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홈플러스 기업어음(CP : Commercial Paper)과 단기사채의 신용 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한 지 나흘 만인 지난달 4일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는 재정이 어려운 기업이 파산을 피하고 정상 경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법원의 감독 아래 채무를 조정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제도다. 홈플러스는 “신용 등급 하락으로 인한 잠재적 자금 문제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PEF : Private Equity Fund) 운용사 MBK 파트너스는 2015년 차입매수(LBO : 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LBO는 인수 대상 기업(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대규모 차입금을 조달해 인수한 뒤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으로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M&A 전략이다.

MBK 파트너스 회장 김병주.

이게 왜 중요한가.

  • 론스타부터 뉴브리지, 칼라일, MBK에 이르기까지 사모펀드는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이나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기업에 자본을 공급해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도록 돕지만 애초에 시세 차익이 목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단기 실적과 장기 성장성이 충돌하고 기업이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 Winner takes at all. 최대 주주가 모든 것을 갖는 게임의 룰이다.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명분이 노동자와 고객, 거래 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극단적으로 자산을 내다팔아 현금을 늘리고 배당을 챙겨 빠져나가는 게 사모펀드의 전형적 수법이다.
  • MBK 파트너스처럼 빌린 돈으로 기업을 사들이고 기업 돈으로 갚아나가는 차입형 레버리지 방식의 투자는 대부분 끝이 좋지 않았다. 합법일 수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약탈에 가깝다.

단기 수익을 좇는 사모펀드.

  • 사모펀드는 돈을 챙겨 나가고, 고통은 사회가 겪는다.
  • 인수된 기업은 부채를 떠안게 되는데, 사모펀드는 원금과 이자 상환, 주주에 대한 특별 배당 명목으로 기업의 사내 유보금을 탈취하고, 부동산 등 핵심 자산을 매각하여 투자금을 회수한다.
  • 전문가들은 이 같은 단기 수익 추구가 기업 재무를 악화하고 고용, 공급망, 장기 투자 여력을 훼손시킨다고 말한다. LBO가 인수 1~2년 내 빠른 청산을 목표로 하는 전략과 결합하면, 기업 파산 위험을 높이고 지역 경제에도 큰 충격을 주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MBK는 어떻게 홈플러스를 망가뜨렸나.

  • 홈플러스는 과도한 레버리지 비율이 문제가 됐다. MBK는 2015년 7조2000억 원을 투입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71%인 5조 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을 받아 조달했다.
  • MBK 인수 후 홈플러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재무 건정성이 악화했다.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에 따르면, MBK 인수 후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지출된 이자 비용 합계는 약 2조9329억 원이다. “아무리 벌어봐야 이자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매장 폐점, 자산 매각, 대량 해고 시나리오.

진보당 의원 정혜경(오른쪽)은 21일 국회서 ‘홈플러스 사태로 본 투기자본 MBK 규제 방안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경제학 박사 임수강이 발제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돈은 사모펀드가 벌고, 손실은 사회가 입고.

  • 21일 진보당 의원 정혜경이 국회서 주최한 ‘홈플러스 사태로 본 투기자본 MBK 규제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경제학 박사 임수강은 5가지 질문을 던졌다.
  • 대표 사모펀드인 MBK 파트너스의 대형 유통업체 인수와 경영 실패는 예외적 사건인가, 아니면 사모펀드 본질을 보여주는 사건인가?
  • 사모펀드가 지배구조 개선으로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는가? 되레 회사가 사모펀드 운용사 대주주에 의해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운용되어 기업 가치가 하락하는 것 아닌가?
  •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 효율을 높여 기업 가치를 제고한다는 사모펀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모펀드 이익의 원천은 무엇인가? 노동자 착취와 기존 회사 자산의 수탈, 조세 감면과 회피가 사모펀드 이익의 원천 아닌가?
  • 사모펀드가 경영 실패 책임을 사회에 떠넘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 사회가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 책임을 떠맡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 사모펀드가 수행하는 사회적 순기능은 무엇인가? 정부가 사모펀드를 육성해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장 안수용은 “회생 과정에서 매장 폐점, 자산 매각, 대량 해고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홈플러스를 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10만 명의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국민연금의 사모펀드 투자 바람직한가.

