는 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실제로 전광훈이 한기총의 대표회장이던 때에 신사도운동 계보의 교회를 가입시키자 한기총 내에서 전광훈을 축출하려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한데 손현보에겐 그 관계가 그를 축출하려는 여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인사이더였기 때문이겠고, 그와 엮인 신사도운동계 극우파 인사들이 트럼프의 부활을 주도한 이들이었다는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관계는 그에게 약점이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어쩌면 그는 이미 양자택일의 기로에 있는지 모른다. 신사도운동이냐 교계 지도자들이냐를 두고 말이다. 전자는 극우노선을 강화하는 것으로 표상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극우색이 옅어지고 강성우파 성격을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의 최근 근황을 보면 후자의 조짐이 엿보인다.

반면 전광훈은 돌아갈 곳이 없다. 그에겐 극우의 길밖에 없다. 우려되는 것은 테러리즘이다. 하층 혹은 온라인 극우 청년층이 오프라인에서 전광훈과 연결된다면 그들의 일부는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극우가 현재의 정치의 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테러리즘화할 우려는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해서 극우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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