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동네 커뮤니티 센터 수영장에 자주 간다.
캐나다 수영장에서 생긴 일
수영에 익숙한 사람들이 도는 레인 말고 아이들과 노는 자유 수영장은 물이 가슴까지 밖에 안 오고 크기도 조금 큰 배구장만 한 데 항상 안전요원 서너 명이 풀 주위를 상어떼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다.
캐나다다운 비효율이다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아이들과 수영하던 중 안전요원 한 사람이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비호처럼 날아서 단숨에 풀 한가운데로 뛰어든 안전요원 청년은 조금 깊은 곳에서 혼자 허우적거리고 있던 꼬마 여자아이를 건져냈다.
동양계로 보이는 어머니는 고맙다며 아이를 받아 안으려고 했는데 안전요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어머니까지 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추방당할 뻔한 엄마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나중에 알고 지내던 한국분이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게 되어 내가 통역을 도와주면서 알게 되었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보호자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무조건 공식적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주의를 받고 혹시 또 다른 부주의가 있는지 상담원이 아이와 따로 상담해야 한다.
내가 도와드린 사례는 아이가 허벅지에 멍이 든 이유를 묻는 상담원의 질문을 잘못 알아들은 아이가 ‘엄마가 때리면 이런 상처가 생긴다’고 답하는 바람에 곧장 지역 아동학대센터로 신고가 들어가면서 캐나다에서 추방될 뻔했다.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학대센터 담당자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캐나다의 ‘락 다운’ 시스템
캐나다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락 다운'(Lock down)[footnote]비상 상황이 되면 학교가 자동폐쇄되는 걸 락 다운이라고 한다.[/footnote]이 발생할 때 아이를 인수할 사람을 3순위까지 적어내라는 서류를 서너 번은 받는다.
락 다운 상태가 되면 아이를 하교시키지 않고, 이 서류에 인수자로 지정된 사람이 아이를 데리러 와야만 아이를 내준다. 하도 여러 번 이 서류를 써내라고 해서 지진이나 해일도 없는 나라에서 이게 웬 호들갑인가 했다.
그런데 한 달쯤 전 아랫동네인 서리(Surrey) 지역 어느 초등학교 근처에 총을 들고 배회하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은 학교는 즉시 학교 전체에 락 다운 경보를 발령했다.
락 다운이 발효하면?
이때 처음 안 거였는데 캐나다 학교들은 창문에도 모두 쇠로 된 셔터가 달려서 락 다운에 들어가면 문과 창문에 모두 셔터가 내려진다. 당연히 밖에서는 문을 열 수 없어서 침입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학교가 락 다운에 들어감과 동시에 무장 경찰이 출동해서 총을 들고 학교 앞길을 어슬렁거리던 남자를 체포했다. 알고 보니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어서 집에 있던 장난감 소총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었다.
사태가 정리되고 난 후 비상연락망을 통해 연락받은 부모가 학교로 찾아와서 아이들을 데려갔고 지역방송에서는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임시휴교와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방송되었다.
등하교 스쿨버스의 ‘장관’
미국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아이들을 등하교시키는 스쿨버스가 정차할 때는 장관이 펼쳐진다. 일단 차선이 몇 개든 간에 스쿨버스가 정차해서 아이들이 타거나 내리면 추월이 금지된다. 그래서 스쿨버스의 진행방향 차선은 완전히 정지된다.
게다가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갑자기 건너편으로 건너가다가 사고가 날수도 있으므로 반대편 차선도 정지된다. 간단히 말해 도로 전체가 마비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천천히 움직이는 스쿨버스에서 아이들이 다 타고 내리려면 하세월이지만, 아무도 경적 한 번 울리는 일이 없다. 심지어 가끔 이런 규칙을 위반하는 차들을 막기 위해 밴쿠버 스쿨버스에는 앞뒤에 블랙박스 카메라를 설치해서 위반 차량에 예외 없이 엄청난 벌금을 매기는 정책을 도입했다. 모든 스쿨버스가 단속권을 부여받은 셈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캐나다는 한국보다 16시간 정도 느리다. 그래서 어제 온종일 4.16을 추모하는 글들을 소셜미디어에서 봤고 오늘은 캐나다에서 4.16을 맞이했다.
가슴 아픈 날이 이틀간이나 이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존중받는 세상이었다면, 사람의 가치가 이렇게 인정받는 나라였다면 그렇게 어이없이 생때같은 아이들을,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지 않았을 텐데……
그저 돈푼이나 조금 더 만지는 나라가 되었다고 으쓱거리며, 정작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상식도 저버린 ‘상스러운 나라’를 괴물처럼 키워온 우리의 부끄러움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얼마나 가슴에 깊이 사무치는지……
[box type=”note”]
이 글은 ‘세월호’ 2주기에 즈음해 필자가 캐나다에서 경험한 일화를 바탕으로 당시의 소회를 기록한 글입니다. (편집자)
[/box]