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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대병원 간호사다.

정부는 공공기관 성과급제 권고 지침을 내렸다. 그리고 성과급제는 취업규칙에 불이익이 오는 변경 사항이 아니므로 노사합의 없이 이사회를 통해서 실시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힌트(?)도 주고 있다.

우리 병원에서도 성과급제가 문젯거리다. 노사협의회 회의(교섭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성과급제를 불법으로 강행하지 말라”고 말했고, 병원장은 “자기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 정부에서 성과급제 지침이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병원에서 성과급제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인데 성과를 내고 수익을 창출하라니. 기념품이라도 만들어 팔고, 병원 로비에서 호떡이라도 구워 팔라는 건가? 그게 아니면 비싼 검사나 시술을 많이 받는 환자, 돈 되는 환자를 많이 유치해서 환자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내라고 권하는 건가?

성과급? 내 환자, 남의 환자 구별하라고? 

병원에서 한 달이라도 일해본 사람이라면 성과급제와 환자의 안전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은 혈액투석실에서 일하지만, 그 전엔 내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중환자실에선 내 담당 환자가 아니더라도, 실내에 있는 다른 환자의 상태가 악화해 위급해지면 즉, 심폐소생술과 같은 상황이 닥치면 십여 명의 간호사가 일사불란하게 서로 돕는다.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서는 4명의 간호사가 필요하다. 그러면 또 나머지 간호사들은 그 간호사들이 담당하는 환자의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고 투약을 비롯해 필요한 각종 의료처치를 대신 맡아준다. 4명의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다른 환자들이 위험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내 환자, 남의 환자 가리지 않는다.

환자 간호사 의사
병원에 성과급제 도입? 이제 내 환자, 남의 환자 구별해서 ‘성과’를 측정하겠다는 건가?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건지, 그리고 환자의 안전에 해가 되는 건지는 병원에 한 달만 근무해봐도 안다.

하지만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서서 남의 환자를 돕게 될까? 돕더라도 눈에 띄는 일을 하려고 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머지 환자들 상태를 보살피는 일을 할까? 실컷 심폐소생술 끝내고 돌아왔는데 내 환자 상태가 엉망진창이고 중요한 약물이 하나도 투약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래서 투약오류 보고서 따위를 써야 하고, 나쁜 점수를 받고, 저성과자로 한심한 취급을 받고, 월급까지 깎인다면?

이 간호사가 다음에 다른 간호사의 담당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 만사 제쳐놓고 선뜻 달려갈 수 있을까. 다른 간호사의 실수를, 다른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을 외면한다 해서 누가 이 간호사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성과급제를 시행하면서 ‘성과에 눈이 멀어 환자의 생명은 뒷전인 간호사!’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간호사들은 지금 자아가 분열될 지경이다.

누구를 위한 성과급인가 

병원은 협업이 필수다. 우리가 혼자 일을 진행해도 무리가 없는 작업이라면 성과급제를 도입해도 좋다. 혼자서 인형 눈을 붙이는 사람이라면 10개 만든 사람에게 1,000원 주고, 15개 만든 사람에게 1,500원 주는 거 당연히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의 모든 일은 환자 중심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환자의 질병이 악화할 수도 있고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정말 심각한 상태일 때는 간호사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대체 누굴 위한 성과급제인가? 간호사 능력과 비교하면 월급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운가? 성과급을 얼마를 주건 간에 나는 위급한 환자에게 달려갈 때 각종 시말서나 성과급이 아른거리는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다.

중환자실 병원 의사 간호사

나이팅게일 선서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이 선서는 바뀌어야 할 판이다.

나의 성과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나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월급통장의 안녕을 위해서 헌신하겠습니다.’

서울대병원이 원하는 간호사가 이런 간호사인가? 병원 성과급제를 입에 올리는 사람은 의료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졸업한 지 오래돼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신 병원장님께 상기해드리고 싶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네 번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성과급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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