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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 씨의 사인 논란은 이제 ‘교통정리’가 끝났다. 외인사. 고 백남기 씨는 물대포(공권력의 과잉진압)라는 물리적인 외부 요인으로 사망한 것(외인사)이지 환자가 가진 기저질환이라는 내부 요인으로 사망한 것(병사)이 아니다.

고 백남기 사인은 ‘외인사’ 

그것이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병사’) 논란에 대한 서울대병원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결론이다. 특조위 위원장 이윤성 교수는 JTBC 인터뷰에서 “서울대의 의견은 외인사인가”라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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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를 비롯한 머리 손상입니다. 사망의 종류는 그거(급성경막하출혈)에 따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급성경막하출혈이 질병으로 생긴 게 아니라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입니다. 그게 제 의견입니다. ” (이윤성 교수)

검찰의 부검 영장 청구와 이에 대한 법원의 조건부 허가에 관한 논란은 별론으로, 부검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면, 그 목적은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불필요하다.

빨간 우비의 등장, 그리고 오컴의 면도날  

그런데도 여전히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그 의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빨간 우비’다. 외인사는 외인사인데, 물대포에 의한 외인사인지, 아니면 ‘빨간 우비’로 불리는 신원불명의 개인(의 의도적인 폭행)에 의한 외인사인지를 가려야 한다는 게 그 의견이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게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또는 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의 원리’라고도 한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였던 오컴의 윌리엄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문은 라틴어로 된 오컴의 저서에 등장하는 말이다.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많은 것을 가정하면 안 된다.”
“좀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쉬운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

-위키백과, ‘오컴의 면도날‘ 중에서

물대포설 vs. 빨간 우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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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 백남기 씨는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라는 외부 요인으로 사망했다. (서울대 의견, 시민 대다수 의견)
B. 고 백남기 씨는 (물대포와 상관없이) 현장에 있는 신원불명 남성인 ‘빨간 우비’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행으로 사망했다. (일부 온라인 게시물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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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A를 ‘물대포설’이라고 하고, B를 ‘빨간 우비설’이라고 하자. 어떤 가설이 고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을 설명하는가.

물대포설은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로 연결된다. 경찰은 물대포를 쐈고, 고 백남기 농민은 그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았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직사 살수는 한겨레가 공개한 CCTV 영상을 통해 그 과정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물대포설은 보이고 확인 가능한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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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빨간 우비설을 보자. 빨간 우비설이 ‘진실’이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가정이 일부 혹은 전부 충족되어야 한다. 다음 가정이 충족될 수 있는 가정인지 혹은 고려할만한 가정인지 한번 판단해보시라.

  1. 빨간 우비는 물대포에 일단 쓰러진 백남기 씨를 가격하기 위해 물대포가 쏟아지는 각도를 계산해 위치를 정한 다음 정확히 쓰러져 백남기 씨를 가격했고, 그 가격으로 백남기 씨는 사망했다.

→ 당신이라면 물대포 각도를 계산해 쓰러진 사람을 가격하려 했겠는가.

  1. 빨간 우비는 많은 매체와 시민이 현장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와중에도 백남기 씨를 살해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그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 당신이라면 물적 증거로 남겨질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는 현장을 살해 장소로 선택했겠는가.

  1. 빨간 우비는 고 백남기 씨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인데 백남기 씨를 살해할 장소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집회 현장을 선택했다.

→ 당신이라면 수많은 목격자가 존재하는 현장을 살해 장소로 선택했겠는가.

빨간 우비, 이제는 퇴장할 때 

결론은 명확하다. ‘빨간 우비’를 고 백남기 씨의 사인과 연결짓는 일은 일견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합리적인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는 명백하게 “사고 절약의 원리”에 반하는 ‘사고 낭비’일 뿐이다. 위에 예시한 가정을 모두 부정해야 한다면,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빨간 우비는 집회 현장에서 쓰러진 백남기 씨를 돕기 위해 다가갔다가 물대포에 밀려서 단순히 백남기 씨 위에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그 책임은 물대포를 살수한 경찰에 있지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빨간 우비에게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경우 빨간 우비는 경찰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폭력(물대포)의 연장선에 선 도구(물건)로 평가할 수 있을지언정 어떤 범죄(그것이 고의이든 과실이든)의 주체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 백남기 씨의 죽음을 ‘빨간 우비’로 ‘물타기’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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