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 법원은 왜 신동호 EBS 사장 임명에 제동걸었나. (김성관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장) (⏳3분)
민주주의 꽃 피는 봄이 왔다
2025년 4월 4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정표가 세워졌다. 헌법재판소가 엄숙히 내린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결정은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다.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투쟁 위에 어렵게 쌓아 올려진 소중한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의 결정은 단순한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간절히 염원한 국민의 뜻을 대변한 결과였다.

이진숙-김태규 2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3월 26일 신동호 EBS 이사를 신임 EBS 사장으로 임명했다. 신동호 씨는 일부 여권 이사들이 동원한 극우성향 유튜버와 보수시민단체의 비호 아래 EBS 문을 두드렸다. 이들은 방송의 독립성을 요구하는 EBS 구성원들에게 폭언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매일 지나다니는 EBS 정문 앞에 혐오와 극단적 표현이 난무하는 근조화환을 설치해 공영방송 공간을 정치적 혐오와 분열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런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 이면에는 공영방송을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끝까지 ‘알박기’ 시도하는 2인체제 방통위
4월 3일 신동호 씨는 EBS 여권 이사들과의 간담회에 참여하겠다며 일산 EBS 사옥으로 출근을 시도했다. 보수단체 구성원과 유튜버들이 신 씨 주변을 에워싸며 그의 출근을 응원했다. 하필이면 이날은 제주 4·3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일이기도 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으로서 이날은 더욱 고통스럽고 분노가 컸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지울 수 없는 고통이 새겨진 이 날, 또 다른 민주주의의 상처가 발생한 것이다.
12.3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흔들고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한 내란세력은 그 영향력을 EBS까지 확대하려 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다고 의심되는 신동호 씨를 EBS 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공영방송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진숙-김태규 단 두 명의 방통위원만으로 EBS 사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5인 합의제 원칙과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한 위법적 행태였다. 명백한 법적, 절차적 하자인 동시에 EBS가 쌓아온 공영방송으로서 신뢰와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공영방송, 정치적 후견주의 그늘 벗어나야

EBS 구성원들의 저항은 단호하면서도 단단했고 강력했다. 저항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견고하게 결집했고, 결국 법원의 합리적 판단으로 방통위가 휘두른 칼날은 무참히 꺾였다. 법원의 결정은 명확했다. 4월 7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는 김유열 전 EBS 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신동호 사장 임명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승리였으며, 언론자유와 방송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방통위법은 방통위의 회의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이 위원 간의 토론과 협의를 통해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전제하고 있다.”
- “그런데 이 사건 처분의 경우 피신청인을 포함한 2인의 재적위원이 신동호를 EBS 사장으로 임명하는데 동의하기로 심의, 의결하고 그에 따라 피신청인이 신동호를 EBS 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이루어졌는 바, 피신청인의 주장과 그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이번 결정이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메시지는 엄중하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필수적 요소이며, 결코 정치권력의 영향 아래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EBS를 포함한 공영방송의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지금처럼 방통위가 사실상 행정부 산하기구로 존재하며 EBS 사장과 이사를 임명하는 구조는 정치적 후견주의의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단지 행정부 수반으로서가 아니라 국가 원수로서 헌법적 책임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고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임명과 같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정치적 압력과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도록 하는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EBS의 이번 싸움은 EBS 구성원만의 싸움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싸움이며, 모든 시민이 함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역사적 순간이다. EBS를 포함한 공영방송이 진정한 민주적 독립성을 확보할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더욱 성숙하고 견고한 기반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민언련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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