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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의 북라이딩] 이태원 참사 3년,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가 어떤 슬픔을 건너고 있는지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그리고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 (⏳4분)

📚마냐의 북라이딩📕

이태원 참사 3년,
아빠는 일기를 쓰고 엄마는 그림을 그렸다

신정섭,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2025)
김남희,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 (2025)

“애진이 없이 맞이한 첫 번째 내 생일, 하루 종일 울기만 했다. 아침 산책길엔 인적이 없는 곳에서 울었다. 밥을 씹는 게 서러워 울었다. 방에서 혼자 꺼이꺼이 울었다. 늘 듣던 음악 소리에 맞춰 울었다. 내가 우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잃어본 적이 처음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가장 축하받고 싶은 이의 축하를 받지 못해서였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생일이란 낱말에 ‘생’자가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애진이 없이 살아내야 하는 ‘생’은 참 어려운 숙제다…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그날 이후 3년…

이태원 참사 이후 3년이 흘렀다. 가족과 친지, 친구를 잃어버린 이들의 고통이 조금 엷어졌기를 기대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사무침은 더 지독할지도 모른다.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는 이태원 참사로 딸 애진을 잃은 신정섭 씨가 쓴 일기다. 남아 있는 생이 숙제처럼 버겁고 힘들 때, 그는 기록을 남겼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유튜브에서 싱잉볼 소리를 켜고 향초에 불을 붙인다.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쓴다. 애진이를 만나려고 쌓은 나만의 방법이 어느새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되었다.”

루틴이라는게 사람이 우울하고 힘들 때 꽤 도움이 된다더니, 그렇게 버텨준 시간이 고맙다. 당초 딸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시작한 일기는 이태원 참사 100일 무렵, 언론에 소개됐다. 3주기를 앞두고 출간된 이 책은 우리가 이태원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함께 위로를 나눠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가 어떤 슬픔을 건너고 있는지 솔직하게 토로하는 글은 여운이 다르다.

“희한하게도 슬픔이 커지는데 고통은 줄어든다”

애진 아빠가 배운 것은 누구나 자기 슬픔이 가장 크지만, 다른 이의 슬픔에 손을 내밀 때 슬픔의 크기는 그대로여도 고통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그는 “슬픔은 다른 슬픔을 만나 더 큰 슬픔이 되는데, 희한하게도 슬픔이 커지는데 고통은 줄어든다“나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을 지탱하고 이끄는 에너지도 이렇게 슬픔을 나눌 때 빛을 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슬픔을 나누는 것 뿐이다.

당시 애진이의 친구들은 조문하는 방법도 몰라 그저 울기만 했고, 애진 엄마는 그저 한 명씩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애진이는 행복하게 살다 갔어.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 위로는 받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부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비롯해 애진과 함께 했던 곳을 차례로 찾았다. 문득 북받쳐 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도, 그런 횟수가 예전보다는 줄어들고 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제사가 사라질 만큼 온 집안의 충격이 컸지만, 누나를 잃은 아들과 서로 기대며 생을 버틴다. 밝고 활기차게 남을 배려하면서 꿈에 도전하는 삶, 딸이 원했던 삶을 대신 사는게 의무가 됐다. 애도하면서 자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게 사랑에 대한 예의이자,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도라는 걸 서로 배우는 사연도 애틋하다.

정부 대응, 분노와 당혹감

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대응에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어떻게 분노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는 새삼 비통하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는 나름 수사결과를 등기우편으로 유가족들에게 보냈다. 단 한줄이었다. ‘군중유체화’로 사망했다고 했다. 사전에도 없는, 생전 처음 접하는 단어는 당혹감만 남겼다. 군중이 한 덩어리로, 유체, 즉 흐르는 물체처럼 움직였다고?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 참사라는 사실도 함께 깨달아야 했던 시간은 모두에게 잔혹했다. 3년 만에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 이태원 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고, 정부 공식 추모 행사도 열렸다. 그동안 진상 규명을 위해 삼보일배 하며 거리에서 눈물을 쏟았던 유가족들의 고통이 조금은 달래졌을까.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징계 공소시효는 3년까지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고통마저 일상으로 품고 지나갈 뿐이다.

“고통도 만나다 보니 익숙해지고 이젠 그냥저냥 견딜만하다. 죽음 앞에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죽음으로 가는 길도, 감정도 모르면서 죽을 것같이 고통스럽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아빠는 일기 쓰고, 엄마는 그림을 그렸다

아빠는 딸의 이야기를 남김으로써 딸의 생을 이어가는 마음이다. 그렇게 아빠가 일기를 쓰는 동안, 엄마는 그림을 그렸다.

“견디기 힘든 날, 잠 못 드는 밤마다 펜이 가는 대로 그렸다며 아내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보여줬다. 스케치북은 애진이로 가득했다. 아내는 동화책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제목도 생각해 두었다고 했다. 신칠라의 신나는 인생. 신칠라. 친구들이 붙여준 애진이 별명이다.”

엄마 김남희 씨는 ‘애진이의 여행'(Shinchilla’s Journey)이라는 짧은 그림책을 엮은 뒤, 지난 5월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그림책을 정식 출간했다. ‘아로새기다’는 딸이 좋아했던 단어. ‘마음속에 또렷이 기억하여 두다’는 의미다. 부모는 각자의 방식으로 심장에 딸을 아로새겼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 (김남희, 2025)

이태원 참사 이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추적하고 ‘정부가 없다’는 책으로 정리할 때는 분노와 슬픔, 미안함뿐이었다. 이제는 슬픔을 끌어안고 사는 이들과 서로 위로를 나누고, 마음을 포개는 시간을 이어간다. 슬픔을 나누면 고통은 줄어든다는 말씀을 깊이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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