  • 정혜경 의원실 선임비서관 조인환은 사모펀드의 ‘수익성, 단기성, 익명성’을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 의견을 제시했다.
  • 민주당 주도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현행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정혜경은 여기에 ‘이사가 근로자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고려할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기업이 법원에 회생 계획을 제출할 때 노조 동의권을 부여하는 내용 등도 정혜경 안에 담았다.
  • 조인환은 국민연금법 개정도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수익의 최대 증대’를 이유로 사모펀드에 활발하게 투자하는데 “정부 역할이 사모펀드 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이 최고 수익을 요구하는 기관 투자자로 사모펀드에 참여하는 건 매우 양면적”이라는 것이다. 기금 투자 시 ESG 가치 투자를 고려하도록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ESG는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약자다. 기업이 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에 초점을 두어 지속가능성(Sustainbility)을 모색해야 한다는 가치다.
  • 이 밖에도 △사모펀드의 자기 자본(자산 – 부채) 대비 400%까지 가능한 차입 한도를 200%로 제한하고, △경영권 참여 목적으로 투자할 경우 5년 이상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투자 정보를 공시하고, △다른 회사 명의로 채무 보증, 담보 제공, 차입 행위 등을 규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본질적 질문 : 주주 자본주의가 경제 민주화의 해법인가.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박사 정승일은 주주 자본주의 그 자체를 직격했다.
  • “지난 20년 동안 진보의 주류 담론은 ‘주주 자본주의가 경제 민주화의 주역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대주주의 나쁜 짓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소액 주주 권한 강화라는 결론인데, 사모펀드 MBK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도 소액 주주다.”
  • “우리나라 10개 금융 지주회사들은 지난해 24조 원을 벌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이걸 누가 가져가나? 은행법상 재벌은 못 가져간다. 주주나 펀드가 가져간다. 이들은 내일 은행이 망하든 말든, 끊임없이 배당이나 (주가 상승을 위한) 자사주 매입을 요구한다. 은행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은행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 자본 비중)은 떨어진다. 손실은 사회가 부담하고 이익은 주주가 가져가는 것이다.”
  • 다만, 정승일은 모든 사모펀드가 약탈적이진 않다고 했다. 이를테면, 기업은행은 가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적당한 인수자를 찾아주기 위해 사모펀드를 조성했다. 이 펀드는 정리 대상 기업의 내부 직원과 기업을 공동 인수하는 방식(MBO : Management Buyout)으로 승계를 지원했다. “이와 같은 공익형 사모펀드는 산업 고도화를 위해, 일자리 보존을 위해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박사 정승일은 주주 자본주의 그 자체를 비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대안과 해법 : 통제 없는 주주 자본주의, 먹잇감으로 갖다 바치는 꼴.

  • 대한민국은 2004년 정부 주도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개정하여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했다. 다양한 투자 수단을 제공하고,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 제도 도입 초기부터 연기금의 사모펀드 참여를 허용하여 성장을 뒷받침했다. 임수강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사모펀드 연평균 성장률은 11%였지만 한국 사모펀드의 연평균 성장률(2004년~2023년)은 20.6%에 달했다.
  • 사모펀드는 부실 채권을 처리하거나 부실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재벌의 전횡도 견제하는 등 시장의 효율화 및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평가도 듣는다. MBK가 그런 역할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것이다. 안수용은 “MBK가 토종 사모펀드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망할 위기에 처했다”며 “국가가 이들을 육성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 정승일은 정부에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정부가 ‘토종 사모펀드 육성’을 명분으로 지난 20년간 지원했는데, 대한민국 산업 기반이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금융업 육성은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은 일자리나 부를 창출하는 산업이 아니다. 이를 정책적으로 육성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 김연정(변호사)은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에 따른 대량 해고 등을 예방하기 위해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이사제 같은 제도가 있다면 사모펀드 눈에 그 기업은 ‘맛없는 먹이’처럼 비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트롤이 문제인가, 트롤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문제인가.

결론: ‘경제 민주화’ 사회적 합의 필요하다.

  • 상법 개정안 논의와 함께 경제 민주화 논쟁에 관한 전반적인 복기와 반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 해외 투기자본이라 문제고 국내 사모펀드는 자본 시장 활성화고 이렇게 나눌 문제가 아니다. 사모펀드의 투기적 속성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주 충실 의무 못지않게 노동자와 기업의 영속성,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를 보장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론스타가 문제가 아니라 론스타의 먹튀를 보장하는 시스템이 문제였고 MBK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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